남방 여왕의 땅이
남방 여왕의 땅이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18.06.2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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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낙원에서 생지옥으로 변한 예멘

남방 여왕의 땅이,중동의 낙원에서 생지옥으로 변한 예멘


 

예멘은 솔로몬 왕의 시대에 먼 길을 여행하여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찾아 왔던 남방여왕의 땅으로 알려져 왔다. 나라가 갈라져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다시 내전이 발생하여 국민들 전체가 불행해진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예멘 공화국은 중동의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있는 국가이다. 가장 오래된 인류 거주지 중 하나로 유구한 역사를 지녔으며, 천일야화의 주요 배경지 중 하나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유럽의 길목에 있어 예로부터 문화적으로 풍부했고, 중동 국가 가운데서 아랍인의 독특한 기질과 문화적 전통을 가장 잘 이어가고 있는 나라로 손꼽힌다. 북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인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오만과 인접해 있다.

자연 및 지리

아라비아 반도 남서부에 위치하며, 북위 12도에서 20도 사이에 위치한다. 홍해아덴 만아라비아해에 접하여 있고, 북쪽으로 사우디 아라비아, 동쪽으로 오만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아덴 만을 사이에 두고 소말리아와 만난다. 본토 이외에 소말리아 앞바다에 위치한 인도양의 소코트라 섬 등도 예멘에 속한다.

예멘의 국토 면적은 약 52만 8,000km ²이다. 수도는 사나이고, 지리학적으로는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홍해 연안, 서부 산지, 동부 산지, 북쪽 룹알할리 사막 사막의 지역이다. 티하마로 불리는 홍해 연안은 매우 건조하고, 산지에서 흐르는 강은 보기 힘들며, 와디 또는 지하수의 형태로 존재한다. 서부 산지는 강수량이 많기 때문에 계단식 농업을 한다. 수수가 주를 이루며, 면화와 망고 등 과일도 재배된다. 이 지역은 밤낮의 기온차가 크다. 동부는 해발 2,000m 지역이며, 기온차가 서부산지보다 더 크다. 낮 30℃, 야간 0℃의 기온 차를 보이기도 한다. 동부 지역은 보리나 밀이 재배된다. 룹알할리 사막에서는 베두인 유목민이 있으나, 이들은 낙타 유목만을 하고 있다. 아덴 만 연안의 해얀 평야에서는 수리를 이용한 농작물을 경작한다. 기온은 홍해 연안이 높고 중부 고지가 쾌적하다. 중부에서는 연간 400∼1,000mm의 강우량을 보인다. 홍해 연안의 평야는 40∼50℃의 고온과 높은 습도의 기후를 이룬다.

 

역사

1517년 이후부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 1839년 천혜의 무역항인 아덴을 노린 영국이 남예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면서 분단 시대가 시작됐다. 1918년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자 북예멘이 먼저 독립하였으며, 1962년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자본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 한편 소련의 지원 하에서 독립한 남예멘은 사회주의 국가가 수립되었다. 1972년·1973년·1979년에도 국경 문제로 남예멘과 북예멘 간에 무력 분쟁이 이어져 왔으며, 1978년 6월에는 가즈미 북예멘 대통령이 남예멘 특사와 회담 중 암살됨으로써 남예멘과 북예멘 간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1990년 5월 남북협상에 의해 통일이 성사되었으나 1994년 5월에 재분단되어 전면적인 내전이 시작되었고, 1994년 7월 북예멘의 일방적 승리로 다시 통일이 성취되었다.

남북통일과 내전

예멘은 과거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북예멘(예멘 아랍 공화국)과, 19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사회주의 정체를 채택한 남예멘(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1990년 남북간 합의로 통일정부가 구성되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정부 요직 분배와 관련하여 충돌이 발생, 내전으로 비화했다. 남예멘 관료들은 예멘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 내전은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북예멘 군대가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점령하며 북예멘의 승리로 끝나, 비로소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통일된 지 22년 만에 다시 분단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1] 2013년1월 14일에는 예멘 남부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후티 쿠데타와 사실상 재분단

2004년부터 시아파 무장 단체 후티는 예멘 서북부를 중심으로 예멘 정부에 대한 반란을 시작했다. 2014년 9월부터 후티 반군은 수도 사나에 진입하여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쿠데타(후티 쿠데타)가 시작되었다.

2015년 1월 20일, 반군이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대통령궁을 장악했다.(후티 쿠데타) 정보장관 나디아 알사카프에 따르면 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는 대통령궁 내부에서 30분 동안 거대한 포격을 받았지만, 경비원의 보호에 따라 무사히 다치지 않고 보호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원은 하디 대통령이 안전하게 떠날 수 있음을 보장받은 이후 항복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 반란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예멘에서 "상황 악화"를 우려하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1월 22일, 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와 총리 칼레드 바하흐는 의회에 사임을 내고 어떠한 보도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의회는 사임안을 거부할 뜻을 밝혔다.

2월 6일, 후티는 임시 헌법을 발표하며 의회를 해산하고 551명으로 된 새 의회를 구성하며,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간 정부 역할을 맡게 하겠다고 밝혔다. [7] 곧 아덴을 중심으로한 예멘 남부의 주들은 후티 정부의 통치를 거부했다. 이란을 제외한 국제사회는 후티의 통치를 불법으로 보았으며, 이들 국가들은 사나에 있던 자국 대사관을 폐쇄하고 아덴에 새 대사관을 개설했다.

하디 대통령은 2월 23일에 자신은 현재 헌법상 예멘의 대통령이며 사임안이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사임을 취소한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후티의 통치는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하디 대통령은 아덴으로 정부를 옮겼지만 사나를 중심으로 한 후티 세력의 공격을 받아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고, 상대적으로 인구가 희박한 동부 지역만을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랍 국가들의 도움으로 2015년 6월에 하디 정부는 아덴 등 남부 지역을 수복하고 후티 세력에 맞서 예멘 전역을 수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하디 정부는 2015년 9월말 아덴으로 환도했다. 한동안 하디 대통령은 리야드에 계속 머물렀고 하디 대통령은 2015년 11월에 뒤늦게 귀국하였다.

정치

예멘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 중 유일하게 공화제를 채택한 입헌국가이다. 현행 헌법은 1991년에 공포되어 1994년과 2001년에 개정된 것이다. 국가원수는 대통령으로,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임기는 7년으로, 3선이 금지되어 있다. 권한은 막강하고, 형식상으로도 사실상 국가의 최고 지도자이다. 부통령과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위원회의 구성원은 총리의 조언에 따라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자문위원회(111석)과 인민대표원(301석)으로 구성된다. 자문위원회 의원은 모두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인민 대표원의 의원은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6년이다. 그러나 자문위원회에 입법권은 없으며,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조언기관에 불과하므로, 예멘 의회는 실질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민대표원의 사실상 단원제에 가깝다.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고, 여성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한다.

행정 구역

예멘은 22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

이웃 아랍 국가들에 비해 석유나 천연가스의 개발이 늦어, 아랍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꼽힌다. 상대적으로 농어업이 활성화되어 있으나 기후 악화와 낙후된 설비 등으로 식량을 자급할 정도는 되지 못하며, 예멘인들의 국민적 기호품이자 마약성 작물인 까트(Qat) 재배가 지나칠 정도로 널리 확산되어 있어 적지 않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석유 등의 에너지자원은 1980년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공업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된 아덴을 중심으로 정유, 석유화학, 제염(製鹽), 알루미늄 공예 등이 발전해 있다. 인근 아랍국가들과 서방세계로부터 상당히 많은 재정지원을 얻어 왔지만 경제 성장이 더디고, 실업률이 30% 이상이며 물가 상승률도 높다. 다만 석유의 수출이 늘어나며 무역수지는 흑자를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성장 전망은 어둡지 않은 편이다.

인구와 구성

종교 구성 (예멘)
         
이슬람교 (수니파)

  

56.39%
이슬람교 (시아파)

  

43.61%
기타   0.01%

인구는 2014년에 약 2500만 명으로 아랍인이 98%를 차지하고,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국민의 거의 대부분이 무슬림으로, 이 중 수니파가 56%, 시아파가 43%를 차지한다.[9] 시아파의 대부분은 수니파와 비슷한 교리를 가진 자이드파(다섯 이맘파)이고, 열두 이맘파와 이스마일파(일곱 이맘파)도 예멘 내 소수파로서 일정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

문화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생활양식도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러나 이슬람의 가르침보다 부족 내의 규칙을 우선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은 허리띠에 쟌비야라고 불리는 반달모양의 단검을 차고 있다. 이 단검은 소유자의 집안이나 부족, 빈부와 같은 특성을 드러낸다. 실용적인 면보다는 상징으로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날이 예리하지 않은 것도 많아 일상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도시에서 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남성도 많이 보이지만, 그 경우에도 많은 남성이 자신의 집에 쟌비야를 갖고 있다. 여성은 종교적인 관습에 따라서 머리와 얼굴을 가리기 위한 스카프와 몸을 가리는 천을 착용하고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전체를 감추도록 의무적으로 요구되지 않는다. 이것은 개인과 그 가족의 신앙의 깊이에 의해서 판단되므로, 신앙이 깊어지면 그만큼 피부를 숨기는 면적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여성의 이슬람 복장 착용 정도는 이슬람 부흥 등의 사회 경향도 많이 받지만, 일반적으로 예멘의 여성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와 비교하면 착용 비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주로 도시 지역에서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금지된 술 대신, 카트라고 불리는 마약성 작물의 잎을 씹는 관습이 있다. 카트는 예멘인의 사교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거리나 가정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카트를 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무부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제주 지역에 무사증(무비자)으로 입국한 예멘인은 모두 561명. 이 가운데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 이 중 일부는 귀국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나갔으며 현재 486명이 제주에 체류하고 있다. 한국과는 별 연결고리가 없는 중동의 먼 나라가 어쩌다 난민 문제로 우리와 얽히게 됐을까? 

○ 생지옥으로 변한 ‘예멘의 비극’ 

예멘 내전은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아랍국가 국민들의 독재 반대 움직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3년간 예멘을 이끌던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물러난 뒤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았다 내부 분열로 지난해 12월 살해됨)이 2012년 2월 권좌에서 내려온 뒤 국가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이 과정에서 예멘 국토는 △이슬람교 수니파인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 △자이드파(시아파의 분파)인 후티 반군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단체인 알카에다 추종 세력이 각각 장악한 지역으로 국토가 ‘3등분’됐다.

특히 예멘 내전은 2014년 8월 후티 반군이 수니파인 정부군과 대대적으로 충돌하고, 이듬해 1월 반군이 수도 사나의 대통령궁을 점령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또 본격적인 ‘국제전’ 내지 ‘대리전’ 양상도 띠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 간 충돌이 내전의 중요 축이지만, 중동의 패권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정부군 지원)와 이란(반군 지원)의 개입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2015년 3월부터 공군력을 대거 동원해 반군 점령 지역에 대한 대규모 폭격에 나서고 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수단 같은 수니파 동맹국들과 함께 ‘아랍연합군’을 구성해 이들 나라의 지상군 투입도 독려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무기와 자금을 대규모로 반군에 지원하는 형태로 맞서고 있다. 

내전의 골이 깊어지며 원시림, 오아시스, 사막, 바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 아라비아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나라로 꼽혔던 예멘은 생지옥으로 변했다. 유엔 등은 2015년 3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예멘 내전으로 최대 1만3600여 명이 사망했고, 약 19만 명이 예멘을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콜레라 창궐로 약 90만 명이 감염됐고, 2800만여 명의 인구 중 약 70%인 2000만 명에게 긴급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근에는 아랍연합군이 국제 구호물자와 수입품의 70∼80%가 들어오는 호데이다항을 탈환하고, 이 지역에 대한 통제와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이로 인해 후티 반군은 물론이고 일반 예멘인들에 대한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참상에 비해 예멘의 비극은 국제사회에 덜 알려진 편이다. 정부군, 반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 등 ‘3개 정파’로 나뉘어 전 국토가 역시 전쟁터로 변했던 시리아의 경우 국민들이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같은 유럽 지역으로 이동하는 게 용이해 참상이 쉽게 알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예멘은 사우디와 오만의 사막 지역과 바다(아덴만과 홍해)로 둘러싸여 있어 ‘탈출’ 자체가 어렵다. 예멘과 인접한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과 예멘인들이 배를 타고 이동한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난민 보호 의지도 유럽에 비해 약하다. 서울에 주재하는 한 중동 외교관은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은 유럽, 중동, 동남아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어 온 이들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사나 지역의 한 어린이가 이달 초 구호단체가 마련해 놓은 물 펌프를 통해 물을 받고 있다. 예멘에서는 내전으로 심각한 식수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콜레라 등 전염병 창궐 위험이 크다. 사나=신화 뉴시스


○ 사우디와 이란 모두 포기하기 힘든 예멘

“현재로선 사태 해결 방법이 딱히 안 보인다.” 
중동 전문가들과 외교가 관계자들은 예멘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사우디와 이란 모두 예멘 내전 개입을 포기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수니파의 맹주이며 동시에 아랍권 대표주자 격인 사우디와 페르시아의 후예로 시아파의 대표국인 이란은 오랜 기간 동안 중동 지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해 왔다. 두 나라는 주변국에서 각각 자신의 종파를 믿는 정치 혹은 무장 세력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워 왔다.  

특히 최근에는 이란의 적극적인 영향력 확대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이란은 중동에 대한 과감한 개입을 지양했던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같이 시아파 인구가 다수거나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인 지역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정세가 불안한 이 나라들의 정권 혹은 시아파나 친이란계 무장단체와 정치단체에 자금, 자원, 무기 등을 공급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선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IS를 퇴치하기 위해 자금과 무기 공급은 물론이고 직접 군대를 보내고 현지 민병대 등을 지원해 대규모 군사 작전까지 벌였다. 레바논에선 남부 지역을 거점으로 대(對)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펼치는 시아파계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중동 외교가에선 ‘이란이 시아파 초승달 벨트(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이란 중심의 동맹 체제)를 상당히 진전시켰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우디 입장에서는 북동쪽으로 직접 국경이 맞닿아 있는 이라크와 소국(小國) 요르단을 넘어 북쪽에 위치해 있는 시리아와 레바논에서 이란의 입김이 커진 데 이어, 남쪽의 예멘에서도 이란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자국 내 원유와 담수화 관련 시설이 밀집해 있고 이란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부 지역에 전통적으로 시아파 인구가 많다는 것도 사우디에는 큰 부담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예멘에서도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면 사우디는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실상 봉쇄되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사우디로선 예멘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고,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강경한 조치를 취해 자국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부티,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같은 동아프리카의 관문 격인 국가들과 인접해 있다는 것도 이란과 사우디가 예멘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체결된 이란과의 핵 합의를 깨고, 이란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건 변수다. 이런 상황에선 이란이 예멘 내전을 비롯한 지역 영향력 확대 움직임에 공을 들이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난민이 발생하고 있는 예멘사태

제주 지역 예멘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한 가운데 ‘세계 난민의 날’인 20일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 정우성이 인스타그램에 “난민과 함께해 달라”는 글을 올리자 누리꾼들 사이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누리꾼은 “난민 받고 이제 북한까지 떠안아야 하는데 그 돈 다 어디서 나오느냐” “네가 데리고 살아라”라고 공격했다. 약 1000명의 무슬림 난민에 의한 ‘2016년 독일 쾰른 집단 성폭력·강도 사건’ 관련 글을 퍼 나르기도 했다. 이에 “우리도 6·25전쟁 겪고 엄청 지원받았다. 올챙이 시절을 모르느냐”는 반박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 북한 무기 문제도 불거지나 

예멘 내전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무기 수출 문제도 부각될 수 있다. 이란과 긴밀한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북한의 무기와 관련 기술이 후티 반군에 흘러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2월 미국의소리(VOA)는 후티 반군이 북한의 미사일 기술을 이용해 단거리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늘렸고, 이를 사우디 본토를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엔 안보리 산하 ‘2140 예멘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지난해 7월 북한산 미사일과 기관총의 반군 유입도 주장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반군들은 북한의 ‘73식 기관총’을 보유하고 있다. 또 ‘화성 5호 미사일’의 복제본인 ‘스커드-B 미사일’도 최소 90기가 공급됐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부터 사우디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 등 주요 시설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늘리고 있다. 향후 UAE 등 사우디의 주요 동맹국의 원전과 원유 생산시설 등을 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과 핵, 미사일 개발 문제 해결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산 무기의 이란 등 중동지역 공급에 대해서도 지적할 수 있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 문제를 원활히 해결하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한 의지를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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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2018-07-08 21:27:10
기독교인으로서 난민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는것이 옳은 것일까요? 나그네를 품는 정신으로 그들을 수용하자니 자국민 안전이 우려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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