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낳은 비극의 땅 DMZ…이젠 최고의 자연 전시장
(1) 자연
한반도 가로지르는 생태의 보고
시작은 서부전선부터다. 파주와 연천의 사천강-백학산-사미천-고왕산-임진강-역곡천 등이 연결되어 하천과 습지 그리고 구릉성 산지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과거 농경지 또는 평야지대가 전쟁 이후 평원으로 변했다. 이 사이 사이에 작은 저수지와 둠벙 등이 습지를 형성하며 어우러져 있다. 구릉성 산지와 하천 그리고 평원과 습지가 자연상태 그대로 맞물려 있다. 특히 서부전선에는 하천의 물줄기가 남북으로 흐르면서 그 배후와 주변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습지를 빚어냈다. 전쟁 이전에는 거의 논으로 이용되던 곳들이다. 정전으로 DMZ가 만들어지면서 대부분의 농경지가 자연천이 과정을 거쳐 습지 혹은 평원으로 변한 상태다.
서부전선에는 습지가 다양하고 넓게 분포한다. DMZ와 민통선 지역을 관통하는 물줄기와 함께 발달했다. DMZ의 습지는 지리적으로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서부전선 DMZ에 들어가면 구릉성 산지 사이 사이로 다양한 습지가 형성돼 있다. 물과 초지의 경계가 따로 없다.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차서 넉넉한 습지가 되기를 반복하는 곳이다.
서부전선 전체가 자연이 스스로 자신의 질서를 찾아서 변모하는 과정에 있다. 겉보기에는 산지에 숲이 빈약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생태계보다 역동적이다. 천이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생명의 관계를 촘촘히 그물처럼 형성하고 있다. 숲이 안정되어 가는 각각의 단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단순히 숲으로만 형성된 것보다는 여러 모습의 숲과 초지, 습지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DMZ 바로 뒤쪽 민통선 산림의 단순한 형태를 뛰어넘는 변화무쌍함이 있다. 이것이 DMZ의 생태적 가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모습 중 하나다.파주부터 고성까지 248km
한반도 가로지르는 생태축
65년 세월 인간 손길 안닿아
산지, 평지, 습지 다양하게 엉켜
산업화 이전 온대림 원형 간직
중부전선은 철원이다. 전체 DMZ의 1/3이 철원 지역이다. 추가령 구조곡을 따라서 DMZ 철원평야까지 이어진다. 중부전선의 철원 DMZ에서 동북 방향으로 평강고원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한반도 중부 자연사의 정점이다. 철원은 평야를 비롯하여 동쪽 김화읍과 원동읍에는 산지도 우람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암산-오성산-성제산-계웅산-한북정맥(삼천봉)-적근산으로 이어지는 철원의 산림지역은 서부와 중부를 거쳐 동부의 산악지형으로 이어지는 생태통로 역활을 한다. 이중 오성산은 우람하게 솟아 있다. DMZ와 붙어 있거나 연접한 산들은 대부분 남한에 주봉이 있다. 그런데 철원의 오성산은 주봉이 북한쪽에 자리잡고 있다. 산지는 대부분 산림으로 되어 있고 그 사이에 한탄강, 김화 화강 등이 북에서 남으로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있다.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금자리
DMZ는 기존 보고서에서도 생태적 가치를 충분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국립생태원은 지난 6월 중순 ‘1974년부터 작년까지 DMZ일대를 조사한 각종 학술보고서를 분석한 것’을 발표했다. DMZ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은 모두 101종으로, 전체 267종의 38%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MZ가 멸종위기 동식물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말해 준다.
멸종위기동식물 101종 서식반달가슴곰, 사향노루, 산양 등
남한 최고의 포유동물 서식지
금강소나무 등 식물도 2504종
막개발 우려…보호 대책 시급
DMZ의 생태적 가치는 동물이 먼저 언급된다. 종의 다양성과 종별 개체수도 남북한 통털어 으뜸이다. 추측컨대 DMZ는 북한의 백두산 원시림지대를 제외하면 한반도에서 가장 안정적인 동물의 서식공간이다. 포유동물의 경우 남한 최고의 서식지라고 할 수 있다. 반달가슴곰을 비롯하여 산양, 사향노루, 삵, 수달, 담비, 하늘다람쥐 등이 살고 있다. 이중 반달가슴곰은 철원부터 화천, 양구, 인제, 고성까지 중부전선부터 동부전선까지 여유롭게 살고 있다. 국내에서 야생반달곰의 서식은 지난 99년 지리산에서 확인된 것이 유일하다. 사향노루도 80년대 이후 직접 확인 된 것은 DMZ가 유일하다. 국립생태원 우동걸 박사는 “포유동물은 생물학적 진화로 볼 때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의 개발과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DMZ는 동물들이 생태적 측면에서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서 가장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라고 말했다.
식물도 풍부하다. 국립수목원이 조사한 ‘DMZ식물 155마일’에 따르면 식물이 2504종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식물종 4425종의 56%에 해당한다. 이정호 국립식물원 DMZ자생식물원장은 “DMZ는 한반도 허리답게 북한식물과 남한식물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식물의 보금자리로 보전적 측면과 이용적 측면 모두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조사 결과는 DMZ가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 자연의 생명 줄기라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 2000년 “한반도의 생태축으로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연결된 백두대간을 종축으로 삼고, 서해에서 동해까지 이어진 DMZ를 횡축으로 설정한다”고 선언했다. 백두대간은 지난 2005년부터 백두대간보호법이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반면 DMZ는 아직 정부의 보호장치가 없다. 법과 제도에 의해 보호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DMZ는 전쟁과 냉전이 만든 비극의 공간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연에게는 유례없는 낙원이 되었다. 20세기 이래로 근대적 경제활동과 산업화로 더 이상 한반도에 남아 있지 않은 자연의 다양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해안지역부터 고산지역까지 본래 자연의 모습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자리잡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DMZ를 개발하겠다는 온갖 구상들이 줄을 서고 있다. DMZ는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이미 전체 면적의 40% 이상이 축소됐다. 인민군이 먼저 북방한계선 철책선을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여기에 우리 군도 대응 차원에서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북쪽으로 전진시켰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DMZ를 ‘248km 길이에 남북으로 폭 4km 떨어진 공간’이라 한다. 하지만 실제 공간의 면적은 훨씬 작다.
DMZ의 평화가 난개발의 평화가 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전쟁과 분단의 슬픔을 딛고 한민족이 인류에게 주는 미래의 세계유산이 바로 DMZ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형태의 개발도 DMZ 밖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