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통전적 이해
율법의 통전적 이해
  • 엄인영
  • 승인 2018.07.18 13: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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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는 둘 다 틀렸다.
율법을 구원과 연결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은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의 삶의 윤리로서 기능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를 돌아볼 때, 교회가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율법이 교회 안에 어떻게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내용과 양상이 달라졌다. 초대교회는 율법주의와 맞서 극렬하게 싸웠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에 저항하여, 사도 바울은 모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함을 강조했다. 반면에 중세교회는 초대교회의 전통을 잃어버리고 율법주의에 함몰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극단적인 모습이 면죄부판매로 나타났다. 이 땅에서 공로를 쌓아야 구원받고 천국갈 수 있는데, 공로를 쌓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판매하는 면죄부를 구입하면 구원받고 천국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이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 깨달은 마틴 루터 및 교회의 개혁자들은 개혁을 불길을 높이 들었다. 초대교회처럼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능함을 설파했다. 그러나 그 이후 종교개혁의 결과로 세워진 개혁교회는 정반대로 율법폐기주의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이뤄지므로 이제 율법은 폐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그동안 2천년의 교회역사는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느 곳에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율법에 대한 성경의 통전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율법주의와 율법폐기주의가 모두 율법을 구원과 연결시키고 있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내려주실 때의 원목적은 구원의 차원이 아니었다. 구원받은 자들의 구별된 삶을 위한 지침 또는 윤리로서 주신 것이었다. 율법을 지킬 때 택함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행복했고, 사회는 평화롭고, 국력은 강했다. 생각해 보자. 개인이나 공동체나 예외없이 법은 필요하다. 개인에게 법은 삶의 원칙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고, 공동체에게 법은 정의와 공의로 바꿀 수 있다. 법이 없으면, 개인의 삶은 감정에 충실하게 되고, 감정의 변화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갈지가 행보가 되고 만다. 또한 공동체는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어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수탈하는 세상이 되고 만다. 이런 차원에서 법은 개인이나 공동체나 반드시 필요하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과거 여호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최초의 율법의 장소가 애굽이 아니라 시내산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원래의 목적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개인의 삶과 사회의 평화와 나라의 부강을 위한 것이었다.

울법서를 조금만 주의깊게 살펴보면, 이러한 내용은 확연히 드러난다. 먼저 개인의 삶을 위한 율법을 살펴보자. 개인은 반드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와 속죄제와 속건제를 드리라고 하셨다(17). 또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가려 먹으라고 하셨다(11). 또 아기를 출산한 산모의 휴가를 명하셨다(12). 당시에 만연한 나병의 진찰과 회복의 과정에 대해 상세하게 말씀하셨다(13, 14). 또 부모를 경외해야 함을 신신당부하셨다

또 상인은 거짓 저울과 추를 사용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를 사용하라고 하셨다(19:36). 정직하게 성실하게 장사하라는 것이었다. 또 재판관은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셨다.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23:8, 16:19). 죄있는 자에게는 죄 있다 하고 죄없는 자에게는 죄없다 하라고 하셨다(25:1). 또한 왕이 된 사람은 마병을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고 명하셨다(17:16-20). 그래야 왕이 권력을 남용하지 않고 백성들을 섬겨서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율법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윤리의 차원임을 알 수 있다. 율법대로 살 때 개인은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의 평화와 국력을 위한 내용을 살펴보자. 추수할 때 고아나 객과 과부를 위해 조금씩 남기고 추수하고, 떨어진 나락을 다시 가서 줍지 말라고 하셨다(19:9-10, 24:19-21). 또 가난한 이웃에게 전당 잡은 옷은 해지기 전에 반드시 돌려주라고 하셨다(22:26-27, 24:13, 17). 가난한 자의 옷은 밤이 되면 이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얼어 죽지 않도록 이웃을 배려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안식년이 되면 노예를 해방시키고(21:2-6), 이웃의 빚도 면제해 주라고 하셨다(15:1-10). 희년에는 토지도 원주인에게 돌려주라고 하셨다(25). 토지를 사고 팔 때에는 희년까지의 연수를 계산해서 값을 매겨 매매하라고 하셨다(25). 

이렇게 구체적으로 명하신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실히 지켰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그 사회가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충실히 지켰을 때는 그 사회가 반드시 평화로웠고, 지키지 않았을 때는 그 사회의 공의와 정의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권력자는 권력을 남용하여 제 뱃속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고, 재판장은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했고, 상인들은 거짓 저울과 추를 사용하여 부당이득을 추구하였다. 그러니 국력은 자연히 약화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복 받기는커녕, 끊임없이 이웃나라의 침략에 시달리다가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참한 역사를 기록했던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신 율법의 원목적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와 국력의 부강을 위한 것이었다. 26:3-12에서 율법의 결론을 이렇게 맺고 있다. “너희가 내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내가 너희에게 철따라 비를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나무는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의 땅에 안전하게 거주하리라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또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내가 너희를 돌보아 너희를 번성하게 하고 너희를 창대하게 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함께 한 내 언약을 이행하리라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으로 말미암아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또 신28:1-14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말씀이 반복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런 율법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고 정의했다(2:5). 이것은 훗날 이스라엘 역사가 증명해 준다. 율법을 지켰을 때는 반드시 개인은 행복했고, 사회는 평화로웠고, 나라는 부강했다. 감히 이웃 나라가 침범할 수 없는 강한 국가가 되었다. 반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을 때는 반드시 개인은 불행했고, 사회는 불안했고, 국력은 약화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복받기는커녕, 이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 개인은 칼에 맞아 죽거나 포로로 끌려갔고, 사회는 어지러웠고, 국가는 망했다. 율법이 없으면 무법천지가 되어 버려 결국 나라가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의 역할일진대, 오늘날 율법폐기주의자들은 은혜의 시대, 신약의 시대, 교회의 시대에는 율법이 폐기되었다는 주장을 함부로 편다. 결국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서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는 주장을 편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성경은 전혀 그렇게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율법의 핵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고 이웃도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이토록 서슴없이 주장하는 저들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없는 사람들인가!

저들은 바울의 말을 인용하기를 즐겨한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3:24) 바울의 이 말은 율법을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었다. 원래 율법이 주어진 목적은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가 지키지 않아서 결국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을 드러내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사모하게 하는 역할로 변경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

또 우리 주님은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라”(5:17). 예수님은 과거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더욱 업그레이드 시키셔서 완성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 완성된 율법을 지켜야 함을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는 율법을 지키되, 시내산 율법보다 훨씬 업그레이된 예수님의 완성된 율법을 삶의 현장에서 지켜야 한다. 구원받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율법주의도 잘못된 것이요, 율법폐기주의도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완성된 율법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율법에 대한 통전적 이해요, 온전한 교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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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 2018-07-21 19:13:42
은혜로 구원받은 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구원받은 후의 우리의 문제이다. 신약에서의 사도들의 가르침은 구약을 텍스트로 하고 있다. 어떤 새로운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이것은 바로 구원받은 후의 우리의 행동강령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길을 걷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믿음만으로는 절뚝걸음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리스도는 이땅에서 어떻게 사셨는가를 보면 된다. 그리스도는 계명을 지키시면서 사셨다. 답은 이렇게 간단한대도 인간인 우리는 성경을 너무나 어렵게 만들어버리고 만다. 우리의 롤모델은 오직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의 마음과 생각으로 사는 것이 길이요 진리를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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