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여름나기
어린 시절의 여름나기
  • 엄인영
  • 승인 2018.07.19 07: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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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실내에서 일하는 저도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데, 실외에서 일하는 농부들과 노동자들은 얼마나 숨이 턱턱 막힐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도 폭염이 내리쬐는 여름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그 시절의 여름나기를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토요일, 회사일을 마치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어김없이 수박이 한통 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얼른 받아 들고 집 마당의 우물 속 두레박에 넣어 두었습니다. 수박을 넘겨준 아버지는 저에게 등목을 요청하셨습니다. 저는 펌프질을 해서 물을 길어 올려 바다처럼 넓은 아버지 등위에 부었습니다. 얼음처럼 시원한 물로 등목을 하신 아버지의 기분은 날아갈 듯 상쾌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식구가 둘러 앉아 식사를 합니다. 식탁 위에 펼쳐진 풍경은 소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식탁은 온통 푸른 초원을 달렸습니다. 사기그릇에 담긴 보리밥에 찰랑찰랑 시원한 우물물을 붓고 숟가락으로 몇 차례 휘저은 다음, 텃밭에서 금방 따온 상추와 풋고추를 묵은 된장과 고추장에 한 번씩 듬뿍 찍어 한 입 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었습니다. 식구 중에 누군가가 텃밭의 고추 맛이 매워 콧등에 땀방울이라도 흘릴라 치면 거참 복있게 먹는다며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시곤 했습니다. 밥을 말아 먹고 난 물을 끝까지 들이키는 것도 복 받는 일이었습니다. 손주들 중에 밥알을 남기는 자가 있으면 어김없이 농부의 땀방울론이 할머니의 입어서 흘러나왔습니다.

식사를 마치면 대청이나 뒤란 툇마루의 그늘에 누워 한잠을 청합니다. 마당 앞에 있는 오동나무나 감나무 가지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를 벗삼아 한 잠을 자노라면 어느새 불볕더위는 저만큼 물러나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형을 따라 집앞 냇가에 나가 송사리를 잡아 고무신에 담아 왔습니다. 왕잠자리를 찾아 뒷산 너머까지 좇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밀잠자리를 실에 꿰어 날리다 보면 왕잠자리가 날라 와 붙는 재미에 끌려 무릎의 통증은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뒷동산에 올라 풍뎅이며 매미를 잡으려고 나무위에 오르다 보면 어느새 여름방학은 끝나 있었습니다.

이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풍경입니다. 우리는 오천년을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살림의 문화를 간직해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소박했던 삶을 너무 빨리 잊어버렸습니다. 소위 개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지혜로운 우리선조들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후손들이 대대로 누려야 할 금수강산을 한 세대 만에 산업화라는 미명 아래 파괴해 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자연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파괴의 문화속에 깊이 물들어 살게 되었습니다. 수목을 잘라낸 자리에 콘크리트로 아파트를 지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우물 속에 넣어야 할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 억지로 차게 만듭니다. 대청마루에서 죽부인을 끼고 더위를 피하던 우리가 에어컨을 돌립니다. 냉장고와 에어컨의 전력을 얻기 위해 핵발전소는 부지런히 돌아가고 자연의 파괴속도는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자연은 이 파괴의 문화의 대가를 서서히 인간에게 돌리고 있습니다. 온실효과로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지구 곳곳에서 홍수와 가뭄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태국의 쓰나미와 미국의 카트리나와 일본의 후쿠시마의 모습에서 분노하는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시급히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자연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문화를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이 일에 이 시대의 교회가 관심갖고 앞장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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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화 2018-07-22 23:02:09
자연이 파괴되면 지금의 일상이 간절한 소원이 될 슬픔이 찾아오겠죠 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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