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 에스라
  • 승인 2018.07.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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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바울이 인용했던 그 유명한 명제 "믿음으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하실 때 그 믿음이란 말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그냥 믿음이란 뭐 다른 뜻이 없고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닌가 하고 얼버무려 넘기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믿음을 두고 말씀하실 때 처음부터 단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어 순종케 되는 믿음을 명시하였습니다.

(롬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롬 16:26)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그런데 이 문제 역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위의 구절은 구약성경 하박국서2장4절을 히브리로 표기한 것입니다. 붉은 색으로 된 단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단어 입니다. 이 말의 어원은 에무나이고 에무나의 어근은 아만입니다. 아만에서 아멘, 에무트, 에무나, 에무나토 등의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믿음도 역시 에무나입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에무나라는 단어는 49회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49회 중에 48회는 거의 진실과 성실로 번역되었습니다. 단 한 번 즉 하박국서2장4절에서만 그 단어를 믿음으로 번역했습니다.

붉은 글자가 에무나 즉 믿음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하박국서2장4절마저 믿음으로 번역하지 않고 성실로 번역했거나 진실로 번역했거나 참됨으로 번역했거나 착하고 충성됨으로 번역했다면 아마도 기독교의 신앙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하박국서2장4절을 만약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驕慢)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正直)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義人)은 그 믿음(에무나)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번역하지 않고(합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驕慢)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正直)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義人)은 그 성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렇게 번역했더라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정말 성실하고 진실하고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에무나의 뜻이 성실(誠實)이었기 때문에 하박국서2장4절도 성실이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단어가 구약성경에서 총 49회 사용되었지만 다른 어떤 곳에서도 믿음으로 번역하지 않았았고 거의 다 성실진실번역했습니다. 아래 도표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구약성경에서 에무나라는 단어가 49회 사용되었다. 그 중 48번은 성실과 진실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원관념이 히브리어였고, 히브리어가 헬라어로 번역되었고, 헬라어가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었고, 라틴어에서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되었고, 그 다음에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었고, 그 후에 한국말로 번역되면서 다른 모든 개념이 없어져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굳어버린 것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驕慢)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正直)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義人)은 그 믿음(에무나)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도 잘 보시기 바랍니다. 하박국이 이러한 말씀을 듣게 된 사연도 알아야 합니다. 주전 606년 경에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을 잡아 족치고 죽이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박국의 마음에 의심의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하신다면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이 정결하시기 때문에 악인들이 의인들을 잡아 죽이고 하는 것을 차마 보시지 못하실 터인에 어찌하여 악인들의 악에 대하여 방관만 하시고 계시는지 따지고 물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대답은, "보라 그 바벨론 사람들은 그 마음은 교만(驕慢)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正直)하지 못해! 그래서 그들의 종말로 속히 이르게 될 것이야. 비록 더디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기다려 봐라! 정녕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바벨론 왕이 망하게 되는 이유가 그의 마음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해서 망하는 것이라면, 만약 그 당시 어떤 사람이 의인이 되려면 교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하고 또 정직하고 성실해야만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하박국 선지자에게 대답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을 때 그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두고 하신 말씀도 아니고 또 "살리라"하신 말씀도 그 사람의 영혼이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박국이 질문했던 바 악인들이 의인들을 다 잡아다가 죽이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하나님께 탄원을 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살리라"하고 대답하신 말씀은 바울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 시대가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을 하고 있었던 시대였고, 그때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와서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바벨론으로 끌어갈 때 나온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당시 역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듣고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의로운 사람들이었고 또 비교적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인정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고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서 거기서 살게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이 이 구절 즉 하박국서2장4절을 인용하면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된다는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성실(에무나)과 진실과 정직함을 그 사람의 의(義)로 여겨주신다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신구약 전체에 흐르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믿는다 혹은 예수님을 믿는다 더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사람의 성품과 행실이 착하지도 않고 충성되지도 않고 성실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으며 정직하지 않고 행함도 없고 성화도 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요 죽은 믿음이며 능히 구원에 들어갈 수 없는 믿음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요 야고보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담의 자손들 중에서 죄가 아주 없어서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 같이 원죄가 있다고 하지만 그 중에 교만하고 정직하지 않고 성실하지 않고 착하지 않고 충성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겸손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착하고 충성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바로 그러한 믿음 즉 죄도 있고 허물도 있고 실수도 있고 약점도 있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근본적으로 착하고 충성되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신실하고 진실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의 그 성실(에무나)를 그의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열왕기상서3장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주(主)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誠實)공의(公義)정직(正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主)의 앞에서 행(行)하므로 주(主)께서 저에게 큰 은혜(恩惠)를 베푸셨고 주(主)께서 또 저를 위(爲)하여 이 큰 은혜(恩惠)를 예비(豫備)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의 대답은, "네가 염려하는 의인들(예루살렘 사람들 중에 의인)은 그 믿음(에무나)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단다." 이렇게 대답하신 것입니다. 이때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고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의인들 중에 정말 성실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 있다면 그 성실하고 진실하고 정직한 믿음(에무나)로 말미암아 살게 될 것이니 네가 염려하지 않아도 내가 오히려 너보다 더 아끼고 있단다!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이란 말도 좀더 심도있게 살펴서 오해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믿음이란 말이 추상명사 혹은 동사로 된 단어지만 본래는 형용사 즉 성실한, 진실한, 정직한 등의 용어였습니다. 따라서 행위도 중요하지만 행위 이전에 존재의 성품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에무나(히브리어) 또는 피스티스(헬라어)의 의미가 본래 함의하는 의미를 표시해 본 것입니다. 이 그림을 잘 보시면, 주님의 최후의 심판에서 판결문에는 행위도 행위지만 착하고 충성된 종 즉 그 존재의 성품과 함께 충성된 행위를 두고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란 말의 어원은 에무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만약 진정으로 중생했다면 그 즉시로 성화(聖化)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고 했습니다. 즉 사람이 중생(重生)하는 시점과 성화(聖化)의 출발점이 같다는 것입니다. 만약 세월이 흘러도 도무지 성화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아직 중생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고 사랑이 없고 성화가 되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거짓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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