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공동체 훈련 (민수기 5장 1-4)
이스라엘 공동체 훈련 (민수기 5장 1-4)
  • 김용창
  • 승인 2018.08.0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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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모든 문둥병 환자와 유출병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케 된 자를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되

3 무론 남녀하고 다 진 밖으로 내어 보내어 그들로 진을 더럽히게 말라 내가 그 진 가운데 거하느니라 하시매

4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그들을 진 밖으로 내어 보내었으니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대로 이스 라엘 자손이 행하였더라

민수기에 큰 주제는 광야에서 선민을 훈련한다.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맨 먼저 훈련하려면 교안, 즉 율법을 맨 먼저 확립을 했죠. 그리고는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해서 20세 이상으로 전쟁에 나가서 칼을 뺄 만한 사람을 603,550명으로 확정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진을 편성합니다. 어느 지파가 어디에 위치하고 또 어느 어느 지파는 동편, 서편, 남편, 북편 어디에 위치하는가 하는 것도 정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행진 할 때는 또 어떤 배열도 행진하는가, 그리고 또 각 지파별로 족장을 정해서 조직을 정비한 겁니다. 이런 것을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와야 돼요.

그 다음에 오늘 우리가 5장부터 보면 공동체 훈련을 하는데 요즘 그런 말이 없어졌습니다마는 한 30년 전에 교회안에는 공동체 훈련이라는 말이 아주 유행을 했어요. 그래서 청년회 공동체 훈련, 교사회, 공동체 훈련을 했는데 요즘은 다 없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성경에는 공동체 훈련을 시작하는데 교회라는 곳은 제멋대로 믿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과 진리로 연합된 신앙공동체가 아주 유기적 공동체데 무질서하거나 무법천지가 되거나 이렇게 해서는 안 되고 또 오합지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 훈련을 하는데 사실은 저는 개인적으로 공동체에 대해서 제가 익숙하지도 않았고 또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어요. 옛날에 한국교회가 공동체 훈련을 한다고 가보면 성경도 모르면서 그냥 방법을 가지고 하니까 별로 마음에 안 들어서 그 당시 유행을 쫒지 않았는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최소한의 질서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뭘 하나 우리교회에서는 이렇게 해야 된다 하는 것을 필히 배우게 되면 지켜야 돼요. 처음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러 실수를 내고 하지만 그래도 이것이 옳다 공동체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하면 조용히 지켜야 됩니다. 그래야 교회가 평안하게 돼요. 이사람 저사람 자기 멋대로 해버리고 하면 이렇게 하면 질서가 깨지는 거죠. 오늘 첫 번째 훈련은 전염성이 있는 질병, 다시 말하면 접촉을 해서는 안 되는 질병, 이런 병을 가진 사람들은 격리를 해라. 예를 들면 나병, 한센스병 환자, 그 다음에 유출병하는 것은 성병입니다. 그 다음에 악성 피부병 환자 이런 사람들 같은 경우는 격리를 해서 따로 그 병이 나을 때 까지 따로 수용되는 격리하라는 말씀인데 이런 것은 3,400년 전에 나온 규정인데 지금 봐도 옳습니다.

지금 봐도 백번 옳은 거죠. 우리 산청군만 해도 나환자들이 사는 동네가 따로 민간 속에 섞이지 않고 상당히 외딴 곳에 마을을 만들어서 그렇게 살고 있는데 제가 보니까 한 군에 한 곳 내지 두 곳, 많으면 세 곳 정도 이렇게 나환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 있어요. 함양에도 올라가면 두 군데가 큰길가에서 마을이 보입니다. 산청은 성심원이라고 하는 곳에 가면 나환자들만 모여 격리되어 사는 거죠. 전염을 막자는 거거든요.

5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6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패역하여 그 몸에 죄를 얻거든

말이 좀 어려운 말입니다. 지금 우리 기독교인 중에는 그런 일이 없는데 다른 종교에서 습관이 자기 몸을 상하는 자해라고 그러죠. 어떤 신에게 기도 한답시고 자기 소원을 빌면서 잘 안 들어 주니까 돌로 자기 이마를 찧으면서 피를 내가면서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어요. 언제가 시간이 나면 여러분에게 보여 줄 마음이 있는데 이란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합니다. 자기 이슬람교에 알리라는 지도자가 있었는데 암살을 당하거든요. 알리라는 훌륭한 지도자가 암살을 당할 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금 천년이 지났는데 해마다 1월 1일부터 1월 10일까지 열흘 동안 이란의 남자라는 남자는 어린아이까지 다 나와서 칼과 사슬을 가지고 자기 등을 때려요.

이쪽을 때리고 이쪽을 때리고 해서 옷들이 완전 피로 물들 때까지 그렇게 자해를 합니다. 온 이란 남자들이. 제가 2000년도 쯤 한 20년 전에 마침 1월 달에 이란에 갔는데 그런 일을 하는 거예요. 그걸 자기들은 축제라고 그래요. 아슈라 축제라고 그래요. 제가 ‘아수라장이 다야’아유~끔찍해요. 여러분 나중에 이란 해가지고 아슈라 축제해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막 피를 흘려서 온 전국에 이란 남자들이 전부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마음 약한 사람들은 안보는 게 좋고 이런 것을 하나님은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자기 몸을 상하게 하는 것, 우리가 성경적으로 허락되는 자해 행위가 있다면 금식 정도입니다. 금식도 사실 자해 행위거든요. 그래서 성경에서 금식까지 못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금식을 하라고 하지는 또 않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고 금식할 수는 있으나 자기 몸을 해치는 까지는 하나님 기뻐하는 것 아니야,

어느 아버지나 어느 어머니가 자기 자녀가 밥 안 먹고 보채는 것을 좋아라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에도 없고 하늘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너무 애타니까 금식하고 기도할 수 있으나 그 이상 자기 몸을 해하면서까지 기도하거나 어떤 종교하는 행위를 하나님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다음 7절

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 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

누구에게 손해를 입혀서면 그 손해 입힌 금액을 산정을 하고 그 금액에 오분지 일을 더해가지고 반드시 변상을 하라고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분지 일을 더해서 갚으로 갔는데 그 받을 사람이 사라져 버렸거나 죽었거나 없어져 버려서 그러면 어떻합니까 이런 질문인데 그러면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엊그저께 제가 누군지 모르나 우리교회 1학년, 2학년 그 쯤 되는 아이가 예배당 경내에서 돈을 주었다는 거예요. 100원인지 500인지 자세히 안 봤어요. 저한테 가져 왔어요. 제가 받아먹으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 돌려라 헌금함에 갖다 넣어라’누군지 모르니까 찾을 수 없고 그런 지극히 작은 하나라도 어떻게 찾아 줄 수 없을 때는 하나님께 돌려라는 말이 있다는 거예요.

8 만일 죄값을 받을 만한 친족이 없거든 그 죄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수양 외에 돌릴 것이니라

9 이스라엘 자손의 거제로 제사장에게 가져오는 모든 성물은 그의 것이 될 것이라

10 각 사람의 구별한 물건은 그의 것이 되나니 누구든지 제사장에게 주는 것은 그의 것이 되느니라

그러니까 받들어서 드린다는 하는 감사의 제물 같은 것은 제사장에게 돌아가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 잡수시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하나님의 종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합니다. 11절 이하는 여성들이 들으면 별로 기분이 안 좋을 만한 일이기는 한데 그러나 그때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문제가 돼요. 이게 문제가 되는데 예를 들어서 의처증이나 의부증 이런 게 있거든요. 참 무서운 병이야, 아무 일 없었는데도 왜 남의 남자를 쳐다보았느냐 이래가지고 아내를 족친다든지 심지어 아내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보았다. 눈에 보이는 게 어떻게 봤죠. 그것을 가지고 밤새도록 사람을 못살게 하는 이런 병이 있는데 이걸 의심의 소제라고 그래요. 그래서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느냐, 상당히 세밀하게 써 놓았어요.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아내가 실행하여

행실을 잘못해서

남편에게 범죄하여

13 타인과 정교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 아니하였어도

14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럽히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이게 문제가 된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해소해야 돼

15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그것에 기름도 붓지 말고 유향도 두지 말라 이는 의심의 소제요

줄을 그으 놓으세요. 의심의 소제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생각하게 하는 소제니 곧 죄악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니라

잘 들어보세요.

16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 가까이 오게 하여 여호와 앞에 세우고

17 토기에 거룩한 물을 담고 성막 바닥의 티끌을 취하여 물에 넣고

성막, 회막이라고도 하는데 티끌을, 흙이나 먼지나 티끌을 물에 풀어요.

18 여인을 여호와 앞에 세우고 그 머리를 풀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소제물 곧 의심의 소제물을 그 두 손에 두고 제사장은 저주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아까 거룩한 물에다가 성막에 티끌이나 흙을 야간 풀은 것을 갖다가

19 여인에게 맹세시켜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사람과 동침하여 더럽힌 일이 없으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쓴 물의 해독을 면하리라

20 그러나 네가 네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혀서 네 남편 아닌 사람과 동침하였으면

21 (제사장이 그 여인으로 저주의 맹세를 하게 하고 그 여인에게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고 네 배로 부어서 너로 네 백성 중에 저주거리, 맹세거리가 되게 하실지라

22 이 저주가 되게 하는 이 물이 네 창자에 들어 가서 네 배로 붓게하고 네 넓적다리로 떨어지게 하리라 할 것이요 여인은 아멘 아멘 할지니라

여인만 참 힘들게 되었죠. 그러나 의심에 그늘에서 벗어나려면 이런 절차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잘 들어 보세요. 만약에 이 여자가 실제로 남편을 두고 행실을 잘못해가지고 자기 몸을 더럽혔으면 저주가 되는 물을 마시려고 하겠어요? 안 마시려고 하겠어요? 아침밥을 너무 많이 먹었네. 안 마시려고 하겠죠. 왜, 마시면 배가 부어오르고 넓적다리가 썩어 떨어져버리고 그렇게 된다고 하니까 실제 죄를 지었으면 안 마시려고 하겠죠. 안 마시려고 하면 틀림없이 여자가 문제가 있겠죠. 그런데 떳떳하면 어때요. 내가 마시지 이렇게 하면은 여자가 아무런 허물이 없기 때문에 마셨다. 배가 불어오지 안했고 넓적다리가 안 떨어지니까 누구의 의심이 풀어지는 거죠. 참 지혜죠.

원리는 그런 겁니다. 의심이 남아 있으면 계속 인간관계가 안돼요. 그래서 이런 방법을 해가지고 떨어버리고 가자는 건데 만약에 그렇게 까지 했는데 계속 남자가 의심한다고 하면 그 남자가 병이야, 병적으로 의심하는 거예요. 재미있는 얘기이기는 한데 제가 정확하지는 않는데 8살 때로 알아요. 제가 태어났던 곳 금서 수철 말고 산청군 황매산 가는 곳 입촌이라는 마을에 손버릇이 나쁜 여자가 둘이 있는 거예요. 그 동네에, 그때 동네 해봐야 40호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애타게 고추 농사를 지어가지고 고추를 따려면 고추 밭을 갈고 고추를 심어서 모종을 하고 김을 매고 해서 고추를 따서 고추가 지금처럼 건조기가 있는 게 아니고 태양빛에 말려서 다 말린 다음 굉장히 정성을 다해야 해요. 그것을 가져가버린 거예요. 그런 여자가 동네에 한 둘이 있었다고 봐요. 8살 때에 일인데도 기억에 생생한 거예요.

마을이 인심이 흉흉하고 아주 안 좋았어요. 동네에서 잡아야 한다 해가지고 뭘 하느냐? 내 가슴 높이 정도까지 오는 큰 장독을 이렇게 동네 광장에다 광장해야 큰 마당이지만은 거기다 놓고 물을 이만큼 정도 담아놓고 거기다 접시를 끼어놓고 접시에다가 내 기억으로는 산초기름을 넣고 심지를 해가지고 무를 썰어서 구멍을 뚫어 심지를 올라오게 해서 불을 껴놓는 겁니다. 그러면 그 동네에서 8살 되는 남자아이들 데려다가 밤 4시에 그 안에다가 머리를 박고 불과 물빛 그림자에 어떤 도둑놈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내가 8살이니까 내가 걸렸어, 내가 감별하는 사람으로 걸렸어, 나 말고 한 두 사람이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 이제 내가 만약 선별되면 도둑질한 사람이 나한테 로비를 하든지 행동거지를 다르게 할 것 아니요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까 그때 찾아내는 겁니다. 동네 지혜로운 어른들이. 비슷하죠 의심의 소제하고, 동네어른들이 그때는 그 집 아이에게 접근한다든지 8살 먹은 남자아이에게 접근 한다든지 아니면 여자의 눈이 수상하면 잡는 겁니다.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모르나 손버릇 나쁜 여자들이 행동을 고친 거예요. 어떻든 그 동네에 인심이 다시 갈라 앉고 그러고 제가 2년 있다가 그 마을을 떠나왔기 때문에 이사를 갖거든요. 실제적으로 그 사람들이 어떻게 있는지 잘 몰라요. 그 기억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해요. 하도 충격적이어서 영화보듯이 보일까 해서 내가 머리를 처박고 독에서 들여다봤던 기억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런 일이 우리 동네 말고 다른 동네에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누가 상당히 지혜롭게 도둑을 잡으려고 머리를 쓴 거죠.

23 제사장이 저주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그러니까 저주문을 써가지고 붓이나 먹으로 종이에 써가지고 저주물에 다가 짜서 글자를 짜서 넣는 거예요. 그리하면 만약에 실행한 여자 같으면 벌벌 떨겠죠. 하나님 이름으로 그렇게 맹세를 하고 하니까 얼마나 겁나겠습니까.

24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 속에 들어가서 쓰리라

25 제사장이 먼저 그 여인의 손에서 의심의 소제물을 취하여 그 소제물을 여호와 앞에 흔들고 가지고 단으로 가서

26 그 소제물 중에서 기념으로 한 움큼을 취하여 단 위에 소화하고 그 후에 여인에게 그 물을 마시울지라

27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럽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가 되게 하는 물이 그의 속에 들어가서 쓰게 되어 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가 떨어지리니 그 여인이 백성 중에서 저줏거리가 될 것이니라

28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29 이는 의심의 법이니 아내가 그 남편을 두고 실행하여 더럽힌 때나

30 또는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아내는 아무 일 없는데도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할 때에 그 여인을 여호와 앞에 두고 제사장이 이 법대로 행할 것이라

31 남편은 무죄할 것이요 여인은 죄가 있으면 당하리라

그런데 이런 법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런 법으로 의심의 문제를 해소했던 어떤 역사의 기록은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부터 3,400년 전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또 하나님의 권능이 영광과 구름과 함께 나타나고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실제 배가 부어오르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 하시면. 그렇게 하면 일벌백계가 돼가지고 다시는 그런 일을 못하게 된다. 공동체 훈련 중에 지금도 그런 일이 있잖아요. 교회안에서 남녀의 관계 또 목회자의 성추행 문제 이런 것들이 있는 것 같이 3,400년 전에 한 2백만명이 한때 공동체가 되어 있는데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래서 그럴 때 어떻게 해소 할 것인가 사실 이것도 해결법이기도 하지만 예방법이라고 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는다 하는 것을 백성에게 심어주는 그런 예방차원에 법이라고 봅니다. 그 다음에 6장에는 나실인 법인데요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거기 줄을 그으 놓으세요.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사람마다 술을 먹거나 하면 대게 실수하게 돼요. 특히 한국 사람들은 더 하고, 세계적으로 술을 배가 부를 때까지 마시는 나라는 한국 사람들 밖에 없거든 서양 사람들은 술을 마셔도 와인 바닥에 깔리게 해가지고 입술만 축이는 정도 하고 또 중국 사람은 굉장히 독하게 마셔요. 고량주라고 하면서 수수를 가지고 술을 만드는데 40도입니다. 알코올 도수 40도 그런데 절대 많이 마시지 않고 요만한 잔에 목구멍에 탁 털어 넣어요. 그러면 화근하고 끝이야, 취해가지고 그런 것도 없고요 중국 사람이 와서 40도 자리 마시다가 한국에 와서 17도 자리 20도 자리 마셔보니까 맹물 같거든요 홀짝 홀짝 마시다가 나중에 완전히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알코올 도수가 낮은 것을 많이 마셔가지고 실수를 하는 거예요. 오히려 독한 40도 50도 되는 것을 많이 못 마시니까 요만큼만 끝인데 특히 한국 사람은 세상에 술 먹고 주정부리고 내가 알기로는 한국 사람이 밖에 없어요. 이슬람권에는 아예 술이 없습니다. 아예 못 먹게 하니까 그 다음에 기독교권에는 포도주나 맥주나 마시데 취해가지고 이런 1차, 2차, 3차 가고 그런 것 안 해요. 외국인들이 와서 한국인들을 풍자하기를 한국 사람은 1차 끝나지 않고 2차 간데요 2차 끝나지 않고 3차 간다네 3차 끝나지 않고 4차 갈 때는 운전기사 꾀 가지고 또 4차 간다네 그래가지고 집에 갈 때는 네발로 간다.

그러니까 이런 걸 보고 서양의 어떤 나라도 기독교 세계에서 술을 금한 나라는 술을 완전 금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들이 와서 보니까 한국 사람은 안 되겠어 그냥 막걸리를 말통을 갖다놓고 배가 부를 때까지 마시고 네발로 기어 다니고 싸움을 하고 이러니까 아예 한국 기독교인들은 처음부터 술을 입에 못되게 이렇게 했다고. 하나님께서 나실인,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해가지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렸다면 포도주나 독주나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도 마시지 말고 포도즙도 마시지 말고 생포도주나 건포도나 마시지 말고, 건포도는 마시는 게 아니죠. 그러니까 우리 경상도 속담에는 밀밭 근처에도 가지 마라. 밀 가지고 누룩을 만들어서 술을 만드니까 밀밭 근처도 못 가게 하는 이런 식으로 술을 먹으면 실수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씨나 껍질도 4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삭도라는 것은 머리카락을 스님처럼 밀어버리는 칼입니다. 면도칼처럼 아주 예리한 그런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나실인으로 있는 사람은 머리를 통 깍지 않는 게 아닙니다. 살에 칼이 닫지 않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끝은 자를 수 있어요. 머리카락은 자를 수 있으나 머리 뿌리를 민다고 칼을 머리에 대지마라. 대면 다칠 수 있으니까 왜 그렇게 하나님께서 나실인을 소중히 여기느냐,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헌신을 안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일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한데 아무도 헌신을 안 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자기를 헌신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식을 하나님께 나실인으로 바치거나 이렇게 하나님께 사람을 드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대체 평생 헌신은 잘 없고요 기간 헌신입니다.

내가 스무살이 되면 스무살부터 스무다섯살까지 5년 동안 하나님께 헌신하겠나이다. 이렇게 기간헌신을 해요. 만약에 기간헌신을 스무살부터 스무 다섯 살까지 헌신한다 해놓고 그 기간에 나실인의 법을 어겨버렸다 그러면 한 3년 했어도 3년 한 것 다 무효야, 새로 머리를 완전히 싹 깎고. 손톱을 깎고 그리고 목욕을 하고 새로 날 기간을 정해줘요. 오늘부터 새로 5년이다 이래가지고 지난 간 것은 무효라는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는 사람은 정결케 해가지고 조심하고 왜 정결케 조심하느냐? 하나님이 사람을 쓰려고 하는데 사람이 없어요. 어쩌다가 어떤 여자를 애를 못 낳게 하거나 인생이 어려웠을 때 모처럼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겠다고 하는 사람은 희귀하고 너무 귀해, 귀한 나머지 헌신한 사람이 일을 제대로 못하게 병들고 다치고 하면 안 되니까 심지어 자기 부모 형제자매가 별세 했어요 시신에 손을 못 대게 해요. 병이 걸릴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5절에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자기 몸을 구별하여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러니까 날이 찬다는 것은 기간 헌신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가 아니고 날이 차기까지는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길게 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죠. 저 사람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술을 먹이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알아서 모시는 그런 방법이죠.

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9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칠일에 밀 것이며

10 제팔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 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 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당일에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새로 5년을 더해야 돼요.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 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 제물로 수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 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이렇게 대체로 기간 헌신을 약속하는 그런 것이 특별 서원인데 아시는데로 여러분 좀 있다가 사무엘상서에 가서 보면 그때 사무엘은 기간 헌신이 아니고 평생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이렇게 나와요. 좀 희귀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세례요한도 나실인이고 예수님도 나실인 같고 사도 바울도 나실인 같아요. 그런 면면이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실인이 아니다 이런 관점이 있고, 두 번째는 예수님은 채식주의자다 이런 말도 해요 더러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고기를 먹었다는 말이 안 나오고 유월절 양을 반드시 양고기를 먹어야 되는데 유월절 양을 안 잡고 양은 자기가 양이 되고 고기 대신 빵을 만들어 먹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채식주의자 아니냐 이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들이 지금도 거의 흔하지 않습니다. 남선교회 헌신예배, 여선교회 헌신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고 정말 개인이 자기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거룩하게 구별해 바치겠다 이런 사람이 너무너무 희귀하다는 거예요. 21절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공동체 훈련 중에 불가측 질병 있는 사람은 격리해가지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것, 정결하게 하는 것, 나중에 신명기에 가서 보면 지금은 우리가 화장실이 잘 만들어져 있고 합니다만 옛날에 광야에서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 항상 볼일 볼 때는 지대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서 땅을 파고 볼일을 보고 삽으로 덮어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밤에 하나님께서 순찰하신다. 하나님께서 순찰하실 때 밟으면 안 되니까,

여러분 동물을 길러보면 고양이가 응가를 하고 발로 흙으로 덮어요. 영리한 개도 덮습니다. 원리를 알아보니까 자기 흔적을 안남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 말이 있는데 전에 우리집에 기르던 번개는 제대로 어떤 때는 묻는데 어떤 때는 안 묻고 하는데 제대로 묻는 것도 아니고 묻는 척하고 말아요. 뒷발질 대충하고 그래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예배당을 정결하게 깨끗하게 하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그 다음에 22절 우리가 잘 들어 둘 필요가 있는데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3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교회는 지금 익숙해졌습니다마는 축복은 하나님이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하는 거예요. 사람도 누가 축복하느냐? 어른이 아이들에게 젊은 사람들에게 축복하는 겁니다. 제사장 아론과 모세가 축복, 하나님께 복을 비는 거예요. 빌면 하나님께서 위에서 복을 주신다. 하나님 복을 비는 분이 아니고 하나님 복을 주시는 분이예요. 그래서 잘 보세요. 뭐라고 축복하느냐? 이게 요즘 말로는 축도입니다. 축복 기도를 축도라고 하는데 축도 원형이 여기서 민수기 6장 24절에 뭐라고 축복하느냐 하면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이렇게 축도문이 딱 규정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칼빈 같은 분도 주석에서 보면 예배 후에 목회자가 성도에게 축도할 때 이것이 원형이다. 이렇게 축도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축복은 사람이 하는 거예요? 하나님 거예요? 복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 하는 것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것이 정확한데 아직도 구약공부를 제대로 안하고 “하나님이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런 말을 예사로 다른 교회에 가면 많이 듣게 됩니다. "하나님이여,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내가 빌 대가 없다 네가 나한테 빌어라 그러면 내가 복을 줄게 할 텐데“ 안 통해 하도 오랫동안 입에 굳어 버려가지고 고칠 수도 없어요. 겨우 우리교회가 안합니다. 내가 말해도 목사들이 못 알아듣는지 안 해요. 예사로 하나님을 보고 축복하라고 그렇게 하는데 매우 잘못된 거예요.

그래서 공동체 훈련에 지금 들어가고 있는데 하나하나 잘 배우게 되면 거기에도 우리가 오늘날에도 배울 만한 원리가 있다. 7장은 다음시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신앙공동체가 어떻게 정결하게, 거룩하게, 또 화평하게 이끌어갈 것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잘 배워서 샤론장로교회에 공동체가 하나님 은혜와 진리가운데 거룩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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