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가는 길 (민수기 23장 1-2절)
발람의 가는 길 (민수기 23장 1-2절)
  • 김용창
  • 승인 2018.08.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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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하매
2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리니라

중요한 성경책 안에 발람이야기가 왜 이렇게 많이 차지하고 있는지? 지난번에도 우리가 22장 한 장을 온통 발람이야기를 했는데 오늘 23장도 역시 발람이야기로 이어지고 있고 24장까지도 발람이야기며 25장도 발람의 영향으로 빚어진 어떤 어려운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란 책이 분량이 많은 책도 아닌데 왜 이렇게 발람이야기를 길게 다루고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 발람이야기가 놀랍게도 여기 끝나는 게 아니고 요한계시록까지 나와요. 유의해야 된다는 의미가 있는 거죠.
핵심은 이렇습니다. 당시에 그 지도를 보겠습니다. 당시에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냐 하면은

 (발람의 고향 브돌)


여기가 예루살렘이고요. 이스라엘 땅 해봐야 하이파에서 이만큼 이스라엘이에요. 여기가 이스라엘인데 이걸 넘어서 당시에 두로와 시돈 그리고 아람 넘어가지고 지금 현재 알레포라고 하는데 이 금방에 갈고미스라고 하는 곳이 있어서 갈고미스에서 한 20킬로쯤 떨어진 곳이라니까 우리나라로 말하면 지금 북경에서 이만큼 정도 안 되겠나 싶어요. 여기에 있는 모압 왕이 이렇게 멀리 있는 발람이라는 그런 무당인지 뭐 예언자인지 알 수 없어요. 어떤 술사인데 불러 모셨다고 하는 것은 당대 최고라는 거죠.
여러분, 이 길은 이렇게 해서 애굽으로 가는 유명한 길이고 해변가로 가면 비아마리스라고 하고 이렇게 내려가면 왕의대로라고 해서 이디오피아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쪽으로 지도가 내려가면 바벨론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이 지역을 비옥한 초생달 지구라고 해요. 여기는 사막인데 이만큼 아주 유브라데 강하고 티그리스강 양 강변에 발달된 퇴적 평야에 비옥한 땅이 있고 여기 옛날 같으면 하란이라든지 이런 쪽이고 여기가 안디옥인데 여기는 아주 사람살기 좋은 곳이고 기후도 좋습니다.
여기서 이쪽으로 해서 터키땅으로 가기도 하고 동양으로 가기도 하고 남쪽으로 가기도 하고 여기가 해변길로 가게 되어서 여기가 당시로 말하면 로마라는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상이기 때문에 어쩌면 세상교통에 중심이라고 하는 곳이 부돌이라는 이쪽 지역입니다. 거기서 그야말로 세계 일인자로 지목되는 술사요 예언자요 무당 같은 그런 사람인데 그렇게 유명세를 타고 있었어요. 당대 최고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당대 최고 어떤 신통력을 가진 그런 무당이었는데 이 사람을 모압왕 발락이 불러 모셔가지고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는 이스라엘 족속을 저주해 달라 아니면 그 나라를 멸망시킬 모책을 베풀어 달라 이렇게 불러 모셨거든요. 그러니까 점쟁이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기를 자~ 나를 위해서 그러면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다가 수송아지 일곱 마리하고 숫양 일곱 마리를 준비하세요. 그래가지고 한단에 수송아지 한 마리, 수양 한 마리 이렇게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3절
3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갈지라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사태난 산에 이른즉
4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고하되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억세게 큰 것 드린 것처럼 드렸다고 이야기를 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숫양 일곱 마리, 수송아지 일곱 마리 뭐겠어요. 사실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런 것 안 드려도 하나님 대답 하실텐데 그렇게 했다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잘 받았다 이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5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6 그가 발락에게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 모든 귀족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발람이라는 점쟁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가, 그렇게 주목하는 거죠. 그런데 발람이 시적으로 노래를 부릅니다. 지금 설교를 하는 게 아니라 곡을 부쳐가지고 노래를 하는 거예요. 노래 곡을 제가 잘 모르겠는데
7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아마 여기 아랍나라가 지금의 시리아인데 이쪽 시리아 최북단이고 그리고 그 위쪽지역에 접경지역인데 하도 유명한 곳이니까 자기를 여기서 데려 왔다는 거예요.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굉장히 좋은 이야기를 저주하라고 불러 왔는데 전혀 저주가 아니고 저주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야곱족속의 미래를 아주 긍정적으로 예언을 합니다. 11절
11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12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잘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주신 말 그대로 만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아이구~ 끝났구나 이렇게 해야 하는데 발락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분별력이 없느냐 잘못된 장소에서 바라봤는가 보다. 19절
13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관점을 달리해서 한번 보자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14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단을 쌓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리니
그러니까 수송아지 14마리, 숫양 14마리 바친 거죠.
15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16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지니라
17 발람이 와서 본즉 발락이 번제물 곁에 섰고 모압 귀족들이 함께 있더라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18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지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식언 한다’말은 카자드라는 히브리어 말인데 거짓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거짓말 하지 않으신다.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20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21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22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23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진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24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25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26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런데 발람이 그래도 또 포기하지 않고 ‘딴 곳에 가서 봅시다.’또 다른데로 세 번째 데려가요.
27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다른 신들처럼 자꾸만 빌고 하면 마음이 바뀌고 하는 줄 아는가 봐.
28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니
29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숫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송아지 21마리 이제 허비하게 생겼죠. 숫양 21마리
30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숫양 하나를 드리니라

제 24장
1 발람이 자기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 
2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거하는 것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3 그가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5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6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7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8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9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지로다
10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 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11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12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자들에게 내가 고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13 가령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지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 임의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14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을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묻지도 않은 예언까지 하는데
15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17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여기 한 별이 나온다 하는 것을 보통사람들은 그만 좋은 게 나온다 하니 예수님이다 이렇게 하는데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니고 다윗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언제 모압을 치거나 한 적이 있습니까. 다윗왕을 유다의 한 별로 예언을 한 겁니다.
18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19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20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말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21 또 가인 족속을
가인 족속은 혹은 겐 족속이기도 하는데 미디안 족속이고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그 족속을 말합니다.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22 그러나 가인이 쇠미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23 또 노래를 지어 가로되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24 깃딤 해변에서
깃딤하는 것은 지금 현재 키프로스 그쪽 지역을 옛날 지명으로 깃딤이라고 합니다.

 (발람의 고향 브돌)

여기입니다. 키프러스, 옛날 지명으로 깃딤 하는 곳이에요.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여 에벨을 괴롭게 하리라마는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이래가지고 모압왕 발락이 발람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므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계획은 무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끝났으면 발람이 처음에 잘못되었지만은 모압왕 앞에 가서는 바로 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성경을 보다가 말거나 중간까지 보거나 끝까지 안보면 이런 오해를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조금 있다가 뭐 하느냐하면 달리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고 저주해봐야 저주가 임할게 아닌 거예요.
어떻게 하면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겠느냐, 연구를 하는 거죠.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것은 저주해가지고는 망하게 할 수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 저주 안하니까. 그럼 어떻게 하면 망하게 하느냐? 죄를 짓게 하면 망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으로 죄를 짓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오늘 오후에 그 부분을 볼 텐데 그래서 어떤 부분적으로 바로 했다 해서 함부로 평가할 수 없어요, 어떤 부분적으로 무슨 실수가 또 있다 해서 그 사람 전체로 볼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굉장해보여도 나중에 그 뒤를 보면 엉뚱한 짓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발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발람의 길을 어그러진 길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발람의 어그러진 길 또 삯을 위하여 달려가고자 하는 발람의 어그러진 길 이 말은 요한계시록까지 나온다고 그래서 이 발람이야기는 굉장히 그 시대 중근동 일대에서는 아주 유명한 점쟁이로 아주 족집게로 예언자로 이렇게 불러 다니고 했던 모양인데 성경에도 이 사람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는 것과 나오는데 좀 문제가 있어요.
민수기를 우리가 나중에 볼 것이지만 31장 8절을 보면 미디안의 다섯 방배하고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이며 또 보올의 아들 발람을 죽였다 이렇게 되어 있다고 민수기 31장에 죽였다고 나와요. 발람이 죽은 거예요. 그런데 나중에 여호수아서 13장에 가면 거기서 또 죽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가 보다 전부다. 한 사람이 두 번 죽을 수 있습니까? 옛날에 그런 거 있죠. ‘007 두 번 죽다’ 그런 거 있죠. 모르겠어요. 발람이 007인가 모르겠는데 분명이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여호수아서에 또 죽었다고 나오는 거라 이거는 성경에 난제 중에 하나입니다. 어떻게 두 번 죽을 수 있는가?
그래서 발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건이 일어날 때 그때 당대 바로 즉석에서 쓴 게 아니고 후대에 오랫동안 전해져 오고 전해져 오고 또 와전되고 이런 것들이 성경기록자들에게 문건이 입수되어가지고 인용한 것 같다는 거예요. 오랜 세월이 흘러서 아마 기록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죽은 이야기가 두 군데나 나오지
전혀 시대적으로 안 맞거든 상당히 간격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지도를 보면 여기서 부돌이라는 곳에서 모압까지 가려고 하는데 그런데 먼 길을 가려면 뭘 타고 가야겠어요? 비행기는 없으니까 자동차도 없고 먼 길 갈 때 뭘 타요? 낙타를 타야죠. 그런데 발람이 타고 나왔을 때 처음 뭘 타고 나왔어요? 당나귀는 이웃집 갈 때 타는 거요.
한 동네 안에 이런데 가는 거지 먼 길 가는데 당나귀를 타고 나오 것부터 뭔가 이야기가 석연치 않다 그런 이야기가 학자들 간에도 논란이 있는 겁니다. 종잡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이고 돈 때문에 마음이 변하고 또 존귀하게 한다 또 높은 사람을 보니 따라가고 싶어가지고 이런 마음이 생기는 그러니까 어떤면에서는 지조가 없고 신조가 없는 줏대머리 없이 그저 돈이나 가지고 미혹하면 그냥 넘어가는 그래서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달려가는 대표자가 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을 한번 찾아볼까요. 베드로 후서 2장 1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베후 2:15)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베후 2:16)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이렇게 베드로 사도가 발람이야기를 인용하고 있고 유다서도 보세요. 조금 넘겨서 유다서 1장 11절도 보시기 바랍니다.
(유 1:11)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여기도 보면 발람이라는 사람이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 잘못된 길로 달려가는 사람으로 지목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이 뭘 가지고 변하냐면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사람은 권력 앞에서 말이 달라지고 또 돈 앞에서 말이 달라지고 이러면 안 돼. 그래가지고 하나님 일을 못해요.
여러분, 구약성경 이따가 볼 텐데 다윗의 곁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라는 사람이 있어요. 브나야 같은 사람을 보면 힘으로도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 미혹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래서 다윗왕의 머리를 지키는 자로 요즘 같으면 경호실장 처럼 이렇게 둔 분이거든요. 어떤 것으로도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없는 돈으로도 힘으로도 권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이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은 무인출신이죠. 자기 할아버지 때부터 무인 가정인데 충직한 거야 브나야라는 사람이 우리교회에 별로 소개가 안 되었지만은 이 브나야라는 사람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예언자라고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는 발람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달려가고 계시를 보고 음성을 듣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돈 앞에 권력 앞에 명예 앞에 그냥 흔들리거나 이런 사람이 있다 하는 것을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 준다는 겁니다.
여러분, 성경은 수많은 사람을 보여 줍니다. 아담서부터 아벨과 가인으로 해서 노아로 아브라함으로 쭉 해가지고 하나님의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보여주면서 어떤 경우는 이런 사람을 봐라 이러면 안  되겠지 하는 걸 말씀 하시는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말이 없어요. 그냥 사람이 걸어가는 것을 쭉 보여주고 읽는 사람이 스스로 이런 사람의 길로 가서는 안 되겠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발람에 관한 이야기는 한두 번 나온 게 아니고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또 한군데 더 찾아보면 계시록 2장 14절입니다. 거기 보면 버가모 교회 사자에게 책망을 하면서 14절에 보면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버가모 교회에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오늘 저녁시간에 볼 거예요. 어떻게 발람이라는 사람이 그때는 하나님 말씀을 쫒아서 이스라엘 저주하지 않고 잘 해놓고는 그 뒤에 또 다른 사람이 꾀어서 돈을 더 많이 준다고 했는지 묘책을 찾아 낸 거야, 저주하는 것 가지고는 안 되니까 이스라엘이 망하게 천벌 받게 하는 방법은 이스라엘이 백성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죄를 짓게 하는 방법은 보통 미인계를 쓰는 거죠. 여자를 가지고 이스라엘 남자들을 미혹하게 해서 간음하게 한다든지 우상 재물을 먹게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죄를 짓게 만들어요.
이것이 민수기에 나오던 다시 말하면 모세시대에 있었던 발람인데 이 교훈이 베드로 후서, 유다서, 요한계시록까지 끝없이 발람의 교훈이라는 게 나온다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야 되요. 돈이나 권력 앞에서 우리의 신앙이 흔들린다면 신앙이 아니야, 돈으로 힘으로도 권력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그런 신조가 지조가 있어야지 발람처럼 명예 앞에 또 흔들리고 돈 앞에 흔들리고 권력 앞에 흔들리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자기 욕심을 위해서 그러니까 사람이 늘 우리 마음이 두 가지 안에서 선택을 해야죠. 욕심이냐, 양심이냐 욕심을 따라 갈 것인가 양심을 따라 갈 것인가 하고 늘 기로에 섭니다. 이 선택이 한두 번 가지고 안  되고 매번 바른 선택을 해야 되요. 매일같이 이런저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때마다 한 번도 예외 없이 욕심 쪽이 아니고 양심 쪽으로 따라가야 그래야 하늘나라 갈수 있어요.
길은 일생에 여러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갈래 길이 나온다는 거죠. 그럴 때 항상 욕심을 따라 선택하지 아니하고 양심을 따라 선택하고 또 성경말씀을 알면 그 말씀을 따라서 선택하고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은 선택의 결과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말씀은 먹지 말라 하는 것이었고 뱀의 말은 먹어라 하는 것이었는데 그때부터 인간은 끝없이 선택하는 존재, 인간은 선택에 의해서 자기 인생을 만들어가는 존재 그래서 매번 그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나니 살기위해서 생명의 길을 선택해라.” 자유의지를 주어놓고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주어놓고 의지의 자유와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책임도 따른다는 겁니다. 자기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져야 돼.
 그래서 발람에 대한 이야기는 깊이 공부를 하고 나면은 아무리 은혜 받고 신령해 보이고 해도 끝난 게 아니야 한번 그런 예언이 적중하고 하나님 말씀 들었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고 관 뚜껑 덮을때까지 변함없이 신조와 지조를 가지고 돈이나 힘이나 명예 앞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신앙이 견실한 신앙 그런 신앙이 참 신앙이라고 그래요.
견고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항상 바른쪽을 선택할 그런 분별력이 있어야만 우리가 천국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샤론의 가족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욕심을 따라 선택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 말씀과 양심을 따라 선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어그러진 길로 달려갔던 발람의 길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는 모세 시대부터 언급되어서 계시록까지 여러 차례 언급될 때 삯을 위하여 어그러진 길로 달려가는 대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말씀을 마음에 새겨듣고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욕심을 따라 선택하지 아니하고 마귀의 유혹과 충동에 따라 선택하지 아니하고 항상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양심을 따라 선택하는 그런 성실한 백성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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