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다녀온 한완상 박사 "진짜 악마는 우리 안에 있었다"
北 다녀온 한완상 박사 "진짜 악마는 우리 안에 있었다"
  • 엄인영
  • 승인 2018.10.2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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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제적 사랑으로 북한 대하자"

"가장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겉모습의 변화였다. 그 변화가 본질을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10·4 남북 정상회담 때만 하더라도 평양 거리에 '미 제국주의 격파'와 같은 문구나 호전적인 그림들이 많았다. 이번에 가 보니, 그런 증오의 모습들이 싹 사라져 있었다."

[뉴스앤조이-장명성 기자]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현 통일부장관)을 지낸 한완상 박사는 20회가 넘는 방북을 통해 북한 사회의 모습을 지켜봐 왔다. 그런 그에게도 최근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의 변화는 놀라운 일이었다. 한 박사는 지난 방북 경험들과 이번 방북은 느낌 자체가 달랐다고 했다.

한완상 박사가 10월 18일 기독법률가회·기독교윤리실천운동·좋은교사운동이 주최한 '한반도 평화와 한국교회' 긴급 토론회에서, 지난 9월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한 경험담을 풀었다. 한완상 박사는 "적대적 공생으로 유지되던 남북 관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30여 명이 참석한 토론회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한 박사가 북한에서 겪은 일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탄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기독법률가회·기독교윤리실천운동·좋은교사운동은 '한반도 평화와 한국교회' 긴급 토론회를 10월 18일 기독법률가회 비전센터에서 열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문재인 대통령 '비핵화' 연설에 손뼉 치던 평양시민들 보며 '하나님 뜻 이뤄지기를' 기도 절로 나와

한완상 박사가 가장 놀랐던 것은, 북한 능라도경기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듣는 평양 시민 15만 명의 모습이었다. 그는 연설을 듣는 평양시민들 반응을 보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 없는 한반도'를 15만 관중 앞에서 이야기할 때, 무서운 침묵이 1~2초 정도 흘렀다. 지도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몰라도, '적국'의 대통령이 와서 비핵화를 이야기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이상했다. 관중들은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박수 소리를 들으며 '북한을 악마라고 생각해 왔는데, 진짜 악마는 우리 안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 광경을 보며 절로 기도가 나왔다고 했다. 한 박사는 "'지금 내가 보는 현실이 환상이 아니라, 이 땅의 현실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전 방북에서 흔히 보였던, '연기하는 시민'도 사라졌다고 했다. 한 박사는 "예전에 개성에 갔을 때,길거리에 지나다니던 시민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 책을 읽으며 연기하는 등 어색한 모습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들 표정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북한의 분위기가 유연해지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완상 박사는 북한의 변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백두산 천지를 둘러보던 중에, 도종환 장관이 자기 모습을 사진 찍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김 위원장이 선뜻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나서더라. 깜짝 놀랐다. 북한 체제에서 그는 '신'이지 않은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열려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겸손하고 소탈한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완상 박사는 "함께 방북한 한 국회의원이 김 위원장과 서울 방문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 의원이 '태극기 부대'를 언급하며 '기분 상할 수 있지 않겠나'라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민들 환영받을 만한 일을 못 했다'고 답하더라. 부하들이 다 듣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 게 놀라웠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한완상 박사는 지난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장명성

"서로 '악마화'하던 문화, 북한에서 먼저 해체되는 중 '원수 사랑' 정신 기억해야"

한완상 박사는 북한의 변화를 보며, 분단 70년 동안 남북이 서로를 끊임없이 '악마화'했던 문화가 북한에서 먼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악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원수로 여기는 사람을 끊임없이 악마화하게 된다. 북한과 달리 사상의 자유가 있다는 우리나라에, 아직 냉전의 악몽에 시달리며 북한을 악마화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남의 눈 속 티끌은 보면서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못 본다'는 예수의 말씀은 '상대를 악마화하는 사람이 오히려 악마가 된다'는 의미라고 했다. 한완상 박사는 "자기 속에 악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의 작은 악을 더 크게 비난하게 된다"며 한국 사회와 교회가 북한을 악마화해 비난하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한 박사는 한국교회가 '이웃 사랑'을 넘어 '원수 사랑'의 정신을 기억하며 북한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원수를 사랑하지 못할수록 이웃 사랑을 더 강조하는 것 같다. 같은 특징을 가진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이 원수 사랑의 개념은 제쳐 두고 설교조차 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와 다르다"고 지적했다.

바울이 말한 '선제적 사랑'을 북한에 보여 줘야 한다고도 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에서 '원수가 굶으면 먹이고, 목말라 하면 마실 것을 주라'고 말한다. 선제공격, 선제 폭격이 아니라, 선제적 사랑이 예수와 바울의 가르침이다"고 했다.

한완상 박사는 한국교회가 타자를 악마화하는 것을 멈추고, 북한을 '선제적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던 나도 의심할 정도로 북한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평양 관중들의 박수 소리를 들으며 눈이 번쩍 뜨였다. '나는 과연 그들에게 선제적 사랑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가 북한 사람들을 '고약한 무신론자', '악마'라고 확신하던 모습을 버리고, 원수 사랑을 통해 그들을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 죽기 전에, 한반도의 평화가 이뤄지는 모습을 희미하게나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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