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19.04.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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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할까?

한 때 미국의 대통령 오바마가 쿠바와의 관계를 정상화시키겠다고 선언했을 때, 미국의 강경우파 공화당원과 네오콘들은 쿠바인들의 자유, 잔인한 독재자 운운하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미국이 과거에 라틴아메리카의 파시스트 정권들을 지지해온 미국의 역사를 돌아볼 때, 쿠바 제재야말로 위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카스트로 정권은 쿠바가 인권 선진국은 아니지만, 미국이 지지했던 다른 정권들에 비해 전혀 악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미국이 지원했던 최악의 파시스트 정권들을 돌아보면 미국의 정체성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1.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1973-1990)

칠레에서 진보 정당 연합을 이끈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에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지만 미국은 피노체트라는 독재자를 CIA의 지원과 독려를 하여 마침내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아옌데 정부는 무너지게 되었다. 피노체트는 무솔리니와 프랑코의 영향을 받은 파시스트였다. 이로 말미암아 아옌데는 자살했고 그 지지자들은 피노체트의 공포정치 하에서 고문을 당하고 죽어갔다. 피노체트는 세계 역사 처음의 민주적 사회주의 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붕괴시킨 1973911일부터 1990311일의 대통령 선거까지 칠레를 지배한 군부 독재자였다. 실제로 축구 경기장은 양심수들이 학살당한 뒤에 화장되는 만행의 장소였다. 다국 기업들과 자본주의 강대국은 칠레에 대한 경제 투자를 끊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 1972년에 칠레 에스쿠도화의 인플레이션율은 140%에 이르렀다. 1971년과 1973년 사이에 평균 실질 GDP1년마다 -5.6%씩 수축되었고 정부 예산 적자는 치솟고 외환보유고는 떨어졌다. 물가는 상승하는데 정부는 가격 통제를 강제하면서 상점에서 생필품은 사라지고 쌀, , 설탕, 밀가루의 지하 시장이 늘어났다. 아옌데 정부는 국제 채권자와 외국 정부에 채무 디폴트를 선언했다. 또 임금을 인상하는 동시에 모든 물가를 동결했다. 지주, 고용주, 사업가, 운송 연합, 그리고 일부 공무원과 전문 노조들이 이 정책에 강하게 반발했다. 우파에서는 국민당과 로마 가톨릭 교회(1973년 교육 정책으로 인해 불만을 샀다.)이 반대했으며 나중에는 기독교 민주당도 가담했다. 해외 다국적 기업, 미국 정부와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다. 1970년에서 1971년 동안 아옌데는 수차례 임금을 인상했으나 칠레 법정통화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프레이 대통령 시대에도 물가가 상승해왔지만(1967년부터 1970년까지 27% 상승) 19728월 한 달에만 기본 소비재 가격이 190에스쿠도에서 421에스쿠도로 120%나 치솟았다. 1970년에서 1972년 사이 아옌데가 집권할 때 수출은 24%나 떨어지고 수입은 26%가 상승했으며 식량 수입은 149%에 달했다. 명목 임금은 오르고 있었지만 생활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 정부가 민주선거로 등장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 미국이 구리 가격을 크게 떨어지게 하면서 칠레 경제는 더 어려워졌다. 실제로 구리는 칠레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었는데(칠레 수출의 절반 이상이 이 자원 하나에서 나왔다), 국제 시장에서 구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수출 소득이 떨어졌다. 국제 구리 가격이 칠레에 불리하게 요동치면서 1971-72년 칠레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다. 1970년 톤당 66$에 이르던 구리 가격은 1971-72년에는 겨우 48-9$로 곤두박칠 쳤다. 피노체트는 쿠데타 이후, 시카고대 출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칠레 경제학자들('시카고 보이즈')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유지상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쳐, 국영 기업과 광산 등의 민영화, 규제 철폐, 무역 장벽 해소 등에 집중했으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튼 프리드먼 등에게 '칠레의 기적' 이라 칭송받았다. 칠레의 실업률은 1980년대 당시 위기를 겪으면서 20%대로 급상승했다. 이것이 1980년대 피노체트 정권 말년에는 10% 밑으로 겨우 회복되었고, 민주화 이후 1990년대 중반에 6%대로 내려갔다가 10%대로 급증했다. 칠레의 인플레이션율은 아옌데가 퇴진한 1973년 당시 약 500%에 달하던 수치에서 점차 하락하여 1980년대 위기 직전까지는 10% 이하로 내려갔다가 위기를 겪으면서 잠시 20% 상승했고 여기서 다시 회복되는 형태를 보였다.

1970년 세계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이 등장하자 미국이 친미정권수립을 칠레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다는 비판도 있는데 빌 클린턴 정부 시절에 비밀 해제된 미국 정부의 문서들에 미국이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의 초기부터 전복을 바라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쿠데타에서의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은 공개된 문서들로는 증명되지도 부정되지도 않는다. 이 사안과 관련된 상당수의 문서들은 아직도 비밀로 분류되어 있다. 한편, 미국의 CIA에서 과거의 기록과, 과거 요원들과의 인터뷰 등을 검토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CIA) 피노체트가 대권을 취하도록 돕지 않았다"고 하며, 200011월의 백악관의 보도 자료에 따르면 "이 당시 미국 정부가 허락한 활동들이 칠레의 정치적 분열을 악화시켰으며, 칠레의 오랜 민주 선거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피노체트의 장례식은 칠레 대통령의 거부로 국장으로 치러지지 못하였으며, 칠레 사관학교에서의 장례식에서는 피노체트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기도 했다. 피노체트의 군사독재는 '피의 독재'라는 별명이 붙었다. 칠레 정부의 과거사조사결과에 따르면 피노체트의 17년간의 독재로 약 3,197명에 이르는 학살피해자가 발생했으며 고문 피해자도 수 만 명에 달한다. 또한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도 1,197명에 달한다.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 당시 탄압당한 사람들은 칠레 공산당과 칠레 사회당 등의 좌파정당 인사 군사독재에 반대하여 결성된 공산당계 테러조직인 '애국전선' 용의자와 그들의 동조자, 살바도르 아옌데정권 당시 공직 역임자 등이다.

2. 과테말라의 군부 독재자 리오스 몬트(1951 ~2015)

미국이 과테말라의 독재 정부를 오랫동안 지원한 것은 유나이티드 과일 회사(United Fruit Company, UFC)라는 기업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과테말라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각지에서 과일 플랜테이션을 운영하고 있었다. 1951년 야코보 아르벤스는 대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집권한 후 대대적인 농지 개혁을 추진했는데, 이로 인해 일부 농지를 빼앗긴 UFC는 미 중앙정보부에 아르벤스를 제거해달라고 로비를 했다. 그 결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쿠데타가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에도 극우 파시스트 정권이 연이어 들어서 80년대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980년대 집단학살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던 과테말라 전 군부 독재자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가 1(현지시간) 91세로 사망했다. 리오스 몬트의 변호인단 중 한 명인 루이스 로살레스 변호사는 리오스 몬트가 이날 오전 가택연금 중인 자택에서 심장 발작으로 숨졌다고 전했다고 프렌사 리브레 등 현지언론이 보도했다. 리오스 몬트는 1982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1983년까지 다른 쿠데타로 물러날 때까지 17개월간 권좌를 지켰다.

그는 집권 시절 반군 지지세력으로 여겨졌던 마야 원주민 1771명을 과테말라 북부 키쉬에서 학살하도록 지시하고, 29천 명에 달하는 원주민을 거주지에서 강제 이주토록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리오스 몬트는 1983년 발생한 다른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났지만 2011년 총선에서 패할 때까지 15년 간 국회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면책특권을 부여받았다. 미국은 당시 쿠데타로 집권한 리오스 몬트를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대단한 개인적 진실성과 헌신을 가진 남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그는 20135월 집단학살과 반인륜 범죄 혐의로 징역 8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같은 달 과테말라 헌법재판소가 원심 무효 판결을 내렸다. 20151월 재심이 시작됐지만 리오스 몬트의 변호인단이 그가 판단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노쇠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1960년부터 내전이 극심했던 과테말라에서는 최악의 학살이 발생한 리오스 몬트 집권 기간을 포함, 36년간 245천 명이 살해되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사망·실종자의 대부분은 정부군과 민병대에 희생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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