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2
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2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19.04.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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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소모사 왕조의 니카라과(1930년대-1979)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파시스트 프랑코는 라틴아메리카의 독재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니카라과도 그 중 하나였다. 미국의 비호 하에 마음껏 철권을 휘두른 소모사 정권의 지배 하에서 고문은 일상이었다. 소모사 가의 지배는 40여 년 간 이어졌다. 1979년에 이르러서야 소모사 가가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는데, 당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새 정부가 독재적이라고 비난해 아이러니를 더했다. 역사를 돌아보면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 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중미 연방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북부 레온 중심의 자유주의자와 남부 그라나다 중심의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끼리 내전을 벌이던 상황에서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고용된 미국인 백인 용병 윌리엄 워커(William Walker)가 황제 노릇을 한 적이 있었지만 군벌들에게 쫓겨났고 보수주의자들이 집권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니카라과에서 커피 산업과 바나나 산업이 나타났는데, 이들 신흥 소지주들이 감히 대지주들 땅을 뺏을 순 없었으니 원주민 땅을 뜯어갔다. 그러자 염료와 목축을 하던 대지주들도 커피와 바나나 재배를 시작했다. 1890년대 자유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정부는 교회의 땅을 뺏어 커피 농장으로 만들었으나 대부분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미군이 파견되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산디노가 이에 저항해 게릴라 활동을 하다가 1934년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에 의해 살해 당하게 되었다. 한편 이 무렵 국방군의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가르시아가 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을 잡았으며 그가 암살당한 후에도 아들 루이스 소모사 데바일레와 그의 동생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데바일레가 연달아 니카라과의 권력을 잡았다. 이런 상황에서 1960년대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rente Sandinista de Liberación Nacional)이 결성되었다. 소모사 족벌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기존의 기득권층은 위협을 느꼈고 소모사가 1972년 대지진 때 받은 지원금을 횡령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자 소모사에 대한 불만은 더 높아졌다. 그리고 1978년 소모사가 자신에 반대하던 유력지 «라 프렌사»의 페드로 차모로를 살해하자 반 소모사 운동은 더욱 강해졌다. 1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혁명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1979년 마침내 소모사 일당은 해외로 망명을 가며 혁명은 성공하여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다. 산디니스타 혁명정권은 국방군을 해체하고 혁명에 참여한 타 정당들과 단체들과 협력하면서 국가재건위원회를 구성해 토지 개혁과 국유화 등을 시도하였다. GDP41%에 달했던 소모사 일당의 소유 재산을 빼았고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문맹퇴치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여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문맹률을 50%에서 13%로 떨어트렸으며, 전국적인 의료보건제도를 도입하여 영유아 사망률을 크게 떨어트리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국가재건위원회 내에서도 좌우간의 대립으로 반목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니카라과에서 경제재건 운동을 하려고 쿠바와 소련에 지원을 요청하나 이게 빌미가 되면서 미국은 산디니스타 정권에 반발했고, 1982년 제재 조치를 취해 세계 최대 바나나 회사가 니카라과를 떠나 큰 타격을 주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콘트라 사건이라 불리우는 짓을 감행했는데 산디니스타를 엎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밀수출까지 하면서 니카라과의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는데, 콘트라 반군이 현지에서 현물세로 걷은 코카인까지 미국이 맡은 것이다. 이와같이 지금까지 미국이 지원했던 정권은 하나같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반민주적이며 군부독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4. 엘살바도르의 군부 독재(1979-1992)

엘살바도르에서 비극적인 내전이 이어진 13년 간 미국은 좌파 게릴라 세력에 맞서 학살부대와 고문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 군부를 계속해서 지원했다. 쿠바 제재를 외치던 정치인들도 엘살바도르의 군부에는 항상 관대했다. 군부의 잔혹성은 외국인에게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1980년에는 엘살바도르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미국인 수녀 세 사람과 선교사 하나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지지는 레이건 정부를 거쳐 H.W. 부시 정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스페인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 토지의 대부분은 스페인계 백인 엘리트 가문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원주민들은 노예로 착취당하며 일을 했다. 1811년 호세 마티아스 델가도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1821년 스페인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멕시코의 영토였다가 1823년에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와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구성했다. 이후 1838년 연방이 해체되면서 별개 국가로 독립했다. 이들 중미연방에 속한 나라는 코스타리카를 빼고는 모두 파란색-흰색의 이색기 도안이 바탕인 국기를 채택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내전과 독재, 쿠데타 등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겪어왔다. 통칭 14가문이라고 하는 마피아적인 스페인 통치 시대 이래의 지배집단이 대지주/지배자로 군림해 왔으며 이에 맞선 좌파 게릴라와 토착 원주민에 대한 학살, 반공군부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 굴곡진 역사를 거쳐 왔다. 1969년 온두라스와 축구전쟁을 벌였다. 원래부터 이주민 문제나 토지 배분 문제 등으로 인하여 두 나라의 사이가 그렇게나 좋지 않았고, 그것이 월드컵 예선전으로 인하여 급격히 국민감정이 악화하며 폭발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한편 군부는 20세기 중반 내내 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해 왔는데 1972년 당선된 대통령을 체포하고 스스로 내세운 후보자를 취임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암살대(Sombra Negra)'가 만들어져 수많은 국민들이 정부에 의해 고문 강간당하고 살인까지 자행했다. 1979년 극우파 쿠데타와 함께 새 정권이 들어서고 오스카 로메로(Óscar Romero) 대주교가 군사정권에 맞서 민주화 및 민중투쟁을 선도하다 살해당하는 일 등을 이유로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 같은 좌파 반군이 활동했다. 80년대 내내 정부군과 FMLN 간의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탈출하고 사망하였으며, 주변 여러 나라들과 같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부가 만행을 저질렀다. FMLN은 국가전복을 시도했으나 지역기반이 한정되어있어 세가 약했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고 냉전 이후 약화되었으며, 1989년 대선에서 크리스티아니가 대통령이 되면서 평화협상에 들어갔다. 물론 이 기간 중에도 서로 간헐적인 충돌이 있었지만 정부측이나 FMLN측이나 내전에서 싸움질을 거듭했어도 서로 지칠대로 지쳐 있을 때라서 결국 평화협정에 나섰고 1992년 정전이 발효되고 FMLN이 합법정당으로 거듭나면서 일단 내전은 끝났다. 이후로 우파정당인 ARENA의 장기집권이 이루어졌다. 다만 그 사이에 재임했던 대통령들이 재계와 유착된 관계로 부정부패나 뇌물수수 의혹에 시달리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고, 내전 직후의 사회혼란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갱단들이 판을 쳤다. 이런 상황이 20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가 2009년 대선에서 FMLN당 소속의 정치인인 마우리시오 푸네스(Mauricio Funes)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년 만에 좌파 정권이 탄생하면서 갱단들의 조직범죄를 강력하게 단속하는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위낙 갱단들이 정부에 강력하게 맞선데다가 조직범죄를 예방할 복지정책 같은 것들이 부재한 덕택에, 범죄척결정책은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엘살바도르의 범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푸네스 전 대통령도 임기 중반부터 이전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부패의혹에 시달리면서 도진개진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가 재임기간에 회계조작으로 부정축재 했다는 의혹이 결정타가 되어 니카라과로 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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