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8
미국은 왜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하는가? 8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19.04.0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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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1965) 상황을 미국이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사실상 묵인했다는 내용의 기밀문서가 공개됐다. AP통신 등은 17(현지시간) 최근 기밀 지정이 해제된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 기밀문서를 인용해 미국 외교관들이 당시 약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량 학살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에 눈감았을 뿐 아니라 외려 이를 주도한 수하르토 장군의 친미 군부정권 수립을 축하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역사학자들은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지지자 가운데 최소 50만 여명이 1965년 쿠데타를 제압하고 정권을 장악한 인도네시아 군부의 명령을 받은 병사와 민병대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밝히고 있다. 196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과 소비에트 연방에 이어 세계 3위 규모의 공산당이었던 PKI는 철저하게 붕괴했다. 당시 수하르토 장군은 PKI가 쿠데타의 배후라고 지목하면서 이들을 척결한다는 명분 아래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고, 이를 기반으로 대통령에 취임해 33년간 인도네시아를 철권 통치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은 학살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19651126일 인도네시아 수라바야에 있는 미국 영사관이 보낸 전문은 자바 동부의 한 학살극에서 공산주의자 최소 15,000명이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만연한 살해의 증거라고 전했다. 한 달 뒤에 같은 영사관은 정부가 수감된 공산주의자를 민간인에게 데려가 살해당하도록 놔뒀다는 전문도 보냈다. 이들 민간인은 수하르토 정권의 학살극에 공모한 이슬람교 단체를 가리킨다. 수마트라섬 서부 메단의 영사관은 당시 인도네시아 내 최대 무슬림 단체 무하마디야에 속한 한 설교자가 공산주의자들은 불신자 가운데서도 최하급이라며 이들을 죽이는 것은 닭을 죽이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학살을 종교적으로 정당화했다는 보고를 보냈다. 정작 이렇게 학살당한 이들의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미국은 수하르토가 이끄는 친미 반공 정권의 등장을 환영하기까지 했다. 이 해 1221일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의 1등서기관 메리 밴스 트렌트는 본국 국무부에 이미 10만명이 학살당했다.”면서도 불과 10주 만에 환상적 전환이 있었다는 전문을 보냈다. 인도네시아의 강성한 공산당 세력이 괴멸되고 친미정권이 수립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였다. 10월 중순 대사관을 찾은 부중 나수티온 인도네시아 법무부 특별보좌관에게는 수하르토와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인도네시아에서 1960년대 대량학살에 관한 논의는 지금까지 금기시되고 있다. 정부는 학살 생존자와 군인들이 참가하는 공개토론회를 열어 과거사 청산을 시도했지만 군부와 경찰 일각에서는 반발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최근 이슬람교 집단과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중심으로 반공산주의열풍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에는 자카르타 도심에서 열린 학살 사건을 다루는 시민운동가들의 토론회가 퇴역 장성이 주도하는 성난 군중의 침탈에 밀렸고 경찰 5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미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시장경제 국가로 전환했음에도 인도네시아 보수 정치권에서는 반대파 공격에 공산주의자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인권변호사 베로니카 코만은 AP통신에 “1965년에서 66년 사이 인도네시아 대량 학살은 세계 최악의 범죄일 뿐 아니라 우리 국가의 가장 어두운 비밀이라며 당시 학살 생존자들이 너무 나이 들어 그들이 죽기 전 정의의 실현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그는 공개된 기밀문서가 진실을 드러내고 가해 집단에 책임을 지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안드레아스 하르소노도 미국과 인도네시아가 학살극에 관련된 모든 문건을 기밀 해제해야 한다.”라며 정확한 역사기록을 밝혀야 이들 범죄 행위에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AFP통신에 말했다세상 어느 곳 가릴 것도 없이 악하고 부패한 군부독재자 뒤에는 언제나 미국이 지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16. 부패한 사우디 아라비아 왕실

미국을 떼어놓고 사우디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그리고 빈 라덴의 반미주의 세력 출현으로 상징되는 현재의 위기도, 결과적으로 미국의 사우디 정책 실패의 위기로 봐야 할 것이다. 알사우드 왕조를 중심으로 사우디의 부족들이 통일 왕국을 이룬 1932년부터, 신생 국가의 보호자역할을 그 당시의 중동의 패권 제국이었던 영국이 맡았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세계의 새로운 패권자인 미국이 사우디를 전략적인 관심지역으로 지정하고 사우디 왕국을 실제적인 보호국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4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군기지를 사용하고 사우디 군대의 훈련과 무기 공급을 거의 독점해온 미국은, 실제로 아라비아 반도에 대한 군사적인 통제권을 장악하게 됐다. 사우디 왕국 경제의 기간을 이루는 석유산업도 미국 재벌들의 통제하에 놓여져 있었는데, 아라비아 반도의 석유가 처음 탐사된 1930년대부터 일제 석유산업을 장악한 기업은 독점 이권계약을 따낸 미국의 액슨(Exxon)과 스탄다르트 오일(Standard Oil) 등의 합작회사인 알암코 (ARAMCO; Arabian American Oil Company)였다.

알암코가 사우디에 의해서 국유화된 1988년까지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산업은 실제로 미국 대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져 있었다. 대신 나라의 살림을 관리하다시피 해 온 미국 자본은 예속 왕조와 부족 귀족층의 호화판 생활을 보장할 만한 로열티를 지불했다. 그 로열티의 일부는 대규모 공사 계약을 따낸 한국 건설업체의 주머니에 들어가기도 했지만, 홀연히 세계적 갑부로 부상된 왕조의 주요 구입항목은 다름이 아닌 미국산 무기(武器)였다.

194791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약 6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각종의 미국 무기를 사왔다. 중동의 권위주의적 정권 중에서도 정부 예산의 약 36%를 국방에 투자하는 사우디는 국제적으로 군국주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걸프전쟁 이후 199597년간에 130억 달러 상당의 미국 무기를 사들인 사우디 왕국은, ‘세계 최고의 미국 무기 구입자라는 명예(?)를 차지하게 됐다(참고로 미국 언론이 위험한 국가로 분류하는 이라크의 군사 예산은 사우디 국방부 예산의 5분의 1도 되지 못한다) 사우디는 오랫동안 미국 석유 기업과 군산 복합체의 황금알을 낳는 닭이었다. 미국 자본으로부터 받는 석유 로열티를 다시 무기 대금으로 미국에다 바치는 효자 정권으로서, 사우디는 여러 예속 정권 중에서도 특출했다.

아랍 민족주의와 좌익·반제운동의 노도가 휩쓰는 5070년대의 중동에서 사우디와 같은 친미적 보수주의의 오아시스를 보존하기 위해, 가장 수구적인 세력과 경향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지도층 사이에서 이루어진 판단이었다. 실제로 군사·경제·외교적으로 미국의 보호국신세였던 사우디는, 세계의 어느 친미적 예속 독재정권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큼 심한 수구적 노선을 취했다. 국회도, 정당도, 정치적 운동들도, 독립적 언론도, 노조도, 파업도 전혀 없는 사우디는 박정희나 전두환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멸균실수준의 수구적 왕권이다. 후진성이 영구화된 이 수구주의의 이상향을 유지하는 것은 가공할 만한 억압 체제이다. ‘인권의 개념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우디에서는, 정부에 대한 비판의 한마디로 사람을 불구자로 만들거나 공개 참수하는 것이 다반사다.

최근 20년 동안 1200명 이상을 참수한 사우디의 사형수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민주와 인권의 보호자를 자칭하는 미국은, 사우디의 인권문제에 대해 눈을 아예 감고 있다. 천문학적인 석유·무기 판매 이득에 눈이 먼 미국은 바로 이 차원에서 치명적인 정책적인 오류를 범했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민의(民意) 수렴기구가 전혀 없는 왕국에서 높아져가는 불만은 결국 폭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알사우드 왕조에게 전체적 위기의 시기였다. 줄어드는 석유 소득과 인구 증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3로 감소했고 1990년 걸프전쟁 이후 7천명의 미군 주둔은, 사우디 주민들의 종교적·민족적 감정을 극도로 자극했다. 이슬람의 세계관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인 미군들이 이슬람의 성지 메카가 위치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진을 치고 주둔하는 것은 종묘·사직의 자리에 미국대사관이 자리를 잡는 정도의 심한 모독이다. 결국 여러 가지 불만요소의 결합체로서,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은 급속히 인기를 모았다.

미국의 매체들이 이슬람 원리주의를 거의 악마적인광신주의로 서술하고 있지만, 노렝 교수는 군비 절감과 고가 외제 소비재를 즐겨 쓰는 지배층의 풍토 정화, 국부의 정당한 분배와 대미관계에서의 주권 회복,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이슬람 원리주의운동을 민중 요구의 상당부분을 반영하는 운동으로 분석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좌익운동을 통해서 분출될 수도 있는 이와 같은 요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교운동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은, 종교 이외의 사회생활을 사실상 금지시켜버린 억압 정책의 당연한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우디 왕국의 억압의 결과로 민중의 요구에서 비롯된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종교적 운동도 제 소리를 전혀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빈 라덴과 같은 급진적인 운동가들은 국외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망명하여 최후의 수단인 테러를 사용하게 됐고, 대부분의 온건파 원리주의자들은 체포와 고문의 위험을 무릅쓰고 계속 인기를 모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렝 교수의 예측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원리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실히 증가될 것이고, 그들에 의한 정권 탈환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노렝 교수의 결론은, 현상 유지를 위해서 사우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미국의 수구주의 지원정책이야말로 사우디 반()정부 정치운동이 종교적·우파적 색채를 띠는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많은 노르웨이 지식인들에 따르면, 원리주의가 득세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만큼 서방쪽이 테러’(원리주의)와의 전쟁 대신에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미군주둔, 고가 무기의 대량 판매와 같이 원리주의자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미국의 정책이 재고·수정되지 않는 한 차후의 테러 위험이 어차피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우리가 쉽게 말해서 오사마 빈 라덴을 테러주의자로 말해 버리지만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더러운 불륜을 고발하고 응징하려는 성전(聖戰)을 감당하고 있는 자들로 추앙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언제까지나 사우디아라비아와 더러운 불륜을 이어가게 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사우디가 만약 미국의 무기를 사 주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지금까지 이어오던 더러운 불륜의 관계는 깨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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