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정의가 있는가?
미국에도 정의가 있는가?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20.08.22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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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들의 폭격과 기총 소사에 의하여 수 많은 민간인들이 죽은 사건들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아래는 미국 전투기의 목격과 기총소사에 의하여 죽거나 부상당한 사라들을 조사하여 보관하고 있는 자료들을 모아 놓은 기록이다.

1. 창녕 어초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초, 60여 명 사망·20여 명 부상, 오연호『노근리 그 후』)

2. 서울 용산구 미군폭격 (1950년 7월 3일, 60여 명 사상,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3. 서울 서빙고 미군폭격 (1950년 9월 4일, 주민 다수,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4. 서울 마포구 미군폭격 (1950년 9월 6일, 100여 명 사상,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5. 서울 성북동 학살 (1950년 9월 30일, 30명 사망(서울 전차 노동자), 제보)

6. 서울 망우리 미군폭격 (1950년 12월 31일, 수십 명 사망, 제보)7. 인천 미군폭격 (1950년 8월 5일, 다수 사망,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8. 인천 금곡동 학살 (1950년 9월 16일(인천상륙작전 다음 날), 2천 700여 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제보·증언)

9. 인천 춘의도 학살 (1953년 5월 20일(음력 4월 8일), 다수 사망, 증언)

10. 강화 길상면 선두리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0년 9월 16일, 3명 사망 외,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1. 김포 미군폭격 (1951년 1.4후퇴 당시, 300여 명 사망, 한국일보(1999. 12. 30))12. 양주 쇠목마을 미군폭격 (1951년 4월, 10여 명 사망, 전민특위 백서)

13. 연천 미군폭격 (1950년, 15명 사망, 전민특위 백서)

14. 남양주 화도읍 가곡리 학살 (1950년 2월, 주민 다수 사망, 제보)

15. 남양주 진접면 미군폭격 (1951년 2월 10일, 5명 사망·2명 부상,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6. 남양주 일패동 미군폭격 (1951년 2월 20일, 6명 사망·초가집 전소,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7. 안양 미군폭격 (1951년 1월 9일, 300여 명 사망(피난민), 제보)

18. 성남 분당 미군폭격 (1950년 여름 무렵, 피난민 다수, 제보)

19. 이천 율면 미군폭격 (1953년 무렵, 마을주민 다수 사망, 제보)

20. 화성 안효리 미군폭격 (1950년 12월 6일, 가족 3명 사망·가옥 16동 전소,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21. 수원 뒷 고지 미군폭격 (1950년 7월, 80-100명 사망(국군),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22. 수원 병점 미군 기총사격 (1952년 5월, 2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23. 용인 풍덕천리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1년 1월 12일, 1회 난사시 20-30여 명 사망, 한국일보(1999년 12월 30일),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24. 용인 죽전리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1년 1월 15일, 사망 17명·        부상 3명,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25. 용인 지곡리·보라리 미군폭격 (1951년 1월 26일, 다수 사망,    수지읍지(2002))

26. 춘천 미군폭격 (1950년 6월 27일, 주민 다수 사망·가옥 파괴,     신경득『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27. 춘천형무소 학살 (1950년, 2명 사망, 증언)

28. 홍천 미군폭격 (한국전쟁 기간 중, 다수 사망, 제보)

29. 고성 미국폭격 (1951년 1.4 후퇴 당시, 12명 사망·1명 부상,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30. 주문진-삼척 미국폭격 (1950년 7월 2일-6일, 다수 희생,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31. 강릉 연곡면 미국폭격 (1951년 1월, 사망 1명·가옥 전소, 증언)

32. 평창 하4리 미군폭격 (1951년 1월 16일, 2명 사망·다수 부상,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33. 단양 곡계굴 미군폭격 (1951년 1월 20일, 360명 사망, 미 국립전쟁대학 (National War College)의 CIA문건, 오연호『노근리 그 후』,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34. 옥천 노루목재 미군폭격 (1950년 10월 5일(음 8월 24일), 36명 사상, 2003 충북지역실태조사보고서)

35. 옥천 청산시장 미군폭격 (1950년 10월 5일(음 8월 24일), 다수 사망, 옥천신문)

36. 영동 임계리·무득리 미군폭격 (1950년 7월 22일, 2천 명, 제보)

37. 영동 양강면 묘동리 학살 (1950년 7월 23일, 3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38. 영동 노근리 학살 (1950년 7월 26일-29일, 248명 사망 (400여 명 주장),  한미합동조사, 미군 문서, AP 보도 등)

39. 영동 양강먄 지촌리 학살 (1950년 7월, 다수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40. 서산 대산리 미군폭격 (한국전쟁 기간 중, 다수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41. 예산 신주리 미군폭격 (1950년 9월 5일, 3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접수목록)

42. 아산 둔포 미국폭격 (1951년 1월 15일 경, 300여 명 사망, 한국경제(1999년 12월 29일))

43. 아산 온양온천 미군폭격 (1950년 7월 10일부터 얼마동안, 온양 온천일대 잿더미, 온양시지(1989))

44. 천안 소정리 등 미군폭격 (1950년 7월 초순, 잿더미·인명피해 미상, 신경득『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45. 공주 월하리 미군의 학살 (1950년 7월 5일, 7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46. 서천 대산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20일, 수십 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47. 서천 판교면 미군 기총소사 학살 (1950년 9월 10일, 50여 명 사상, 뉴스서천(1999. 10-11))논산 시가지 미군폭격 (1950년 7월 22일, 1000여 호 민가 폐허, 신경득 『조선종군실화로 본 민간인학살』)

48. 금산 철산리 미군폭격 (1950년 7월 5일, 50명 사망, 증언)

49. 금산읍, 추산면 미군폭격 (1950년 7월 22일, 다수 사망, 금산군지(1987))

50. 금산 중도리 미군폭격 (1950년 9월 30일, 다수 사망, 금산군지(1987))

51. 대전 유성 미군폭격 (1950년 7월 말, 주민·피난민 50여 명 사망·  10여 명 부상, 한국경제신문, 국민일보)

52. 김천 남면 미군폭격 (1950년 7월 25일, 16명(농소면, 남면 주민),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53. 김천 감천 미군폭격 (1950년 9월 29일, 4명 사망·3명 부상·마을 전소,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대구경북 증언 조사 자료집』)

54. 상주 모서면 미군폭격 (1950년 9월 25일(음 8월 14일), 다수 사망,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55. 예천 가동 미군폭격 (1950년 7월 1일, 가족 3명 사망·아들 부상,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56. 예천 산성리 미군폭격 (1951년 1월 19일(음 12월 12일), 48명   사망·90명 부상 등, 오연호『노근리 그 후』,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예천군 의정보고, 미국립전쟁대학(National War College)의 CIA문건,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57. 예천 진평리 미군폭격 (1951년 1월 19일(음 12월 12일), 30명 사망·15명 부상 등, 오연호『노근리 그 후』,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예천군 의정보고, 미국립전쟁대학(National War College)의 CIA문건,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58. 영주 봉현면 미군폭격 (1951년 1월 19일, 10명 사망·10명 부상,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59. 울진 산포3리 미군폭격 (1950년 7월-8월 수십 명 사망(국군 포함),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60. 안동 풍산읍 미군폭격 (1950년 여름, 20여 명 사망, 경북도의회  특위보고서(2000))

61. 영덕 기암리 미군폭격 (1950년 7월 초, 주민·가축 몰살, 전민특위 공동백서)

62. 청송 현동면 미군폭격 (1950년 8월 10일·21일·25일, 수십 명 사망,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63. 의성 제오리 미군폭격 (1951년 2월 1일, 2월 4일 20여 명 사망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64. 구미 미군폭격 (1950년 8월 3일, 5-6명 사망, 경북도의회 특위보고서(2000))

65. 구미 사창마을 미군폭격 (1950년 8월 16일, 130여 명 사망, 오연호『노근리 그 후』,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66. 선산 송림동 미군폭격 (1950년 8월 31일, 38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

67. 구미 금정동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0년 9월 15일, 사망 18명 중상 1명,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68. 구미 선산동 학살 (1950년 9월, 28명, 제보)

69. 칠곡 왜관교 폭파 (1950년 8월 3일, 수십에서 수백 명,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AP통신(미군 증언))

70. 칠곡 왜관읍 미군폭격 (1950년 8월 7일 즈음, 13명 이상 사망,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1. 고령 고령교 폭파 (1950년 8월 3일, 수백 명 사망(피난민),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AP통신(미군 증언))

72. 고령 우곡면 미군폭격 (1950년 9월 1일, 30여 명 사망(15명 내외),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3. 경주 다산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5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74. 경주 동방동 미군사격 학살 (1950년 12월 24일, 다수 사망,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5. 포항 흥해읍 흥안리 미군폭격 (1950년 7월 19명 사망, 부상 2명,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6. 포항 흥해읍 북송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16일(음 7월3일), 32명 사망·2명 부상,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7. 포항 송골계곡 미군 함포사격 (1950년 9월 1일(음 7월 19일), 100여 명 이상 사상(400명 주장 있음), 태평양함대 소속 구축함 해이븐(DD 727 De Haven)호의 전투일지(War Diary),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부산일보)

78. 포항 청하면 월포리 미군폭격 (1950년 9월 5일(음 7월 23일), 다수 사망,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79. 포항 청하면 이가리 미군폭격 (1950년 9월 8일(음 7월 26일), 50여 명 사망·다수 부상, 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80. 포항 송라면 광천리 미군폭격 (1950년 9월 23일(음 8월 12일), 40여 명 사망·6명 부상,경북도의회특위보고서(2000),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81. 포항 흥해읍 북송리 2차 폭격 (1950년 9월 23일, 1명 사망·6명 부상,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82. 독도 미군폭격 (1948년 6월 8일 외(1947년 4월 경, 1952년 9월 15일, 1952년 9월 22일), 150-300여 명 사망(강원도, 울릉도에서   온 어민), 오연호『노근리 그 후』, 『한국 근세 30년사』, 마크 S. 로브모  「1948년 6월 독도폭격사건에 대한 심층적 연구」)

83. 거창읍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0년 7월 25일(음 6월 11일),  6명 사망·다수 부상, 거창군의회 조사보고서(2003))

84. 합천 덕곡면 미군폭격 (1950년 여름, 율지리 95채 중 93채 전소· 사망자 미상,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 조사보고서(2004), 합천군지)

85. 하동 학예면 미군폭격 (1952년 1월 19일, 2천여 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86. 진주 반성면 미군폭격 (1950년 7월-8월(추정), 10여 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 

87. 진주 명석면 오미리 미군폭격 (1950년 7월말, 1명 사망·7명 부상(시목마을 피난민), 전민특위 공동백서, 명석면지)

88. 진주 주약동 약골 미군폭격 (1950년 8월 3일, 40-50명 사망·수십 명 부상, 전민특위 공동백서, 경남일보(1999년 12월 31일))

89. 진주 수곡면 원당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6일, 7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90. 진주 금산면 미군 기총사격 학살 (1950년 가을, 3-4명 사망(피난민), 전민특위 공동백서)

91. 사천 곤명면 마곡리 미군폭격 (1950년 7월 31일, 13명 사망·8명 부상, 전민특위 공동백서)

92. 사천 곤명면 조장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1일(혹은 2일), 54명 사망·47명 부상,  오연호『노근리 그 후』, 전민특위 공동백서)

93. 마산 곡안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11일, 83명 사망, 오연호『노근리그 후』, BBC "kill `em all")

94. 마산 진목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7일, 5명 사망, 경남도대책위)

95. 마산 진북면 이목리 학살 (1950년 8월 9일, 13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96. 마산 신장면 미군폭격 (1950년 8월 초, 83명 사망, 증언) 

97. 함안 장지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20일, 170여 명 사망· 100여 명 부상, 오연호『노근리 그 후』)

98. 함안 수곡리·박곡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20일·27일, 수십 명 사상, 증언)

99. 함안 유현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100여 명 사망, 증언)

100. 함안 원북터널 미군폭격 (1950년 8월, 100여 명 사망·다수 부상, 증언)

101. 함안 토현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20일, 다수 부상, 증언)

102. 함안 가야읍 미군폭격 (1950년, 4명 사망·290여 채 가옥 전소, 증언)

103. 의령 화정면 보천마을 미군폭격 (1950년 8월 11일·13일·15일·17일, 22명 사망·6명 부상, 증언)

104. 의령 만천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20일(음 7월 7일), 1명 사망·10여 명 부상, 증언)

105. 의령 용덕면 미군폭격 (1950년 8월 22일, 33명 사망·30명 부상· 가옥 100여 채 전소, 오연호『노근리 그 후』)

106. 의령 부림면 단원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12-13명 사망, 증언)

107. 의령 지정면 마산리 미군폭격 (1950년 8월, 피난민 일가 몰살, 증언)

108. 창원 북면 피난민 학살 (한국전쟁 기간 중, 피난민 60명 사망,    김기진 『국민보도연맹』)

109. 창원 이목리 학살 (1950년 8월 9일, 10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10. 창녕 남지읍 미군폭격 (한국전쟁 기간 중, 다수 사망, 남지읍지) 

111. 익산역 폭격 (1950년 7월 12일, 350여 명 사망, 오연호『노근리 그 후』, 익산시의회보고서, '진상')

112. 김제역 미군폭격 (한국전쟁 기간 중, 다수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13. 전주 우전면 미군 기총소사 학살 (1950년, 4-5명 사망, 제보)

114. 여수 안도리 이아포 학살 (1950년 8월 3일, 250-300명 사망,     남면미군학살사건 자료집)

115. 여수 두룩여.여자만 미군폭격 (1950년 8월 초·1950년 8월 7일,  10여 사망(어민)·12명 사망, 남면미군학살사건 자료집· 남면미군학살사건 자료집)

116. 순천 풍덕동 미군폭격 (1950년 7월 25일, 4명 사망, 국방부 민간인학살 사건접수 목록)

117. 광산 두산마을 미군폭격 (1950년 8월 2일, 수십여 명 사망,      전민특위 공동백서)

118. 화순탄광 노동자 학살 (1946년 8월 15일~1951년, 7-8명 사망· 100여 명 부상 (30명 사망·500여 명 부상), 오연호『노근리 그 후』)

119. 경남 진주시 정촌면 민간인 500명 학살사건 - 미군 육군 특무대 소속,  CIC대원과 대한청년단(1950년 7월18일)

120. 경남 진주시 명석면 소재 지역별 학살된 장소와 보도연맹원들의 인원수, 우수리 송고 콩밭골 1백여 명, 우수리 갓골 내 밀밭골 43명, 관지리 삭평 건너 닭족골 50여 명, 관지리 신촌 앞 화령골 1백여 명, 용산리와 오미리 고개 수백 명 등 - 미군 육군 특무대 소속, CIC대원과 대한청년단(1950년 7월 29일)

121. 경남 진주시 반성면 세골지역 일대 민간인 수십명 학살사건.   미공군기 무차별 폭격 (1950년 7월18일)

122. 경북 대구시 형곡동 민간인 학살사건, 130여명 사망, 수백명 부상, 미군기 무차별 폭격(1950.8.16)

123. 경남 진주시 주약동 약골 진치령 민간인 학살사건, 250여명 사망, 300여명 부상, 미공군 폭격(1950. 8.2-8.3)24. 경남 사천시 곤명면 조장리와 마곡리 민간인 학살사건- 미공군 폭격, 150여명 사망, 부상, (1950.7.31-8.2)

125. 경남 진주 반성면 새골 민간인 학살사건, 미공군 폭격, 수십명 사망((1950.7.18)

126. 경남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민간인 학살 사건, 미공군 폭격,   수십명 사망((1950.7월 말)

127. 경남 진주시 수곡면 원당리 민간인 학살 사건, 미공군 폭격,     수십명 사망(1950년 8월 6일)

128. 경남 진주시 집현면 죽산리 부흥 나루터 미공군 기총소사 사건, 수명 사망(1950년 추석 무렵)

살인마, 학살자 미군에 의한 알려지지 않은 학살 사건은이 전국에 수두룩하다.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자, 살인마 미군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일부분이고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도 부지기 수다. 이렇게 많은 사건들 중에 진상이 규명되고 명예가 회복된 곳은 불과 몇 곳 밖에 없다. 노근리 사건은 최근에 진실을 규명해서 명예회복이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분명히 실재 했지만 폭격기는 날아가 버렸고 장 본인들은 거의 다 죽어 버렸기 때문에 진상규명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지난 70년 동안 진상을 규명하여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곳은 겨우 4곳에 불과하다.

1. 노근리 평화공원(완성)

http://nogunri.yd21.go.kr/html/kr/index.html

2. 거창사건 추모공원(완성)

http://www.geochang.go.kr/case/Index.do

3. 산청 함양사건 추모공원(완성)

http://www.sancheong.go.kr/shchumo/index.do

4. 제주4.3사건평화공원(완성)

http://jejupark43.1941.co.kr

나머지는 730곳이 넘어서는 수많은 원한은 지금까지 규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한이 풀리지 않은 채 피해자들은 세상을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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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군의 폭격으로 인하여 죽은 사람들 이야기 !

믿어지지 않으면 해당 지역을 찾아가서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이러한 것도 용서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학한 자들에 따질만한 힘이 우리 나라에는 없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야 하고 그냥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잊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국민정서에 반미운동이 폭발할 것을 염려하여 그냥 가 숨기고 감추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계획된 민간인 학살사건, 총 120건이 넘어" 범국민위, 미국 언론 보도에 '춤추는' 한국 정부, 언론에 ‘반성’ 촉구 (이철우 기자) 2012년 7월 29일 에이피(AP)통신 보도로 ‘미군의 계획된 민간인 학살’ 사실이 밝혀진 가운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 상임공동대표 이이화·김영훈·임헌영)가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지내 온 한국정부와 언론의 반성을 촉구했다.

범국민위는 2012년 7월 29일 논평을 내어 “오늘 공개된 편지에 드러나듯 피난민에 대한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학살은 ‘사살명령’을 받고 행한 ‘고의적인 학살’이었다”며 "전선도 아닌 곳에서 무차별 폭격을 퍼부은 ‘익산역 폭격 학살’ 등 사건에 이르면 고의학살 의구심은 더욱 짙어진다”고 지적했다.

범국민위는 “지금까지 파악된 120건에 달하는 미군폭격에 의한 학살사건에 대해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낱낱이 조사해 의혹을 씻어내야, 그동안 허위와 굴욕을 벗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언론과 정부, 눈뜬장님

이들은 또 한국 언론과 정부의 친미 사대주의 근성을 비판했다. 그동안 120 여건에 달하는 미군관련 유사 사건과 730 여건의 한국전쟁 전후 다양한 민간인학살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관심을 촉구하며 문제 해결을 다그쳐왔는데 언론과 정부는 ‘눈뜬장님’처럼 멍하니 있다가 ‘미국언론이 한번 들춰낸 뒤에야 대서특필하고 미국이 관심을 보여야 해결에 나선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미국 언론과 정부가 관심을 보인 ‘노근리 사건’에는 13개월 간 백여 명에 달하는 인원을 투입해 사건을 조사하고 그 해결을 위해 수백억의 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피해규모가 ‘노근리 사건’의 수 천 배에 이르는 한국전쟁전 후 민간인학살 조사(진실화해위원회의 민간인집단희생 조사)에는 조사인력 30여명과 연간 20억 원 남짓 예산만 책정하고 있을 뿐이다.

에이피통신은 2012년 7월 29일 ‘미국이 한국전쟁 시작 한 달 뒤 미군 경계선에 접근하는 한국 피난민이 정지명령을 어길 경우 총격을 하라는 방침으로 학살을 유발했음을 입증’하는 한국전쟁 당시 ‘존 무초 주한미대사의 편지’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에이피 통신은 이 편지가 “노근리 학살이 발생한 50년 7월 26일 무초 미대사 명의로 작성, 딘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보낸 것”이라며 “모든 미군에게 피난민에 총격을 하라는 정책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가장 분명한 증거이며, 미 행정부 고위층도 그 정책을 알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주는 첫 번째 증거”라고 지적했다.

무초 미대사의 이 편지는 지난 1982년 비밀 해제된 문서로, 미국 역사학자인 사르 콘웨이 란츠가 미 문서보관소에서 지난해 발굴해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뒤 에이피통신에 사본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엄청난 범죄를 저질러 놓고 그들은 이 사건을 부수적인 피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노근리 사건에 대해서는 에이피 통신에 앞서 오연호 기자 (현 오마이뉴스 대표)가 <말>지 94년 7월호에 1백매 분량의 ‘6. 25 참전 미국의 충북 영동 양민 3백여 명 학살사건’을 써 그 생생한 전모를 처음으로 심층 취재해 세상에 알린 바 있다.

한편 미 국방부는 지난 1999년 AP. 통신이 노근리 학살 사실을 특종보도하자, 자체조사 후 “겁에 질린 병사들이 피난민 틈에 적이 숨어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해 명령 없이 발포한 ‘우발적인 살상’”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모든 것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조사정리 된 사건들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 우리 곁에 함께 있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정부는 그 알량한 한미동맹이 깨어질새라 바른 말 한마디 못하고 미국에게 꼬박꼬박 방위비까지 가져다 바치는 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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