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길과 유다의 길 (창세기 37장 1-4)
요셉의 길과 유다의 길 (창세기 37장 1-4)
  • 김용창
  • 승인 2018.06.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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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으니

2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 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37장부터는 야곱 이야기와 함께 요셉 이야기 그리고 유다이야기 이렇게 세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복잡하게 이어져나가는데 특별히 우리가 세 사람 아까 말씀드린 데로 야곱과 요셉과 유다 이야기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밧다 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내려온 지도 근 16~17년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요셉이 벌써 나이가 열일곱 살쯤 됐다고 하는데, 아비의 첩 비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서 함께 했다 그래요. 그러니까 레아하고 라헬 소생들하고 하는 게 아니고 빌하와 실바 그러니까 이를테면 '서자' 비슷한 거죠. 여종의 소생과 정식 아내의 소생하고는 한국이나 거기나 별 차이 없이 약간의 의식과 차이가 있겠죠.

그리고 자기 형들의 과실과 허물과 이런 것을 자기 아버지에게 살살 일러바치는 거예요. 그럼 당연히 미 움 받는 거죠. 본 사람이 요셉밖에 없는데 아버지가 그걸 알고 있으면 이제 형님들이 요셉을 미워하는 거죠. 또 요셉은 야곱에게 있어서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또 사랑하는 게 있는 거죠.

그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자기가 또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던 라헬의 소생이기 때문에 또 좀 더 사랑할 수 있어요. 뭐 그런 건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거죠. 그다음에 일단 의미가 없잖아요. 라헬이 죽고 나니까 의미가 없다 싶으니까 또 거기 조금 더 애정이 기울어질 수도 있습니다.

4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

그 불평이란 말이 우리가 불만을 토로한다 하는 그런 이야기와는 다르고 히브리 원어에는 '평안하지 않았다', '로-샬롬'이라고 되어있어요. 말을 좀 편안하게 안 하고 꼭 형님들이 불평하고 비슷한 거죠. 그래서 이래저래 보면 요셉이 꼭 형님들로부터 미움받을만한 조건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형님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한다. 그러면 미움 받는 거죠.

그다음에 아버지가 요셉이나 베냐민 조금 더 배려하는 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이가 어리고, 어미가 없고 그러니까 조금 더 배려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 그런데 그걸 너무하면 곤란해. 옷도 다른 아들들은 희끄무레한 걸 아무거나 입혀놓고, 요셉과 베냐민만 알록달록하게 색동옷을 입혀가지고, 너무 표 나게 하니까 형님들이 마음이 안 편한 거죠.

이게 지금 근 2900년, 3000년 전 이야기인데 사람의 본질적인 심리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바람 타고 구름 잡는 그런 세상 이야기가 아니고 얼마든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정서가 엿보인다는 거예요. 또 미움 받는 일이 있는데 5절 봐요.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그러니까 미움 받는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니까...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가뜩이나 밉다는데 꿈까지 또 미운 꿈을 꿔가지고 그걸 밥상머리에서 밥맛 떨어지게 그 분위기가 말을 점잖게 써서 그렇지 정말 딱 미움 받게 해요.

8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우리가 무슨 소설을 보면 기-승-전-결 어떤 문제가 발단이 있다는 거예요. 그 발단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꿈을 꾸고, 미워하는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어떻게 이어나가다가 역전에 반전이 되어가지고 끝이 나는가. 아주 요셉 이야기는 소설이 갖출 형식을 그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드라마틱한 소설로. 9절 꿈꾼 것도 미워하는데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근데, 이게 그대로 이루어지잖아요 나중에. 여러분 37장에 있는 꿈 이야기는 요한계시록 12장까지 연결되어있습니다. 이야기가. 그래서 이런 구약에 있는 걸 정밀하게 읽어두지 않으면 계시록이 안 보인다는 거예요.

11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그렇게 기록합니다. 그리고

12 그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비의 양떼를 칠 때에

그 세겜까지 양을 치러 올라갔다는 멀리 올라갔습니다. 여기 야곱이 양을 치는 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확실치 않으나 세겜까지 가서 양을 쳤다라는 건 벧엘에서 갔다고 쳐도 제법 거리가 됩니다.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비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 여부를 보고 돌아와 내게 고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매 이에 세겜으로 가니라

여기 벧엘이 아니고 헤브론이라 되어있네요. 벧엘에 있다가 다시 헤브론으로 왔는데, 헤브론에서 세겜까지는 굉장히 먼 길입니다. 아마도 여기서 대전정도는 되지 않겠나. 걸어간다면 먼 길이죠.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가로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가로되 내가 나의 형들을 찾으오니 청컨대 그들의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치소서

17 그 사람이 가로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요셉이 그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헤브론에서 도단까지는 5일 정도는 걸어가야 되는 그런 먼 길입니다. 한 400리 길? 그러니까 보통 일반사람들이 걷는 길은 하루에 약30km를 봐요. 잘 걸으면 100리를 간다는데 100리 좀 무리고, 하루만 하고 말면 100리를 갈 수 있으나 연이어서 가려면 30km 안팎을 간다고 봐요. 그러면 5일이면 150km면 400리길 가까이 되는 거죠. 400리면 여기서 서울 가는 길 쯤 되는 거야. 꽤 먼 길을 간 거예요.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러니까 요셉하면 꿈 두 번 꿨는데, 그 꿈이 얼마나 밉상이던지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동생이 온다' 하지 않고 '꿈쟁이 새끼가 온다' 아주 굉장히 형님들이 기분이 안 좋게 말합니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그러니까 형님들이지만 배다른 형제라고 해서 이렇게까지 미워했을까. 여러분 이 야곱에 입장에서 볼 때, 4명의 여자에게서 12명의 아들이냐고 딸 하나까지 열세명이 난거야. 그 가정이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하여 가로되 우리가 그 생명은 상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여 그 아비에게로 돌리려 함이었더라

이렇게 하는 것은 구덩이에 던졌다가 큰아들이니까 그래도 빼돌려가지고 아버지에게로 도망쳐가게 하겠다는 계산을 한 거죠. 르우벤이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 입은 채색 옷을 벗기고

그게 밉상이였던거라 옷이 알록달록. 딴 사람들은 형편없는 옷을 해서 입히고 요셉에게만 알록달록하게 입히니까 그게 너무 눈에 거슬렸던 거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애굽으로 가는 대상들이 지나가는 거죠. 카라반이라고 그러죠? 카라반. 그 카라반들이 때를 지어서 한 상단을 만들어서 움직입니다. 왜냐하면 상업하는 사람들이 물건 가졌거나, 돈을 가졌을 때 강도를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제법 큰 상단을 만들어서 그래야 안전하단 거죠.

중근동 지역을 여행을 해보면 카라반이라고 하는 상단이 머무는 여관이 있는데 굉장히 큽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소위 호텔 이런 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에요. 그런 상단이 머무는 곳을 '카라반 샤라이'이라 해요. 카라반들이 묵어가는 그런 곳인데 굉장히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고 쉴 수 있고, 또 거기서 때로는 거래도 이루어지고 하는 곳이어서 규모가 아주 대단한 곳도 있어요.

제가 몇 군데를 봤는데 아무 대든지 가보면 대상들, 실크로드를 통해서 가는 기회가 있다든지 할 때, 굉장히 규모가 크고 한두 사람으로는 시설이 그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스마엘 족속도 상업 차 오고 가는 사람들인데 약대들에 향품을 실었고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가는 길입니다. 굉장히 비싼 것들이죠?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은익한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 우리 손을 그에게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열두 아들 중에 앞으로도 자주 보겠습니다만, 유다가 권위가 있어요. 유다를 나중에 야곱이 축복할 때 '사자'라고 움크리고 앉는 모습이 사자같다라 하는데 유다의 말이 먹혀들어가는 그런 분위기에요.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골육이니 피를 흘리거나 우리 손을 대서 헤치는 것은 하지 말자 했는데 형제들이 청종했다는 겁니다.

28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이스마엘 자손들이 미디안쪽에 살았다는 걸 알 수 있겠죠.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 올리고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고들이

상고라는 말은 물건을 사서 파는 바이어를 말합니다.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아마 그 때 큰아들 르우벤은 아마 양떼를 살피러 갔던 모양인데 없었던 거예요.

29 르우벤이 돌아와서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와서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나는 어디로 갈까

큰아들이니까 아마도 아버지 앞에 책임을 더 느끼는 거죠.

31 그들이 요셉의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그 옷을 피에 적시고

32 그 채색 옷을 보내어 그 아비에게로 가져다가 이르기를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 아버지의 아들의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

그러면 세겜 땅에서 헤브론까지 오면 또 닷새길을 달려와서 그 피 묻은 옷을 가져다가 색동옷을 보여주니까 아버지가 볼 때 틀림없이 사자나 호랑이가 찢었다.

33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34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35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우리는 어떻게 된 건지 아니까 좀 다르지만 모르고 있는 야곱에 있어서는 얼마나 애통하겠어요. 애미도 죽었지 어미 없는 베냐민 그것도 배다른 엄마들의 젖을 얻어 먹이면서 기르는 그런 입장인데, 라헬은 죽어버리고, 딸은 강간을 당하고, 요셉은 없어져버리고 야곱의 마음이 어떻겠냐고.

36 미디안 사람이 애굽에서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요셉을 팔았더라

시위대장 같으면, 지금같으면 청와대 경호실장 쯤 됩니다. 종으로 팔았다는 거죠. 그러면서 38장에는 갑작이 요셉을 팔아먹는데 앞장을 서고, 선동했던 유다가 바로 이어서 어떻게 됐는가? 하는 이야기를 함께 나란히 보여주는데요.

(제38장)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원래는 아들들이 크면 당연히 양 떼를 좀 갈라서 분가하듯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는 그런 거 하고는 좀 다른 거 같아요. 그렇게 되려면 르우벤은 장자니까 집에 있다 할지라도 시몬이 나가야 되고, 그다음에 레위가 나가야 되고, 그다음에 유다가 나가야 되고 그래야 하는데 유다가 동생 요셉 팔아먹는데 앞장섰다가 아버지가 너무 슬퍼하고 그러니까 매일같이 아버지를 보기가 힘들은 거죠.

그러니까 이 유다가 집을 뛰쳐나가서 아둘라 사람 히라에게로 내려가서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하니

그러니까 이게 정상적인 결혼도 아니고, 아버지나 일가친척이나 축복받는 결혼도 아니고 그냥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내려갔다,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 동침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전혀 정상적인 결혼이 아닌 거죠.

3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그러니까, 엘과 오난과 셀라 셋을 나을 때까지 아버지 야곱에게 갔다는 말도 없고, 손주 낳은 것을 야곱이 기뻐했다는 말도 없고 그냥 관계 끊고 사는 겁니다.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그러니까, 유다가 자기 아버지에게서 부터 갈라져 나와서 아들을 낳아서 아들 장가들 때까지 가는데 장가를 빨리 들면 17~18살? 20살 안에 보통 장가를 보내요.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아무 설명이 없어요. 어떻게 악한지 그러니까 성경에 말하는 사람에게 복이라는 것은 가만히 있는데 무슨 하늘에서 금덩이가 내려오는 이런 복은 없어요. 복이 뭐냐? 첫째, 복 받는 사람 집에 복이라는 것은 경건하고, 성실한 자녀가 태어나는 거죠.

그런데 유다가 지금 동생 팔아먹는데 앞장을 서고,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받지 못한 결혼에 있어서 첫 열매가 엘인데,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더라는 거예요. 어떻게 악한지는 모르지만, 여호와께서 보고 그냥 둘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어지간하면 사람이 악하다고 죽으라 안하는데 얼마나 악한지 하나님께서 죽여 버려야 될 정도로 악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거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이걸 이른바 수혼법이라고 형수나 재수에게 들어가서 씨를 떨어뜨려서 그 후사를 잇게 하는 인습법이였는데, 오난이 가만히 자기 형수하고 잠자리를 가지면서 생각해보니까, 이거 형수에게서 아들이 나면 뭐야?! 그게 장자 명분을 가져서 아버지의 재산의 두 몫을 그 놈이 가져가는 게 아니냐?! 이걸 또 계산하는 거예요.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엘도 죽고 오난도 죽고 그러니까 유다가 자기 동생 요셉 팔아먹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리고 축복받지 못한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들이 엘과 오난인데 그들이 또 죽는 거야. 그러고는

11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유다생각에는 자기아들이 못됐다하고 생각하기보다도 저 무슨 여자가 아들 둘이나 잡아먹었나 며느리가. 그래서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들여보내기를 두려워했다는 거야. 그리고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그러니까 이게 예사로운 일이 아닌 거죠.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그랬더니 그 다말이라는 유다 며느리가 과부의 의복을 벗고, 그 과부는 과부라는 표시가 의복에 있는가 봐요.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면박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을 인함이라

그러니까 시동생이 제법 많이 컸는데도 '자기에게 들여보내지 않는다'하는걸 괘씸하게 생각한 며느리가

15 그가 얼굴을 가리웠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 자부인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 오려느냐

17 유다가 가로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가로되 무슨 약조물을 네게 주랴 그가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참 일이 어렵게 된 거죠.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면박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약조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가로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여기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23 유다가 가로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혹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잉태하였느니라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 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 나갈 때에 보내어 시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유다가 보니까 자기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유다가 참 부끄럽고 할 말이 없죠.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임산하여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머리가 먼저 나오는 게 아닌가? 어떻게 손이 먼저 나왔을까요?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자라 하고 홍사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참 끔찍한 일이긴 한데,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이 38장 한 장에 다 쓴 거예요. 유다가 동생 팔아먹고, 아버지를 속이고 그리고 아버지 곁을 떠나서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 가서 수아의 딸을 취해서 결혼한 것과 아들 엘, 오난, 셀라 나고 그리고 둘 다 죽은 것과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축약하고 간추려서 38장 한 장에 다 쓰고 있고, 아까 요셉이야기는 37장 한 장에 쓰고 이 두길, 다시 말하면 요셉의 가는 길과 유다의 가는 길을 함께 보여줍니다. 비교해보라는 거예요.

꿈을 가진 사람이 가는 길과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훼방하는 사람의 길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것이 우연히 아니라는 거죠.

여러분 성경의 역사가가 여러 군데에서 이름표를 합니다.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써요. 무슨 일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그래서 이 성경을 볼 때 한절 이렇게 보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단락이라든지 아니면 한 이야기 덩어리라든지, 그 앞에 이야기, 그 뒤에 이야기를 이것을 다 연결해서 봐야지 한절 봐서 요절로 '잘된다, 복 준다.' 그러면 '아멘!' 그러고 그렇게 보는 건 차라리 안보는 게 낫습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오해를 만들어 내는지 몰라. 항상 문맥을 따라서 그 전체 연장선상에서 앞뒤전후를 다 살펴봐야 돼.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하는 것을 보면 그 일이 선한 것 이였으면 이 일도 선한 것이 되는데, 그 일이 잘못되었으면 이 일도 잘못된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역사가가 끝에 가서 결론은 사람이 무엇을 심던지 심는 대로 거둔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이 두 산맥을 보게 될 텐데 요셉자손이 가는 길 그리고 유다자손이 가는 길이 나와요. 근데 요셉자손은 이 때 한창 요셉이 총리가 되고, 여호수아까지 보면 요셉자손이 잘나가던 때죠. 반면에 유다는 참 잘못했지만 유다가 그다음에 처절하게 회개합니다.

우리 성경에 안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유다가 깊이 뉘우치게 되요. 벌도 받았고 깊이 뉘우쳐서 나중에는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러나 매시아의 족보는 유다족보로 흘러 내려와요. 그래서 요셉지파에서는 여호수아 정도 난 것이 제일 큰 인물이고, 반면에 유다지파에는 41명의 왕들 중에 사울 하나 빼고 거의 유다 왕들이 19명이나 이어지고 있고 북왕국은 왕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중요한건 이 유다지파로 말미암아서 남쪽 유다 모든 왕들이 태어나게 된 것이고, 다윗이 나오고 솔로몬이 나오고 더 중요한 것은 이 유다지파를 말미암아서 예수님이 오셨단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사람들은 족보를 굉장히 중요시 합니다. 물론 족보에는 죄로 얼룩진 것도 있고 허물도 있고 하지만 그래도 족보를 굉장히 중요시해요.

창세기 37장, 38장부터 이스라엘의 양대 산맥, 요셉지파로 흘러오는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지파 두 갈래로 창세기부터 갈라져 있단 거예요. 그래서 두 노선을 유다로 흐르는 노선과 요셉으로 해서 에브라임으로 흐르는 그런 생명선을 쭉 이어서 보게 될 텐데 이 큰 갈래를 놓치지 말고 봐야 됩니다. 그래서 요셉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일단 유다이야기로 넘어갔다가 다시 39장에는 요셉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쭉 50장까지 이어져갑니다. 39장은 저녁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성경에서 하나님이 꿈을 주셨고 그 꿈이 이루어져가는 요셉의 길과 그 꿈을 훼방하려고 했던 형제들의 가는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흘러가는 큰 흐름에 신앙의 산맥을 잘 살펴서 요셉지파의 길과 유다지파의 길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잘 살펴 아름다운 것을 본받고 잘못된 것을 되풀이 하지 않는 지혜로운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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