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계명을 받았다(출애굽기 20장 1 ~ 6절)
10계명을 받았다(출애굽기 20장 1 ~ 6절)
  • 김용창
  • 승인 2018.07.0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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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 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오늘 출애굽기 가장 중요한 대목 십계명을 받는 그런 장면까지 왔습니다.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여기까지가 사실 한 단락의 문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십계명을 사람들이 유대인들까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계명, 사람에게 대한 계명 이렇게 두 가지다 이렇게 생각하고 1계명부터 4계명을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고 5계명부터 10계명까지가 대인관계, 인간관계에 대한 계명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데 저는 잘못되었다고 봐요.

정확하게 말하면 1계명부터 3계명까지가 하나님을 향한 계명이고 4계명 즉 4번째 계명은 안식을 기억하여 지켜라 라고 한건 데 안식일은 하나님을 위한 계명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계명이고 육축을 위한 계명이다.

나중에 보면 해석이 나오는데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신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하고 예수님께서 잘못된 해석을 바로 세워주셨는데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안식일을 지키는 걸 하나님을 위해 지키는 거다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안식일은 사람에게 쉼을 주고 또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육축이라도 숨을 돌릴 수 있게 해줘라. 안식일 이라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안식일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는 노동을 할 때 안식이 필요하다.

제가 성경공부를 처음 할 때 이것도 하나의 큰 충격이었어요. 첫째는 하나님의 이름이 스스로 계신 자라. 거기에 큰 충격을 받았었고, 두 번째 일하고 피곤한 몸을 쉬게 하는 게 하나님의 계명이다 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 어떤 종교에도 쉬는 것을 계명으로 규정한 종교는 없습니다. 어떤 신들도 그렇게 쉬어라 이런 게 없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만 엿새 일하고 하루 일하고 쉬라고 이렇게 요즘은 닷새 일하고 이틀 쉬려고 그래요. 엿새 일하고 하루 쉬게 하는데 일 년이 365일 이니까 52일 정도가 주일이죠. 그리고 특별한 명절, 절기하게 되면 근 65일 정도가 쉬는 날이 되고 300일정도 일하는 게 안 되겠나, 그렇게 보는데 근래에 와서 프랑스부터 5일 근무제를 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처럼 일거리는 제한되어 있고 기업들이 투자해서 상품개발이 안되고 하니까 일자리 자체가 제한이 되요.

그런데 사람은 자꾸 늘어나니까 일할 곳이 없는 형편이 되니까 일을 5일씩하고 좀 나누어서 하자, 당신들만 직장 가졌다고 돈 벌고 우리는 노동할 수 있는 기회도 없지 않느냐, 이렇게 해서 5일 근무제를 도입했는데 최근에 프랑스 같은데 라든지 유럽에 일거리가 너무 줄어들어있는 곳에서는 주4일 근무제를 하자, 그리고 일을 나누어 하자 이렇게 세상이 변하는 거죠.

얼마 전에 문재인대통령이 헌법 중에 얼마를 국민에 의무 부분에서 우리는 국방, 교육, 납세, 근로 이것이 4대 의무였는데 고치더라고 보니까 근로는 의무가 아니고 권리다. 이렇게 고치더라고요. 그만큼 지금 일이 의무가 아니고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자리 기회가 안 나는 그런 시대를 맞이합니다.

어떻든 안식일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걸 바르게 인식하고 바르게 말하는 목사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의 안식일을 지키는 게 하나님 섬기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원래 안식일은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예배도 없고 유대인의 안식일은 예배도 없고 그냥 노동을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다가 주일 개념은 안식일 개념하고 달라요. 언제 한번 다음시간에 특강을 하던지 해서 안식일하고 주일은 어떻게 다른가? 어떻게 하다가 안식일에서 주일로 바뀌게 되었는가? 정리를 할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신학대학 교수나 학자들에게 십계명을 해석을 하시오. 십계명 해설 책을 써 주시오 하면 어떻게 쓰느냐? 나 외에 다른 신이 뭐냐? 바벨론의 잡신들, 애굽의 신들, 그리스 로마 신들, 가나안 신들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신들 이름을 다 들이대면서 이런 모든 신이 가짜니까 섬기지 마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대체로.

그런데 나중에 율법을 설명한 모세가 십계명을 해석하는 것을 볼 때 전혀 다르게 해석을 하는 거예요. 모세는 1계명, 2계명, 3계명을 여호와만 섬기고 다른 신만 안 섬기면 된다. 이런 말이 아니라 모세는 해석하기를 그 말이 1계명, 2계명, 3계명의 참뜻은 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 뜻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다. 모세가.

차원이 다르죠. 제가 모세가 해석하는 것을 보고 신학자들이 하는 것 하고 영 다르구나, 여기서부터 제가 서방에 이상한 신학으로부터 손을 놓게 되고 모세가 레위기를 가지고 신명기 식으로 해석한 레위가가 본문이고 신명기를 해석인데 그 패턴을 가만 보니까 충격적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석을 했다고 해서 본문보다 길어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서양 신학자들은 이 만한 책을 해석하면 이만큼 돼버려요 해석한 것만, 해석은 무조건 뻥튀기로 부풀어져야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옆방 서재에 가면 66권 해석한 주석들이 있는데 대게 그런 게 한 50권, 이두께 되는 게 이만큼씩 됩니다.

이만큼 되고 읽어 라는 것인지 읽지 말라는 말인가 제가 볼 때 돈이나 보태주고 죽어라, 책이나 팔아주고, 도저히 읽어 수도 없고 부분적으로 물론 읽어보면 유익한 것도 있고 옳은 말도 있어요. 그래서는 실천을 못해요. 무용지물이야 아무 쓸모가 없어요.

예수님이 해석한 것을 보면 모세 해석하고 비슷한데 예수님은 더 압축을 해요. 더 간단명료하게 압축을 합니다. 율법 전체를 예수님이 압축을 했을 때“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둘째는 그와 같으니“네 이웃사랑을 네 몸같이 하라.”그 다음에 “삼가 탐심을 품지 말라, 사람의 생명이 소유에 넉넉한 게 있는 게 아니다.”그 세 가지로 압축을 하는데 백번 맞는 말이거든요.

십계명이라는 게 1, 2, 3계명은 하나님 사랑 그리고 4, 5, 6, 7계명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계명. 8. 9. 10계명은 물질적인 세계, 이익을 위해서 도모하는 그런 활동에 대해서 규정을 만들었는데 간단하게 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대부분에 죄를 짓는 게 거기에 해당 되는 게 아닙니까, 요새 미투 운동이 일어나는데 다 7계명 때문에 일어나는 거든요. 내물 받고 한 거 다 8계명, 9계명 10계명 거기다 해당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십계명 정신 그대로를 삶에 실천하게 되면 훨씬 죄를 덜 짖게 되고 자기를 통제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방금도 제가 점심 먹고 잠깐 새로 오신 분들하고 상담한 후에 우리지역에 유명한 남명선생 이야기를 듣고 왔는데 이분이 도포자락에 방울 두 개를 달아서 움직이면 방울 소리가 짤랑짤랑 납니다. 그 방울소리가 뭐냐 하면 그 소리 날 때 마다 자기가 욕심으로 치닫지 않는가, 그걸 경성하기 위해서 계속 방을 소리가 나게 했다는 겁니다. 대단한 인물입니다.

전에는 이태계가 최고다 이렇게 했는데 80년대 들어와서 학자들이 남명에 대한 재발견, 남명은 아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어요. 벼슬길에 나가지 않는 사람들을 처사라고 해요. 선비는 선비인데 집에 있는 장가를 잘 가서 처가 집이 쾌 부자였던 모양이에요.

김해가 처가인데 처가에서 다 먹여 살리고 자기는 봉급 한 푼도 못 받는 요즘 말로 하면 무임목사거나 아니면 백수에 해당 하는 거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명에게서 배워서 이 시대에 일꾼들을 길러내는 거예요. 산청이라는 곳에서.

그래서 자기 마음에 어떤 욕심이 작용해서 자기 내면 양심이 더러워지지 않는가 싶어서 도포자락에 방울을 달아 짤랑짤랑 했다는 겁니다. 한 시간도 자기 마음에 그런 생각이 틈타지 못하게 그래서 내용을 보니 그의 남명 정신이 예수님 정신하고 많이 닮았어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인데, 1501년에 태어난 사람이거든요.

그리고 72세를 살고 돌아가셨는데 예수님께서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거든 빼버려라 한 눈가지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옥 가는 것 보다 낫다.” 이런 말씀을 남명이 갖고 있어요. 자기 몸이야 덕천강 흐르는 물에 씻었는데 혹시 내면속에 더러운 게 있으며 어떡하느냐, 할복을 해서 칼을 가지고 창자를 갈라서 씻어내고 싶다. 이런 시가 있어요.

예수님께서 “네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찍어 버려라, 한손만 가지고 영생 들어가는 것이 이런 정신으로 살았어요. 정말 철저하게 자기를 단속하면서 살았더라고 보니까. 십계명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처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리고 삼가 탐심을 품지 말라.

제일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 있는데 그것이 열 번째 있는데 마지막 계명, 탐내지 마라. 여러분, 자본주의 치하에서 모든 악이 탐내는 것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7계명 이런 것들이야, 아시는 데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선생님,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그렇게 했을 때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다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쫒으라 했는데 못 지키잖아요. 재산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다 팔아 버리면 거지가 되는 거죠.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재물이 있으니라 했는데도 하늘은 가봐야 알고 여기서 내가 갖고 있는 것 포기 못한다. 그 사건 있은 바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부자는 천국 들어가기가 어찌 어려운지 하면서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그게 오히려 쉬울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여러분, 이 세상에 어떤 부나 어떤 재산이나 모든 것들은 우리가 소유하고 나 혼자 누리고 사치하는 이렇게 하다 죽는 게 아니라 나누어 먹어야 돼, 한 사람이 힘이 있다고 다 끌어다 혼자 먹어 버리는 게 아니고 나누어서 먹으라.

부자는 잘 관리하니까 잘 관리하면서 잘 나누어 주라고 준 것인데 출애굽기 19장 5절, 6절에 세계가 다 내거라, 세계가 다 하나님 거다. 그런데 부자가 잘 관리하니까 맡겨놓은 거예요. 우리는 관리자 일 뿐이지 소유자는 아닌 거예요.

한국법상에서는 내 소유로 되어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법에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우리의 삶을 통째로 사셨기 때문에 내께 다 예수님 거라, 하나님 것이고, 그때, 그때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러니까 십일조만 드리면 나머지는 내 마음대로 쓰는 게 아니고 십일조는 따로 구별하고 나머지 십의 구도 하나님 뜻을 좇아 쓰는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긴 걸로 청지기정신을 가지고 관리하고 해야 하는데 이게 다 내 것이다 하고 하면 부자가 되어 버려요.

별로 돈이 안 많아도 이게 다 내 것이다 하면 부자가 되는 거예요. 사실은 다 하나님 거예요. 내생명도 하나님 것이니까, 그래서 십계명 정신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탐심을 품지 말아야 되는 것으로 탐심 때문에 요즘도 거짓 증거한 사람들 때문에 위증 자가 문제가 되는데 누군가 뒤로 돈을 쓴 겁니다. 거짓증거 하도록 시간 지나니까 들통 나잖아요.

그래서 십계명 이라는 것을 우리가 학자들이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고 오늘 말씀드린 이대로 하는 것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탐심을 품지 말라, 사람이 욕심이 잉태해서 죄를 낳고 욕심 탐심이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는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탐심 때문에 인생을 망친다.

여러분, 영상 보려고 합니다. 시내산을 오늘 모시려고 그래요. 저는 시내산이라고 할 때 시냇물이 많이 흐르는 가 보다, 시냇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가보니까, 앞을 보세요.

시내산 그림1

시내산이 이렇게 생겼어요. 물 하나도 없어요. 아주 가면 숨이 탁 막힐 만큼 갑자기 이런 큰 산이 나타나니까 위압감을 주는 사진에 보니까 별로 유명해 보이지 않지만 가서 우리가 보통 카이로에서 아침 밥 일찍 먹고 자동차로 하루 종일 다니면 해가 꼴 가닥 질 때쯤 도착해요.

르비딤에 가면 바로 해가 떨어질 때인데 거기서 좀 더 들어가야 시내산 나오니까 해가 떨어집니다. 그런데 앞에 밝으니까 덜 위협적인데 밤에 깜깜한데 산이 앞에 섰는데 굉장히 위압감을 느낄 정도로 그런 산이었습니다.

시내산 그림2

이렇게 찍어도 비슷하고요. 이때는 햇빛이 좀 있을 때이죠.

시내산 수도원 그림3

이거는 지난번에 디센도르프 시내산 사본이라는 성경 발견된 수도원입니다. 성 케더린 수도원이라는 곳인데 여기서 성경이 얼마나 보배인지도 모르고 수도사들이 불쏘시개 하려고 두루마리를 갔다가 찧어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을 빼앗아서 수명한 시내산 사본이 나온 거예요. 거기가 바로 여깁니다. 시내산 바로 밑에 있습니다.

시내산 그림4

꼭대기에 올라가면 모세기념 예배당이 조금만한 게 여기 있어요. 꼭대기에 올라 왔는데 너무 빨리 올라왔나?

시내산 그림5

그리고 내려올 때 일출을 보고 거기서 잠깐 예배드리고 내려오면 햇빛이 비치는데 햇빛에 따라서 매일같이 시내산 색깔이 똑같이 않습니다.

시내산 그림6

방금 이렇게 보이다가 어떤 날은 이렇게 보여요. 같은 산인데 그날 햇빛에 따라서 이렇게 마치 하나님의 불이 하나님께 시내산에 접촉할 때, 하나님의 불이 접촉하면서 산이 녹아버린 것처럼 보여요. 어떤 때는 거의 황금빛으로 빛이 날 때가 있고.

시내산 그림7

또 다른 때는 이렇게 보이기도 해요. 뭐가 녹은 것 같죠. 그렇죠? 하나님의 불이 닿았을 때 녹아버린 것처럼.

떨기나무 그림8

그리고 케더린 수도원 안에 들어가면 버닝붓이라고 불타는 떨기나무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요. 어떻든 우리말로 떨기나무라는 말이 그렇게 익숙지 않은 말인데 여기 처음에 가서 보니 딸기나무가 아니고 떨기나무라 또 굉장히 많은 넝쿨이 있는데 아무래도 제 생각에 또 새순이 나고 또 죽어서 또 밑에 섞어가고 아무리 봐도 수백 년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죽지도 않고 계속 거름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대단해요. 이 근방에 이런 식물이 잘 없어요. 그런데 이것만 엄청나게 오래된 식물입니다.

떨기나무 그림9

어떤 때 가면 이렇게 되어있는데 굉장히 큽니다.

시내산 불, 모세 그림10

그리고 모세가 시내산에 꼭대기에 불이 붙었어요. 불이 너무 많이 붙은 것 같아요. 모세가 여기서 불 가운데 부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떨린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두렵고 떨린다고. 여기서 십계명, 열 가지 계명이 새겨진 돌 판을 받아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런데 1,2,3계명을 받고 4계명은 쉼을 주시는 그리고 5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다시 출애굽기 20장을 보겠습니다. 5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는데 이것 참, 부모공경은 당연한 건데 사실은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다른 계명이 비해서 아마 제일 길게 쓴 게 안식일 계명처럼 보이죠. 8절에 보면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온 세상이 보면 요즘은 표가 덜 나요. 왜냐하면 거의 다 기독교 나라든 아닌 나라든 간에 기본으로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은 전 세계화 되었습니다. 우리는 물론 5일 근무제가 거의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못할 때는 6일 근무하고 하루 쉬는데 공산주의가 유럽이나 러시아 땅에 휩쓸 때 성경대로 하기 싫어서 한 주간을 7일로 안하고 좀 바꾼 것 같아요.

5일 일하고 하루 쉬어도 보고 우리는 5일 일하고 이틀 쉬잖아요. 그런데 5일 일하고 하루 쉬거나 아니면 7일 일하고 하루 쉬거나 별짓 다해봤어요. 다 작업 능률이 떨어져서 다시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것으로 되돌렸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또 아니면 인권이 보장되거나 민주주의가 발달하거나 여러 가지 면에서 엿새일하고 하루 일하는 나라가 잘 살아요.

저는 어릴 때 어떡해 농업 노동에 시달렸는지 우리 어머니가 일을 다 짜요. 내 동생하고 나하고 여동생하고 질녀하고 네 명이 학교 갔다 오면 일 시키려고 주말 일을 다 짜놓은 거예요. 그때 교회 다니는 사람은 농번기에 바빠서 죽을 송장도 일어나서 움직인다는데 10시 반쯤 되면 예비종이라고 땅, 땅, 치는 거예요.

우리는 바빠 죽겠는데 저는 사람들은 무슨 팔자가 좋아서 저렇게 쉬고 하나 우리는 엿새 동안 학교 다니면서 하루에 6키로서 12키로 하고 또 일을 실컷 부려먹고 하는데 그런데 일 시키려고 다 짜놓았는데 비가 오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속으로 기분 좋은지요. 그때부터 비가 오면 기분 좋은 게 지금까지 비 오면 기분이 좋아요.

제가 이름이‘우호’아닙니까 우호. 비가 오면 기분이 좋은 거요. 그리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물 소리,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팝콘을 먹으면서 역사책을 읽으면 더 이상 무엇을 바라리오. 그래서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게 정말 저는 복음 중에 복음이었어요.

너무 노동에 시달리니까 아무리 농번기고 일이 밀리고 하지만은 그때는 기계화가 안 되었기 때문에 정말 엄청나게 일을 해야 합니다. 벼나 보리를 베서 짊어지고 꽤 먼 곳에 몇 번이나 쉬어야 500미터가다 쉬고 500미터가다 쉬고 두 번, 세 번 쉬어서 집에 오면 손으로 발로 탈곡기로 해서 새벽별보고 나가서 밟아서 타작을 해서 들어오고 짊어지고 오고, 보리타작은 더 힘든데 도리깨로 패서 알곡을 떨어뜨리거든요.

보리 가시랭이가 얼마나 껄끄러운지 온 세상이 껄끄러운 것 같아요. 덥죠. 껄끄럽죠. 힘들죠. 그리고 먹는 거는 항상 부실해요. 쌀은 다 시장에 내다 팔아버리고 보리쌀만 가지고 아니면 수제비, 개떡재비 이런 것만 먹으니까 먹는 거는 항상 부족하고 죽을 고생을 했어요.

그때 워낙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제가 목수 일을 할 때라든지, 군대 생활 할 때라든지, 목회할 때 어려워도 그때 제가 농업 노동에 시달린 것보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또 거름을 지금처럼 경운기나 차에 싣는 게 아니고 거름을 방아지게에 짊어지고 또 우리는 논이 동네 뒤로 산비탈로 계단식으로 연결되어 한참 지고 올라가야 돼, 그냥 올라가도 힘 드는데 거름을 짊어지고 올라가니까.

그뿐 아니라 똥장군이라 있어요. 나무통을 가지고 이렇게 장군을 만들었는데 거기다가 화장실에 오물을 퍼서 담아서 짊어지고 보리골 갔다가 쭉 널어놓고 와야 돼. 더 힘든 것도 있어요. 아침에 허기져서 배고파 죽겠는데 소 마구에 돼지마구에 거름을 꺼내라는 거예요.

거기다가 소 발 밑에 짚이나 보릿대나 아니면 풀을 갖다 넣어다가 밟히거든요. 소 오줌하고 소똥하고 밟아서 거름을 만드는데 얼마나 밟아놓았는지 쇠스랑으로 찍어서 꺼내면 거름은 안 나오고 창자가 빠져나오는 것 같아요.

얼마나 힘든지, 진땀이 뻘뻘 나오는데 소 마구간 2개, 돼지마구간 2개 이렇게 치고 나면 정말 짜증나고 거기다가 소를 그냥 줘도 되는데 꼭 여물을 자두에다가 썰어요. 자르는데 간이 흔들려요. 밟아서 잘라야 되니까. 우리속담에 여물치기 싫어서 작은 머슴 도망간다. 그런 말이 있어요.

얼마나 여물 써는 게 힘든지 작두로 가지고 그런 농업노동이 상상도 못할 일들을 해 냈거든요. 우리 때만 그렇고 바로 우리보다 10년 뒤에도 그런 것 없었어요. 제가 아마 우리 동네에서는 논과 밭이 우리 집이 제일 많았기 때문에 제일 고생하고 다른 얘들은 놀고 하는데 저는 못 놀고 그리고 맨 날 꼴 베러 가야돼. 소에게 먹일 꼴 베러 가고 그 뒤에 예수님을 믿고 나서 물론 그때는 신접살림을 나고 딴 살림을 하니까.

모내기 하거나 말거나 타작을 하거나 말거나 우리는 옷 가라 입고 온 동네가 모내기를 하는데 우리는 곤색 양복 주름잡아 빼입고 성경 찬송가 들고 예배당까지 1키로 되는데 걸어서 가니까 온 동민들이 욕을 해되는 거라, 저런 미친놈 봐라. 제가 좀 오래 살지 몰라요. 욕을 많이 먹어서. 그래서 우리집안 사람들은 동민들이 우리 논에 모심어 주려고 오는데 우리는 교회 간다고 가버리니까.

물론 갔다 와서 오후에는 거드는 척 하지만 아무리 모내기하고 바쁠 때도 주일 낮 예배 빼먹고 하는 일 없고 오후에 일했다고 저녁예배 안 빼먹습니다. 저녁예배가고 새벽예배가고 어떻든 제가 그때 억지도 편해도 편한 게 편한 거다.

눈치 보면서 마음은 안 편해요. 그래도 육체적으로 쉰다는 게 얼마나 복된 것인가, 결국은 형남과 어머니도 우리를 따라와서 예수 믿게 되고 결국은 그 동네를 떠났죠. 우리아버지도 설교를 알아듣거나 못해요 귀가 완전히 멀었기 때문에 그렇지만은 혼자 있을 때든지 우리 있을 때든지 식사할 때 감사 기도는 해요.

그리고 술을 한잔하면 정식으로 기도를 합니다. 기도 내용이 자기를 위한 것은 하나도 없고 우리아들 두 놈 잘되게 해주소. 왜냐하면 저하고 동생이 예수 믿어 목사가 되는 길을 가니까, 그런 기도를 하고 그렇게 어렵게 우리 때가 제일 어려운 때었습니다.

정말로 농업 노동에 시달리고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세상에 엿새일하고 하루 쉬는 걸 계명으로 정하신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저는 모든 계명 다 중요하지만 4계명이 그렇게 복음이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실은 다 복음이야, 다 복된 말씀입니다. 그다음에 12절에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성경에 아주 효도한 사람이 있는데 이삭이죠.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순종했는지 죽기까지 순종했으니까 그렇게 순종했더니 이삭은 환갑을 3번 지내요 108세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중에 이삭이 제일 많이 살았어요. 온유한잔데 온유하고 순종하고 효도하고 여러분, 우리 육체를 낳아주신 아버지께 효도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하면 장수가 아니라 영생합니다. 믿습니까,

장수가 아니고 영생합니다. 그래서 효도하지 않으면서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보는바 육체의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기본으로 효도가 교육의 기초라는 겁니다.

바울은 이걸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다른 거는 지킨다고 아무 보장이 없는데 5계명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 그러니까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 알고 부모 모실 줄 알고 섬길 줄 알면 이 사람은 장수할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하나님까지 사랑하고 공경하면 영생하도록 존재할 가치가 있다. 그러니까 장수하고 영생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부모님에게 효도하고 공경한다면 장수하고 영생하고 또 땅해서 잘되고 한다. 여러분, 이렇게 되어야 우리가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우리 삶을 보고 믿지 않는 이웃들이 감동을 받고 또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거죠. 그 다음에 13절

13 살인하지 말지니라

하고 되어있는데 이 내용은 약간의 오역입니다. 원어를 직역하면 로 틸 차크라는 말은 죽이지 말지니라 되어 있어요. 살인이라는 인은 말은 없고 사람은 물론 죽이면 안 되죠.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다 존재가치가 있고 존재의미가 있고 존재사명의 있고 존재 목적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쓸데없는 것들은 안 만드셨기 때문에 그래서 뭐든지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게 좋아요. 그래서 죽이는 것도 이렇게 있어요. 소가 받는 버릇이 있어서 사람을 뿔로 받으려고 한다. 그런 소는 잡아 죽이라 그런 말이 성경에 있어요. 그래서 어떻든 사람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생명가진 모든 것들은 생명은 소중하다. 생명 자체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하나님 이외는 생명을 함부로 빼앗으면 안돼요. 그만큼 생명을 중시해요.

전날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시대를 보면 생명을 아주 우습게 여겼어요. 정말로 악한 일입니다. 어떻게든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생명들도 소중히 여겨야 됩니다. 14번째

14 간음하지 말지니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그 외 모든 성적인 것들은 다 성추행이거나, 성희롱이거나, 성폭력이거나, 성폭력은 강간이고 성추행은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희롱은 말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것이 성희롱이라 그래요. 성경은 다 옳지 않다고 그래요.

15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꼭 담을 넘어서 도덕질만 도덕질이 아니라 요즘 보면 정치인들이 이래 빼먹고 저래 빼먹고 자기가 땀을 흘린 것 외에 다른 것으로 욕심을 채우는 것은 다 도덕질이 됩니다. 자기가 근로하고 땀 흘린 것 외에게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면 이게 다 도덕질이 됩니다.

16절은 법정용어입니다.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거짓말도 포함되지만은 법정에 가서 거짓증언을 해버리면 재판이 공정하게 안 되는 거라. 재판이 공정하게 안 되면 정의 구현이 안 되는 거죠.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증인석에 섰을 때는 정직하게 증언을 해야지 거짓 증인 해버리면 반드시 재판을 잘못되어서 억울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면 사람이 억울한 게 쌓이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한다는 되지만 성경에는 사람을 살리기 위한 거짓말을 한 사례가 몇 군데 있어요.

기생 라합이라든지 거짓말 했잖아요. 사람을 헤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을 따돌리는 이런 사례가 있는데 그걸 성경은 의의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를 위해서 남을 헤치려고 마음을 먹고 거짓증거하면 안 된다. 그러면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10번째가 17절에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마지막 계명이 탐심과 욕심에 관한 문젠데 이게 참 지키기 어렵다는 거예요.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잘 못 지켜요. 여기까지가 요약하면 10계명인데, 18절에

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그 음성들이 너무 두려웠든가 봐요. 여러분, 사자나 호랑이가 으르렁하는 것을 봤죠. 그렇게 해버리면 보통 개는 그 소리에 압도 되어서 까무러친다는 거예요. 아주 콘트라베이스 같은 음이 으르렁하는데 개가 그냥
까무러친다는 거예요.

호랑이나 사자가 해도 개가 까무러치는데 하나님께서 해봐요. 이스라엘 백성이 들으면 죽어 버릴까 보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모세 당신이 가서 듣고 우리에게 사람말로 들어야 우리가 살지 우리가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 죽을 것 같다. 그렇게 합니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이 범죄 하는데 범죄라는 건 대게 크게 두 가지로 봐요. 범죄가 여러 가지 같아도 보면 크게 두 가지야, 하나는 탐심이고 하나는 육체의 정욕 이런 것들이 사람을 범죄 하게 한다는 거예요. 그의 두 가지가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졸업을 할 때라든지 목회학 강의 시간에 선배 목사님들이 목사후보생인 신학생들에게 돈 욕심내지 마라, 목사가 돈 욕심을 내면 반드시 망한다. 둘째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도록 그 두 가지만 조심해도 큰 실패는 안한다는 거예요.

지금 들어보면 백번 맞는 말이야, 그리고 우리 교회도 그렇습니다마는 아무교회나 괜히 여 성도들이 목사님 만날 이유가 없잖아요. 가까이 가지마, 모세가까이도 가지 말고 다윗가까이도 가지 말고 목사 가까이 갈 필요가 없어요.

이번에 정봉주, 안희정이든지 뭐 하러 호텔로 부르며 부른다고 여자가 호텔을 뭐 하러 가, 가기를 남자들은 정상이라는 게 그래 그리고 들통 안 난 사람들이 많아요. 제가 볼 때는 큰소리 뻥뻥치는데.

제가 군에 가서 보니까 여자 한번 못 건드려본 건 나 혼자 밖에 없어요. 저만 바보같이 연애도 못해보고 다른 놈들은 여자 많이 건드려본 게 관례처럼 자랑하고 다녀요. 그런 사회에서 미투가 무슨 미투, 정말 이 세상이 그래요. 여태까지 기분 나쁘니까 미투 했는지 몰라도 아주 세상이 사악합니다. 때가 악하다고.

그러니까 남자 혼자 있을 때 여자가 가면 안 되는 겁니다. 남자도 부르면 안 되고 남의 여자를 왜 불려요. 자기 것도 아니면서 자기 아내나 부르지 그렇잖아요. 그렇게 해서 사람 다 망치고 얼마나 거기까지 얼마나 공들었는데 여자하나 때문에 망쳐버리잖아요.

다윗도 그렇고 모세도 그래요. 그래서 옛날 할아버지 말씀이‘남녀 칠세만 되어도 부동석이라니까’ 저는 팔세인데요. 하더래요. 칠세나 팔세나 안 된다. 일절 가까이 하면 안 돼요. 남자들에게 있어서 육적인 본능이라는 것은 여자하고 다릅니다. 여자들은 남자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더 좋고 그렇죠.

남자들은 그렇게 안돼요. 남자들은 완전 동물적인 수컷 본능이 그냥 있습니다. 교양가지고 포장해놓은 것 뿐이지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되는 거라.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격추당하는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3미터 이상 가까이 가면 안 돼 일절. 도망을 나와야지 왜 앉아서 여자가.

안희정인지 밟으면 꿈틀거리기도 해라, 그러더라고 직장을 안 갔으면 안 갔지 그런 곳에 가면 안돼요. 그래서 7계명이 남자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데 또 지키기가 참 쉽지 않은 그런 문제입니다. 여자들이 자기 몸을 잘 지키고 저는 딸들에게 자기 스스로 자기를 잘 지켜라. 우리 집에 늘 듣기 싫었는지 몰라도 여자가 자기를 스스로 지켜야 된다. 그리고 탐심,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삼가 탐심을 물리쳐라. 21절

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불과 흑암이 함께 있는 그쪽으로 다가 갔습니다.

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나하고 비교해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

25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26 너는 층계로 내 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에스라 사람들은 특히 여자들도 무릎팍 위로 올라가는 치마를 못 입게 합니다. 계단을 올라갈 때 모양이 좋지 않다.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무릎팍 밑에 두 뼘쯤 내려오게, 그게 더 멋있어 보이는데 뭐하려 다리를 들어내는지.

여러분, 유럽에서 옛날에는 중세 시대에 식탁에 다리가 너무 쭉 빠져서 그걸 보고도 남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식탁에 치마를 입혀라 해서 식탁보를 식탁 다리가 안보이게 그렇게 신경을 썼다는 거예요. 그런데 요새는 온 몸을 다 드러내어 돌아다니는데 이해가 안돼요.

누굴 유혹하려고 예배당 오면서 그렇게 앞으로 안내하시는 분 돌려보내요 집으로, 여성들은 들러내면 예쁜 게 아니고 천해보입니다. 천해보이거나 불쌍해 보이거나 약간 가려야 귀하게 보이고 귀티가 있어 보이지 소중하게 보이지 막 다 들어내어서 날 잡아 잡숴 하고 돌아다니면 절대 귀하게 안 보여요.

나만 아니고 모든 남자들 그럴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너무 타락을 했어요. 사회 타락한 걸 교회가 따라 하면 안 되잖아요. 교회만큼은 옷매무새를 보고 저분들은 경건한 분들이고 거룩한 분들이다 할 정도로 구별되게 입어야 돼요.

20장 한 장 하는데 시간이 다 갔네요. 21장부터는 출애굽기 안에서 지금 광야 생활 하는 중이지만은 하도 네 양떼, 내 양떼 섞이고 바뀌고 해서 옥신각신하고 시시비비가 많기 때문에 우선 급한 대로 법률 몇 개를 정해야 되겠다. 레위기를 체계화를 하기 전이라도 그런 법률들은 24장까지 이어지는데 집에서 읽어 오시면 다음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열 가지 계명을 다시 새겨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나 신학자들이 이 말씀을 너무 어렵게 복잡하게 해석했지만은 주님께서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고 탐심을 물리쳐라 하는 정도로 간단명료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하시는 근본정신을 우리가 본 받고 언제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욕심, 탐심 때문에 우리 생을 더럽히지 않도록 도와 주옵시고 특별히 7계명을 본받아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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