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과 대속의 규례(레위기 27장 1-7)
서원과 대속의 규례(레위기 27장 1-7)
  • 김용창
  • 승인 2018.07.11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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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과 대속의 규례(레위기 27장 1 ~ 7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3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4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5 오 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6 일 개월로 오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7 육십 세 이상은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

레위기 오늘 마지막 장을 살펴봅니다. 여기는 서원이라고 하는 주제와 대속이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오게 됩니다. 서원이라는 말은 오늘 신약시대 교회에서는 사실은 금지된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구약시대는 가끔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서원이라는 말은 우리 일반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말인데 어떤 소원이 있었어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께 어떻게 갚겠다 하고 맹세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소원과 맹서라는 말이 함께 합해져 가지고 서원이라는 말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33절 이하에 어떤 맹세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말씀을 해서 오늘 우리에게는 오히려 맹세하지 말라 여기에 포커서를 맞추어서 말씀을 드려라 맞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할 때 이미 지나 갔고요. 다시한번 되돌려서 서원의 기원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이 안 닥쳐야 하는데 살다보면 어려운 일이 생기는 거예요. 도저히 사람 힘으로 사람 능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맹세하기를 이번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내가 내 맏아들을 바치겠나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이 그런 맹세를 안 해도 하나님이 도와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너무 힘들고 절박하니까 어떤 사람이 맹세를 합니다. 맹세를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럼 내 맏아들을 바치겠나이다 하면 받쳐야 돼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해결되고 나니까 마음이 싹 변하는 거예요. 맏아들을 못 받치겠다는 거예요 너무 아까워서 그럴 때는 그러면 대속을 해라 아들을 바치는 대신 하나님께서 돈을 바치라는 겁니다. 계산은 계산대로 해야 하니까, 얼마를 받치라고 해야 하면은 값이 공식가격이 딱 나와 있어요. 어떻게 되느냐? 27장 2절에 보면

2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3 너의 정한 값은 이십 세로 육십 세까지는

이십 세부터 육십 세가 어느 때냐 하면 한창때입니다. 일하기 좋은 나이고 건강한 나이고 가장 황금기 이십 세부터 육십 세까지라면 그 값이

남자이면 성소의 세겔대로 은 오십 세겔로 하고

4 여자이면 그 값을 삼십 세겔로 하며

그래서 한 세겔이라는 유대나라의 돈의 단위가 현대인의 계산으로 하면 한 세겔이 사일분의 품삯이에요. 그러면 50세겔이면 200일이죠. 200일 품삯이면 요즘 같으면 노동자 장정 중에 아마 십만원 정도하면 이천만원 내어놓아야 돼. 맏아들 바치려고 했다가 물려고 안 받치려고 할 때는 돈으로 물어내라 그러면 한 이천만원 어떻게 어렵습니까?

그런데 여자는 조금 싸요. 여자를 물어 낼 때는 삼십 세겔을 한다. 삼십 세겔은 얼마예요?. 천이백만원 됩니까, 그 정도를 무르내면 안 바쳐도 됩니다. 돈으로 물어내고 안 받쳐도 됩니다.

5 오 세로 이십 세까지는 남자이면

다섯 살 이상 스무살까지 청소년 그 기간을 받치게 했다 할 때는

그 값을 이십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십 세겔로 하며

여자는 반값 밖에 안 나가요.

6 일 개월로 오 세까지는 남자이면 그 값을 은 오 세겔로 하고 여자이면 그 값을 은 삼 세겔로 하며

7 육십 세 이상은

이른바 노인들입니다. 우리교회는 육십 세 이상은 많지 않은데 육십 세 이상은 영 값이 안 나가요.

남자이면 그 값을 십오 세겔로

그러면 얼마예요? 육백만원, 좀 나가네요.

하고 여자는 십 세겔로 하라

노목사는 물어내봐야 육백만원 밖에 안 나갑니다. 영 값이 안 나가네

8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너의 정가를 감당치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의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 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하나님 융통성이 있죠.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형편이 그 만큼도 안 돼 또 너무 어려워서 그럴 때는 제사장이 깎아주거나 형편을 봐서 에누리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돈도 돈이지만 사람이 더 중요한 거죠. 그래서 하나님 법이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게 아니라 유기적이고 융통성 있게 적용되게 했습니다. 그 다음 9절에

9 사람이 예물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 생축이면 서원물로 여호와께 드릴 때는 다 거룩하니

10 그것을 변개하여 우열간 바꾸지 못할 것이요 혹 생축으로 생축을 바꾸면 둘 다 거룩할 것이며

말이 어려운 편인데 사람을 바치는 게 아니고“어떻게 해주시면 소를 한 마리 드리겠나이다.” 할 때는 반드시 소를 바쳐야 돼. 사람하고 달리 소는 못 바칠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소를 저녁에 목자의 손 아래로 지나가는 양을 계수할 때 십일조라든지 이럴 때 보면 그냥 지나갈 때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이거는 걸린 거라 이것은 바쳐야 돼요.

십분의 일을 바칠 때는 열 번째 지나가는 목자의 손 아랫것은 받쳐야 하는데 너무 튼튼한 양일 걸렸어 또 그러면 그걸 너무 아까워서 바꾸고 싶은 겁니다. 다른 놈하고 바꾸면 하나님께서 “두 개 다 받쳐”바꾸면 둘 다 바쳐야 해요. 인간이 쩨쩨하게 못하게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약속을 한 것을 지키면 복을 주신다는 거죠. 그걸 못 믿어가지고 그렇게 간사하게 하면 둘 다 거룩하게 되어서 둘 다 집으로 못 가져가요. 그런 겁니다. 12절

11 부정하여 여호와께 예물로 드리지 못할 생축이면 그 생축을 제사장 앞으로 끌어갈 것이요

12 제사장은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한 대로 될것이며

13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만약에 간사하게 바꾸지 않고 열 번째 손아래 지나가는 양이 너무 새끼 잘 낳게 생겨서 암양이고 그러면 씨 암양으로 집에 남겨야 되겠습니다 하고 제사장에게 사정하면 그 값에 오분의 일을 더해야 돼, 만약에 십 만원 하면 십이만원을 물어내고 대속해 될 수 있습니다. 또 역시 융통성이 있는 거예요. 기계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형편이 그러하면 형편대로 봐주는 그런 제도에 규정입니다. 14절

14 사람이 자기 집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정가할지니 그 값이 제사장의 정 한 대로 될 것이며

집을 바치기로 했는데 집을 못 받치게 되면 제사장이 그 집값을 산정을 해야 돼 오늘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고 하죠. 평가위원회가 평가 감정가를 내면 그 준해서 판결하는 것처럼 그때도 그런 법이 있었다는 거죠.

15 그 사람이 자기 집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자기 소유가 되리라

16 사람이 자기 기업된 밭 얼마를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면 두락수대로 정가하되 보리 한 호멜지기에 는 은 오십 세겔로 계산할지며

한 호멜지기라는 말은 좀 어려운 말인데 여러분 우리가 논을 한마지기라는 말 들어보셨죠. 논 한마지기가 무슨 말이에요? 그 말의 어원이 뭐냐고? 논 한마지기? 예~ 정확합니다. 저분 어디서 왔죠? 한말지기라는 것은 씨나락을 한말을 부어야 모내기가 끝난다 해보니까 약 200평인 거예요.

요즘은 씨나락 안치고 그냥 200평이 한마지가 되버렸어요. 원래 어원은 그렇습니다. 씨나락 한말을 열 된데 모판에 만들어야 그 한마지기에 모를 다 내면 딱 맞다 이렇게 해서 한마지기라는 겁니다. 여기 한 호멜지기라는 말도 그런 뜻입니다. 씨를 한 호멜을 해야 그 밭에 다 뿌릴 수 있다는 이런 개념인데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종자 한 호멜지기라는 말은 약2천평 되는 우리 한국씩으로 하면 약 열마지기 정도 되는 그런 경작지를 말합니다.

17 그가 그 밭을 희년부터 구별하여 드렸으면 그 값을 네가 정한대로 할 것이요

18 그 밭을 희년 후에 구별하여 드렸으면 제사장이 다음 희년까지 남은 연수를 따라 그 값을 계산하고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

그러니까 밭이나 논은 그 소유권 자체가 오고가지는 않습니다. 소유권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고 경작할 권리, 50년씩 경작할 권리만 오고 가는 거예요. 만약에 희년까지가 25년 밖에 안 남았으면 값이 절반밖에 안 돼요. 25년 경작권이니까 그렇게 계산한다 그 말입니다.

정가에서 그 값에 상당하게 감할 것이며

19 밭을 구별하여 드린 자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한 돈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 그리하면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될 것이요

모든 것을 무를 때 계약을 했다가 다시 계약을 되 무려서 할 때는 꼭 오분의 일을 더해서 배상을 하게 이렇게 했습니다.

20 그가 그 밭을 무르지 아니하려거나 타인에게 팔았으면 다시는 무르지 못하고

21 희년이 되어서 그 밭이 돌아오게 될 때에는 여호와께 바친 성물이 되어 영영히 드린 땅과 같이 제사장 의 기업이 될 것이며

22 사람에게 샀고 자기 기업이 아닌 밭을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렸으면

23 너는 정가하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희년까지 계산하고 그는 너의 정가한 돈을 그 날에 여호와께 드 려 성물을 삼을지며

24 그 밭은 희년에 판 사람 곧 그 기업의 본주에게로 돌아갈지니라

25 너의 모든 정가를 성소의 세겔대로 하되 이십 게라를 한 세겔로 할지니라

화폐 단위니까요.

26 오직 생축의 첫 새끼는 여호와께 돌릴 첫 새끼라 우양을 물론하고 여호와의 것이니 누구든지 그것으로는 구별하여 드리지 못할 것이며

따로 이미 결정된 거니까 그것을 가지고 다른 재물로 삼을 수 없다 그 말이죠.

27 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

27절은 어려운 말인데 바칠 때 어떤 변수도 없이 아주 받쳤다 할 때는 그것은 대속이 안 됩니다.

28 오직 여호와께 아주 바친 그 물건은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29 아주 바친 그 사람은 다시 속하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 말이 많이 어려워요. 사람을 하나님께 아주 바쳤을때는 그 사람을 죽여라. 이 무슨 말일까요? 그래서 이것은 난제에 속합니다. 해석하기 어려워요. 번역을 다르게 할 수 있겠는데 28절

오직 여호와께 아주 그 물건을 바친 사람은 이렇게 해야 되는데 사람이든지 생축이든지 이렇게 해버리니까 사람도 죽여야 되는 것처럼 되는 거라. 만약에 이것을 바친다는 말이 바친 사람이 아니고 바치는 사람은 어떤 생축이든지 아주 바쳤을 때는 되 물릴 수 없고 그 생축을 다 죽여라 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여라 말 같지는 않은데 그런 사례가 없어요. 그래서 팔 밭이든지, 생축이든지 팔지 못하고 속하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하다.

그래서 아주 바친 사람은 속하지 못한다. 사람을 속한다는 말이 아니고 아주 바친다는 말이 밭이나 생축이나 이런 것을 아주 바친 사람은 그걸 속하지 못하고 반드시 생축은 죽여서 바쳐야 한다. 이런 것으로 해야 하는데 잘못하니까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거예요. 우리말이 가끔 번역상으로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31 사람이 그 십분 일을 속하려면 그것에 그 오분 일을 더할 것이요

오분 일을 더하여 대속해 낼 수 있다. 여러 번 말씀 드렸죠.

32 소나 양의 십분 일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의 열째마다 여호와의 거룩한 것이 되리니

이게 십일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우리에 서가지고 열 번째 지나가는 것을 너는 이리와 해서 빼내오고 빼내가지고 십분의 일을 드릴 때 그렇게 드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양이 큰놈, 작은놈, 흰놈, 얼룩빼기 여러 가지가 있는데 따지지 말고 열 번째 막내기에 지나가는 것 마다 구별해서 낸다. 그렇게 하는 겁니다.

33 그 우열을 교계하거나 바꾸거나 하지 말라 바꾸면 둘 다 거룩하리니 속하지 못하리라

34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이니라

자 이렇게 해서 27장에 있는 서원과 서원으로 드리게 했던 것을 대속하는 규례를 말씀하셨는데 아까 말씀 드린데로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언제든지 무를 수 있도록 이런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이걸 예수님께서 어떤 맹세도 못하게 했어요.

왜 못하게 했을까요? 마태복음 지금 우리가 18장, 19장하고 있으니까 5장 지나 간지가 얼마 안됐잖아요. 그런데 신약시대는 왜 서원도 맹세도 못하게 될까요? 신약시대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분명하게 알아 놓을 게 있어요.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내 생명까지 이미 하나님께 있어, 내가 드리고 말게 없어 이미 다 드려진 거라. 내 자신이 헌신될 때 내 자신이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버렸고 내가 신앙 고백할 때 이미 우리 가진 거 모든 게 다 100% 하나님 거라고 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내가 드리고 말고 할 게 없는 거라 사실은.

그래서 “내가 내 맏아들도 바치겠나이다.”“네 맏아들도 원래 다 내거야, 뭘 바쳐”“ 내 목숨 바치겠나이다.”“ 네 목숨도 원래 내 거야 내가 사서” 그러니까 신약시대는 뭘 걸고 다시 맹세하고 바치고 할 게 없어요. 하늘로도 말라 하늘도 네 것이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야 네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아무것도 가지고 서원하고 맹세할게 없습니다.

다지고 보면 없는 거예요. 하나님 보좌가 하늘인데 “하늘이 네 것이냐, 네 마음대로 걸고 맹세하게” 그러니까 “내 논을 가지고” “논도 내거야 이미 다 내가 너를 샀을 때 네게 속한 거 다 내 것이야”해서 깊이 생각하면 신약시대는 어떤 것도 하나님께 맹세 걸고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그 말이에요.

그래서 “예”할 때 “예”하고 아닌 거는 “아니라”하고 옳은 거는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끝내야 돼, 맹세코 뭐 어쩌고 할 때 벌써 그 사람의 신용은 떨어지는 거야, 맹세할 일이 없어야 돼요.

성경에 맹세를 누가 제일 먼저 했을까요?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나오는 중에 맨 먼저 구약에 누구요? 역시 샤론교회는 실력이 달라요. 대답이 잘 안 나오거든요. 야곱이죠. 좋은 사람인가요? 별로 안 좋은 사람이죠. 좋은 사람은 맹세하는 그런 일 안 생겨요.

대게 일을 엉망으로 해 놓고 맹세코 어쩌고 하는데 그 자체가 이미 벌써 신용을 잃었다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 번 뭘 걸고가 아니고 그냥 세 번 정도 맹세해야 합니다.

첫째, 세례 받을 때 맹세해요.

둘째, 결혼할 때 명세합니다.

셋째, 향존직으로 임직을 받을 때 맹세해요.

세 번 이상 하지 마, 세 번은 어쩔 수 없고 그 외에는 일절 어디 가서 맹세한다 이런 말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합당치도 않고 그래서 역시 제가 구약시대에 이런 법이 있긴 했지만 그런 맹세를 해야 될 정도, 서원해야 될 정도의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긴 것부터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것이고 신약에도 마찬가지야,

구약시대는 첫 열매가 하나님의 것이고 십분의 일이 하나님 것이고 이렇게 되어 있을 때 아주 어린 신앙일 때 그런 서원법이 있었지만 신약시대는 이미 세례 받는 날에 내 생명과 내 시간과 재능과 재물과 재산과 이미 다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에 달리 내 것이라는 사실 없기 때문에 그것을 걸고 맹세할 만한 건더기가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 일생동안에 세 번만 맹세한다는 거, 잊지 마시고 어떤 집회에 가서 감동받아서 바치겠다 하지마. 지금도 이상한 기도원에 가면 눈 감아라 해놓고 바치라고 선동을 해요. 그러면 이상한 여자들이 맹세하고 와서 집에 와서 내가 미친년이지 하면서 후회막급이라 대게 여자가 하지 남자는 잘 안 해요.

그래가지고 맹세를 했는데 “지금은 어려워서 못 바치겠어요. 목사님 바쳐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나한테 말하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도 그런 질문이 그의 끓어지지 않고 이어져요. 그래서 신약시대는 맹세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부흥강사나 기도원에 집회하는 사람들이 사기꾼들이야, 맹세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든지 모르면 정말 무식해서 끝일이고 알면, 알면서 하는 거니까 더 악한 거야,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맹세하고 하는 일이 없어야 됩니다. 그래서 이런 것이 사실은 굉장히 중요해요. 절대 어디 가서 맹세하지 않도록.

제가 성경학교 다닐때만 해도 신약시대에 맹세하지 말라 이런 말씀이 있었지만 몰랐죠.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구세군 교회에 어떤 자매가 어디 집회에 가서 너무 감동을 받아서 뭐라고 맹세를 했느냐? “나는 예수님을 신랑 삼고 나는 결혼 안 할 거예요.” 하고 서원했어, “욕심도 참 많다. 예수님 혼자 독차지하려고”그래서 결혼 안하기로 예수님만 남편으로 섬기기로 하고 결혼 안 하기로 맹세를 해 놓고 다른 친구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데 자기는 서원했기 때문에 결혼 안하고 있다가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어요.

그래가지고 나이가 마흔 살, 지금 마흔 살은 결혼 못한 사람이 비일비재 하지만 그때는 마흔 살에 결혼 못하면 이상한 여자인 거죠 그 당시만 해도 30~40년 전이니까 그렇게 있다가 누가 옆에서 맹세해도 괜찮다. 서원해도 괜찮다 해서 결혼했어요. 군 대위하고 결혼을 했는데 대위라는 사람이 대위쯤 되면서도 그때 결혼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아내를 때리는 은사가 있었어요. 군대처럼 아내를 때려, 그래가지고 이혼을 했거든요. 이혼을 해서 인생이 불행해 지니까 자매가 자기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안 지켜서 그렇다 해서 혼란에 빠진 겁니다. 지금 와서 보면 교회가 지도를 잘 못한 거예요.

절대 그런 맹세는 할 수 없다 이것을 알았으면 그런 실수를 안 했을 텐데 그런 것도 모르고 맹세를 했다가 맹세를 어기고 결혼을 했다가 어려워지니까 서원을 안 지켜서 그렇다고 죄책감에서 지금 같으면 다르게 상담을 해주거나 할 수 있겠는데 그때만 해서 곁에서 지켜보는 우리 모두가 처리할 수가 없어요. 방법이 있나요.

그러니까 맹세한 것도 잘못한 것이고 그다음에는 결혼을 할 때 그 사람을 알아보지 않고 한 게 그게 잘못이지 결혼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 거예요. 그래서 그 자매를 그 이후로는 다시 만나지 못했어요. 참 좋은 사람인데 찬양도 잘하고 봉사도 잘하고 모든 것을 다 잘하는데 이상한 집회에 가서 서원을 덜컹해가지고 지금 와서 의미가 없지만 성경대로 하면 처녀성을 안받아주면 원래가 접수 자체가 안 되는 거예요. 왜? 신랑감이 나타나서 내거라 우기면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접수 받지 마라라.

또 여자들은 서원 안 되는 거라, 남편이 허락 안하면 안 되니까, 그런데 남편이 아내가 서원한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으면 접수 되어 버립니다. 취소하려면 남편이 빨리 취소해야 되요. 내 아내인데 안 됩니다. 이런 규정도 있지만 신약에 와서는 어떤 서원도 어떤 맹세도 합당하지 않다 하는 걸 명심하고 어디 가서 절대 서원하지 마세요.

이미 다 우리는 정해진 사람이기 때문에 뭘 걸고 서원할게 없어요. 끝났어, 그래서 27장도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마음에 새길 교훈이 있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5장 33절 확인하고

(마태복음 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구약시대 사람들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말라

땅이 네 거냐? 어떤 사람들은 하늘과 땅을 걸고 맹세한다. 그게 네 건가? 말이 안 되잖아요.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예루살렘이 네 거냐, 그게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옳다 옳다가 아닙니다. 번역이 잘못되었어요. 옳은 것은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그래서 절대 맹세하지 말고 맹세할 일이 없도록 순리를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옛적에는 세상에 내 것이 있는 줄 알고 이것, 저것을 걸고 맹세하고 서원하고 또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 또 대속해 내고 이런 일이 있었으나 주님 말씀을 쫒아보면 우리가 아무것도 우리 것이 없기 때문에 무엇을 걸고 맹세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하게 됩니다. 또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쫒아 맹세해야 될 그런 일이 없도록 인도하시고 항상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 하는 편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 가리우지 않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드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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