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지으셨다(창세기 1장 6 ~ 7절)
사람을 지으셨다(창세기 1장 6 ~ 7절)
  • 김용창
  • 승인 2018.06.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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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7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무슨 일을 하던지 맨 기초가 중요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기초를 대게 잘하지 않은 그런 습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좀 나아졌습니다 만은 아주 옛날에는 겉으로는 잘 하는데 늘 기초가 안 돼있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과학도 우리가 지금 과학을 활용하는 상당히 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인데 기초 과학 분야는 많이 약해요. 그래서 아직 기초과학분야서 우리나라 노벨상 하나 엄두도 못내는 정도로 기본이 약하고 기초가 약합니다.

한국기독교가 기초와 기본이 성경이고 성경 안에 기본은 구약이고 구약의 기초는 오경이고 오경의 기초는 또 창세깁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확실하게 공부를 해야 될 텐데 이게 사실은 우리나라만 아니고 유럽도 마찬가집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기독교가 지금 온 세계에서 힘을 잃고 있는 이유가 구약과 창세기와 율법과 이런 기본과 기초를 등한이 하거나 소홀이 하거나 무시하거나 이 결과로 기독교가 아주 뿌리째 막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제가 일생일대의 이번 대하설교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나 어떻든 저의 마지막 설교가 안 되겠나, 그래서 기초만큼은 할 수 있는데 까지 제대로 하고 가자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오늘 낮에는 첫째 날에 태초에 하신일과 첫째 날에 하신 일을 잠깐 말씀을 드렸고, 6절에는

6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라고 하는데 궁창은 우주는 아니고 그저 우리 눈에 대체로 파랗게 보이는 정도 그 아래를 궁창이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잠깐 낮 시간에 말씀 드린 데로 우주는 새까맣습니다. 캄캄하고 새까맣는데, 새파랗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요. 그것도 참 어떻게 캄캄한 우주에서 공기가 있는 대륙권 안에가 실제로 만들어 질 수 있는게 아닌데 파랗게 보이게 하느냐는 거예요.

그게 새빨개도 징그러울 것이고 노래도 하늘이 노랄 것이고 다른 어떤 색깔도 별로 마음에 안들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하늘을 하늘색으로 파랗게 한 것도 참 감사한 일이야. 제가 본 하늘 중에 가장 파란 하늘,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은 시내산에서 내려오는 중에 하늘 쳐다봤는데 저만 아니고 같이 갔던 사람들이 30명 갔는데 한결같이 가장 푸른 하늘을 봤다 뭐 코발트빛이 라고 하나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란 하늘을 봤어요.

아시는 데로 이집트나 시나이 반도에는 공업화가 아무것도 안 돼있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오염된 공기나 매연이나 이런 게 없기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저만 아니고 아마도 누구든지 간에 정말 새파란 하늘을 보려면은 시내산에서 갔다가 내려오는 시간쯤 되어서 뒤를 돌아보면 하늘이 보이는데 그렇게 아름답고 새파란 색깔입니다. 그래서 궁창이란 말을 생각할 때 마다 저는 시내산을 바라보았던 새파란 하늘을 떠 올리게 되는데 궁창위에 물과 궁창아래 물이 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글쎄요, 창세기를 기록하는 사람이나 하나님께서 물을 갔다가 우리 인간에게 공급하시기 위해서 우리는 그냥 비가 온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것도 참 신비한 거거든요. 사실은 궁창위에 있는 물은 비가 올 때 구름보이지 물로 보이지 않는 거죠.

구름으로 보이는데 비가 오는데 근본은 나중에 욥기에서 우리가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태양빛을 가지고 바다에다가 바다나 땅 지면에 태양빛을 비치면은 그 수분이 액체였는데 기체로 증발해가지고 그것이 공중으로 올라가는데 올라가는 것은 그의 다 안 보이는데 그의 다 안 보일 정도로 미립자로 올라가는데 이게 올라가서 육지쪽으로 공기가 이렇게 바다 쪽에서 육지로 공기가 이동을 해요. 그걸 대류하는데 왜 그렇게 또 되는 야 하면은 똑같이 햇빛을 비춰도 지표면의 온도 상승이 수면 온도 상승보다 빠릅니다. 땅이 더 빨리 더워져요. 그러니까 더 빨리 더워지는 쪽의 공기가 빨리 올라가니까, 가벼워 올라가니까 바다 쪽에 있는 조금 온도가 느리게 올라가기 때문에 이렇게 육지 쪽으로 바람이 미풍이 불죠.

그걸 이용한 것을 옛날 어른들이 했는데 로마 문화가 세상에 퍼져 나온 그 권역에 지중에 연한으로 가 보면은 바다 쪽에서 바람이 육지로 분다하는 것을 감안해서 극장을 만들어요. 노천극장을, 그리고 항상 무대는 바다 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육지 쪽에 관중석이 있어요. 바다 쪽에서 미풍이 육지로 불어 올 때 그 미풍을 등지고 무대에선 배우가 노래하거나 대사를 하면은 마이크 폰 시스템이 없어도 맨 뒤 자석, 2만명 정도 앉아 있는 극장에 뒤 자석까지도 동전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려요. 그런 것을 보면은 옛날 분들도 상당히 과학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그 방법으로 바닷물이 아시는 데로 약 3%정도의 염분을 가지고 있는데 소금물에다가 일반 민물에서 오염된 물을 바다로 흘러가게 해서 소금물에서 소독을 해가지고 거기 또 태양을 비춰가지고 증류수를 만들어서 대류되는 공기에 실어서 육지로 옮겨 오데 반듯이 이렇게 산이 있으면 산 이쪽에 비치는 태양 조사각도하고 이쪽에 조사각도하고 다르기 때문에 온도가 다르게 올라갑니다.

산이 이렇게 생겼잖아요. 다르게 올라가는데 역시 올라가기는 가면은 산꼭대기에서 온도차가 있어서 온도차로 말미암는 기압차를 가진 수증기가 한군데 만나면서 이것이 비방물이 돼요. 물방울이 커져서, 그렇게 해서 이 땅을 적시는 하나님의 솜씨를 볼 때 이게 완벽한 처음에 물 디자인 할 때부터 육지에 산을 솟아오르게 하고 또 육지에 식물을 자라게 하면서 거기다 물 주실 것을 감안해서 완벽한 마스타 플랜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물을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에 물로 해서 목적은 이 지표면의 식물을 기르는 겁니다. 만약에 수분이 모자거나 너무 턱 없이 모자라거나 하면 아예 식물이 안 자라요.

아시는 데로 중동쪽에 가면은 지표면에 풀 한 폭이 나무한그루 없는 그런 지역이 끝없이 이어지는 데가 많습니다. 요르단 남부에 옛날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거닐고 갔던 그 길에 보면 식물이 있기는 있으나 여기에 요만한 풀 한 폭이 있고 예배당 입구에 있고 이런 정도로 있는데 거의 불모지라 할 수 있어요. 식물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런 땅들이 있습니다. 물이 모자랄 때 이런 것을 보고 오늘 낮에 말씀 드렸던 철학자들 중에 철학자 아버지가 있었는데 철학자의 아버지가 탈레스라는 사람이야 BC 7세기 사람인데 밀레토스 학파에 속해요. 이 분은 맨 생명의 아르케, 생명의 원 물질이 물이 아니겠는가? 했다는 거예요. 물이 원질이다. 왜? 물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 생명이 안 생기니까, 물이 원질이다 이렇게 하고, 어떤 사람은 또 불이 아르케다. 불이 원초 물질이다. 불이 없는, 열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사니까. 어떤 사람은 공기가 원 물질이 아니냐? 공기 없는 곳에는 물이 있어도 불이 있어도 못 산다 이렇게 옛날 사람들이 원초물질을“아르케”라고 하는데 아르케는 제일 첫 번째 제일 먼저 있던 원질을 이런 것을 아르케라고 그래요.

이렇게 옛날사람들이 찾았습니다. 진리를, 근원을. 지금 보니까 물론 물도 필요하고 열도 필요하고 공기도 필요하고 하지만은 이 모든 것이 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디자인하셨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까지 찾지 못했던 것을 우리는 창세기 안에서 다 찾을 수 있어요.

어떻든 두 번째 날에 하신 일은 궁창 아래 물과 궁창 위에 물을 디자인 하셨다. 해서 우리가 땅에 지표면에 있는 담수와 해수 두 가지죠. 아래 물은 해수와 담수가 있고 그리고 궁창위에 물은 이제 구름과 수증기에 있어 가지고 그것이 계속 돌죠. 우리가 흐르는 물에 두 번 손을 씻지 못 한다. 같은 물에, 이런 말이 있죠. 왜냐 하면은 물이 흘러 가버리니까 그런데 몰라요 내가 방금 씻은 물이 흘러갔는데 그게 다시 태평양에 흘러갔다가 수증기가 되어가지고 또 지리산 내려올지 누가 압니까? 돌고 도니까요.

그래서 어떻든 하나님이 물을 순환되게 했다는 거죠. 바다에서 다시 구름으로 육지로 와서 또 내려오게 이렇게, 자 이걸 태양을 가지고 하는데 그리 안하고 인간들이 바닷물을 증류해가지고 소금기를 빼고 지리산 꼭대기에 물을 줘 가지고 그렇게 식물을 기르려면 보통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물가지고 하시는 일, 태양가지고 하시는 일인데 이것도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제가 가끔 이야기 하죠. 맑은 날만 좋은 날이 아니라 비 오는 날도 좋은 날이다.

비 오는 거 감사해야 돼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 오는 날을 궂은 날 그러는데 참 복 못 받을 소리를 해요. 중동에 강수량이 일 년에 1000미리도 안 되는 그런 500미리 이런 곳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 좋은 날이고 비가 오는 날은 태양을 가지고 사람이 헤치는 날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래서 낮에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면 밤에 달이 너를 해치 아니 한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로 햇빛 나는 날이 사람 잡는 날이고 비 오는 날이 좋은 날이고 그래서 에스겔서에 보면은“복된 장마비”라는 말이 나옵니다. 복된 장마 비를 주신다. 그러니까 인간들이 자기중심으로 생각하니까 어떤 데서는 햇빛 나는 날이 좋은 날이라 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은 햇빛 날이 사람 잡는 날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원래는 햇빛도 감사한 것이고 비 오는 날도 감사한 것이고, 그래서 바울 말대로 범사에 감사해야 돼. 매일 감사해야 되고, 범사에 감사해야 돼, 햇빛나면 감사하고, 비 오면 더 감사하고, 그 어느 하나가 좋거나, 나쁜 게 아니고 하나님 하시면 다 좋은 거야, 다. 이런데 까지 가야 불평이 사라진다, 불평이 사라진다고 사람이.

그 다음에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 다음에

9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그래서 이제 이른바 조산 운동 땅이 솟아오르는 것을 융기라고 그러고 내려가는 걸 침강이라 그러는데 융기와 침강이 일어나면서 육지 부분이 많이 올라오게 되고 바다 쪽은 푹 꺼지게 되었는데 이것도 하나님이 하신 거라는 거죠. 저절로 이렇게 된 게 아니라는 거죠. 만약에 우리가 지금 솟아오른 육지를 자꾸 눌러가지고 눌러 깎아 누르고 더 누르고 다 눌러서 지구 표면에 육지가 하나도 안 볼일 때 까지 완전 평균 깊이로 다 눌러버리면 평균 바다깊이가 얼마 되느냐? 육지 하나도 안 보이는 지구가 되면서 바닥이 2400미터 평균이, 그러니까 지구에 있는 산이나 육지를 다 바다 밑으로 눌러 넣어 가지고 그것을 공처럼 완전 동그랗게 해버렸을 때 물의 두께는 2400미터가 된다는 거예요.

반면에 지금 현재대로 놓고 바다를 보면은 대체로 태평양, 그리고 인도양, 대서양도 마찬가지고 바다들이 그의 4000미터입니다. 4000미터. 그리고 이제 해변가에 육지 가까운데 있는 거는 사실은 바다가 아니고 대륙붕이라고 그래요. 대륙붕은 180미터에서 200미터 사이입니다. 그것은 사실 바다도 아닌 거예요. 진짜 바다라는 것은 좀 더 나가면은 갑자기 3500미터, 4000미터 푹 내려가는 곳인데 그게 심해가 되고 그 평균은 4000미터가 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육지를 솟아오르게 한 것이나 바다가 내려가게 한 것도 그게 필요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따가 시간이 나면은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는 데요 다는 볼 수 없고‘우주의 끝을 찾아서’라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영상이 있어요. 거기 가서 보면은요 그걸 좀 보고나면은 우리가 많이 겸손해집니다. 왜냐? 우주크기에 비해서 지구는 너무 작은, 점 같은, 먼지 같은 존재고, 거기 있는 한국이란 것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존재고 거기서 경상남도 거기서 산청군 단성군 나 하나라는 것은 박테리아처럼 보이도 않는 미미한 거예요. 인간이 그런 세계를 보면은요 좀 겸손해져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런데 어떤 때는요 그런 아무것도 아닌 먼지 같은 내가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어시겠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인간은 정말 미미한 존재다 참 겸손한 마음이 생깁니다.

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땅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으려면 풀이 있고 나무가 있어야 돼. 제가 풀도 없고 나무도 없는 땅을 보면서 야~정말 저주 받은 땅이다. 그런 것을 제일 많이 본 데가 요르단 남부 쪽인데 그렇게 풀도 나무도 없는 데도 뱀이 있어요. 뱀이, 그리고 전갈도 있고요. 뭘 먹고 사는지 어떻든 살아. 그래서 나는 그 쪽에 사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보면 안 되겠다 큰일 나겠다 자살하겠다 싶어요. 자기들 사는 땅을 보다가 한국을 와서 보면 천국이라고 할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나라 땅은 아름다운 땅인 반면에 풀과 나무가 없는 땅은 정말 살맛이 안나는 땅이야, 여러분도 쉽지 않지만은 우리가 생활하는데 옷이나 이런 것들은 너무 비싼 것 살지 말고 돈을 열심히 벌고 아껴서 절약했다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 터키 그리고 그리스, 로마 그런 정도가 소위 말하는 성경과 관련된 성지들이 있는 곳인데 한번 가봐야 돼요. 정말 저축을 해서 하다 안 되면 빚을 내서 갈 봐야 될 싶을 정도로 가보면 일단 성경이 새롭게 보이고 그 다음에 애국자가 돼요.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너무 우리가 좋은데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든 하나님께서 이 채소를 풀과 과목과 채소를 내게 하셨는데 이게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 대부분 그런 것들이죠.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그러니까 세째 날에는 두 가지를 하셨는데 물 밑에 있던 육지를 이렇게 솟아나게 해가지고 거기다가 식물이 자라게 했다 하는 것 까지가 세째 날에 하신 거예요.

14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 또 그 광명으로 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이 이루라

15 또 그 광명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에 비취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이것 괄호 안에‘그대로 되니라’하는 말은 어떤 사본에는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본에는 있는데 없는 게 원본에 가깝고 있는 거는 후대 사본에만 그런 게 있다는 겁니다.

16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17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다고 할 때 이것이 우주전체 별들 말한다기 보다는 태양계안에 태양이 거느리고 있는 별들과 위성들 행성과 위성들을 만드신 것이 아니냐, 이렇게 봅니다. 여러분 시계를 쓰는 거는 안 되고 쓰는 것 중에 여유가 있거든요. 뚜껑을 열어가지고 한번 들여다봐요. 보면은 쾌 많은 톱니바퀴가 있는데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중간도 있고, 조금 두꺼운 것도 있고, 얇은 것도 있고 여러 톱니가 있어가지고 그게 돌아가면서 시간을 맞추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여러분 지금 지구가 돌아가고 달도 돌고 도는데 이런 것들이 서로 밀고 댕기고 간격을 맞추면서 시간을 맞추고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일정하게 유지가 돼요. 아까 말씀드린 데로 일반 사람이 많던 기계는 힘을 계속 공급하지 않으면은 건전지를 넣거나 아니면 태엽을 감겨나 하지 않으면은 일정하게 안돌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만든 태양계 안에 있는 행성과 위성들은 일정한 시간을 맞춰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제법 좋은 시계라도 몇 년 가다가는 태양시계에다 맞추어야 돼요. 그게 완벽하니까.

그리고는 넷째 날인데

20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이 생물할 때 물에서 출발합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 생명이라는 것은 안돼요. 그래서 생물로 번성하라.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아니면 디스커버리 채널을 보면은 바다 밑에 가서 촬영한 그런 지금은 좋은 영상이 많이 나와요. 제가 특히 EBS 같은 경우 방송을 가끔 보고 내셔널 지오그래픽 영상을 가끔 참고하는데 우리가 잘 못 들어가 보잖아요. 들어가 보는 거는 할 수 있는데 나오지는 못해요. 물 밑에,

그래서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통해서 바다밑을 보면은 육지의 있는 생물 종보다 더 많은 종 같습니다. 굉장히 많은 종들이 또 아름답게 거기는 더러 연근해 쪽은 오염되고 파괴되지만은 오염 안 되고 파괴되지 않은 해양생물 세계를 보면은 너무 너무 아름답다는 겁니다.

생물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바다에는 물고기와 같은 해양 생물이 번성하고 공중에는 새가 나르라. 아~ 공중에 이것도요 저는 특히 새를 좋아합니다. 왜 좋아하느냐? 날거든요. 저는 날아봐서면 좋겠는데 날개가 짧아서 영 날아져요. 그래서 우리마당에 보면은 날개 있는 것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새들을 참 좋아해요. 내년, 2018년에는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서 우리 마당의 풍경을 위해서 움직이는 그림 새들을 몇 가지 더 좀 가져올까 생각하고 있어요. 새들을 참 좋아해요. 개도 좋아하는데 개가 사람을 물어가지고 신경을 쓰게 했어 개는 고려하는 중이고, 거위라든지, 닭이나, 칠면조나 이런 것들 토끼는 사람을 물지 않으니까 생각중인데 하나님도 참 이런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세상에 날개 있는 새가 아무것도 없고, 물고기도 아무것도 하면 얼마나 삭막하겠어요. 하나님은 아직까지 다른 어떤 별에도 우주의 어떤 별에도 지구처럼 생물이 다양하게 풍성한 것은 아직은 못 찾았습니다. 나는 없다고 장담을 못해요 못하겠고 있다는 말도 증거가 없으니까 있다, 없다 말하기도 우리는 확실하지 않는데 어떻든 우리가 사는 지구에 숲속에도 가면은 곤충과 새들도 무수하게 많고 바다 밑에도 그렇게 많은 생명으로 가득, 가득 채워 놓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정말 생명을 사랑하신다. 생명 있는 것들을 생명 없는 것들도 소중하지만은 특별히 하나님은 생명 있는 거를 사랑하신다. 생명 있는 것 중에 제일 고귀한 것은 사람이죠. 사람.

성경은 이제 우리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봐 가면은 하나님이 참 사람을 너무 사랑하시고 너무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사람을, 지나칠 정도로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비해서 인간들은 너무 무관심하고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22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어

줄을 그으 봐요. 이게 제일 처음 나오는 복이라는 말입니다. 어디에 복을 주시느냐? 생명 있는 것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생명 없는 것들은 복을 줘도 받을 수가 없어요. 생명 있는 것들에 복을 주시는데 복이 뭐냐?

가라사대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다 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새들도 복을 주시고, 물고기도 복을 주시고 어떻든 생명 있는 것들에 복을 주시는 거예요.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다섯째 날에 복을 주기 시작했다. 생명 있는 것들에게 복을 주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을 받으려면은요 생명이 많도록 해야 돼요. 마당이나 논에나 밭에나 할 것 없이 나무를 심고 거기다가 또 가축을 기르고 아이를 낳고 해야 하나님 복을 줄 수 있지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복을 줘요.

오늘날 현대 특히 한국 사람들이 애기를 안 낳으면서 복을 받겠다는 거는 나는 이해가 안돼요. 그 복이 바로 아이가 복입니다. 아이 자체가 복이야, 그 아이에게 복을 담아 보내는데 아이를 안 낳겠다. 가축도 안기르고, 나무도 안 기르고 어떻게 복을 받아요.

제가 우리 지리산 기슭에서 사는 사람 몇몇 사람을 관찰을 해 봤는데 복을 받는 사람이 있어요. 특히 자식을 많이 낳는 사람이 복을 받았고, 그 다음에 나무를 심는 사람들 땅을 사가지고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산을 사서 나무를 꾸준히 심는 사람들은요 처음에는 복 같지도 않고 일만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 몇 십년 지나니까 엄청난 재산이 돼요. 복이 되는 거라, 우리 고향에 가면은 건너편 양지에‘고주식’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고주식’한동네 고씨가 많이 사는게‘고주식’이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 안하는 짓을 해요. 다른 사람 아무도 산을 사서 거기다 과일 나무를 심고 이런 걸 상상도 못 할때에 그 골짜기에서 제일 일찍이 산을 사가지고 과일나무를 여러 가지를 심었어요. 처음에는 다 우습게 보았는데 처음에는 노력을 해야 되고 투자만 하지 열매가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몇 년 지나서 가보니까 그게 이미 다 과수원이 되어가지고 온갖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하는데 낙원인거요. 낙원. 사실은 힘들어요. 힘이 드나 낙원이야. 그래서 그때 그런 모습을 제가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나무를 심겠다고 했는데 에스라하우스 장만하기 전에는 이 넓은 땅에 내 땅에다 바늘 꽂을 만한 땅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에스라 하우스라는 곳에 조금 땅을 장만하고는 지금도 봄만 되면은 언제 열릴지 내가 따 먹을지 못 따 먹을지 누가 따 먹을지 몰라도 하여튼 봄 되면은요 나무를 심습니다. 지금도 영주 집회마치고 오면은 조그마한 포크래인이 있거든요. 그걸 가지고 구석, 구석에 구덩이를 팔 거라. 파가지고 내년 3월, 4월이 되면은 심을 수 있는 구석마다 나무를 심을 라고 거래요. 언젠가는 누군가는 심은 사람을 생각하면서 열매를 딸 거거든요. 여러분도 하나님을 따라서 저를 따라서 땅을 사고 나무를 심는, 여러분 나무를 심도 안하고 꽃을 보겠다. 그러면 나쁜 사람이죠. 꽃을 바라면 나무를 심어야 돼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게 다섯째 날이고요.

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역시 그대로 되니라 하는 것은 후대에 첨가된 말씀이죠. 육축이라 하는 내발가진 그런 동물들 같은데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육축은 대게 집에서 기를만한 동물들입니다. 집에서 기를만한, 기를 육자를 쓰거든요. 기를 수 있는 동물 아마 기르기에 좋은게 양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만 저쪽 중근동 일대에서 전 세계적으로 기르기에 좋은 동물이 있다면은 아마 양이 제일 으뜸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은 목화를 가지고 면실을 만드는 무명옷을 만드는게 발달되기 전에는 양털이 제일 쉬운 것 같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양털을 가지고 실을 만들거나 양털 가죽 옷을 입거나 의복 문제 있어서는 양이 없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인과 아벨 때부터 아벨이 양을 쳤다고 하는거 보면서 옷을 위해서는 양털 외에는 어려운 거죠.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 다음 26절에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여기 왜 하나님이 우리라고 했을까? 우리. 하나님 창조할 때 혼자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리라는 걸 보면 복수로 쓰고 있거든요. 1인칭 복수 우리라고. 그래서 한편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라고 했지 않느냐? 이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고 또 한편은 창조에 천사들도 같이 동역을 했을 거다. 그래서 우리라고 했다. 누구든지 괜찮아, 성삼위 되시는 분이 우리라도 괜찮고 천사들도 함께 동역 했다 해도 괜찮습니다. 어떻든 우리라는 거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거기 줄을 그으세요. 형상이라는 말과 모양이라는 말, 그의 비슷한 말이면서도 또 다른 말로 막 해석을 하려고 하는데 해석을 해도 완전히 이해가 되는게 아닙니다. 도대체 모양은 뭐며, 형상은 뭐냐? 그래서‘첼렘’이라는 말이 형상이란 말이고 히브리어로‘데무트’라는 말이 모양이라는 뜻인데‘첼렘’과‘데무트’뭘 말하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인격성으로 봅니다.

인격성과 응답성 좀 어려운 말인데 인격성이 있으면서 응답성 이걸 좀 어려운 말로‘레스판스 빌리티’라고 하는데 응답성. 여러분 우리가 같이 살려면 대화가 되어야 되고, 부르면 대답을 해야 돼. 응답을 하고 대답이 돼야 돼. 그래야 같이 사는 맛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군가 옆에 있는데 부를 수 없다 그러면 인격이 아닌거죠.

우리마당에 있는 토끼를 내가 좋아하면서도 별로 안 좋아 하는게 불러도 대답을 안해요. 개는요 부르면 쫒아오고 합니다. 반가워하고 그렇죠? 그런데 거위하고 칠면조는 부르면 오기는 오는데 불러서 오는게 아니라 먹이를 주는가 보다, 그런 정도데 토끼는 그마져 못들은 척 해요. 전혀 응답성이 없어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할 때 응답하는 존재‘레스폰스 빌리티’가 있는 존재. 그런데 사람도 응답 안하죠. 이 바깥에 여기 동네에 사는 사람도 전혀 응답 안하거든요. 좋은걸 맛있는 걸 줘도 응답 없어, 감사도 없고, 응답도 없고, 무슨 재미로 하나님 기르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혹은 모양대로 만드셨다 할 때 첫째가 인격적 응답. 참 어려운 말인데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존재, 은혜를 베풀면 감사하는 존재, 부르면“예”하고‘히어 아이 엠’제가 여기 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래서 불렀을 때 응답이 되는 존재, 이런 존재를 만드신거 아니냐. 그래서 이제 아예 어떤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 모양대로, 하나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들어서 육체까지도 포함이다. 이렇게 말한 분도 있습니다. 이걸 신인동형론적 신학이라고 그래요. 신인동형론, 그러니까 하나님도 머리카락이 있고, 이마도 있고, 눈썹도,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손도 있고 하나님 다리도 있다. 발가락도 있고요. 이렇게 말하면 누가요 항문도 있나 물어봐요. 음식을 안 드시는데, 모르지 또 음식을 드시는게 있는지? 옛날에 너무 존경하던 선생님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실망해가지고 자살 해버렸다는 사람도 있던데.

그래서 육체까지도 하나님과 인간이 거의 같은 모양이다. 그걸 아주 안 좋은 신앙처럼, 일반 신학교에서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처럼 머리가 있고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손, 발이 있고, 다리가 있고 이렇게 직립으로 내발짐승이 아니고 이런 존재라고 하는 것을 신학적으로는 별로 안 좋아해요. 조금 수준 낮은 신앙이다. 이렇게 해요. 조금 수준 낮은 신앙이다, 이렇게 해요. 그럼 수준 높은 신앙은 너희는 하나님 아무 형상도 없냐? 형상도 없으면 공기처럼, 연기처럼, 유령처럼 그런 존재냐? 그렇지는 않을 것 아니예요 그렇죠.

아니 성경에 보면은 하나님이 나타날 때 아브라함 집에 찾아오신 것 보면은 사람모습으로 온 거야. 또 육체가 되어 오신 하나님, 예수님을 보면 똑같아. 그럼 그게 뭐 나쁜 신앙이야 하는 거요. 그래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때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 연기처럼 부활했나? 우리처럼 머리가 있고 키가 좀 커고 이렇게 되어 있다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갈 때 아까 말씀 드린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존재라는 형상하고 그 다음에는 실제적으로도 저는 그래요 다른 어떤 형상이라 할지라도 사람 모양이 최고 모양 아니냐, 물론 예쁘기는 뭐 공작새가 더 예쁘기는 하더라고, 하나님이 공작새처럼 생겼을까? 예쁘게, 아름답게, 인간보다 고귀하다 보지 않습니다. 그럼 하나님 코끼리처럼 생겼을까? 인간보다 더 고귀하다 안 보일 것 같아요.

어떤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상상한다 할지라도 사람 형상보다 고귀한 어떤 모습의 존재는 상상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급한 신학으로 인식 되는지 모르나 저는 하나님도 사람처럼 비슷하게 되어야, 여러분 사람도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람도 있어요. 남자나 여자나 너무 잘생기고 하면은 그건 미묘한 거거든요. 잘생기면 뭐가 어떻게 잘생겼는지 모르는데 확실히 잘 생긴게 있는 거예요. 그게 뭐라고 과학적으로는 안 돼. 아름답게 잘생겼다고 하는게 과학적으로 코가 몇 센치 되기 때문에 아름답다 이런게 없고, 절대 기준의 미라는게 있는 거예요. 감각이, 확실히 내가 볼 때 이 사람은 아름답다고 보는데 남들도 그렇게 보더라고 보니까 그래서 나중에 철학중에 미학이라고 있어요. 미학, 철학 과목중에 미학이 있어요. 아름다움에 근원이 어디에서부터 말미암느냐? 미학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름다움에 극에 대한 최고 아름다운 분으로 인격적인 존재요. 형상도 절대 사람에 가까운 형상이지 다른 어떤 존재도 사람 보다 더 고귀한 존재는 형상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롤 자기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또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거기 줄을 그으세요. 다스리게 하자. 소유하게 하자가 아닙니다. 다스리게 관리하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면이 있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자, 이걸 안상홍 증인회에서는요. 이걸 엉뚱하게 해석을 해가지고 하나님도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다는 거야, 남자하나님, 여자하나님이 있다. 그래서 사람도 하나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 안상홍하고 안상홍 부인하고 남자, 여자 하나는 남자하나님, 여자하나님 그렇다는 거예요. 장길자가 여자하나님, 안상홍이 남자하나님. 그리고 이제 28절에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아까는 22절에 생물들에게 동,식물들에게 복을 주셨다. 하셨고, 28절에는 사람에게 자기 형상대로 지은 사람에게 복을 주셨는데 역시 그 복의 기본은요 생육하고 번성하는 겁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실상이고 우리는 형상인거요. 하나님이 실상이고 우리는 형상으로 짖음 받은 거예요. 진짜는 하나님이고 우리는 모형이고 하나님의 아바타 처럼 모형이라고 하는 일도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우리가 나누어 받아 가지고 그 생물을 다스리는 거죠. 관리하고,

그리고 생명을 주신 후에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이것이 최초의 부여한 식물입니다. 식물성입니다. 식물성으로 음식을 주셨는데 채소와 씨 가진 모든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아니 보세요. 만약에 창세기나 오경이나 이런걸 기록한 분들이 우리가 가장 일찍이 봐도 모세 혹 이전에 아브라함이 무슨 계시를 받아가지고 얼마간에 무슨 기록을 남겼다 할지라도 아시는 데로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나 이런 분들이 뭐하는 사람이냐 하면은 유목민이거든요. 목축하는 사람들이야, 당연이 양고기, 쇠고기를 먹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이 인간에게 주셨던 최초의 식물은 양고기다 이렇게 안되어있고 식물로 되어있다는 거예요. 자기 생활에 맞추어 쓴 게 아니라는 거예요. 자기중심으로 자기 생활하는 그런대로 쓴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원리에 주신 음식물은 식물성이였다 하고 이렇게 하고 있어요.

그러면 일반적으로 우리가 맛을 보고 할 때 식품가공이라는 것은 최근에 나온 것이고 가공되지 않은 어떤 식물을 볼 때 채소나 이런 게 맛이 있느냐? 맛이 없어요. 신선한 맛이 혹 있을 수 있으나 요리하지 않은 채소라는 것은 별로 그렇게 맛있게 아니고 불에 굽고 소금만 찍어도 맛이 있는게 고기 아닌가? 보통, 과일은 물론 맛이 있을 수 있으나 실제로 채소 그 자체로는 맛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창세기 기자는 원래 하나님이 주셨던 식물은 과일과 채소 이런 것. 곡식이라는 것은 아직 안 나왔어요. 개념이 좀 있다 가인과 아벨 때 곡식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어떻든 씨가지 열매 맺는 모든 나무, 이런 식물성을 식물로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우리 집에 마당에 토끼면 토끼, 닭이나 아니면 오리나 칠면조나 다요. 오리는 없어졌구나. 그런데 이것들도 음식을 씹어서 말을 안 하는지 모르나 우리 밭에 있는거 좋아해요. 우리가 심어 놓은 것, 특히 배추, 상추, 이런 것 좋아해요. 우리가 울타리를 쳐서 막아 놓아서 그렇지 안 막아 놓으면 작살을 내 버립니다. 그게 좋은 것 아는가 봐요 이것들이요. 개도요 여러분“풀 뜯어 먹는 소리 하지 마라”하는데 안 봐서 그렇죠. 개가 양배추를 얼마나 좋아 하는지요. 한 두 마리가 달려들면 양배추하나를 통째로 다 먹어 버립니다. 얼마나 잘 먹는지. 그리고 사자가 직접 이렇게 풀을 뜯어 먹지 않지마는 사자는요 초식동물을 잡으면은 내장을 꺼내 먹어버려요. 다 소화시켜 놓은 것, 풀 먹어서 소화시켜 놓은 것 제일 별식으로 고수가 그걸 먹습니다. 그리고 워낙 배가 고프면 고기를 뜯어 먹지만 고기는 잘 안 먹고 고기는 아랫것들 하이에나든지 이런 것들이 먹고 실제로는 내장을 먼저 먹어요. 고급식, 숫사자 이런 것들은 내장 그런 것을 먹습니다.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이렇게 해서 맨 처음에 식물을 만들고, 동물을 만들고 그리고 인간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졸았더라 하고 기록하고 있고요. 2장에는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에 되었다. 천지를 만든거는 첫째 날 이전 그때 태초에 만드셨고 만물은 6일 창조안에 만들어졌습니다.

창세기 2장

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安息)하시니라

하나님이 너무 피곤해서 안식했다가 아니고요 그 하던 일이 다 마쳤기 때문에 안식하셨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러면서,

3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여기까지가 오늘 낮에 하려고 한 건데 낮에 이야기가 자꾸 엉뚱 한데로 흘러가니까 이야기가 밀러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에 있는 이 내용을 지금 우리가 읽어보아도 정말 신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이야기입니다. 지금 누군가가 창세기를 쓴다고 해도 이 외에 달리 누가 쓸 수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렇게 써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람이 사람된 가치와 의미가 뭐냐 하면은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거예요. 다른 어떤 동물도 하나님 인식 못해요. 그런데 사람만이 하나님을 인식 할 수 있다. 이것을 신인식론이라고 그러는데 존 칼빈이 쓴 책 중에 기독교 강요하는 책이 1,2,3,4권까지 있는데 맨 첫 번째가 신인식론부터 시작해요. 신을 인식한다.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계시다 하는걸 인식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인식이 잘못 될 수 있고 또 어느 정도 좀 사실에 가깝게 인식할 수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은 인식한다는 거예요 그의 다.

영국에 신자도 아닌 것 같아요 내가 볼 때 그 역사학자‘아놀드 토인비’라고 유명한 학자입니다. 내가 아무리 봐도 말하는걸 볼 때 기독교인이 아니야, 기독교인 같으면 아주 이단에 가까운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있어요. 자기가 세상 여러 나라를 가보았는데 국가 형태도 없고 왕도 없고 법도 없고 그런 곳이라도 그런 사람들이 사는 미개인들이 세계에도 신이 없는 곳은 없더라는 거야. 그래서 인간은 그의 병적인 정도로 종교적이다. 신을 인식하는 존재하는 거예요. 그의 본능적으로 신을 찾는다. 그런데 나중에 신약 성경에 와서 바울의 서신들을 보면은 하나님의 대해서는 인간이 자기 지혜로 자기 철학으로 결코 하나님을 바로 인식을 못해요, 뭔가 보이지 않는 세계에 영적인 차원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만 인식하는 정도지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지는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내려 주셔 가지고 계시를 전도하는 것으로 믿는자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셨도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본적 계시를 내려 주셔야 우리가 어느 정도 그 계시를 붙잡고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해 가지 그리 않고는 어렵다는 거예요. 엊그저께 어느 신학자가 한국인들에 신인식을 하는 수준을 보면서 50%는 미신이고 나머지는 이단이다. 기독교인들의 신앙 의식이라는게 그의 50%는 미신이고 아니면 이단이고 엉터리다. 그러면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이 30%로 채 안 된다는 이야기 라.

최인식이라고 하는 서울 신학대학에 성결교 신학대학에 교수 한분이 한번은 한국 기독교인들에 신인식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 점쟁이를 찾아갔데요. 서울에 제일 족집게 점쟁이, 국회의원들이 찾아가는‘심진송’이라고 유명한 점쟁이 있잖아요. 거기 찾아가서 물어봐데요. 여기 찾아오는 사람, 기독교인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점쟁이가 하는 말이 교수 양반 기독교인 교육 똑바로 해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 점 치러오지 않게 단속 좀 해라 하더라고 해요. 거기 오는 사람 30%로가 기독교인 이라는 거요.

그러면 우리나라 기독교인 중에 기독교인 30%로 안되잖아요. 그런데 점쟁이‘심진송’이 찾아오는 사람이 30%라고 하면은 예수 믿는 사람이 점을 더 많이 친다는 겁니다. 불신자보다. 그러니 이게 너무 아직도 미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책임이 성도들에게 있는게 아니라 성도들에게 일부 있지만은 저와 같은 목회자가 성도들을 바로 지도하지 못한 결과로 인간들이 미신에 빠진 것이 아니냐 그래서 미신에 빠지지 않고 바르게 할 수 있는 데로 최대한 하나님을 배우고 인식하고 또 믿고 섬기고 사랑하고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경책을 성실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사실은 오늘은 2장 3절까지만 정리를 하고 2장 4절부터는 좀 더 어려워지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창세기에 있는 말씀이 얼마나 소중한 말씀인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복을 주셨으나 사회 현상을 따라서 사회 맞추어 사느라고 인간들이 결혼도 안하고 애기도 안 낳고 주시는 복을 다 거절하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이런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고 심지어 점쟁이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죄송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 샤론교회 성도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 배워서 결코 미신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섬기는 그리고 바르게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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