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에 창설된 동산(창세기 2장 4 ~ 9절)
에덴에 창설된 동산(창세기 2장 4 ~ 9절)
  • 김용창
  • 승인 2018.06.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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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지난 시간에 이어서 말씀을 드리는데 창조 기사가 창세기 1장에 한번 나왔는데 다시 2장에서 조금 더 다른 이야기로, 다른 모습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이 왜 창세기 1장 창조 기사와 2장 창조 기사가 다른가? 하고 많이 고민을 해왔습니다. 한 2~300년 넘어 고민을 하고 학자들이 지금도 풀리지 않는 무엇이 있다 이렇게 인식을 해요. 그냥 밋밋하게 하나님 창조했다 넘어가면 그만인데 성경을 꼼꼼하게 한자 한자 따지면서, 분별하면서 보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1684~1766년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의사가 있었는데 진 아스트럭 이름이 좀 어렵습니다만은 어떻든 신학자가 아니고 의사입니다. 의사가 창세기를 꼼꼼하게 이렇게 살펴보는 중에 뭐가 다르다는 겁니다. 1장에서 창조 기사하고 2장에서 창조 기사하고 다르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 하면서 아무래도 1장 1절에서 2장 3절까지 기록하고 2장 4절부터 나오는 창조 기사가 많이 다르다 하고 이의를 제기했고, 그로부터 지난 300년 넘어 수많은 학자들이 이 부분을 가지고 연구하고 논문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도 명쾌하게 해결이 되지는 않아요. 그래서 일반 교회에서는 대체로 언급 자체를 안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우리 샤론장로교회는 성경에 애매한 것이라도 일단 짚어서 생각해보고 넘어 간다. 그것은 전에부터 해왔죠.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첫째,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명칭을, 호칭을 다르게 쓰고 있어요. 1장 1절에서 2장 3절까지 나오는 하나님은 그냥 하나님으로 쓰고 있습니다. 33번이나 그냥 하나님‘엘로힘’으로 쓰고 있어요. 그런데 갑자기 2장 4절부터는‘엘로힘’이 아니고‘여호와 엘로힘’으로 이렇게 바뀌더니 그때부터는 계속해서 2장, 3장 끝까지 꼭 여호와 하나님으로 한 번도 다르지 않습니다. 한 번도 예외가 없이 반드시 2장 4절부터 3장 끝까지 그것도 18번이나 여호와 하나님으로 불러요.

여태까지 모르고 다 지나쳤죠? 사람이 예를 들어서 책을 엄청나게 두껍게 쓰다 보면서 앞에서 쓰던 말하고 뒤에서 쓰던 용어가 달라질 수 있으나 불과 한두 장 차이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호칭을 달리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때 진 아스트럭이라는 의사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아무래도 한 분이 쓴 것 같지 않다. 즉 1장의 창조기사와 2장의 창조기사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기록됐다. 이렇게 주장을 하게 되었고 19세기 20세기 초반에 들어설 때까지 독일의 유명한 성서학자 율리우스 벨하우젠이라는 사람이 더 그 분야에 연구를 해가지고 5경을 지금 현재 모습으로 편집한 사람이 여러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문서를 모아가지고 잘 배열하고 스토리가 되게 문서들을 가지고 편집을 한 것이 아니냐.

그런데 조금씩 손본 것도 있고 손보기가 영 어려운 부분들은 그냥 다른 것을 절충해서 무슨 새로운 글을 쓰지 않고 두 개를 나란히 다 놓았다는 겁니다. 둘 다, 소중하니까 어느 하나를 선택한 게 아니고 창조 이야기가 전해져 온 게 두 가지가 있는데 그 두 가지가 처음에는 구전으로, 말로 입으로 이렇게 전해져 오다가 언젠가 누구 손으로 문서화가 되어서 짤막짤막한 단편들이 문서가 있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제대로 써 보자하고 쓸 때 이야기를 절충해서 새로 창작을 한 것이 아니고 둘을 다 놓았다 그대로 가능하면 손 많이 안 되려고 이렇게 하면서 가능하면은 자초지종, 기승전결이 되게, 스토리가 되게 이렇게 배열하여 편집한 것이 아니냐? 소이 말하는 J.E.D.P라고 하는데 좀 어려운 말이 예요. 일반 교회에서는 언급하지도 않습니다.

J라는 문서는 하나님을‘야훼’라고 부른다는 거라.‘야훼 엘로힘’으로 부르고, E 문서라는 것은 꼭‘엘로힘’으로만 부른다. 하나님으로만 하고 여호와라는 말은 안 붙인다는 거요. 그러나 D라고 하는 문서는‘두투로론미온’이라고 하는 신명기 기자는 따로 있었다. 전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하고 전혀 다른, 신명기 기자는 전혀 다른 분이였고 레위기 기자는 P라고 해가지고 제사장 계열의 어떤 분이 썼다.

이래가지고 J.E.D.P라고 하는 것이 오늘 신학교에서는 우리교단을 비롯해서 좀 진보적인 교단에서는 이런 학설에 대해서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고 총신대나 고신대 쯤 되면 J.E.D.P 자유주의 신학 그냥 이단 사이비 이렇게 몰아 버립니다. 그런데 유럽이나 미국이나 조금 신학적인 사고가 유연한 그런 신학교에서는 거의 다 이것 무시할 수 없는 이론이다 이렇게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신앙은 꽤 보수적이지만은 학문적으로는 좀 유연한 생각을 갖고 있는 저의 입장에서는 좀 다릅니다. 문서 설 자체를 딱 부정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어요. 어떻게 앞에는 연달아서 33번을‘엘로힘’으로 하다가 갑자기 2장 4절 부터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18번이나 연속하거든요.

두 번째, 창조 내용과 순서가 많이 달라요. 1장 창조하고 2장 창조하고 예를 들어서 1장에는 첫째 날에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셨다. 둘째 날에 궁창위에 물과 궁창 아랫물을 나누셨다. 그리고 셋째 날에 육지를 솟아나게 하고 바다가 내려가서 육지와 바다를 나누셨다 하고 셋째 날에 채소와 과목과 땅에 풀을 나게 했다 되어 있어요. 1장 창조에, 그러니까 셋째 날에 육지를 만들면서 육지에 바로 채소와 과목과 땅에 풀을 나게 했다 되어있어요. 넷째 날에 해와 달과 별을 만드셨고 다섯째 날에 물에는 어류, 물고기 종류가 살게 하시고 궁창에는 새가 나르라 하셨다. 그리고 여섯째 날에 땅에 육축과 기르는 것과 동물들을 종류대로 만드셨고 그리고 하나님 자기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셨다하고 우리는 일장의 창조가 익숙하죠. 다른 것은 2장 창조는 거의 관심 없이 두는데 2장 창조를 볼까요. 4절에

4 여호와 하나님이

여태까지 33번이나 하나님으로만 하다가 2장 4절부터 갑자기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기록하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그러면 아무런 식물도 동물도 없는 거죠. 안개밖에 그런데 하나님이 7절에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그러니까 2장 창조에서는 땅위에서 동물, 식물 다 창조 안하고 사람 제일 먼저 창조한 걸로 되어있죠? 맞아요? 입장 곤란합니까? 그런대로 짚어 보자는 그죠. 여기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짖었다는 말도 없고 그냥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생령이 라는 말은 번역이 어쭙잖습니다. 그것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네페쉬하야’라고 하는데‘네페쉬’라는 말은 생명이 있는, 목숨이 있는‘하야’존재, 우리말로 이제 목숨 있는 존재는 이런 말은 잘 안 쓰니까요. 그러니까‘네페쉬하야’라는 게 생명체, 우리나라 말로 하면 생명체가 되었다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생령이 라는 좀 말은 억지번역이고 영이라는 단어는 없어요. 영이면‘루아크’가 나와야 되는데‘루아크’는 영이고‘네페쉬’가 혼인데 혹 혹은 목숨이‘네페쉬’데 그래서 생명체가 되었다. 그러니까 흙에다가 생기를 안 불어 넣으면 그냥 흙이죠. 기를 불어 넣어 으로서 생명체이 되었다. 우리 번역으로 하면 가장 무난한 번역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번역하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그렇게 봅니다.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러니까 에덴동산이라고도 하고 동방의 에덴에 창조하셨다 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식물 창조가 여기는 인간 창조보다 뒤로 되어 있죠. 그렇죠.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에덴이 고지대에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거기서 발원해 가지고 동산이 밑에 있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베델리엄 하는 것은 향료의 일종입니다. 베들레헴이 아닙니다. 발음이 비슷해 가지고, 호마노는 줄마노라고도 하고 오닉스라고도 합니다. 보석종류입니다.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강 이야기는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사람을 동산에 두신 목적은 그 동산을 다스리고 지킨다. 요즘 말하면 관리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을 세우실 때 소유하게 하자하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고 관리하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논이나 밭이나 갖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대한민국 법상으로 소유권이 이전등기 되어 있지만은 하나님 앞에는 우리가 소유자가 아니고 관리인입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지 사람이 이전등기 하도록 하나님이 위임장을 써 주신적인 없어요. 우리는 관리인이고 청지기고 그래요. 관리인이다. 그래서 다스리며 지키게 하자 하시고 또,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그러면 창세기 1장 창조에는 동물이 먼저 지음 받았죠. 그런데 2장 창조에는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 지음 받았어요. 차이가 많이 나잖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도 다르고 순서도 다르다 내용도 상당히 다르다 해서 이것은 도저히 방금 앞에 그렇게 써놓고 뒤에 이렇게 쓸 수가 없다. 같은 사람이 쓰면, 그래서 두 가지 창조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하나도 편집자가 볼 때는 버릴 수 가 없다는 얘기예요. 둘 다 중요성이 있다. 둘 다 가치가 있다 해서 인위적으로 손을 대지 않고 전해져온 문서들을 둘 다 배열하되 가능하면 변형하지 않고 있던 그대로 쓴 것이 아니냐.

우리가 마음대로 수정하려고 하면은 일관성 있게 앞에서 하나님 했으면 계속 하나님 하든지 아니면 앞에서부터 여호와 하나님 했을 건데 이야기 토막이 갈라지면서 분리가 되면서 앞에서 33번이나 하나님, 뒤에는 18번이나 여호와 하나님, 한 번도 실수가 없이 다르게 쓰고 있거든요.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물론 우리가 지금은 언어혼잡 이후에 여러 언어로 변형되었는데 여러분 우리가 언어라는 게 얼마나 미묘하냐 하면은 동물을 보라고요 돼지를 보면 아무리 봐도 돼지라, 그렇죠. 돼지를 보고 소라고 한번 이름 짖어 봐. 소라고 한번 불러 봐요. 제비는 확실히 제비 같아요. 미꾸라지는 정말 미꾸라지야, 그래서 이름을 짓는다는 게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그 존재의 특성과 그 존재의 의미와 존재의 가치가 뭔가를 알아야 이름을 짓는 거지, 그래서 아담이 지금 있는 동물, 식물이름을 짓은 게 아니라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가 있었다고 생물 다양성이 지금하고 비교가 안 되는 거라.

지금 아시다시피 공룡만 해도 여러 수십 종류가 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잖아요. 매머드 같은 것도 없고, 수많은 생물들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다 짖어다는 것은 아담의 능력이 그런 생물의 특성과 존재의 가치와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름을 짓는 거죠.

저는 이름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인데 그런 얘기를 강좌 중에 지나가면서 한 말씀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성경강좌 왔던 분들이 아들이나 딸을 곧 낳을 텐데 부부가 아무리 둘이서 머리를 짜도 이름이 생각이 안 난데요. 그래서 날보고 이름을 지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일방적으로 지어 가지고 마음에 안 들면 곤란하니까 당신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이름들을 몇 개를 권해 봐라, 내가 수정을 하든지 좋으면 좋다고 하든지 하겠다. 그리고 주변에 사촌까지 이름을 다 가져 와라, 중복되면 안 되니까

요즘 심심찮게 이름을 지어주는 편입니다. 이명훈 어디 있어요? 저 사람 이름을 제가 지었거든요. 명훈이 누나가 이름이 명진 이라서 남자 같으면 명철이, 여러 가지 생각하다가 명훈이 좋겠다. 밝은 교훈이 좋겠다. 이렇게 해서 명훈이라 지었고 그 외에도 더러 이름을 짓고 합니다. 아담은 동물들 식물들 이름을 다 지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꼭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러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하여튼 비딱한 사람이 창세기 2장을 보다가 하나님이 덜 신사적이다. 왜 의논도 안 해보고 남자 갈빗대를 훔쳐 갔느냐, 비인격적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떤 나이 많은 목사님이 대답하기를, 갈빗대 하나 훔쳐가지고 여자 하나 갖다 주면 내 갈빗대 다 가져가고 괜찮다고 하더래요. 수지가 맞잖아요. 갈빗대 하나 투자해가지고 여자 하나 얻으면 수지가 맞는 거지요.

그래서 여기 이제 몇몇 순서에 있어서 1장 창조와 차이가 나고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이 18번이나 연속으로 꼭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거야, 내용도 상당히 다르고요. 그래서 이 두 가지 문건, 두 가지 자료가 전해왔는데 이걸 누가 처음 배열했느냐 하면 에스라가 하거예요. 에스라가

AD 90년에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얌니아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얌니아에서 유대 랍비 회의가 모입니다. 유대 장로회의가 유대교, 기독교가 아니고 AD 90년경에 예루살렘은 70년에 망했고 그로부터 20년 지나서 얌니아에서 장로회, 랍비들에 회의가 열려가지고 어떤 책까지가 거룩한 책이냐? 하고 거룩한 책들을 확정을 할 때 다시 말해 구약 39권을 확정할 때 얌니아에서 구약성경 5경을 누가 써느냐? 의논한 결과 연구한 학자들이 다 발표한 일치한 견해가 뭐냐 하면은 예루살렘이 함락된 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해가 BC 586년으로부터 130년 되는 해 그래서 456년에 에스라가 다섯 명의 조수, 다섯 명의 비서들과 함께 40일에 걸쳐 가지고 지금 현재 오경을 지금 모습으로 다듬어서 완성 짓겠다. 이것이 AD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확정 한 겁니다.

그 학설이 전해지거든요. 그리고 2세기 3세기까지 우리 기독교에서도 얌니아 회의에 결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가 그 뒤에 성경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성경을 모세가 썼다고 해야 권위가 있는 것처럼 계속 모세오경이라고 이런 말을 자꾸 하는데 사실은 진실한 게 아니야, 모세가 통 안 썼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저도, 모세가 일부는 썼으나 모세가 무슨 말로 썼는지도 몰라요.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조상은 갈대아 우르 사람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물론 태어나기는 하란에서 태어났지만은 아주 어릴 때 자기 아버지 데라를 따라서 갈대아 우르에 내려갔다가 노아가 죽는 해가 아브라함 나이 60세 되었을 때 노아가 죽었어요. 그쯤해서 아브라함과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다시 고향 하란으로 올라옵니다. 와서 10년, 15년쯤 있을 때 75세쯤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기위해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본토친척 아비집이 갈대아 우르가 아닙니다. 하란이야, 하란.

하란에서 10년 정도 살았거든요. 그래서 떠나왔을 때 그러면 아브라함이 쓰는 말이 갈대아 언어 내지 하란언어 라는 겁니다. 그 언어를 쓰고 있을 때 조금 있다가 75세쯤 되어서 가나안 땅으로 아브라함이 내려오거든요. 그때 아브라함이 쓰는 언어도 역시 하란언어, 갈대아 언어 이런 것을 썼을 거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삭도 자기 아버지가 쓰는 언어를 썼을 것이고 야곱도 마찬가지 그러다가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 갔어도 쭉 그 언어를 썼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히브리어 문법이라든지 이런 게 발달이 안됐어요. 전혀,

애굽에 가서도 자기 언어도 쓰고 애굽 언어도 섞어 쓰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언어가 달라다는 것은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애굽 말로 하고 자기 형님들은 히브리말로 하기 때문에 중간에 통역을 세웠는데 요셉이 다 알아듣는데 못 알아듣는 줄 알았다. 그런 말도 있죠. 분명히 야곱자손들의 언어와 애굽 언어는 달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한 400년 살다보니까 양쪽 언어를 다 쓰고 있었을 텐데, 바로왕의 공주의 아들로 영광스럽게 살던 모세는 거의 애굽의 학문을 통달해가지고 모세 때만해도 히브리 문법이나 문자는 발달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히 아무리 봐도, 언제쯤에 히브리 문자가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문법이 발달했느냐 하면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정도 일겁니다. 빨라야 다윗과 솔로몬 시대 와서 문자라든지 문법이 체계화 되어 가지고 확실히 기록된 것은 다윗의 시편들이 있거든요 다윗의 시편들, 기도문들 이런 것을 보면

문서 활동이 활발하게 된 것은 BC 9세기 10세기 전후 그 뒤에 히스기야 왕 때 문서 활동이 좀 더 활발해지는 걸로 봐요. 모세시대부터 사사시대까지만 해도 별로 히브리어 문법들이 다듬어지지 않았을 텐데 지금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을 보면 창세기에서부터 말라기까지가 거의 동시대 문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혀 천년이나 간격이 있는 그런 문법 변화가 없이 동시대 문법으로 왜 이렇게 동시대 문법으로 기록될 수 있었냐 하면은 에스라가 짧은 기간에 지금 모습으로 다 손질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히브리 학자들과 랍비들은 그렇게 인정했고 유대인들은 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신 측이나 합동 측에서 아직도 모세오경이다 하고 또 문서설 이런 것을 이야기 하면 신신학 자유주의 이단 사이비 이렇게 봐요. 그러니까 그것이 경건하신 줄로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정직한 게 좋은 게 아닌가요. 사실이 무엇이냐, 그래서 우리가 아까 본 대로 한 사람이 바로 1장하고 2장 사이에 한 장도 안 넘어가서 언어 습관이 확 바뀔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은 분명히 1장문서와 2장문서는 다른 문서를 배열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양심적인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이고, 무조건 그냥 딴 소리 하지마, 하나님이 모세에게 다 불러 줘서 한자 한자 불러줬다. 이것이 축자영감설이라는 건데 축자영감설 말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믿는 게 좋은 신앙으로 생각하는가 봐요.

그래서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전부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줬다. 그런 말이 성경에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에 감동으로 되었다 하는 것이고, 예언은 언제나 사람의 뜻으로 내게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영감을 받아썼다 이런 말은 있어요. 디모데전서 3장 16절에 그런 말이 있으나 그것은 예언만 그래요 예언만, 역사라는 것은 인용한 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러이러한 말은 유대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더냐 하고 내가 그런 책에서 인용 한다 이렇게 쓰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문제는 보통 신학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은 저는 신학교에서 이야기 하는 거는 교회에서 말할 수 있어야 되고 교회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신학교에서 말해야 된다고 봐요. 신학교에서는 자기 마음대로 거짓말 하다가 교회 와서 참말하고 그것은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칼 바르트는 조직신학을 하는데 교회에서 강의할 수 있는 조직신학을 해야 된다. 신학교에 신학자들만 자기들끼리 떠들고 교회 가서 입도 벙긋 못하고 이렇게 거짓말 신학하면 안되고 교회에서 말할 수 있는 교이학, 교회 교이학‘처어치 도그마틱스’라고, 그래서 때로는 가끔 부담되고 성도들이 듣고 시험 들라 하는 생각도 저도 있죠. 그러나 정직하게 하는 게 옳다고 봐요.

성도들은 시험 든다 해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무조건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줬다고 거짓말 하면 안 되죠. 만약에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줬으면 복음서 네 개가 똑같이 돼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누가복음은 길게 불러주시고 마가복음은 짧게 불러주고 마가는 절반은 빼먹고, 그러니까 다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고 해서 성령의 감동 받았다고 다 성령 되는 게 아니야, 감동을 받으면 양심이 민감해서 거짓말을 안 쓰는 거지, 그러면 성령 감동 받으면 모든 것을 다 아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마가복음을 쓴 분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썼다면 모든 것을 다 아느냐? 아니죠. 많이 빼먹었죠.

그래서 이런 것을 제가 성도들 눈치를 보지 않고 정직하게 공부한데로 사실대로 강의하거나 설교를 하면 인터넷에 돌아서 보수교단, 합동 측이나 고신 측 사람들이 노목사는 성경관이 잘못되었다. 모세가 안 썼데, 하면서 자기들 끼리 난리가 났어요. 네가 모세가 쓰는 것 봤나? 내용을 보면 나중에 똑 같은 한 산을 놓고 어떤 기자는 시내산이라고 그러고 어떤 기자는 호렙산이라고 그래요. 같은 산입니다. 그런데 부르는 이름이 달라요.

그래서 창세기 같은 문제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창세기를 모세가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구절들이 꽤 있어요. 모세로서는 쓸 수 없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단 지파라는 말을 쓸려면 모세 시대는 못 쓰죠. 모세시대는 단 지파에게 땅을 나눈 적이 없어요. 아직까지, 가나안땅 들어가도 안했으니까, 그러면 단 지파의 땅이 처음에는 베냐민지파 바로 옆에 바다 쪽으로 소라와 에스다올 이쪽이 단지파가 제비뽑아 얻은 땅인데 아모리 족속이 너무 못살게 하니까 단지파가 자기들 분배받은 땅에 벗터내지 못하고 북쪽에 살만한데 없는가? 가서 헤르몬산 기슭에 원래 땅 이름이 라이스라는 땅인데 그 땅을 빼앗아 이름을 단이라 하더라. 그게 사사기 끝에 나옵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 서쪽에 단지파가 땅 분배받아 살았어요. 그런데 사사기 끝에 가서 보면 단지파가 쫓겨나서 헤르몬산 기슭에 올라가서 그 땅을 단이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사사기 이후에 사무엘서에 보면 이스라엘 땅 전체를 볼 때 맨 북쪽 끝단을 단이라고 그래요 남쪽 끝단을 브엘세바라고 북쪽 끝단을 단이라고, 단에서 브엘세바 까지 이런 말을 하고 우리 같으면 함경도에서 제주도 까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길리고 연습한 사람이 318명이 있었는데 그돌라오멜 즉 엘람 왕 그돌라오멜, 고임 왕 디달 이런 사람들이 와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잡아 갔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조카 롯도 잡아갔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길리고 연습한 사람 318명을 거느리고 추격했는데 어디까지 갔느냐? 단까지 쫓아갔다고 되어 있어요. 모세는 가나안 땅 정복도 안했고 단지파 땅에도 있지도 않고 단지파는 아직도 요단강 동편에 모압 평지에 있을 때인데 어떻게 모세가 헤르몬산 기슭에 단까지 쫓아갔다는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런 것을 모세가 썼다고 하는 것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아나크로니즘 말도 안 되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신명기도 보면 끝에 이런 말이 있어요. 모세가 죽기 직전에 비스기산에 올라가잖아요. 올라가서 서쪽을 바라보면 요단강 건너 가나안땅이 쭉 보입니다. 그리고 북쪽을 바라보면 길르앗 땅을 거쳐서 길르앗 땅 끄트머리 쪽에 헤르몬산과 단지파 땅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나 모세 때는 가나안 온 땅과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라고 말을 쓰는 게, 모세 때 단지파가 그 땅을 분배를 안 받았기 때문에 신명기에서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비스기산 꼭대기에서 요단 건너서 가나안 온 땅과 북쪽으로 길르앗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라는 말을 아직 쓸 수 없는 거예요. 단은 아직까지 가나안 땅도 안 들어갔기 때문에 모세보다 400년 후에야 단지파가 그 땅을 차지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본문을 정밀하게 잘 살펴보면 지금 보수교단이라 하는 사람들 말이 무리한 주장이 많아요. 악의는 아닙니다. 나쁜 뜻은 아니고 성도들이 행여나 성경의 권위에 의혹이 생겨서 성경을 우습 게 볼까 싶어 염려한 어른들이 노파심에서 한다고 봐요. 그러나 사실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우리교단은 신학자들이 상당히 학문적인 자세가 유연해서 고정관념을 갖지 말고 실제 사실 파악을 위해서 학문적 자유를 유연하게 하자는 입장 이예요.

그래서 조금 더 보면 3장에

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 이야기는 1장 창조에는 안 나오던 이야기인데 인간의 배필, 여자이야기 그 다음 인간의 타락이야기 굉장히 중요하니까 이걸 무시할 수 없는 거죠. 1장 창조의 질서와 순서는 1장의 창조가 맞는 것 같아요. 2장 3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굉장히 근본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나란히 다 배열하자 하는 입장에서 썼다고 봅니다.

3장에 타락이야기는 지금부터 했다가는 너무 길어져서 다음 설교 때 조금 연장을 해서 보충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내용으로는 2장까지만 하는데 2장에서 중요한 것은 1장 창조와 순서도 약간 다르고, 포커서도 다르고, 그리고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에 있어서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결코 한 사람이 쓸 수 없는 내 용 이였다. 하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여기까지 정리하고 3장 내용은 다시 한 번 더, 중요하게 때문에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타락한 인간들에게 타락한 과정과 하나님의 창조된 대략을 기록해서 주셨는데 옛날에 우리가 예사로 볼 때는 잘 몰랐지만은 성경말씀을 자세히 본 즉, 1장에 창조 기사와 2장의 창조 기사가 약간 다른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다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전한 기사가 완전치 아니하므로 서로 보충적인 의미에서 꼭 필요한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진 걸로 믿습니다. 이런 말씀을 공부하다가 진실 때문에 우리 마음이 불편해지지 않게 하시고 또 이 두 기사를 다 앎으로 처음 창조한 대략을 원만하게 이해할 수 있는데 까지 이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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