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고별설교(신명기 1장 1 ~ 4절)
모세의 고별설교(신명기 1장 1 ~ 4절)
  • 김용창
  • 승인 2018.09.1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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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고별설교(신명기 1장 1 ~ 4절)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 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열 하룻 길이었더라

3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 을 다 고하였으니

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지금까지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살펴보았고 오늘부터 신명기로 들어가기 되는데 신명기라는 책도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다 가르치는 그런 일은 거의 잘 만나보기 어려울 겁니다. 신명기에 있는 말씀은 오늘 제목대로 모세가 고별 설교를 했다. 큰 제목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모세의 고별 설교다.

사십년을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하고 이제 자기가 더 사역할 일도 없거니와 백성들에게 설교하거나 강의하거나 할 수 있는 그런 기회는 없는 거죠. 그래서 마지막 고별설교이기 때문에 아마도 모세도 비장한 말씀을 가지고 이런 말씀을 전했다고 봅니다.

그 내용을 보면, 오늘 우리가 보는 부분은 오늘 저녁시간까지 연장을 해서 보는데 지난 40년을 돌아보는 회고 한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굉장한 교훈이라든지 이런 것 보다는 40년을 돌아볼 때 첫째 이스라엘 백성이 아주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요. 그동안에 하나님을 믿지 않고 날마다 이적과 표적을 보면서도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고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고 이렇게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한편 모세 자신도 더러 실수를 한거예요. 80세에 부르심을 받아가지고 40년 동안 사역을 하는 가운데 두 번 모세도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세 번 정도, 한번은 구스여인을 취한 사건이 아무래도 큰 허물이 되겠죠. 그다음에 두 번째는 므리바 물가에서 하도 이스라엘 백성이 속을 썩이니까 지팡이로 반석을 혈기나 오기를 가지고 내려치면서 그냥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했는데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고 혈기를 내어 보였다. 이것이 두 번째 실수고

세 번째는 그냥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얻어라, 했으면 백성들의 말을 들을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갔으면 됩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자꾸 우기니까 ‘ 꼭 그러면 정탐꾼을 보내보자’정탐꾼을 보내보자는 게 모세의 견해도 아니고 하나님의 견해도 아니고 백성들이 우기니까 마지못해서 백성들의 소리에 끌려간 거예요.

그때 믿음 없이 기어이 자기들 눈으로 현장답사를 가서 보겠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도 믿음 없는 소치지만 백성들이 졸라 된다고 들어준 것도 생각하면 모세의 허물일 수 있어요. 여기는 모세가 자기 허물로 생각하지 않고 ‘너희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냈었다.’이렇게 하는데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면 모세도 그때 백성의 말을 들을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어가 차지하라는 했으면 그냥 올라가면 될 괜히 백성들 말을 듣고 정탐꾼을 보냈는데 그 결과가 좋지 안했다는 거죠. 이런 것도 40년이 지난 후에 자기가 고별설교를 하면서 회고해 보는 겁니다.

때가 어느 때냐 하면 애굽에서 나온 지 만 40년 되는 해, 11월 1일 그러니까 만 40년 조금 넘은 거죠. 40년 1월 15일에 나왔는데 11월 1일이니까 1년 1개월 좀 못되는 그런 정도입니다. 장소는 여리고에서 요단강 건너편 요압 땅 평지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1부라고 하는 1장에서 4장까지는 33절까지는 지난 40년을 돌아보는 회고하는 내용이고, 4장 44절부터 28장 68절까지는 율법설명, 레위기를 평이하게 해석해서 알아듣기 쉽게 해석한 겁니다. 29장부터 34장까지는 모압 평지에서 추가로 당부하는 그런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크게 3부로 나누어진다. 1부는 회고, 2부는 율법설명, 3부는 추가로 당부하는 말씀.

이런 내용으로 분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을 보면 신명기라고 하는데 저는 신명기라는 책에 이름에 의미를 알게 된 거는 교회 다니고 한참 있다가 신학을 하는 과정에서 제법 세월이 흐른 후에 신명기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원래 이 책의 이름은 엘레하뜨바림, 엘레하뜨바림 그 말은 말씀이니라, 그러니까 히브리어로 된 책의 첫 번째 두 단어, 엘레하뜨바림으로 시작해요. 우리가 364장 같으면 찬송가 이름을 ‘내 주를 가까이’이렇게 하는 것처럼 맨 첫 번째 단어 두 단어를 엘레하뜨바림, 뜨바림이라는 말은 말씀들이다, 말씀들, 따바르에서 온 말이고 엘레하뜨바림이라는 것은 뭐 뭐이다. 말씀드리다. 그런 뜻이에요. 말씀드리다 로 시작하는 책이다 이렇게 해서 책 제목을 했는데 우리말로 할 때 신명기라고 했느냐? ‘신’자가 되풀이 할 ‘신’자에요. 보통 우리가 말할때는 ‘납 신’자라고 하는데‘납 신’자라는 말은 원숭이 신자예요. 잔나비 신자, 잔나비를 납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원숭이‘신’자라고 이때는 쓰면 안 되죠. 한자 옥편중에 두툼하고 내용이 풍부한 사전을 보면 이때‘신’자가‘납 신’으로 쓰고 신씨들이 쓰는 성‘신’자로도 쓰고 거듭할 ‘신’, 되풀이 할‘신’자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우리가 또 부탁을 하고 거듭 부탁을 할 때 신신당부한다 하는 말을 그래서 나온 말이 에 요. 거듭, 거듭 되풀이해서 또 부탁 한다. 이런 뜻인데 명이라고 하는 것은 계명이고 계명을 다시 한 번 제해석해서 다시 부탁한다. 그런 의미인 거예요.

그래서 이 이름의 뜻을 알고 나서 보니까 아~ 이것이 레위기가 본문이고 신명기는 그 레위기를 해설한 설교의 원형이구나 하는 걸 이해하게 된 겁니다. 우리는 이걸 세상 평범하게 평이하게 하지만 전 세계 기독교인들 중에 이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레위기를 재해석한 게 신명기라고 이해한 사람은 거의 지구상에 몇 사람 안 될 겁니다.

신명기는 제2에 율법이다. 율법을 한번 줘놓고 다시 제2의 율법을 주셨다. 그래서 영어로는 두트로노미오, 두트로노미 이렇게 한다고, 제2의 율법이다. 그래서 어느 날 정말 율법을 레위기가 율법인데 이것을 설명한 것이다 하는 것이 보였을 때부터 신명기가 쉽게 보이는데 5절 보세요.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律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설명하다는 말이 빠아르라는 말인데 설명, 해설이라는 뜻이라 그러니까 율법 설명하기 시작했다 할 때 율법이 레위기고 레위기를 설명을 하니까 설교가 된 겁니다. 그래서 신명기야 말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나타나는 설교인 거죠. 저는 이것이 설교의 원형이다 그래서 제가 설교 할 때 일반 신학교에서 배운 설교학 대로 설교하지 않고 모세가 마치 레위기를 가지고 신명기식으로 설교한 이것을 설교 패턴으로 몸에 익히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어떻든 기본은 그래요.

모세가 레위기를 가지고 신명기식으로 설교한 이것이 원형이 아니냐, 그래서 저의 모든 성경을 그대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선에서 끝입니다. 혹, 거기서 우리가 꼭 깨닫고 명심해야 할 것을 제가 소개하는 것도 있지만 같이 이해가 되었으면 같이 공감하고 같이 이해하면 끝납니다. 뭘 이걸 하시오, 저절 적용하시오 이렇게 까지 하면 사실 피곤한 일이야, 스스로 성경을 깨달았으면 스스로 적용하게 생각해서 삶에 적용하게 그냥 놔 둘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꼭 이것 하시오, 저것 하시오 이렇게 해놓으면 수동태가 돼요. 듣는 분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들어서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해야 되고 내 삶에 이렇게 적용해야 되겠다 하는 것은 여러분이 노력해야지, 제가 다 해가지고 적용까지 해가지고 그러니까 해라 해버리면 여러분이 할 것은 하거나 말거나 두 가지 밖에 없는 거라 생각할 것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가면 전부다 목회자 말에 끌려오는 것 밖에 안돼요.

어느 시대 누구든지 간에 누가 말하는 대로 끌러가기만 하는 것은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과잉해석하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뜻을 이해할 만큼 해놓으면 여러분이 끌어당겨서 정말 그런가 보자하고 스스로 내 삶에 적용하는 그런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억지로 목사가 끌고 가는데 끌러가는 그런 수동적인 신앙이 아니라 말씀을 잘 깨닫고 나서 그렇지 내 삶에 이렇게 적용해야 되겠다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을 해야 되는 것이지 일반 설교를 보면 너무 되씹고 곱씹고 질리게 해가지고 적용까지 다 해가지고 이렇게 해라 끝나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성도는 생각할 것도 없고 행동만 하면 됩니다. 수동태가 되고 피동태가 되는 겁니다. 저는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대강 깨닫게 해서 근본만 알게 하면 여러분 스스로 묵상도 하고 생각도 하고 삶에 적용도 하고 이렇게 해야 합니다. 1절부터 보면

1 이는 모세가 요단 저편

요단 저편이라고 할 때는 여리고에서 요단 저편입니다.

숩 맞은편의 아라바 광야

아라바라는 곳은 약간 낮은데 계곡처럼 생겨가지고 평평한 곳입니다. 아라바 광야가 굉장히 갈릴리 호수밑에 해서 사해바다 밑에 까지도 약간 저지대로 평평한 그 지역 전체를 다 그 지역, 아라바가 조그만 곳이 아니고 낮은 저지대 계곡 전체 다 아라바 광야로 속해요.

곧 바란과 도벨과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에서 이스라엘 무리에게 선포한 말씀이니라

줄을 그 놓으세요. 선포한 말씀이니까 설교가 되는 거죠. 기록한 말씀은 성경, 선포한 말씀은 설교, 그래서 저는 신명기라는 책이 설교였다 하는데서 힌트를 얻어가지고 이걸 배워야겠다하고 상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열 하룻 길이었더라

호렙 산은 시내산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 있는 지리산을 지금은 다 거의 지리산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산을 방장산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방장산이다 하고 또 오래된 이름으로 두류산이다. 두류, 백두에서 흘러 내려와서 여기서 불뚝 매쳤다 그래서 두류, 백두에서 흘러온 백두대간에 끄트머리에 솟아 오른 산이다 두류 그리고 지리산, 산 하나에 이름이 세 가지가 있어요.

우리는 백두산을 백두산이라고 하는데 중국쪽에서는 장백산이야 거기는, 같은 산인데 한쪽에서는 장백산, 한쪽에서는 백두산이라고 한다고 마찬가지고 시내산이라고도 하고 호렙산이라고도 합니다.

세일산도 어려운 말인데 세일은 검다 그런 뜻이에요. 여러분, 최근에 미국 경제가 아주 휘청거리다가 갑자기 살아난 게 옛날에 석유를 캐먹고 거기는 석유 틀렸다 하는 지층이 있는데 그 층을 세일 층이라고 해요. 모래층들이 있는데 여러 층이 있다가 갑자기 모래층이 시커먼 그런 층이 있습니다. 원유가 모래에 빼어 묻어가지고 시커멓게 보이는 층이 세일 층이라고 그래요.

세일석유를 캐내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겁니다. 거기다가 어마어마한 물 폭탄을 쏘아 넣어가지고 세일 층에 있던 기름하고 모래가 엉켜 있다가 물 폭탄 가지고 기름이 분리되는, 모래에서 분리되고 물에서 분리되고 떠 오르게 해서 채굴하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는 거예요. 얼마나 그 양이 많으냐하면 미국경제가 살아날 만큼 그렇게 어마어마한 석유가 새로, 옛날에 세일 층이 나오면 시추공을 박아 내려가다가 틀렸다. 여기는 모래층이라서 석유가 모여 있는 곳이 없어 하고 때려치우고 가버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추출해내는 기술을 개발한 겁니다. 미국이 대박이 터진 거죠. 그때 그 층을 검다라는 말을 세일이라고 그래요. 세일산도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에서족속이 있던 페트라가 있는 그 금방 산맥에 약간 관목들이 있습니다. 관목은 대게 나무 굵기도 요 정도 굵기도 안돼요. 키도 요정도 밖에 안 컵니다. 이런 걸 관목이라고 해요.

그리고 대가 한 개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수 십 개씩, 수백개식씩 다발식으로 올라오는 것을 관목이라고 해요. 진달래, 개나리 다 관목에 속합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편백나무 큰 거는 대공이 한 개 올라가면서 10미터 이상 올라가는 것은 교목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어떤 나무는 어중간한 것이 있습니다. 관목이라고 봐야 될지 교목으로 봐야 될지 어중간한 것이 있으나 관목은 큰 나무가 아니고 그냥 다발형으로 한꺼번에 여러 수백 개가 쏟아 올라가지고 그런 나무가 있어가지고 먼 곳에서 볼 때 일반산은 허옇거나 아니면 검붉어요. 나무가 없는 산은 그의 적갈색으로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나무가 있어가지고 먼 곳에 보면 나무가 녹색을 띄고 있거나 한데도 실제로 가보면 녹색보다 더 회색 가깝게 되어가지고 멀리서 보면 검게 보입니다.

그래서 산이 검게 보인다 해가지고 세일산, 검게 보이는 산 전부다 세일산이야 그러니까 세일산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고 여기, 저기 검게 보인다 세일산. 그러니까 이 세일산 문제 때문에 시내산이 아라비아 반도로 갔다가 시나이 반도로 갔다가 학자들이 지금도 골치 아파 합니다. 그러니까 세일산이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고 검게 보이는 산이 다 세일산이기 때문에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2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에까지 열 하룻 길이었더라

시내산에서 가데스바네아에 올라오는데 열 하룻 길, 바란 광야를 통과해서 바란 광야 지나서 신 광야 언저리에 가데스바네아가 있으니까 해봐야 열하루 만에 올라온 겁니다.

3 제 사십년 십일월 그 달 초일일에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자기에게 주신 명령을 다 고하였으니

4 때는 모세가 헤스본에 거하는 아모리 왕 시혼을 쳐 죽이고 에드레이에서 아스다롯에 거하는 바산 왕 옥을 쳐 죽인 후라

요단동편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손꼽히는 거대한 왕 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살을 냈어요.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시는 대로 전쟁 연습을 했습니까, 특별 무기가 있습니까, 또 무술, 전술, 전략이 있는 것도 없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이 두 왕이 작살났다고요.

두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 금방 여리고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전달되었을 거란 말입니다. 나중에 여리고 기생 라합의 말을 들어보면 ‘너희에 연고로 우리의 성 백성들의 간담이 녹아 버렸다’ 간하고 쓸개가 다 녹아 버렸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신경전을 벌인 거죠. 어마어마한 소문이 들리게 해가지고 여리고 사람들의 간이 졸아들어가지고 아예 싸워볼 엄두도 못 내게 이렇게 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심리전도 한다는 거예요.

벌써 40년 전부터 들려오는 소식이 뭐냐 하면 바로왕의 콧대를 꺾어서 10가지 재앙으로 애굽이 묵사발이 되었다. 그리고 홍해 바다를 마른 땅처럼 밟고 건너왔는데 그 물이 합쳐져서 애굽 군대가 그냥 다 수몰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말렉을 쳐부수고 미디안을 쳐부수고 바산 왕 옥 아모리왕 시온을 작살냈다. 그러니까 파죽지세로 올라온 거죠.

어떤 민족도 이상한 민족에게 상대해가지고 이길 어떤 민족이 없었다. 이런 소문이 전부 여리고를 통해가지고 기생 라합을 통해가지고 오는 사람, 가는 사람에게 다 전달되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심리전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납자손 이라든지 이런 사람들보다는 바산왕 옥이나 아모리 왕 시온이 작았는지 몰라도 철 침상을 쓰고 있었는데 키가 3미터쯤 그러니까 이 사람도 골리앗과 비슷합니다. 이런 것을 두 사람을 쳐서 죽인 후에 그러면 설교가 먹혀들어간다고요. 왜냐? 가나안 땅에 40년전에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땅에 아납자손이 두려워서 못 들어갔던 사람들인데 요단동편에서 바산왕이나 아모리왕 시온을 잡아 작살되었잖아요. 이것 봤지, 시범 케이스로 이 두 왕이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 앞에 하나님 앞에 거들 난 것 너희가 봤느냐, 그때 하면 씨가 먹히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 사람들이 일본사람을 왜 무시하느냐 축구하고 배구 다 이겨버렸어요. 야구까지, 축구, 배구, 야구 이번에 다 이겼죠. 아니 어제 밤에 누가 고함을 질렀어요? 제가 밤늦게까지 11시인가, 2시인가 잘 모르겠는데 책을 보다가 책을 가슴에 얹어 놓고 잠이 들락 말락 했는데 창가에 누가 박수하고 만세 했는지, 할렐루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여성소리였는데 누가 했는지 범인이 누구냐? 우리 창가까지 들리는 거예요. 제가 잠이 깨어서 이게 뭐야 해서 밤에 가 볼 수도 없고 컴퓨터를 켜보니까 한국이 축구도 이겼다는 거예요. 보니까 축구만 이긴 게 아니고 야구도 이겼다 네요. 일본의 자존심이 야구인데 한국야구가 3:1로 이겨버렸어 거기다가 축구까지 이겨 놓았네. 그러니까 고함지를만한 거죠.

우리가 보통 겨우 축구 이런 것 가지고 이겨놓고는 일본 전체를 무시해도 괜찮은 줄 아는가 봐, 여러분, 일본이 우스운 나라가 아닙니다. 인구만 해도 1억2천400만 우리 배가 넘어요. 그리고 국민소득도 우리 배 가까이 되고 기술력으로 하면 우리가 휴대폰 하나만 한국이 앞섰지 아무것도 일본 앞서지 못해요. 그래놓고도 맨 날 거저 한국 사람은 일본을 무시하면서 축구한번 이겨놓고도 70년 전에 이 사람들이 항공모함을 만들어서 미국하고 맞장을 뜨겠다 이런 나라가 일본이라고 어떻든 저도 별 수 없이 한국 사람인지 꼭 일본하고 싸우면 이겨야 돼 그렇죠. 축구 역사도 야구 역사도 일본이 앞섰다고요. 그리고 미국에 선수를 내보내는 것도 대단하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사람은 무조건 일본을 이겨야 돼.

제가 오래전에 성지에 갔을 때 터키를 갔는데 터키하고 앙숙이 누구냐 하면 그리스인 거예요. 터키는 인구가 8,000만 정도 되고요. 그리스는 1,000만 밖에 안 돼. 인구수가 8분의 1 밖에 안돼요. 그런데도 축구를 하거나 하면 그리스가 더러 이기고 터키가 지는 거예요. 터키는 이겨도 당연한 것 밖에 안 되고 지면 온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터키 선수들은 그리스하고 붙으면 선수들이 얼마나 고민 하는지 원형탈모증에 빠지는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이겨놓고 자신만만 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산왕 옥이나 아모리왕 시온을 때려 죽었기 때문에 용기백배하는 거죠. 그때 모세가 설교를 하는 겁니다. 5절

5 모세가 요단 저편 모압 땅에서 이 율법(律法) 설명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일렀으되

저는 이런 말이 번쩍한 거야, 아~ 율법 설명한 거구나 이게, 율법 설명이 설교다 설교. 이래서 신명기를 보는 눈이 번쩍 열렸던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6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서 거한지 오래니

호렙산에서 1년 있었거든요.

7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나니

하나님께서 허락한 거는 이정도야, 블레셋 땅하고 애굽땅 사이에 거기에 보면 애굽시내라는 조그만한 와디라는 곳이 있어요. 와디라는 말은 우기에는 물이 넘치는데 우기가 아닌 1년에 8개월, 10개월은 바짝 말라있는 그런 곳을 와디라는데 거기에서부터 유브라데 강까지 그 쪼갠 모든 땅은 하나님이 허락한 겁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지도 놓고 본데로 그렇게 많이 하나님께서 허락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없고 불순종하므로 조금 밖에 차지하지 못해요.

허락한 것만큼 다 누리도 못하고 차지하지도 못하고 오늘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을 웃을게 아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한 말씀 66권 다야, 이것 다 차지할 수 있다고, 다 누리고 하는데 요절 몇 절 이외는 안 봐, 이스라엘 백성보다 우리가 더 못해요. 진짜 로마서, 갈라디아스 이렇게 밖에 안보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엄청난데 너무 스스로 너무 위축되고 스스로 졸아져가지고 누리지 못하고 있고 안타까운 거죠.

8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줄을 그 봐요. 들어가서 얻어라. 전에는 제가 이 본문을 설명할 때 제목을 모세의 고별 설교라고 하지 않고 ‘들어가서 얻어라’ 사라는 것도 아니고 ‘ 들어가서 얻어라’‘차지하고 누려라’ 이런 말씀인데

9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는 홀로 너희 짐을 질수 없도다

10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니와

11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인구가 천배나 많아질 수도 있고 또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12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무거운 짐과 너희의 다툼을 담당할 수 있으랴

13 너희의 각 지파에서 지혜와 지식이 있는 유명한 자를 택하라

모세하고 짐을 함께 나누어질만한 사람을 찾아내는데 첫째, 지혜가 있어야 돼. 지혜만 있어서는 안 되고 지식도 있어야 돼요. 지금은 사람들이 학교에 가서 그의 같은 과정을 놓고 계속 사교육까지 동원해가지고 들들볶아 되니까 누구든지 나중에 지식을 쌓게 되고 해요. 문제는 지식을 상당히 쌓았는데도 지혜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그래서 지도자가 되려면 지식은 기본이고 남보다 나아야 되니까 지식은 기본이고 지혜가 있어야 돼. 지혜와 지식 둘이 겸전해야 되는데 어떤 사람은 지식은 있는데 그 지식을 써먹을 수 있는 지혜가 없어요.

우리고향 가면 우리 동네 못가서 밑에 보면 불교 선원을 만드는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인데 초등학교가 있는 그 동네에 이름이 ‘허수택’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리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그때 대학을 나온 사람이니까 그 시대에는 대학을 나온 사람이 산청군내에 몇 손가락 밖에 안돼요. 그 정도로 학벌이 다 낮을 때인데 그 사람은 대학을 나온 거야, 대학을 나왔는데요. 지식과 학년과 학벌을 가지고 아무것도 해 먹은 게 없어요.

그 골짝 사람들이 허수택이가 공부한 대학은 허택이다. 수자 빼버리고 허택이다. 지혜가 없으니까. 어떤 사람은 댓글 배워서 말글로 써 먹는 사람이 있어요. 지혜가 있어가지고, 말글을 배워서 댓글도 안 되게 그러니까 지혜와 지식이 함께 있어야 되는데 적어도 우리가 교회 목회자거나 장로님들이거나 지도자, 목회자와 함께 짐을 짊어져야 될 사람은 지혜도 있어야 되고 지식도 있어야 돼요.

단지 교회에서 열심이다 그것만은 안돼요. 지혜도 있고 지식도 있고 두 가지를 겸전해야 백성을 지도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거는 지금 오늘 우리에게 있는 이야기가 언제 적 이야기냐 하면 3,424년 전 이야기야, 모세가 설교한 날이 지금으로부터 3,424년 전 그때도 지도자가 되려면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돼요. 그때는 다 일반적으로 학력이 없잖아요. 없는데도 지혜와 지식이 있어야 되는데 지도자가 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전부 지식들이 거의 한국이 평균적으로 대졸들인데 이런 사람들 세계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당연히 지식도 있어야 되고 덕망도 있어야 재덕을 겸전해야 된다. 그런 말도 있어요.

내가 그들을 세워 너희 두령을 삼으리라 한즉

14 너희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당신의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다 하기에

15 내가 너희 지파의 두령으로 지혜가 있는 유명한 자를 취하여 너희의 어른을 삼되 곧 각 지파를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과 패장(牌長)을 삼고

16 내가 그 때에 너희 재판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너희 형제 중에 송사를 들을 때에 양방간(兩方間)에 공정히 판결 할 것이며 그들 중의 타국인에게도 그리할 것이라

17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 말 것이며 스스로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거든 내게로 돌리라 내가 들으리라 하였고

도대체 자체적으로 지방법원, 고등법원에서 안 되거든 대법원으로 올려라 모세가 마지막 판결을 하겠다. 이렇게 한 겁니다.

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하였느니라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에서 발행하여 너희의 본바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그러니까 아모리 족속이 커져 있는 영역이 굉장히 넓었던 것 같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 오는 길에도 아모리 족속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든요.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 앞서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회보케 하자 하기에

23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둘을 택하매

백성들이 여럿이 주장을 하니까 그만 모세가 넘어간 거라, 이거는 모세만 아니라 저도 별수 없을 것 같아요. 저도 여러분 의견보다는 하나님 말씀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 대원칙은 그래요. 대원칙은 그런데 막상 여러분이 다 대들면 저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성도들이 하는 대로 하지 않겠나.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도 아니고 패역한 사람도 아니고 하기 때문에 왜 여러분 의견을 존중하냐면 내가 받은 말씀이 절대적이라면 여러분 숫자에 밀리지 않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제가 받은 내 양심에 비춘 것 하고 여러 사람이 비춘 것하고 둘 다 하나님 비췄다면 제가 틀릴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 신앙 양심에 하나님 뜻이다 하고 믿으면 제가 끌려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를 때 목회자의 고민이 있습니다. 분명히 성경 말씀이 이렀는데 성도들이 다 이렇게 하자니 하니 내가 어찌하리오. 고민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모세가 이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들어가서 얻어라, 두려워하고 주저 하지 말아라 했는데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꼭 정탐꾼을 보내가지고 어느 길로 올라갈지 먼저 답사한 후에 우리가 그 보고를 들어보고 판단을 하자 이렇게 할 때 모세가 그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했는데 실수했다는 겁니다.

그냥 하나님 믿고 들어 가 했으면 40년 세월 낭비하지 않고 벌써 되었을 텐데 그때 모세도 백성을 따라 가버렸는데 하나님께서는 “너 왜 백성을 따라 했느냐” 이렇게 말하지는 안했어요. 그만한 것 가지고 하나님께서 따지고 그렇지는 안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백성의 말을 들은 것이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도자라는 사람이 절대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사실이에요. 여러분 사무엘 때 봐요. 사무엘이 볼 때 사무엘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중간에 서가지고 보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왕이시고 너희에게 왕이 있으면 골치 아프다. 왕이 세금도 내라 그러고 예쁜 딸 빼앗아 갈 것이고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막 졸라서‘ 아닙니다. 우리도 왕이 있어야 되겠나이다.’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숫자에 허락해요. 왕을 줘놓고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은 거야, 이런 일이 항상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우리가 주장을 안해야 여러분이나 저나 주장을 안 하고 좀 조용히 하나님을 기다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자꾸 주장을 하게 되면 저도 미음이 강심장이 아니거든요. 여러분이 보기에 고집불통으로 보이나요? 저도 마음이 약해요. 그런데 워낙 여러 사람이 덤비면 할 수 없는 거죠. 나중에 후회할 값이라도 가자는 대로 가볼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에 보면 바울은 하나고 바울보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은 여러 수십 명, 수백 명이야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하느냐, ‘나는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뿐만 아니라 죽을 것도 이미 각오했다’ 하니까 말하기를 거쳤다. 그런 말이 나와요.

그래서 어느 정도 자기 의견을 개진하거나 좋은 아이디어를 재안할 수 있으나 주장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제안은 하되 주장은 하지 않는 자세, 그 정도에서 그칠 줄 알아야 돼. 끝까지 사람들의 의지나 고집을 가지고 관철시켜 놓고 나면 또 그 일이 추진되었을 때 뒤끝이 안 좋은 수가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다른 표어 우리가 아무것도 안하고 사람이 주장하지 않는 교회로 그 정통을 꽤 오랫동안, 한 2~30년 지켜오고 있습니다.

23 내가 그 말을 선히 여겨 너희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둘을 택하매

24 그들이 앞으로 가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25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회보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 가기를 즐겨 아니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얼마나 하나님 기분 나쁘겠어요. 멸하려고 불렀다고, 하나님을 나쁜 하나님으로 고약한 하나님으로 자기들을 헤치고 죽이려고 하는 하나님으로 이렇게 하니까 여러분, 우리 생각에 이런 철딱서니 없는 이런 백성을 그 큰 하나님께서 미워가지고 그걸 노여워하실까 싶죠? 그 큰 하나님께서 철딱서니 없는 것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화를 내시고 할 게 뭐람~ 하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화가 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멸시하거나 무시하거나 나쁜 하나님으로 여기거나 이렇게 하는 거니까 하나님께서 못 견뎌요. 그래서 28절

28 우리가 어디로 갈꼬

줄을 그 봐요. 어디가기는 어딜 가, 그냥 앞으로 가야 돼요. 이봐요~ 홍해바다가 있거나 아낙 자손이 있거나 내피림이 있거나 호랑이가 있거나 사자가 있거나 우리 갈 길은 앞에 있는 것이지 다른데 있는 게 아닙니다.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들어가서 얻을 지라 하면 가면 돼요.

무슨 말인지 어디로 갈꼬가 뭐야, 어디로 갈꼬가.. 이런 것이 하나님 귀에는 너무 크게 들려요. 우리 같으면 예사로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는 너무 크게 들려요.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로 낙심케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가나안 백성들이 우리보다는 큰데 하나님 보다는 안 큰 거야, 그렇죠.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그것들은 아낙 자손이고 우리는 하나님 자손 아닙니까, 그러면 믿음으로 올라가야죠. 다윗에게 물어봐요. 믿음이 있는 다윗에게 가 물어보니까 아낙자손하고 레슬링하면 보나마다 다윗이 안 됩니다. 그런데 돌멩이 던지면 큰 게 더 잘 맞아요. 조그만 한 것은 잘 안 맞지만 타켓이 큰데 하나님께서 크게 확대했는데 보이기 좋게 아무 곳에 던져도 맞죠. 눈감고 던져도 맞는데 워낙 크니까

그러니까 꼭 믿음 없는 사람은 안 되는 것만 봐요. 이래서 안 되고 마침내 안 되고 결론은 안 되고 안 되는 길은 무진장으로 있습니다. 그렇죠. 안 되는 길은 무진장 있는 거죠. 되는 길은 한길 밖에 없는 수도 있어요.

안 되는 길이 100만 가지 있다 할지라도 되는 길 한 개있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죠? 입장 곤란합니까? 안 되는 길이 100만 가지 있든지 말든지 상관없고 되는 길 한 개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그래서 안 된다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은 시도 자체를 안 해버립니다. 목표가 있으면 반드시 길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 달에 올라간다고 할 때 만 명 중에서는 만 명 다, 100만 명 중에 100만 명 다, 천만 명 중에 천만 명 다, 한 일억 중에서 몇 명은 아니다 길을 찾으면 길이 나온다. 갔다 왔잖아요. 우리 방법을 가지고 사다리를 갖다놓고 달에 대면 잘 안돼요. 사다리를 갖다 놓으면 잘 안 되는데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길을 찾으니까 길이 나온다는 거예요. 29절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그래서 믿음 좀 생기라고 애굽에서 바로왕에게 열 가지 재앙을 보여주었잖아요. 그리고 홍해바다도 어떻게 말이 안 되지만은 다 가르고 건넜고 일부러 해본 겁니다.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봤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도 우리가 능히 타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 믿음을 그런 훈련을 40년 했잖아 그러니까 이제는 바산왕 옥이나 아모리 왕 시온도 타고 넘어봤잖느냐 이렇게 교육을 하는 거죠.

제가 처음에 교회에 나갔을 때 전도사님을 볼 때 참 대책이 없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손에 진 게 없는 거야 그런데 예배당을 짓겠다네요. 뭘 가지고, 기술은 내가 어느 정도 할 수 있어, 목수 일을 배웠으니까 돈이 하나도 없으면서 짓겠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지어 내더라고요. 돈도 없으면서 동네 한복판에 제법 괜찮은 집을 사가지고 사택을 삼고 마당을 밀어가지고 예배당을 지었어요.

믿음이란 게 참 놀랍다. 처음에 저는 하나님 믿고 예수님 믿고 이런 게 아니고 전도사님이 말도 안 되는 손에 쥔 게 무일푼이라 헌금 할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없어요. 할머니들 몇 사람 교회 나오는데 다 해봐야 전기세도 안 나와요.

그리고 교편 잡는 분 두 분이 있는 거야, 이 사람들 둘이서 십일조 하고 하는 모양인데 그것하고도 전도사님 생활비도 안돼요. 외부에서 보조를 받아가지고 전도사님 생활하는데도 그래놓고도 예배당을 짓겠다네 그때 모이는 예배당이 비좁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이 아주 이상하게 지어놓은 공간이라도 그런대로 튼튼하고 깨끗하고 우리가 모이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데 모양새가 이래가지고는 전도가 안 되겠다고 생각했든지 예배당을 짓겠다는 거예요. 지어내더라고요.

그 당시에 제가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예배당을 짓겠다는데 산청읍에 있는 산청읍교회 권사님의 아들하고 자부가 결혼식을 했는데 결혼식 금 목걸이, 금반지 몽땅 가지고 우리교회 교인도 아니야, 우리는 산청 금서교회인데 산청읍 교회 권사님의 아들과 자부가 결혼 패물을 우리교회에 바치는 거예요.

제가 그걸 보고 교회 나온 지 1년 남짓 밖에 안 되었으니까 처음 열심이 있기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교회 예절, 법도, 헌신, 헌금 전혀 개념도 없었을 때인데 어떻든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어요.

자기 예배당 짓는 다면 모르겠는데 어떻게 우리 시골에 있는 개척교회에 예배 짓겠다고 마음만 먹었는데 산청읍교회에 권사님의 아들, 자부가 자기 결혼 패물을 바치나, 그러면서 그때만 해도 순진하고 어린마음에 제가 저도 결혼한지가 2~3년도 채 안되었을 때인데 결혼반지, 목걸이가 있었거든요. 집사람이 해준 게 그런데 안 바치고 갖고 있으니까 굉장히 양심에 찔리는 거예요. 산청읍 교회에 권사님 가정에서 이렇게 하는데 나는 우리교회인데 내가 어떻게 목걸이나 반지를 집사람 목걸이지만 집사람이 믿음이 하나도 없을 때야, 바치다고 하니 그때 집사람이 기꺼운 마음으로 했는지 모르지만 어떻든 바쳤어요.

전도사님 교회 앞에 광고를 한 것 같습니다. 산청읍 교회 권사님 아들, 며느리가 바쳤는데 새신자 노우호선생이 바쳤다. 나머지 집사들이 안 바칠 수 있나요? 그래가지고 어떻든 이렇게 저렇게 하더니 결국은 제법 반듯하게 예배당을 잘 지었어요.

그래서 믿음으로 시작하는 작은 것 같지만은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게 예배당을 지어졌어요. 그 이후로 지리산 지역에 원지 교회 개척하면서부터 해가지고 교회 31개를 개척했는데 예배당 짓지 못한 예배당이 하나도 없어요. 다 지었어요. 다 돈 준비해서 지은 곳은 하나도 없고 전부다 무일푼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다 지어지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거든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 믿는다 하러 가겠다하는 사람은 해내는 거예요. 32절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가라사대

줄을 그 봐요. 여호와께서 너희 말소리를 들으신다. 우리에게 귀를 만들어 주신 분이 자기는 귀가 없어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하는 말하는 것 못 듣겠어요. 여러분이 감사하는 말도 들으시고 틸틸거리고 불평하는 말도 들어시고 다 들으신다고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들으시고요.

제가 설교할 때 제일 잘 듣는 분이 하나님 일거라 그렇잖아요. 귀가 밝아가지고 먼 데 하는 말 다 들어, 중얼중얼하는 것 다 들어요. 궁시렁, 궁시렁 하는 것 다 듣는다는 거예요.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하나님 화가 많이 나셨는데 하나님 진짜 화가 나시면 말하는 데로 다 들어줘 버려요. 어떤 분이 말하기를 하나님 정말 화나시면 기도한데로 다 들어줘 버린다고, 인간이 기도하면 전부 아들만 태어날 거라. 딸들이 하나도 안 태어나가지고 아무도 장가도 못 가죠.

그래서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해도 우리 기도대로 안 들어 주시고 더 좋은 쪽으로 들어주시기 때문에 인류가 유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 마음대로 안 되면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틸틸 할 게 아니라 내 마음대로 안 되면 하나님 마음대로 되는 거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는 거예요.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믿었다는 말하고 순종은 같은 말입니다. 믿었다 하며 순종하지 않으면 믿은 게 아니야

그는 그것을 볼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도 진노하사 가라사대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너의 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케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39 또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치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

40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하시매

41 너희가 대답하여 내게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사오니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올라가서 싸우리이다 하고 너희가 각각 병기를 띠고 경솔히 산지로 올라가려 할 때에

4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싸우지도 말라 내가 너희 중에 있지 아니하니 너희가 대적에게 패할까 하노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3 내가 너희에게 고하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을 거역하고 천자히 산지로 올라가매

경솔하게 산지로 올라가가지고

44 그 산지에 거하는 아모리 족속이 너희를 마주 나와서 벌떼같이 너희를 쫓아 세일 산에서 쳐서 호르마까지 미친지라

45 너희가 돌아와서 여호와 앞에서 통곡하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며 너희에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셨으므로

46 너희가 가데스에 여러 날 동안 거하였었나니 곧 너희가 그 곳에 거하던 날수대로니라

그때 가데스 바네아에서 괜히 정탐꾼을 보내가지고 안 올라가겠다 해가지고 하나님께서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니까 그때는 늦게 사 우리가 올라가 싸우겠다 올라 가지마라 했는데 또 올라간다고 우겨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꼭 하는게 하나님 하고 안 맞아요. 법사에 안 맞아, 하나님께서 너희는 이방인 하고 섞이지 말라고 구약에 그렇게 했는데 기어이 속을 섞여요.

반면에 예수님께서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막힌 휘장을 찢어버리고 이제는 이방이고 뭐고 차별이 없다 하니까 차별하겠다고 지금은 우기는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안 맞는지 여러분, 범사에 이리가자고 하면 이리 가면 될 텐데 꼭 요리 간다고 우깁니다. 요리가자고 하면 요리안가고 이리 간다고

염소 안 몰고 가봤죠? 염소에 고비를 달아가지고 가면 가다가 나무가 나오면 저는 이쪽으로 가는데 꼭 나무 저쪽으로 가버려요. 그러면 돌아오기가 염소가 네발로 당기고 저는 두발로 당기니까 제가 딸려요 염소 큰 거는 제가 감당이 안 됩니다.

꼭 나무 저쪽으로 가가지고 그럼 제가 이리가가지고 해가지고 이리가면 반대 나오면 또 저쪽으로 가요. 양은 고비 없어도 목자 따라 졸졸 오는데 염소는 고비를 가지고 해도 꼭 다른 데로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는 짓이 꼭 못된 염소같이 해요. 걸핏하면 주인하고 붙어보자고 덤비자고 하고 제가 화장실에서 나오면 머리를 들고 뒷다리 두 개를 가지고 꼿꼿이 서요 머리를 비딱하게 해가지고 한 번 박아볼까 하고 촛대 뼈에 박히면 얼마나 아픈지 주저앉습니다.

범사에 하나님 하고 안 맞아요. 그래서 결국 그 사람들은 못 들어가죠. 다 광야에서 죽고 여호수아, 갈렙만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신명기 서론하면 시간이 많이 가고 1장이 길기는 왜 또 길어요 그렇죠. 2장은 저녁시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신명기 1장만 보아도 지난 40년을 회고하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도 안 듣고 모세 말도 안 듣고 고집대로 하려고 하는 못된 염소처럼 꼭 곁길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행여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못 된 습성처럼 하나님의 말씀 반대로 가는 누를 범치 않게 하시고 순종하는 자식처럼 순한 양처럼 하나님 뜻을 쫓아 순적이 따라가는 그런 선량한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항상 믿음과 소망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을 가지고 주님을 온전히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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