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창세기 8장 1 ~ 5절)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창세기 8장 1 ~ 5절)
  • 김용창
  • 승인 2018.06.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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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 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우리 지난 시간에 창일한 물들이 그냥 위에서 비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비가 와서는 오는 쪽쪽 다 바다로 흘러가 버리지 그렇게 아라랏산을 다 넘을 정도 5137m까지 물이 차오른다는 것은 비를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고 또 땅에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말도 있지만은 그것만 가지고도 땅에 샘이 터져 올라와 그것이 어떻게 아라랏산을 덮어 넘어 갑니까 그래서 여기 보면 세 가지를 말합니다. 8장을 다시 잘 보시면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권념하사 말이 어려운 말이죠. 권념하사는 기억하셨다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깊음의 샘, 하늘의 창, 하늘의 비 세 가지가 그쳤다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래서 하늘의 창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잘 안 보던 거죠 깊음의 샘하고 비오는 정도만 생각했는데 하늘의 창이라고 할 때 물을 쏟아 부은 것이고 설명이 다 안 될 정도로 많은 물이 솟아나고 하면서 비도 오고 그렇게 밀려 왔다고 봐요 그래서 지난번에 태평양 쪽에 수도 없이 떨어지는 수천 수 만개의 소행성들이 그로 말미암는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었나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물이 밀려오고 비가오고 하는 것은 40일이고 땅에 창일해 가지고 물이 넘쳐 있는 상태가 150일 정도 150일은 약5개월 정도입니다. 그렇게 있다가 150일 정도 지난 후에 물이 조금씩 줄여 들기 시작 하더라 감한다는 겁니다. 제가 밑에 있는 원지교회를 개척을 시작해 가지고 어려운 가운데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남자집사 가정 2-3가정 정도고 성도수가 오늘 저녁 지금 이 정도밖에 안 되고, 그곳에 땅을 사고 예배당을 지어 가지고 그때가 입당식을 해야 되는데 입당식을 이틀 앞두고 셀마호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그런 대홍수가 났어요. 그래서 그때 건너다니는 원지다리가 떠 버리고 왜정 시대부터 있던 다리가 떠버리고 다리가 없어 진거야 중간에 툭 끊어 진거야. 그리고 상수도도 안 나오고 전기도 끊어져 버리고 전화도 안 되고 그 세 가지 끊어지니까 원시인으로 돌아간 것 같아 더 기가 막힌 것은 지금은 화장실 대부분이 수세식 이지만 그때도 해도 87년도 인가 그랬던 모양인데 퍼는 화장실이 90%야 퍼는, 그때 물이 어디까지 차올라 왔나 하면 여러분 지금 원지 주차장 있는 그곳은 사람 손 펴고 한길만큼 올라 와서 보트를 타고 다녀야 됐고 원지 예배당에도 물이 바닥 마당까지 차오르더니 점점 차 오르는 거야. 그래서 저는 밤새도록 온 동네 사람들을 깨우러 다니고 문 두드려 가지고 물들어옵니다 일어 나십시오. 하고 이렇게 하는데 그때가 밤 수요일인데 밤 11시 정도부터 처음에 비 오는 것은 오후3시부터 시작했는데 1시부터 좀 오다가 3시부터 창대까지 퍼 붓는데 아 정말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남자 청년 하나 보고 당신은 오늘 교회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집에 가지 말고 나하고 같이 여기 교회 같이 좀 있자 그래서 동민들을 깨우러 다녔는데 한참 깨우다가 와서 보니까 사택 축담까지 물이 찰랑찰랑 온 겁니다. 이제 6cm만 더 넘으면 예배당 바닥까지 물이 들어가는 거야 6cm까지 이만큼 남기고 물이 찰랑찰랑 하다가 어차피 처음에는 밑에 책을 빼다가 위에 칸 옮기고 하다가 자꾸 차오르다 보니까 이게 안 되는 거다 사람이라도 살아야지 하고 너무 지치고 허기져 가지고 냉장고에 넣어둔 수박을 꺼내와 가지고 사람이 힘들 때 먹어야 되니까 수박을 꺼내 가지고 기도하고 수박을 먹고 나니까 물이 더 올라오는 게 중단된 거야 그리고 한 한 시간 있다가 나와 보니까 물이 조금 줄어 있어 미세하지만 조금 줄은 거요 진즉에 수박을 먹을 걸, 그래서 이게 물이 감한다는 걸 느꼈어요. 와 계속 올라오면 대책이 없는 거죠. 어느 정도냐 하면 동민들의 집이 거의 다 부엌까지 방까지 물이 들어 와 가지고 피아노가 엎어져 버리거나 그런 경우도 있고 파도가칩니다 진주 진양호 댐에서부터 원지까지 바다처럼 되니까 바람이 부니까 파도가 치니까 보통 상점 앞에 문을 유리문을 해 놓았는데 철썩 하는 파도에 그냥 나가 버리면 부엌에 걸어 놓은 솥이 동동 떠 가지고 나오는 거요 물이 출렁거리니깐 이불이라는 이불은 온 동네 이불이 다 젖었고 가구랑 가구는 다 못쓰게 되었고 원지 양쪽 길에는 물에 젖은 가구 이불 다 꺼내 쌓아 놓은 것이 산더미 같아 양쪽에, 기가 막힌 것은 푸세식 화장실이 다 넘쳐서 방으로 다 들어가 다 넘쳐서 온 동네 사람들이 똥을 갈라 먹는 거야 수도도 없는데 상수도가 원지 다리로 건너가거든요 그런데 이틀 후가 입당식인거야 그런데 전화도 안 되고 그런데 어떻게 해요 노아 홍수 때는 그 보다는 훨씬 더 했겠지 만은 저 평생에 겪었던 물난리라는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꺼라 그리고 그런데도 또 준비해 가지고 물을 길어다가 소방서 차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입당식을 했습니다. 그때 온 사람들이 부산서 오고 노회서 오고 해 가지고 백 몇 십 명이 왔는데 아 물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더라고 그래서 우리 사택 2층에 13평정도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온 동민들이 피난 왔어요. 그래서 이게 노우호방주다 노아 방주가 아니고 교회가 보기보다 높아요. 마을에서 딴 집 보다 높아 가지고 그 곳에는 물이 안 들어 가지고 온 동민들이 와서 피신하고 했거든요 그때 뭐 노아 홍수 때 이야기가 막 실감나더라고 다 전부 모여 앉으면 노아 홍수 때 그때 이야기를 하는 거야 원지사람들은 그때 겪은 사람들이 지금도 있을 텐데 평생 못 잊을 겁니다. 너무 엄청났기 때문에 그리고 물이 물려 갔는데 방바닥에 뻘이 한 뼘씩 다 온 동민들 갈라 먹는 똥하고 똥물하고 함께 뻘이 온 방안에 다 있는데 그 냄새 그야말로 이건 표현이 다 안 됩니다. 수도도 없는데 씻어 내는데 아마 한 달 이상 씻어내고 말리고 했을 것 같습니다. 여기 물이 감한다 말이 나오니까 그때 1시나 1시 반이나 되었을 때 물이 차오르던 것이 그치고 물이 감하고 슬슬 줄어드는 것이 기억납니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오십 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 달 십칠 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우리말로 하면 물이 빠져 버리면서 배가 땅에 닿아 버리니까 좌초된 것처럼 내려앉은 거죠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그러니까 그 물들이 태평양에 있는 물들이 전부 그쪽으로 몰려갔다가 다시 태평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까 그 물들이 얼마나 걸렸겠어요. 그 물이 그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되는 거죠 6절에 보면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7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미워서 내 보냈는지 어떻든 까마귀를 내 보냈는데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그러니까 창이 옆에 우리처럼 눈높이에 창이 있는 게 아니고 창이 처녀 밑에 있어 환기창 식으로 낫기 때문에 바깥세상을 내어 다 볼 길이 없으니까 비둘기를 내 보내 보고 했던 것 같은데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래서 성경에 보면 비둘기를 정결한 새라고 합니다. 아무데나 앉지 않고 그렇게 진흙바닥에, 까마귀 같으면 앉을지 모르지만 까마귀는 썩은 죽은 동물 로드킬 당한 그런 것 다 뜯어 먹거든요 그런데 비둘기는 안 먹는다고 그래서 비둘기를 내 보냈더니 비둘기는 시궁창 같은 뻘에 앉지 못하고 날아다니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거야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10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11 저녁 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감람나무 올리브나무 잎사귀를 물고 왔다 그래서 노아가 아 물이 감하고 그 사이 식물의 잎이 솟아난 걸 본겁니다

12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역시 비둘기의 특성은 귀소성이 있거든요 집을 찾아오는 다른 새들은 그렇지 않은 데 비둘기는 아주 기가 막히게 집을 찾아 와요 오래된 일인데 무디과학필름에서 나오는 필름을 갖고 있는데 좌우 앞뒤 다 막힌 비둘기를 볼 수 없는 상자에 싣고 여기서부터 서울쯤 갔어요. 그곳에서 비둘기를 내어 놓고 풀어 놓고는 자동차를 달려서 다시 왔어요. 왔는데 비둘기가 어떻게 찾아 왔는지 집을 찾아 왔어요. 푸르르륵 날아서 전부 다 들어와 나중에 그걸 알아보니까 비둘기 뇌 안에 자석이 깔려 있어요. 제2철염이라고 금속성이 있어 가지고 정확이 남북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정확이 그걸 잡아 가지고 집을 찾아오는 길을 찾는다는데 북극 새 같은 새도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자기 어머니 때 왔는데 새끼 때 또 찾아 간다는 거야 정확하게 간다는 거야

13 육백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14 이월 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더라

다시 돌아가서 우리가 7장을 보시면 7장 11절에

1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십칠일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는데 육백일년 이월이십칠일에 땅이 말랐다고 된 걸 보면 일 년하고 십일 만에 노아가 마른 땅을 밟아 보았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15 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16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17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19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20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그 악한걸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겁니다.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원죄를 말미암아서 어려서부터 악성이 있기 때문에 인간들이 타락한 후에는 자기 마음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면이 있다 이렇게 아마 인정을 하시고 다시는 내가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는 일을 안해야 되겠다 하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자 여기 처음으로 노아가 단을 쌓았다 단은 제사 드리는 단입니다. 처음 인류 역사 이후에 처음으로 이렇게 단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중에 이것은 12장 7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단을 쌓는 걸 계승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노아에게서 시작된 이 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아브라함 가문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자 그때 방주에서 나왔을 때 노아의 가족들 마음에 그 심정이 어떠했을 것 같아요 노아의 8명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왔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요 하나는 감사 살아남은 것에 대한 감사 또 하나는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 그 준엄하심 이 두 가지 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거죠 세 번째 또 한 가지는 어떻게 살아갈까 어떻게 살아가야 되냐 왜냐하면 삶의 터전이 다 망가져 버리고 일 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덮어서 다 토사가 덥혀 버렸는데 그곳에 논이 있어요. 밭이 있어요. 겨우 이제 눈에 보이는 게 새들 중에 정결한 새 아니면 소나 양 같은 7쌍 이상 싣었으니까 아마 그 방주 안에서도 일 년 이상 지나는 동안 더러 새끼가 나고 했겠죠. 그래서 그걸 먹을 게 없으니까 그걸 이미 먹고 있은 것 같습니다 먹을까 말까 물어본 게 없거든요 없는데 배가 고프니까 먹는 거죠. 먹는걸 보고 하나님께서 먹으라 하고 허락하신 걸로 봅니다. 9장입니다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새로운 세상이죠. 완전히 새 세상이 시작되는데 처음 세상에서처럼 똑 같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겁니다.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3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지금도 이제 고기를 먹는 민족이 있죠. 고기를 많이 먹는 고기를 주로 먹는 몽골사람이라든지 다른 나라 유목민이라든지 그 고기에 피가 배어 있으면 맛이 없다는 거야 저는 맛이 둔감한지 피를 빼는 건지 안 빼는 건지 잘 모르겠든 데 어째든 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피를 빼야 된다는 거야 그래서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5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거죠 왜냐면 그 사람이 그냥 한 동물이다 뭐 아니면 노동력을 상실했다 이런 호프만 식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그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북한사람들 같으면 집집마다 김일성의 형상과 김정일의 형상을 다 집집마다 걸오 놓고 있는 거요 그걸 누가 만약에 가서 때려 부수거나 훼손하면 바로 큰 벌 받죠. 그런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야 그래서 하나님을 공경한다면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도 당연히 공경해야 되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만약에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의 피를 흘렸다 하면 그러면 그 사람도 죽여라 그런 말입니다 사형에 해당한다 하나님의 형상을 훼방한 사람은 살인죄라서 벌 받는 것도 있지만 그것 보다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다 그래서 벌 받는다는 겁니다. 그건 차원이 다르죠. 남의 일꾼 하나 데려갔다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모독하거나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했기 때문에 벌 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성경이 사람의 피를 흘리지 못하게 하는 것 차원이 다른 겁니다. 이 세상 법하고 차원이 다릅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다 세상 사람들 눈에 표준에 잘 났거나 못 났거나 잘 생기거나 못 생기거나 그건 환경 때문에 형질이 약간 차이가 난 것이고 사람이라고 태어났다면 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미워해도 안 되고 저주해도 안 되고 피를 흘려도 안 되고 그래서 내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건 따지지 말고 하나님 형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서 안 되고 공경해야 됩니다. 서로 아무에게도 누구를 욕하거나 그래서 우리가 에베소서를 보면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그런 말이 있어요 장로님 안에도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장로님이 저보다 나이가 한두 살 아래이지만 저가 공경해야 됩니다. 권사님도 마찬가지야 권사님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대하듯이 인격적으로 정중하게 대해야지 뭐 저런 게 있어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이 아직은 성화가 덜 되어서 내 마음에 안들 수 있고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성 때문에 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더러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이 받으시면 우리가 받아야 됩니다. 우리 보다 더 까다로운 하나님도 받으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된 신학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사진이라든지 이런 사진을 누가 땅바닥에 놓고 발로 비비어 문지르는걸 보면 기분이 나쁘겠죠. 우리의 형상을 누가 훼방하고 모독하니까 내가 기분이 나쁜 게 아니겠어요. 우리가 신학교에 다닐 때 전두환씨가 광주에서 피를 흘리게 한 일이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이마가 훌렁 벗어진 그림을 그려 가지고 신학교 마당에서 불 싸지르는 걸 하는 거라 전두환씨가 안 보아서 그렇지 전두환씨가 비록 자기가 죄를 지었어도 자기 형상을 불태우는 걸 보면 모독하는걸 보면 기분 나쁠 것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어떤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때리거나 훼방하거나 욕하거나 저주하거나 미워하거나 피를 흘리거나 하면 하나님이 심각한 죄로 여긴다 하나님을 훼방하는 걸로 그래서 사람은 내 마음에 맞추기 위해서 나온 게 아냐 다 아담의 자손이고 하나님의 형상이고 또 약점이나 결점은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오십 보 백 보라는 겁니다. 내가 누구를 손가락질 해 보아야 우리도 비슷하게 거기서 거기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를 함부로 그렇게 판단해서도 안 되고 누구를 함부로 정죄해거나 피를 흘리거나 해서는 안 된다 원리가 인권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다 이것만큼은 아주 확실히 해야 됩니다. 제가 신학을 하는 중에 이 말씀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피를 흘리는 건 물론 안 되고 대단한 신학이죠. 창세기에 나오는 신학 주제 중에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이 주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학교 가면 수많은 논문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이냐 이것이 왜 중요하냐.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바로 인식하고 바로 쓴 논문이 별로 안 보이는 것 같아요 7절에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遍滿)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그러니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즘에 아이 기르기 힘들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사교육비가 많이 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아이를 안 낳고 하는데 아이를 낳는데 정부가 도와주면 좋겠죠. 도와주거나 말거나 아이를 많이 낳아야 되어요. 우리 어머니 시대에 생각해 보면 지금은 이미 천당에 와 있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럴 때도 아이를 낳아서 7명이나 낳아서 기르고 했는데 지금 세상을 불평하면서 아기를 안 낳는 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언제쯤인가 제가 한번 우리가 어렸던 그 시대의 영상을 찾아 가지고 현대인들이 얼마나 지금 행복에 겨운 삶을 살고 있는지 좀 봤으면 좋겠어요. 정말 힘들었습니다. 우리 어릴 때 살던 삶을 보고 특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 시대의 삶은 그야말로 국민 소득이 100불이 안 됩니다 연간 국민소득이 67불 뭐 6.25당시가 60불 70불 이었어요. 경제 규모가 굶지 죽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하고 살았고 그 전라도 어디에 보니까 굉장한 부잣집이야 부자 집인 데, 우리가 불이 부엌에 불이 잘 빨아들이게 할려면 굴뚝을 높이 연통을 높게 세워야 불이 잘 들어가거든요. 근데 거의 다 굴뚝을 축담 마루 밑에 축담 근방에서 연기가 나요 왜 그렇게 했느냐 하니까 딴 곳에는 사람들이 양식이 없어서 아침 짓는 연기가 안 나는데 자기 집 굴뚝에만 아침밥을 짓는 연기가 나는 걸 가난한 사람이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 그래서 일부러 굴뚝을 높이 세우지 못하고 축담 아래 연기가 깔리게 했다 그렇게 하는 걸 얼마 전에 방송에서 제가 봤어요. 우리는 그런 부자도 안 되어 보았지만 그런 집을 봤거든요 축담 안에 굴뚝이 있는 거요. 연기가 나와서 마당으로 깔려 버리고 이렇게 했는데 그것이 너무 가난해서 아침에 굴뚝에 연기를 내면은 가난한 사람이 그걸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냐 하고 그걸 배려해서 그렇게 했다는 거야.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춘궁기에 굴뚝 이라고. 또 한편은 가난한 사람들은 솥에 앉힐 쌀이 없으면서도 헛불을 때었다는 거라 옆에 있는 사람이 걱정한다고 양식이 없고 쌀도 없으면서도 굴뚝에 연기를 피워서 우리는 안 굶습니다. 하는 걸 또 보여 주었다는 거야 그런 시대가 있었어. 우리가 어릴 때만해도 지금 우리가요 성경에서 그랬잖아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라 정말 지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되어요. 족한 줄 아는 마음 8절에

8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10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한 새와 육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11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그 홍수라는 것은 요즘 나는 이건 홍수도 아니고 그건 비가 좀 많이 온 것이고 우리가 대비를 안 해서 그렇지 이것은 홍수도 아니고 노아 때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을 다 멸절하는 그런 홍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

12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永世)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13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여러분 비 오기 전에 무지개 뜨는 일은 없습니다. 그죠 비가 오고 나서 그 물방울이 빗방울끼리 부딪치면서 수분이 공기 중에 이렇게 있어야 거기 이렇게 햇빛이 비칠 때 비 끝날 때 이제 비 더 안 온다. 하고 무지개 뜨는 것이지 비 오기 전에 무지개는 없는 겁니다. 항상 무지개가 뜨는 것은 비 다 왔으니까 염려하지 말아라 하는 의미로 하나님의 언약의 증표라는 겁니다.

14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된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소위 말하는 무지개 언약이라는 거죠 다시는 홍수를 가지고 인류 전체를 멸절 시키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함이라는 사람은 별로 유명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니까 가나안은 이미 유명하니까 함이 가나안의 아비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홍수 후에 이제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농업 중에 제일 첫 번째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겁니다. 우리 지역은 기후나 풍토가 포도가 잘 안 되는 지방이지만은 포도라는 게 한번 심으면 해마다 따 먹을 수 있잖아요 한번 심으면, 일반 채소나 일부 과일은 해마다 심어야 되는데 포도는 한번 심으면 포도는 해마다 따 먹는데 껍질 채 먹기도 하고 또 고급 당분이 포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껍질에도 좋은 성분이 있고 그래서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그래서 다른 것이 먹을 것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포도를 심어 가지고 포도주를 만들었는데 그것을 많이 마셨던 것 같아요. 취해 가지고 취했다는 것도 노아가 처음 취한 것 같아요 아마도 술 취한 사람이 없는데 취해 봤던 것 같아요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그 뭔지 몰라요 어떤 일은 했는지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마 그 함의 아들 가나안이 어린 아이가 노아의 손주뻘이죠.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래서 자기 할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하체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나 하여튼 많이 노하신 것 같아요 자기가 술 먹어 실수한 것은 생각 안하고 노아가 가나안은 저주했다 그래요 그래서 함이 잘못한 게 아니고 사실은 가나안이 잘못한 건데 함의 아들 가나안이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셈이 뭘 잘한 거야 그래서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저는 노아가 저주한 게 잘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 가나안이란 아이도 잘못한 것 같지만 노아가 술 먹고 실수한 걸 미안해해야지 근데 다 한 노아의 아들이라도 여러분 셈은 뒷걸음쳐 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가려 드릴려고 했는데 어른들의 허물을 가리어 드릴려고 했는데 야벳도 그랬고 함이 가서 덮어 드릴 생각은 안하고 함의 아들 가나안하고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지만 노아가 진노하신 거에요. 진노하신 것은 진노 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손자를 저주한건 잘한 건 아냐 어려서 잘 몰라서 한 것을 큰 저주 받을 일이지 모르겠어요. 또 백인들하고 기독교인들이 실수하는 게 그때 저주 받았기 때문에 가나안 사람들을 항상 잡아다가 흑인들을 잡아다가 종을 삼아도 괜찮다 이런 무리한 주장을 했어요. 옛날에 미국에 있는 청교도 이런 사람들이 그건 잘못된 거야 그건 가나안 한 사람이죠, 저주 받았다 할지라도 그 한사람이고, 한사람에게 저주한 노아가 정당한 것도 아닙니다. 전혀 그런 노아에게 저주 받았기 때문에 흑인들이 못 산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 저주 한 것 하고 상관없는 것이고 저주 그 자체가 정당성이 없다는 겁니다. 저가 볼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목사님들 중에도 설교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지내었고

29 향년이 구백오십 세에 죽었더라

그래서 이때 있었던 일 하나의 난제 중에 속하는데 왜 함이 잘못했는데 가나안이 저주를 받았냐 하는데 함 혼자 잘못한 게 아니고 아마도 함의 아들 가나안이 자기 할아버지 하체를 만졌거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어떤 일을 한 모양인데 그것을 아무 말 없이 함이 보고 그러지 말라고 하고 덮어 주었어야지 다른 형제들에게 고해 가지고 아비의 허물을 퍼뜨려 가지고 이렇게 한 것에 대해서 잘했다고 할 수 없는 거야 한편 그렇다고 노아가 자기 술 먹고 실수한건 생각 안 하고 그 어린것이 가나안이 어떻게 했다고 그것을 저주했다는데 그것은 술이 덜 깬 저주인 것 같애 그건 절대 온당한 저주가 아닌 거야. 그런데 오늘날 또 백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그때 노아가 함을 저주했기 때문에 흑인들은 못 사는 게 당연하다 그것도 잘못 된 거야 여러분 생각해봐요 그 저주가 온당한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이런 실수를 안해야 됩니다. 어떤 해석을 잘못해 가지고 무리한 해석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오래 전에 누가 이 부분을 질문을 했더라고 그때 제가 답을 쓰면서 지금과 비슷한 답을 했었는데 들은 사람들이 새롭다, 자기들은 가나안 저주 받아 가지고 가나안 족속들이 그렇게 타락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는데 성경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잘못해도 아들이 깨달으면 그 저주가 다음 대에 안 넘어갑니다. 그러니까 그런 해석이 무리한 해석이고 잘못된 해석입니다. 오늘 진도는 여기 까지만 하고 10장부터는 이제 민족이 흩어져 가게 되는 장면인데 맨 먼저 야벳 자손 그다음에 함 자손 셈 자손 어떤 식으로 확장 되어 나갔는지를 10장 이후에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기록 되지 않은 것은 다 헤아릴 수 없지 만은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었지만은 또 술을 먹고 실수하게 되었고 실수한 것을 어린 가나안이 뭘 몰라서 했는지는 모르나 적절하지 않은 그런 일이 있었고 그래서 가나안이 저주를 받은 이런 일이 있었지만은 그러나 그것은 가나안 한사람의 저주지 함 자손 전체가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 것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 주옵소서. 또 인류 역사가 이로부터 이제 온 세상을 흩어져 나간 것도 잘 살펴서 오늘 우리가 이 땅에 여기 산청 땅에 발 붙이고 살기 까지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어떠한 어려움과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을 거쳐서 오늘 우리가 여기서 하나님을 알고 성경을 배우고 또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하셨는데 이 모든 이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 소중하게 보존된 생명들이 헛되게 살지 않고 영원히 가치 있는 일에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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