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마지막 설교(신명기 31장 1 ~ 2절)
모세의 마지막 설교(신명기 31장 1 ~ 2절)
  • 김용창
  • 승인 2019.01.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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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마지막 설교(신명기 31장 1 ~ 2절)

1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베푸니라

2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 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오늘이 11월 첫 주니까 우리교회가 시작한지 딱 만1년 되는 날이죠. 1년 되는 날에 오늘 오경이 끝나는 것 같습니다. 오전에 31장, 32장 말씀드리고 오후에 33~34장 이렇게 하면 오경이 끝날 것 같아요.

여기 신명기 31장 1절을 보시면

1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베푸니라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걸 볼 때 31장부터 34장까지도 또 하나의 설교였다. 설교를 신명기라는 다 설교인데 한꺼번에 연달아 한 게 아니고 예를 들면 오전에 하고 오후에 하다든지 오늘하고 또 내일한다든지 이렇게 몇 번에 걸쳐 나누어서 했는데 그래서 신명기 전체가 모세의 마지막 고별 설교이면서 마지막에 마지막, 신명기는 아마도 설교를 4번 정도에 걸쳐 한 것 같은데 4번째가 오늘 이 부분인가 봅니다.

2 곧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일백 이십세라 내가 더는 출입하기 능치 못하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아마 그렇게 되지 않게 나 그런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백세 살기도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모세가 지금부터 3,400년 전 그런 때에 120세를 사셨다는 건데요. 아론은 한 123세정도 그러니까 대게 120~125세, 오늘날도 인생에 수명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람이 건강관리를 잘하면 그의 120세~125세 정도를 살아야 정상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무슨 근거로 이렇게 하냐 하면은 대체로 동물들이란 게 종류별로 다르기는 합니다마는 성장하는 기간에 약 5~6배 산다는 겁니다. 성장기에 비해서 5~6배사는 게 일반 동물들이라는데 사람은 성장하는데 보통 25살, 26살, 여자하고 남자하고 조금 다릅니다마는 남자들에 경우는 25~26살 되면 거의 다 컸다고 봐요.

거기다가 곱하기 5하면 125세 정도 살 수 있다 이런 이론을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모세는 그야말로 천수를 다 누렸다고 이렇게 볼 수 있겠는데 120세, 더는 출입하기도 어렵고 또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 요단강을 건너오지 못한다.’ 이렇게 딱 제안을 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될 것으로 모세는 인식을 한 겁니다.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며

4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8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그런 말이 여러 번 반복되고 있죠. 왜 이렇게 두려워 말라하고 또 놀라지 말라 하면 사실은 두려운 겁니다. 왜냐하면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족속이 만만치 않은 족속이에요. 네피림의 후손들, 아낙자손들 이런 사람들도 봤죠. 또 헷족속이라는 사람들은 진작부터 철기 문명을 발전시킨 그런 아주 강력한 민족이고 해서 가나안 사람들을 정복한 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리 보여준 게 있어요.

첫째는 애굽 왕 바로 왕에게 보여 신하들에게 보여주신 권능을 보여 주셨고. 또 홍해바다를 갈라지게 한 모습이던지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큰 권능이라든지 하늘에서 만나라는 양식을 먹이신 것과 그리고 바산 왕 옥이나 아모리 왕 시온을 싸워서 이긴 것, 미디안을 쳐서 이긴 것, 여러 승리에 경험을 한 후에 너희가 지금까지 경험하고 본 것처럼 요단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기 있는 족속들도 이와 같이 이기게 할 테니까 전혀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며,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이렇게 몇 번이나 단속을 해요.

그래도 두려운 거예요. 여러분, 전쟁에 나가면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어야 되는 그런 경우가 계속 발생할 텐데 어떻게 두렵지 않겠어요. 두려운 거죠. 그러기 때문에 여러 차례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며, 떨지 말며, 놀라지 말라 지극히 강하게 하고 담대 하라. 이런 말을 여러 차례 하는데 나중에 우리가 오늘까지 해서 신명기를 보고 다음 주에 여호수아서를 볼 때 거기도 보면 담대하게 하라 그런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도 전도하거나 혹은 설교하거나 강의하거나 할 때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떨리는 마음도 있고 그런데 막상 사람들을 만나고 진리를 전해보면 사람들 별게 아니에요. 세상에 내 노라 하는 사람들하고 대화해 봐도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진짜 허깨비나 마찬가지라.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떨지 말라, 주눅 들지 말라, 마음을 지극히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라 이런 말씀을 합니다.

9절~13절은 하도 유명한 구절이라서 여러분, 다 아는 이야기죠.

9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11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12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어쩌다가 성경에서 이 구절 신명기 31장 9~13절 이 말씀을 발견하고는 전 목회사역을 여기다 포커스를 맞추어서 이 말씀을 순종하는 그런 입장에서 사역을 해 왔습니다. 즉 이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세가 마지막 유언처럼 마지막 설교에 마지막 부분을 말씀하시면서 이걸 다 기록을 해서 레위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 민족 지도자급 사람들에게 위탁하기를 ‘너희가 가나안 땅 들어가거든 매 칠년마다 도래하는 정기 면제년’ 다른 말로는 안식년입니다. ‘초막절이 되거든’ 초막절이 우리 지금 계절로 하면 두 주간 지나갔습니다.

9월 말에서 10월 중순 정도에 해당되는 돼요. 그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또 다른 말로는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1년 농사를 다 지었어 저장하고 나면 초막절이 되는데 그때가 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도를 따서 포도즙을 짜고 그것을 포도주를 담그고 나면 1년 농사가 끝나는 거예요. 그때 이스라엘 백성을 다 물러 모아서 초막절 혹은 장막절, 수장절 명절을 지키는데 히브리 달력으로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지키는, 8일간을 지키는 겁니다.

한 주간을 지키고 제8일도 성회라 해서 노동하지 못하게 하고 온 백성을 남자, 여자, 유치원생, 외국인까지 한자리에 불러 모우고 율법 전체를 다 낭독해주고 또 설명해주고 깨닫게 해서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해라.

저는 이 말씀을 듣고는 너무 큰 충격이 되어서 ‘이걸 해야 되겠다.’ 그런데 7년마다 한 번씩 하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되어있거든요. 그동안에 지난 몇 천 년 간 그의 다 안 한 거죠. 당시 이 말씀을 순종해야 될 사람은 여호수아하고 당시에 장로들과 제사장들이 이 집회를 했어야 되는데 여호수아가 안 했다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이 집회를 했다면 그의 사역기간 동안에 3번 정도는 해야 돼요. 여호수아가 통치한 지 20년 되니까 7년에 한 번씩 하면 3번을 해야 되는데 한 번도 안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 암흑기로 접어들게 됩니다.

성경을 모르면 그냥 종교 암흑기처럼 됩니다. 중세 천년이 왜 암흑기냐? 성경을 카톨릭이 보지 못하게 했거든요. 그러니까 암흑기가 되는 거예요.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성경을 보느냐? 물론 보죠, 보고 만져도 보는데 읽거나 가르치지 않아요. 읽어도 제대로 읽는 게 아니고 부분적으로 요절 몇 절만 읽지 한 주간 동안에 전체를 다 읽고 다 설명하고 이렇게 하는 집회는 일반교회에서 그의 안합니다.

그래서 이런 걸 안 해도 아무 일 없다고 생각을 하는 가 봐요. 제가 볼 때는 아무 일 없는 게 아니야, 그때나 지금이나 중세 때나 아무 때든지 아무리 예배당을 화려하게 짓고 조직을 근사하게 하고 요란하게 의식을 행하고 해도 성경을 전체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암흑기가 옵니다.

최근에 신학대학 교수 한분이 아주 담대한 말씀을 하고 나서 책을 썼는데 행위 없는 구원하고 물음표를 붙인 책이야, 행위 없는 구원, 행함인지, 행함 없는 구원 아마 한 것 같아요. 물음표를 붙이고 책을 썼는데 그걸 가지고 어떤 다른 목사가 와서 인터뷰를 해서 영상이 올라와서 인터뷰하는 목사는 제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목사이지만 일단 그 분들이 겨우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건 만해도 큰 발전이야.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구원 받느냐? 하는 문제를 다룬 책인데 그 책이 나오자 수많은 목사들이 그 교수를 은근히 반박하고 그런 분위기죠. 그리고 미국목사 한분, 영국목사 한분, 한국목사 또 한분 몇몇 사람하고 인터뷰를 하는 건데, 행위 없는 믿음은 가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가짜다 이런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거예요.

제가 볼 때 그래도 미흡 해, 믿음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믿음이란 단어가 원래 ‘에무나’였다. 그러니까 믿는다가 동사형이 아니라 명사형이나 형용사형이었다 할 때 믿음으로 하는 것은 성실함으로라는 개념 자체를 아직도 이분들이 안 갖고 있어요.

그래서 그 분하고 대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일부러 에스라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교수님들하고 다음분도 다 그래요. 왜 이런 문제가 오늘 한국교회에 복음주의라는 게 잘못된 걸 뻔히 알면서도 왜 교수들이 말 안 하느냐? 말하면 잘리니까 말 안한다는 거예요. 그런 말 함부로 하면 교단에 큰 교회가 신학대학에 이사급으로 있고 하면 이사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잘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밥그릇 때문에 진리에 대해서 입을 닫아버린다는 거예요. 뻔히 교회가 잘못 가르치는 걸 알면서도 교수 중에 아무도 말 안 한다 ‘자기는 그래도 말한다.’ 하고 나왔는데 대단한 용기죠. 그런데 제가 볼 때 그 교수님에 주장도 미흡한 거예요.

여러분, 수년전에 『행하여 완전 하라』는 책을 쓴 적 있잖아요. 그러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 사랑 없는 믿음, 성화되지 않은 믿음은 죽음믿음이고 거듭나지도 않는 믿음이고 가짜 믿음인데 여기에 대해 말하는 목사도 없고 교수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분이 한분 깃발을 들고 나오니까 몇 몇 사람이 동조하고 하는 이런 모습을 봅니다. 저는 그렇게 문제를 제기하려면 끝도 한도 없어요. 아시는 대로 제가 지금 씨름하고 있는 거짓방언 문제 심각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교수 중에 한분에 문제를 들고 나오는 분이 없어요. 왜? 잘리니까. 저야 잘려봐야 지리산에 있을 테니까.

제가 2014년에 그 문제를 들고 나왔는데 지금까지 교수님 중에 관심 있어 하는 분이 두 분이 나왔어요. 두 분이 지금 현역교수 중에 관심 있어 하는 분이 나온 거예요.

대체로 노목사 주장과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는 쪽으로 답변을 썼더라고 보니까 그 뿐 아닙니다. 설교를 여기 했다, 저기했다 말이 안 되잖아요. 하나님 말씀 66권을 맡았다면 창세기부터 계시록을 안 빼먹고 해야죠. 기록된 원 목적대로 해야죠.

그런 것도 한국에 많은 신학대학이 있고 신학대학에 설교학 교수가 있는데 설교를 지금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처럼 해야 된다 이렇게 말한 사람도 없고 설교를 이렇게 해서 성도들이 알아듣겠나 하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없는 거예요.

어떻든 성경을 초막절에 한 주간 만에 다 읽고 다 가르쳐라 했는데 그때는 오경뿐입니다. 다해봤자 오경, 많아야 오경뿐인데 지금은 세월이 흘러 자꾸 성경이 늘어나고 늘어나 66권까지 되었으니까 초막절 한 주간에 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죠.

그래서 참 아쉽기는 한데 산업사회에서 한 주간, 한주간도 아니죠. 4박 5일 내기도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침 5시부터 밤 11시까지 무리해서 이어 왔는데 아시는 대로 올해 41년차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와 같이 비슷하게 성경강좌도 하고 또 대하설교도 하는 분들이 제법 늘어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많이 미흡해요. 40년을 외치고 했는데 어떻게 따라오는 사람이 많지 않는지 애가 타는 겁니다.

14절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왔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렀더라

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잔다는 거는 죽는다는 말이죠.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 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 거죠.

17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18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하나님이 정말 안 계시는 것처럼 그렇게 전혀 나타내지 않을 거를 말씀하십니다.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노래, 이따 보면 모세가 노래를 썼는데 노래 가사가 굉장히 길어요. 그렇게 길어가지고 다 기억하고 노래를 불렀는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든 이야기나 말과 설교는 한 번 들으며 잊어버리기 쉬운데 노래를 지어서 곡을 붙어서 노래로 부르게 되면 오래 간다고요.

일전에도 말씀드렸는데 타슈겐트라든지 알마타, 비스께끄, 중앙아시아 이런 이슬람권에 흘러간 조선족들이 있어요. 우리말 다 잊어버렸어요. 이민 2~3세 되니까 한국말 단 한마디도 못 하는 거예요. 못하는데도 아리랑은 할 줄 알더라고, 노래는 오래가는 거예요.

이야기라든지 설교는 오래 안가지만 노래를 해놓으면 오래가는데 하나님께서 일부러 ‘노래 하나를 써가지고 이 백성에게 가르쳐 줘라.’ 그래서 이 노래를 써서 가르쳐 주면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 잡혀갔을 때 거기서 시온을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생각하며 흥얼, 흥얼하던 노래를 부르다가 ‘그 노래대로 우리가 되었네. 노래 가사 대로 되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나서 내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다 염려해 놓은 거예요.

20절

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배부르고 살찌는 게 문제 야, 하나님 늘 걱정은 우리가 굶거나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고 항상 먹고 배부르고 여유가 생기면 하나님을 배반한다는 거예요.

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노래를 써서 가르쳤다는 겁니다. 기억 방법 중에 노래를 만들어서 기억하는 게 참 좋아요. 신학교 다닐 때 영어로 성경 구절을 암기해야 되는 게 있는 거예요. 유명한 구절 다 영어로 암기하라. 말로 하니까 잘 안 외워져요 그래서 곡을 붙여서 암기하니까 지금도 암기되는 그런 구절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래라는 것은 중요하다는 거예요.

곡이 있고 운율이 있고 장단이 있고 하면 기억이 잘 된다는 거죠.

23절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하고 모세가 또 염려를 합니다.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모세가 지었던 노래, 그 노래 이름 제목을 신명기에 나오는 신명가다. 노래를 또 부르고 또 불러가지고 계속 반복하여 불러서 완전히 익숙해진 노래가 되어서 나라가 망한 후에도 노래만큼은 기억에 남게 하려는 그런 의도였습니다.

30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에게 이 노래의 말씀을 끝까지 읽어 들리니라

노래 가삽니다.

제32장

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

요즘 여러분들은 아마도 풀숲 길을 걸어가면서 풀에 이슬이 아주 함초롱이 맺혀있는 그런 걸 아마 겪어 보기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어릴 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소를 몰고 길가로 나가면 이슬이 얼마나 맺혀 있는지 풀잎 마다 아주 한가득 맺혀 있어서 거기다 신을 신고 지나가면 신이 발목에 있는 바지자락까지 다 젖을 정도로 이슬이 그렇게 다 맺혀 있습니다.

비가 온 것이 아닌데 이슬이 그렇게 많이 내려요. 그리고 이슬이 햇빛이 비치면 굉장히 마치 보석처럼 영롱하게 비치는 그런 이슬이라는 게 그 땅을 또 적시고 해서 식물들이 잘 자라게 하는 그런 건데 하나님에 말씀이 마치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 다.

어떻게 시적으로 이렇게 말을 하는지요.

3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眞實無妄)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5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6 우매무지(愚昧無知)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7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8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대로 각 민족의 수를 정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이 가서 한 민족을 지도하도록 이런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 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여수룬은 이스라엘을 아름다운 이름으로 시적으로 표현한 겁니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마귀에게 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어로 세드라는 말인데 구약 잘 안 나오는 말입니다. 악마들, 세딤이라고 해서 이것을 악마들에게, 귀신들에게, 마귀들에게 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19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한 연고로다

20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무신하다는 것은 믿음이 없는, 에무나가 없는, 성실함이 없는, 정직함이 없는 자녀임이로다.

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을 쓸 때 이 말씀을 기억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아니 다른 신을 섬겨가지고 하나님을 질투하게, 시기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꼭 같이 하나님 백성이 아닌 백성을 끌어 안아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을 하는 걸로 인식을 한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안겨오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밀어버리고 이방인이 우리들을 하나님 끌어안으시고 이걸 휴거되게 했다가 나중에 주님과 함께 이 땅에 재림하는 걸 보게 되며 그때는 유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하겠죠.

그걸 사도 바울이 신명기 32장 21절에 있는 말씀을 기억하고 로마서 11장에서 그런 말씀을 쓰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기쁘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요. 측량할 자가 없도다.’ 아주 탄복했던 그런 근원이 되는 말씀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22절

22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23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24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 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

26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

27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너무 패역하기 때문에 완전히 다 흩어서 멸망하게 하기는 할 텐데 그때 대적, 마귀나 귀신들이 그걸 가지고 격동할까 그게 염려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28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모략, 에짜르라는 지혜, 타분이라는 지식,하캄이라는

29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그렇게 안됐다 그 말이죠.

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31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32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34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 보수(報讐)는 내 것이라

보수는 원수 갚는 것을 말합니다. 원수 갚는 것은 내가 갚는다.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3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

그들이 다른 신을 섬겼다면 어려울 때 그 신들 보고 한번 돕게 하라 해봐라

39절

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다른 신을 섬겨보다가 충분히 실망을 한 후에야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하게 될 걸 미리 내다 보는 거죠.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40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우리는 하나님은 늘 사랑에 하나님, 은혜로운 하나님, 자비로우신 하나님, 여호와 라파,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래, 이런 것만 보았지 여호와는 보복 하신다 이런 것을 잘 안 보는 거예요. 여호와는 질투하신다 이런 것도 잘 안보는 거예요.

성경에 여러 곳에서 하나님은 보복하시는 하나님이다. 나훔서에도 나오고 성경에 여러 곳에 여호와는 보복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42절

42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하시도다

43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 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까지가 노래가사의 끝입니다. 노래 가사가 꽤 긴 노래죠. 마치 우리 같으면 판소리 한마당같이 긴 노래입니다. 그래도 이걸 곡을 붙여 놓으면 안 잊어버리고 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44절 눈의 아들 호세아, 여호수아죠.

44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들을 때만 해도 설마 우리가 아무리 믿음 없기로 서니 그렇게까지 될 리가 있으랴 아마 그들 중에 아무도 인정 안 했을 겁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가 애굽에서 하나님 믿어 왔잖습니까, 절대 하나님 배반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했을 겁니다.

여러분, 베드로 아시죠. ‘내가 죽는데 까지 같이 가도 절대 주를 배반치 않게 나이다.’ 예수님 말씀이 뭐요 ‘네가 오늘 밤에 닭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배반하리라.’ 여러분, 인간이 얼마나 약한지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절대로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제일 먼저 배반해요. 인간이 약하다는 거예요.

45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이 말씀을 꾸준히 지키면 너희가 그 땅에서 오래 오래 장구하게 살 것이고, 이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너희를 버린다. 그런 말씀이죠.

48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9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그기에 한 마디 더 하면 바라만 보라. 들어가지는 못해요. 바라만 보라. 들어가지도 못 할 바에는 바라보지도 못하게 해야지 뭐한다고 바라보라 했는지.

그기에 성지순례 가면 요르단 땅에 비스가 산이 있습니다. 다 올라가보면 모세의 기념 예배당이 서 있고 거기서 보면 서쪽을 보면 가나안 땅이 굉장히 멀리까지 보입니다. 꽤 높거든요. 서쪽을 바라보면 가나안 땅이 보이고 북쪽을 바라보면 길르앗 땅이 쭉 헤르몬 산까지 보이는 그런 곳인데 번번이 가서 진짜 잘 안보여요.

항상 이스라엘 땅에 안개나 구름 같은 게 덮여 있어서 조금 밖에 안 보이는 거라. 세 번 올라갔는데 한번만 조금 희미하게 보고 번번이 구름에 가려서 잘 안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때는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제치고 모세에게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보기는 봐, 한번 보기는 보라.

50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반석을 치면서 추태를 부린 그 결과 때문에 못 들어가게 한다. 그런 얘기죠.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52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제 생각에는 제가 오버하는지는 모르지만 화낼 만 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도 속 섞이니까 화날만해서 화를 내었는데 그것까지고 모세를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 이렇게 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하나님 잘못이 있는 거는 아니지만 제 생각에는 일부러 그렇게 하신 것 같아요. 모세가 요단강 건너 가나안 땅까지 들어가는 것 까지 해버리면 그러면 여호수아는 뭐 합니까.

두 번째 만약에 모세가 이 땅에 영원히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모세가 하는 걸 한계를 정해야지 모세 없으면 안 되고 그러면 안 되죠. 그래서 모세 없어도 되어야 되고 여호수아 죽고 나서도 다른 사람도 되어야 되는 거지 모세 없으면 안 된다 그러면 모세가 우상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일부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가게 할까 하고 벼루고 있다가 실수가 나오니까 ‘되었다 이것까지고 꼬투리 잡아서 모세 못 들어가게 해야겠다.’ 아마 그렇게 한 것 같아요. 40년 동안에 고생했는데 화 한번 냈다고 그것까지고 못 들어가게 하면 아무리 봐도 무례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꼬투리 잡으려고 벼루고 있은 것 같아요. 그걸 구실로 삼아서 ‘너는 못 들어가’ 그래서 모세 아니라도 여호수아가 할 수 있어야 되고 여호수아가 아니라고 또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어야 되는 게 하나님 일이지, 하나님 일이면 모세 때만 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여호수아까지만 하고 말아야 되는가.

또 성경강좌가 ‘노우호’ 아니라도 할 수 있어야지 노목사 아니면 안 되는 가, 그럼 안 되잖아요. 무슨 가치가 있어요. 누구든지 할 수 있어야 되는 거라. 지난번에 ‘박양신’집사님 하는 거 봤잖습니까. 신학을 한 분이 아니야, 집사님이고 나이가 76세인데 지금도 하는 것 보세요.

그래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어야 진리의 보편성이 있는 것이지 누구는 할 수 있고 누구 외에는 안 된다 하면 보편성이 떨어져요. 그래서 얼마든지 집사도 하고 장로도 하고 목사도 하고 한다고요.

그런데 목사들이 여기 와서 다 들어놓고도 못하겠다는 거는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볼 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모세의 실수도 작은 일은 아니죠. 그러나 아무리 봐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구실로 해서 모세를 ‘그만큼만 하고 그냥 손 때’ 그리고 그 다음에 여호수아와 함께하는 모습을 모세만 한다면 모세가 우상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호수아도 함께 하니까 요단이 갈라지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단이 갈라지고 여호수아와 함께 하니까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도 하고 또 해가, 달이 하루 종일 내려가지 않고 이런 일도 그러니까 모세 같은 사람이라야만 되는 게 아니고 여호수아도 가능하다 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모세의 걸음을 제안 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 저는 아무도 안 봤어요. 지금까지 저는 이 이야기를 어제 오늘 한 얘기가 아니고 오래전에 강의 할 때도 제가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런 것 같아요. 모세 너는 여기까지 자르고 그 다음에 여호수아가 할 수 있다.

여러분, 나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버려야 돼요. 나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어야 되고 또 할 수 있습니다. 더 잘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도 안 되고 나 아니면 안 된다 그렇게도 하지 마,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돼.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맞다 는 거죠.

33장 34장은 오늘 저녁시간 때 보겠습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인도하신 후에 모세가 손 떼려고 할 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고 살찌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언약을 어길 것을 다 내다보시고 언약을 어기 다가 어기 다가 마침내 나라가 다 망하고 이억만리에 포로 잡혀가서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 때문에 자기 소유를 돌아보고 하나님 은혜를 또 깨닫는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하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말씀도 말씀이지만 찬송가 속에 있는 은혜와 진리의 말씀을 또 찬송하다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그런 일도 있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그러나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책을 모세가 우리에게 명령했던 것처럼 초막절 한 주간에 다 읽어주고 다 설명해주고 다 깨닫게 하여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는 이 일을 매 칠년마다 정기적으로 하라 하신 이 말씀이 너무 소중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여호수아가 이 일을 하지 안했고 이스라엘 백성도 하지 안했고 카톨릭도 하지 안했고 오늘 개혁주의 교회에서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바로 이 말씀을 깨닫고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가 모든 성경을 모든 성도들에게 더하지 않고 빼지 않고 왜곡하지 않고 기록된 원 목적대로 바르게 빠르게 가르쳐서 하나님 말씀에 응답하는 삶을 살게 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이어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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