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소명(창세기 12장 1 ~ 5절)
아브라함의 소명(창세기 12장 1 ~ 5절)
  • 김용창
  • 승인 2018.06.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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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5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유대교에 있는 사람들까지 심지어 히슬람권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아브라함은 다 존경하고 또 복된 분으로 모범으로 삼고 있습니다. 요셉푸스라는 학자가 써놓은 책 어딘가 제가 기억은 못하는데 오래되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을 잘 모를 때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세상만물을 보고 인간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해보다가 아무래도 누군가 계신 것 같다. 어떻게 사람이 씨를 뿌릴 때 쯤 되면 비를 실어다가 땅을 촉촉하게 적셔주는지 참 신비하다. 또 곡식이 익어갈 때 또 비를 실어다가 비를 뿌려주고 거기 무슨 누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닌데 꼭 사람이 필요한 것들을 때를 따라 이렇게 채워 주시고 공급하시는 누군가가 계신다.

그래서 누군지 어떤 분인지 고민을 했다는 거예요. 하도 간절한 마음으로 누구실까? 어떤 분일까? 뭔가 있다. 그러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우르나 하란이나 이런 데는 여러 잡신들을 많이 섬기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신이 아니고 더 크고 정말 위대한 어떤 분이 계신다. 아무래도 계시는 거야,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아브라함, 아브라함아 나다 나야”그래서 하나님을 정말 찾았더니 하나님이 만나주셨다.

우리 일반적으로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인간을 찾으신다. 이게 우리 기독교의 신학이고 기본교리에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대부분은 그렇기는 한 것 같아요. 대부분은 그렇기도 한데 그러나 이제 특별한 사람들 중에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찾는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인도의 썬다 시인이라고 하는 그 사람도 하나님을 만난 것 보면 제가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 하여튼 썬다 시인이라는 사람은 하나님 오늘 안 만나주면 오늘 죽어버리겠다. 이렇게 까지 찾았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이 찾는 거는 아니지만 그래도 더러는 하나님을 찾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어려서 중학교 다닐 때쯤에 정말 신에 세계가 있는 것인가? 혹 귀신도 있는가? 없는가? 사람은 처음부터 선했든 것인가? 처음부터 악했든 것인가? 이런 것을 고민을 해보고 고민을 해봐도 아무도 답이 없어요. 그리고 너무 어려서 이런 부분을 가지고 어디 가서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 그런 것도 잘 모를 때 고향에 있는 친구하고 날 밤을 꼬박 새우면서 이야기를 해봤어요. 잠 한숨도 안 자고 그 친구 지금도 우리 고향에 수철리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훗날에 많이 세월이 지나서 예수님을 믿고 오늘 여기까지 목사가 되기까지 왔는데 그 친구는 같이 밤을 세워놓고도 지금도 교회를 안다니고 그리고 말이 잘 안 먹히는데 세월이 한 50년 이상 55년이나 지난 것 같은데 그날로부터 예전에 편지도 해보고 했는데 전혀 전도가 안 돼요. 한 번 더 시도해 보려고 마음인데 제가 가까이 왔으니까 주일에 초대를 하든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어떻든 하나님께서는 대부분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거나 찾지 못하거나 하지만은 그래도 하나님의 뜻은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는가 보려 하신다는 거예요.

온갖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세상을 사람 살만하게 해주시고 햇빛을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시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맺히게 하시고 어린아이가 태어나게 하시고 온갖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서 저 인간들이 좀 안 찾아보나 하고 찾는가 보려 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아무도 찾지 않더라. 아무도 찾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느냐? 그렇지는 안다는 거예요. 대체로 안 찾는다는 그런 뜻이지 아무도 안 찾는 것은 아니다 라는 거죠. 역사에 보면 더러는 찾아서 갈구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이라는 거죠. 노아는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게 되었으며 에녹과 같은 사람은 또 어떻게 하나님과 그렇게 교체가 되었는지 그런 게 성경에 그런 기록은 없어요. 없어나 그런 사람도 아마 하나님을 찾아든 사람.

그러니까 정말 양심이 있고 정직하고 생각을 바로 할 줄 아는 정신이 똑바로 밖인 사람은 반드시 찾아야 되는 거죠. 어떻게 모든 것을 다 우연이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현대 무슨 어설픈 과학이라고 하는 초등학문을 해서 모든 것이 우연이다. 그렇게 우기는 사람은 아무리 봐도 양심이 잘못된 것 같아요. 어떻게 아름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걸 우연이라고 돌려 버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을 찾으려고 하지 않느냐 정말 심각한 문제죠.

그래서 아브라함을 오늘 우리가 만나서 그의 신앙의 출발이 어떻든 하나님을 찾으려 했다는 거죠.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단번에 응답을 해요. 찾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 만은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르시거나 하나님이 부르시거나 했을 때 단번에 응답한 이런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부터는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퇴보하지 않고 끝임 없이 지속적으로 앞으로 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그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 같아요.

저도 전도를 받아서 교회 나갈 때 나갔다가 들어갔다가 교회 다니다가 말다가 이렇게 안하고 저도 돌아보면 교회나간 날부터는 한 번도 뒤 걸음 치지 않고 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알려고 하고 했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까. 그래서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 이예요.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라 하실 때 그걸 따지지 않고 그냥 갔어요. 가나안 땅으로 가라 하시는데 거기 가면 생활이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을 하나도 따지지 않고 그냥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은 가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은 그냥 갔어요. 절대 쉽지 않거든요.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 많이 하고 하면 대책이 안 나와요. 그런데 하나님이 가라 하라하시면 무슨 대책이 있겠지. 그러니까 엉겁결에 하는 말이라도 “여호와 이레”그렇게 하잖아요. 준비한 말이 아니고 그냥 마음속에 있던 말이 하나님의 산에서 준비될 거다. 그렇게 하고 가나안 땅에 갔습니다.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이 있고 삶의 터전이 있고 그 지역에 피땀과 정성과 이런 뿌려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다 내려놓고 갈 바를 알지 못하면서 그곳에 가면 보장이 있는지 모르면서 하나님 가라 하시는 데로 그냥 묵묵히 갔다. 이것도 참 단순하신 것 같아요.

너무 사람이 무모하고 준비성도 없고 그래도 안 되지만은 이것, 저것 재고 따지고 이런 사람은 일 못해요. 사실은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럴 때 보면 참 단순하시다. 여러분 사실 착한 사람은 단순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따지고 안하고 그냥 묵묵히 가라 하실 때 간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양을 치고 소를 기르고 하는 유목민이기 때문에 언제나 풀이 있어야 됩니다. 양떼가 불어나거나 하면 풀이 모자랄 수 있고 영역이 풀밭이 좁을 수 있고 조카 롯도 양을 치고 했는데 초장, 목초지 문제로 롯의 목자들과 아브라함 목자들이 서로 양떼 풀밭 문제로 갈등이 생길 때 아브라함이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먼저 주고 자기가 양보합니다.“자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자네가 좌하면 내가 우 하겠네. 자네가 먼저 택하시게”

이렇게 양보하는 사람, 이런 게 참 쉽지 않죠. 사람이 평소 제법 좋아보이다가도 이해관계가 걸리면 바로 본 색이 들어나고 그리 하거든요. 그런데 이해관계가 걸릴 때 물질관계냐? 인간관계냐? 할 때 인관관계가 물질관계보다 더 소중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손해를 봐도 인간관계가 그렇게 해서 안 되겠다 해서 조카에게 먼저 선택하게 하고 자기가 양보하는 그런 미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거 쉽지 않은 얘깁니다. 이론은 쉬운데 막상 그런 일이 닥칠 때 상대방에게 먼저 선택하게 하는 그런 덕목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그 다음에 다섯 번째는 아브라함은 정말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어딜 가든지 단을 쌓았다. 모래 상수리나무 아래서도 단을 쌓았고 또 브엘세바에 있는 곳에서도 에셀나무를 심고 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불렀더라. 그런 기록이 꼬박꼬박 나옵니다. 어디 가서 삶을 시작할 때 무슨 돈벌이가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께 예배, 단을 쌓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했다.

오늘 오후시간에 볼 텐데 그때 세계 최초로 국제 전쟁이 벌어져요. 동방에서 엘람왕 그돌라오멜 하고 여 러 나라가 연합국하고 가나안 땅에 와서 전쟁이 벌어지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 아브라함이 겁이 나서 숨은 게 아니라 자기 조카 롯도 소돔에 살다가 포로로 잡혀갔다 하는 소식을 듣고 자기가 평소에 길리고 연습시킨 318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갔다고 되어 있는데 단까지 갔다는 말은 헤르몬산 넘어서 그쪽에서 왔기 때문에 헤르몬산 기슭에 있는 단까지 쫒아가서 어떻게 작전을 폈는지 밤에 잘 때 기습을 했는지 조카 롯과 함께 소돔사람들 또 물건들 약탈해간 것 모두 되찾아오는 아브라함이 겁쟁이가 아니라 아주 담대하게 용기를 발할 때는 아주 용기를 가지고 찾아가서 되찾아 왔다.

여러분 기독교는 심약한 그런 사람이 믿는 종교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모습이나 여호수아나 다윗이나 강하고 담대하지 않으면 따라 갈 수 없는 길이야, 그래서 용맹을 발할 때는 용기를 발할 때는 담력을 발할 때는 담력을 가지고 일을 처리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을 키우는 사람, 사람을 훈련시키고 길리고 연습시키고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이런 게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은데 단 한절 나오는데 평소에 길리고 연습시킨 사람이 318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러면 그게 다 남자거든요. 318명이, 여자도 그만큼 될 거라는 겁니다. 그러면 한 650명 정도 되고 또 그런 사람들 가정에 아이들도 자라고 있으면 아브라함에 선교지에서 아브라함에 한번 말하면 같이 움직일 사람이 가족들까지 다하면 천명 넘어가 아브라함 주변에 뜻을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런 계산이 나오는 거죠.

그래서 그 주변에 사람이 자꾸 떠나는 사람이 있고 그 주변에 자꾸 모여드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아브라함 주변에 처음에는 그 종자하나 거느리고 그렇게 왔었는데 아브라함 주변에 천 명 정도가 뜻을 같이 하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덕목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손님 대접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라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죠. 별로 일이 없으면 길가에 나가 앉아서 일부러 있다가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요 그래서 살찐 송아지를 잡아서 대접하다가 그것이 일상생활이야, 늘 어떻게 내 집 앞을 그냥 지나갈 수 있느냐, 와서 냉수라도 한 그릇 드시고 가시라 꼭 그렇게 집으로 모셔 와서 음식을 대접하고 그리하다가 마침내 하나님도 대접하고 천사도 대접하는 그런 복을 누리는데 그래서 나그네를 대접한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일인데 지금 아브라함을 존경하는 이슬람권에 가면 자기 집 앞을 절대 그냥 못 지나가게 해요.

심지어 관광지, 성지순례를 가보면 관광지에 사람들이 뺀질뺀질하고 약삭빠르고 할 텐데 전혀 안 그렇고 지금도 우리가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면 성지순례 온 사람들이고 한번 만나면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이고 이런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도 기어이 잡아 자기 집에 가자는 거예요. 꼭 차라도 마시고 가시라. 제가 얼마나 믿음 없는 사람이야 하면 처음 갔을 때 아라랏산 밑에 호사칼레 성에 갔는데 하도 성이 묘하고 해서 카메라 들고 잘 보이는 곳에 사진 찍으려고 하는데 기어이 소매를 잡아끄는 거예요.

제가 믿음 없어 무슨 생각을 했느냐? 나를 으슥한 곳에 데려가서 나를 패고 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거예요. 인간을 믿지 못하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게 그 사람들의 윤리예요. 이슬람교 종교 지도자들 이슬람권에 정치하는 나쁜 놈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국민들은 눈물겹도록 착해요 순진하다 못해서 바보 같아요.

그 정도로 가르치면 가르치는 데로 하루에 다섯 번 꼬박꼬박 기도하고 자기 신에게 경배하고 라마단에 금식하고 절대로 흐트러지지 않고 그렇게 해요. 그래서 나그네 대접하는 것은 아브라함 자손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사실로 이렇게 해요. 집에 데려가기를 좋아해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려고 할 때 네가 내종 아브라함에게 숨길 수 있느냐, 하면서 하나님 뜻을 이야기 하니까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아브라함이 자기 문제를 가지고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는 것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악한 성을 위해서 얼마나 매달리는지 하나님 혹시 그리하다가 그 안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의인 50명이 다 죽는 게 아닙니까? 40명,30명,20명,10명까지 10명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렇게 하는데 사실은 그렇게 할 때 소돔사람을 아낀다. 그렇기보다도 자기 조카 롯이 있으니까 그래서 더 애를 태웠던 모양인데 그래도 염치가 있어요. 아브라함이 내 조카 롯 말을 안 하고 10명 까지 내려오다가 그쳤는데 그러나 나중에 보면 소돔성을 멸하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신지라 그 조카 롯을 멸망시키는 중에 내 보내셨더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아브라함이 하나님 제 조카 롯인데 이렇게 말은 못했지만은 하나님께서 다 헤아리신 거예요.

그 다음에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는 사람. 자기 집에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청지기에게 모든 걸 믿고 모든 걸 맡기고 그 사람이 맡긴 것은 안 따져 봐요 그대로 믿고 끝내요. 그리고 또 사람을 믿어주기 때문에 다메섹 엘리에셀도 최선을 다하고 엘리에셀이 어디 갔다 올 때 마다 아브라함의 재산이 불어나고 심지어 백 살에 얻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 며느리 하나 간택하는 것도 다메섹 엘리에셀에게 맡기는데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믿는 사람이 순진하고 착해야 하나님도 믿고 사람도 믿지 사람이 아주 인격이 묘하게 꼬여있는 사람은 하나님도 잘 안 믿고 사람도 안 믿습니다.

자기가 늘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고 못된 짓 하는 사람은 네놈도 내 놈 같겠지 해서 아무도 못 믿는 거예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도 믿고 사람도 믿고 그래요.

어떤 교회는 목회자가 사람을 못 믿어서 교회 재정도 목사 자신이 다 움켜지고 앉아 있어요. 하나도 못 맡기고 참 피곤 할 텐데 저는 아브라함을 볼 때 그래서는 안 되겠다. 교회 재정은 아시는 데로 상관도 하지 않잖아요. 예결산도 제가 안 들어가고 우리장로님들 같으면 대통령이나 장. 차관해도 충분한데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죠. 다 믿고 맡기고, 여러분 사람을 너무 믿고 맡기고 하다보면 혹 속는 수가 있어요.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살지 사람을 못 믿으면 어떻게 살아요.아브라함은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는 그런 사람 이였습니다.

소돔 사람들 고모라 사람들 사로잡힌 사람들을 되찾아왔을 때 물건도 다 되찾아 왔거든요. 그랬더니 소돔, 고모라 사람들도 은혜를 아는 가봐, 너무 감사하니까 “수고하고 목숨을 걸고 되찾아오셨는데 물건들은 아브라함 어른 다 가지세요” 하고 드리니까 “절대 안한다. 내가 전리품으로 취급했다 하는 말을 나는 들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내가 내 손으로 열심히 일한 것으로 내가 누리야지 전리품으로 취급했다 그런 말 듣는 사람 되고 싶지 않다.”

그러면서 일절 사양해요. 그러나 내 318명의 내 군사들이 오며, 가며서 먹은 거는 그것은 이해하라 하고 다 되돌려 줍니다. 아주 젠틀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녀교육을 철저하게 합니다. 자녀교육을 얼마나 철저히 했든지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잡아서 바치려고 할 때 그때 이삭의 나이가 아마15살에서 17살,18살 되었을 텐데 아브라함이 120세가 되었을 때 아이가 도망가면 어떻게 잡아요.

그런데 그 이삭이 죽기까지도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을 볼 때 정말 교육을 제대로 한 거죠. 그리고 나중에 아브라함 죽은 후 이삭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아버지 밑에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요즘 우리 사회에 보면 아이들이 막대 먹게 이렇게 크는 것을 많이 봐요. 왜 그러냐하면 이게 다 하나 밖에 없으니까 쥐면 꺼질까 불면 날까 해서 너무 귀한 나머지 초달도 안하고 내버려두고 하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성격이 못되게 컨 다는 거예요. 저는 얘 셋을 기르면서도 대나무 뿌리가 지금도 우리 집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잘못하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호되게 초달하면서 그렇게 길렀어요.

성경에 초달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식을 저주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때리지 않는 엄마, 아빠들은 어린아이 마음속에 미련하고 악한 게 얽혀있는데 채찍이 미련한 것을 벗어나게 한다. 이런 말씀이 있는데 저는 쾌쾌 묵은 말씀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때렸습니다.

그렇게 때리고 키웠더니 학교 가서는 선생님께 꾸지람 들을 일도 하지 않고 맞을 일도 하지 않습니다. 아이 엄마가 학교에 가끔 가면 선생님 마다 그래요. 아이들을 어떻게 길렀습니까? 물어요. 우리는 때립니다. 워낙 집에서 미리 맞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별 맞을 일 없는 것이고 또 맞아도 별 문제 없어요. 집에서 많이 맞아 봤기 때문에 집에 전부다 안 맞아 봤든 애들은 선생님께 맞으면 울고, 불고 옥상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우리 애들은 워낙 많이 맞아보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때려서 길렀는데 한 아이는 그 중에 반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상담하지 않고 우리 아이한테 상담은 하는 학생들이 더 많을 정도로 선생님이 박남기라는 선생님인데 우리 애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졸업 후에도 선생님께서 우리 아이를 찾아와요. 애를 낳을 때 선생님께서 미역을 사가지고 왔어요. 그리고 몇 번씩이나 선생님께서 제자를 찾아올 정도로 그래서 제가 자식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때렸더니 하나님 말씀대로 아이가 잘못했을 때 눈물이 쏙 빠지게 때렸더니 비교적 바르게 큰다는 겁니다.

여러분 애들을 기를 때 때리세요. 성경에 보면 안 죽는다. 때려라, 채찍이 미련에서 벗어나게 한다. 굉장히 중요해요. 얼러서 기르면 아무짝에도 못 쓰는 망나니가 된다. 개망나니처럼. 저는 아브라함이 백 살에 얻은 아이가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런데 망나니처럼 기른 게 아니고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는 그런 아들로 길렀다는 겁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공짜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헷 사람에게 가서“내가 유목민인 것 당신이 잘 알지 않느냐 땅이 없다. 그래서 아내가 죽었는데 장사를 치러야 되겠는데 하면서 땅을 좀 양보 해 달라”하니까 “어른신과 우리사이에 어떻게 값을 따지고 합니까? 그냥 장사하십시오.”그냥 장사를 해라해도 아브라함은“내가 준 값을 지불하고 반드시 사겠다.”그냥 공짜로 묘를 쓰라고 해도 값을 지불하고 샀어요.

어디 가서 공짜를 너무 바라지 말고 여러분 한번은 청와대에서 목회자들을 불러서 점심을 대접하면서 오래된 일인데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정부가 정치하는 분들이 다 목사님들을 한번 달아보는 겁니다. 어느 정도인지 뭐라고 하느냐 하면은 “우리는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모르고 선물을 준비했는데 선물이 모자랄 것 같다”라고 하니까 선물 받으려고 우르르 쫒아오더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모습이 추해요. 서로 안 받으려고 해야 할 텐데 정치하는 사람들이‘목사님들 아무것도 아니다.’거기에 참석했던 목회자 중에 부끄러운 장면을 보고 정말 교양 교육이 안 된 거다. 목사들이 말이야, 청와대 선물이 뭐라고 서로 받으려고 주르륵 막 나가서 여러분 어디 가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절대 그러지 말고 못 받는 쪽에 서있어야지 다른 사람 받게 양보하고 말아야지 아무도 안 나오고 이렇게 해서야 될 텐데 전혀 기본 교양 교육이 안 된 거야, 누가 칼럼에 써놓은 글을 읽는데 얼굴이 붉어지는 거예요. 공짜를 안 받아야 되요.

그 다음에 얼마나 아브라함이 자기 뒤를 안 돌아 보려고 했느냐 하면 가나안 땅에 살 때 정말 척박한 땅이고 어려운 땅이거든요. 혈혈단신으로 와서 낯선 땅에 와 있으면 외롭고 고독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향생각이 나거든요. 저는 그 점에서 아브라함 따라 하지 못하고 얼마나 고향 생각이 났든지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잖아요.

그리고 지금도 고향이 그리워서 사람들 만날 수 있거나 없거나 가끔씩 우리 동네를 가보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다시는 안 갔어요. 딱 고향을 떠나온 후에는 전혀 한 번도 안가고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다. 더 나은 본향이 자기 자라고 살아오던 본향이 아니고 하늘 본향을 보고 살았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해서 하늘의 한 성을 예비하셨는데 그게 아브라함 품이고 혹은 낙원이라는 거예요. 낙원의 주인이 아브라함 이예요.

예수님 비유에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가서 안겨 있었다. 그러잖아요. 고향이나 자꾸 뒤를 돌아보고 이런 사람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앞을 바라보고 뒤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름자세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우리는 조그만 힘들면 고향 생각이 나고 하는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참았는지, 며느리 감을 구하려 갈 때도 그 참, 저 참 해서 한번 가 볼만도 한데 안 가고 다메섹 엘리에셀을 보내고 자기는 안가요. 정말 선교사로서 만점 선교사입니다.

여러분 선교사 되면 어디 가서 5년 있다가 거기서 미국으로 미끄러져 가고 이런 선교사가 아니야, 선교사로 가면 거기서 뼈를 묻을 각오를 하고 아예 아브라함처럼 막벨라 굴을 사놓고 뼈를 묻어야 되요. 그래야 거기서 열매가 있지, 여러분 언더우드 선교사 같은 분은 그 자녀들까지 여기서 한국을 섬기고, 순천 쪽에 와 있던 임휴라는 선교사가 있었는데 우리 집에 자주 오고했어요.

이분에 아들이 임요한 박사라고 연세대 교수 아닙니까. 그 분이 우리 집에 올 때 보면 아주 구닥다리 랜드로바 디팬드라고 하면서 고물차를 타고 오는데 우리 집에 타고 왔을 때 차가 신기해서 만져보고 하니까 35년 된 차라 하더라고, 35년 된 차를 자기 손으로 엔진수리까지 다 해가면서 사용해요. 영국에서 부품을 공수해서 보링까지 자기 손으로 고쳐서 사용해요.

그런데 그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거야, 임휴 선교사가 그런데 빨리 병원으로 갔으면 살릴 수 있는 것을 그게 응급 처치가 안돼서 자기 아버지 돌아가셨다. 그 기막힌 아픔을 안고 그 아들 임요한 박사가 우리나라에 119를 만들은 거예요. 미국의 911를 본 떠서 임휴 선교사 아들 임요한 박사가 한 겁니다. 그래서 임요한 박사가 만든 119 때문에 죽을 뻔 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이 살아났습니까.

그러니까 임휴라는 선교사님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돌아가신 것은 안타까운 일인데 그분은 자기 죽음 때문에 자기 아들로 하여금 119제도를 만들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렸겠습니까. 그렇게 보면 선교사라도 다 같은 선교사가 아닌 거야, 여기 와서 이 땅에서 자기 아들도 대를 위해서 살았고 미국에서 왔는데 우리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에서 고향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런데 계속 전라도 여기서 일을 하시고 이분이 처음부터 전라도에 계속 있다 보니까 완전히 전라도 말을 배워서 전라도 사투리를 잘하고 완전히 전라도 사람 이예요.

그런데 그분하고 그 지역 목사님 몇몇 목사님들이 지도를 가지고 국립지리원에 가면 지도를 살 수 있어요. 5만분이1, 25만분지1, 지도가 있는데 지도를 갖다가 큰 지도를 마당에 펴놓고 조각난 이어 부쳐서 컴퍼스를 가지고 재어서 4킬로 마다 길을 따라서 교회를 세우는 겁니다.

미국에서 선교비를 얻어다가, 1불 선교라고 선교비를 많이 내면 지치기도 하고 어려워지면 못 내기도 하고 1불이야 우리나라 돈 천원인데 그 정도면 참여 안할 수가 없잖아요. 다 할 수 있는 거예요. 1불 선교라고 해서 순천에 등대 선교회를 만들어서 미국에 가서 한국에 정황을 이야기 하면서 1불 선교. 그래서 4킬로 마다 교회를 다 세우는 거예요.

다 세우고 나서 그 다음에 4키로 한 가운데 2키로 마다 또 교회를 끼워 넣어요. 그렇게 해서 선교를 다 하고 나서 힘이 남아서 전라도 하고나서 힘이 남으니까 이쪽 경상도에 저하고 손을 잡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우리도 4키로 마다 세우자 우리는 선교비가 1불 그것도 잘 안 내요. 우리는 하다가 31개를 개척했죠. 그런데 제가 밀양으로 쫓겨 가면서 이쪽에는 중단 되어 버리고 그때 핵심 멤버들이 해외로 빠지고 해서 지금은 소강상태데 그때 정신이 임휴 선교사님의 선교정신 거기서 출발한 거예요.

아브라함도 정말 최초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고향으로 가지 않고 거기서 뼈를 묻고 그렇게 선교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 훈련 코스를 전에 우리 총회가 선교사를 보낼 때는 8주간 두 달을 공부시킵니다. 선교사 훈련을 마지막을 한 주간은 여기 와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강의 듣고 해외로 파송되게 그렇게 한동안 그리 했거든요.

그때 아브라함 선교사 이야기를 꼭 빼놓지 않고 해죠. 선교지 가거든 미국으로 가지 말고 거기에 뼈를 묻어라. 그리고 한국으로도 오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말고 편지도 하지 말고 거기서 죽을 준비를 해라.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대로 하는 사람이 몇 분이 있어요. 지금도 한국으로 들어오지 않고 끝까지 거기서 선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선교적인 삶을 잘 살았는지 그랄 목자 아비멜렉하고 군대장관 비골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아브라함 어르신 우리가 어르신 삶을 멀리서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어르신 삶속에 하나님 함께하는 것을 우리가 봤습니다.”이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전도지를 갖다 준적도 없고 그냥 성실하게 사랑을 베풀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살아가는데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되어 있어요.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여러분 선교사는 가난하게 사는 것도 각오해야 되지마는 하는 일마다 잘돼야 되요. 하나님께 범사에 복을 받는 봐야 주변사람이 보고 따라 믿지, 예수 믿더니 완전 망했더라. 그러면 선교가 안 되죠. 아브라함은 양떼, 소떼 길렀는데 계속 새끼를 낳고 불어나서 나중에 롯의 목자하고 다툴 정도로 불어나는 겁니다. 불어나니까 선을 베풀고 나누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제일 어려운 거 마지막 시험이 뭐냐? 100살에 얻은 이삭이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그런 아들인데 하나님께서 한번은 아이를 잡아서 내게 번제로 드려 라는 겁니다. 태워서 바쳐라, 아브라함 심정이 어떻게 어요. 하나님도 나이를 너무 드셨냐? 별 생각이 안 들겠어요. 우리야 이제 아브라함 사례가 있으니까 또 모르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전무후무한 그런 명령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 가나안 땅에 그런 제사가 있었어요.

인신제사, 인신공양 사람을 불태워서 신에게 바치는 그런 아주 악한 그런 제사가 있었는데 하나님도 아마 은근히 저런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불살아 하나님께 바치는 그런 정신인데 아브라함 할 수 있냐? 하면서 아브라함 보고 100살에 얻은 이삭을 불에 태워서 하나님께 바치라는 데 어떤 책인가? 영화인가? 가물, 가물 한데요 아브라함이 뭐라고 속으로 하나님께 말을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하나님께 고민하면서 갈등하기를 그럼 하나님도 몰렉신하고 가나안 신하고 똑 같습니까? 고민하는 거예요. 몰렉신에게 인신공양을 하는 그런 제사가 있었거든요. 굉장히 고민이 되는 거죠.

고민을 하다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가는데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려면 제법 부지런히 가도 사흘 길은 가야 돼요. 사람마음이 작심삼일이라고 한 사흘 가다가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그걸 또 사라에게 이야기하면 큰일 나죠. 영감탱이가 하면서 절대 안 될 텐데 사라한테 이야기 안하고 그냥 이삭을 데리고 간 거 에요.

사흘 길을 가서 산에 올라가려고 할 때 종들을 거기에 때 놓아요. 종들이 올라가서 말리면 안 되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내가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라.”하고 이삭만 데리고 올라가서 이삭을 잡아 묶어 칼을 들어서 하려고 하니까“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그런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때 아브라함은 인간관계냐, 하나님과의 관계냐 어느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느냐, 그 시험을 당하는 거죠.

아까는 롯의 목자하고 아브라함 목자하고 다툴 때는 물질관계냐, 인간관계냐 이 안에서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지 하나님 보시는 거죠. 이제는 인간관계냐, 하나님과의 관계냐,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느냐 거기까지 다 합격을 한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친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내 벗이라 그랬어요. 100살에 얻은 아들을 내놓다니 독생자를.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놓는 하나님의 가슴을 아브라함은 경험해 본 거죠. 그래서 네가 나를 위해서 100살에 얻은 아들을 내놓았기 때문에 나도 너와 너를 따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위해서 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놓는다. 그 정도 사이니까 아브라함을 내 벗이라 이렇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 이야기를 쭉 읽어볼 때 어느 한 면만 보는 게 아니라 아브라함 삶 전제를 제가 보고 아주 옛날에 제가‘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는 책도 쓰고 라디오 방송도 했었죠. 그때 아브라함 이야기를 쭉 했는데 사람들은 그때도 맨 날 하나만 보거든 하나만 보통 설교시간에 이렇게 보는데 아브라함 삶 전체를 볼 때 정말 놀라운 어른이다 과연 우리믿음의 표상이 될 만한 분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인물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아브라함도 만나고 이삭도 만나고 야곱도 만나고 요셉도 만나고 12장 이후로 족장들의 신앙과 또 생활을 보는데 하나님께서는 뭐뭐 해라, 뭐뭐 하지 말라 하는 규범으로 규범교육도 있지마는 역시 규범교육보다는 모범교육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겁니다. 규범은 뭐뭐 해라, 뭐뭐 하지 말라. 뭐뭐 해라해서 하면 해도 수동태야, 안하면 거역이 되어 버리고 그래서 규범이 없을 수 없으나 너무 규범과 규칙을 만들어서 닦달하면 성도들이 다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해요.

그런데 모범이라는 것은 모범되는 인물을 이렇게 보여주는 것뿐이라, 그러니까 이리 해라 저리 해라 말도 없고 그런 모범을 보고 우리가 나도 저렇게 살아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한다는 겁니다.

여기 지리산 골짜기에 고운동 반천 골짜기에 내대 골짜기하고 하부댐이 있고 산꼭대기에 상부댐이 있어서 양수발전소가 있잖아요. 그 위에 있는 골짜기에 가면 반천리가 있는데 반천리에 태어난 장로님이 한분 계셨는데 하태봉 장로님이라고 아주 유명한 분입니다. 이 분이 아리아 악기 주식회사를 만들어서 돈을 많이 벌었어요. 학교하고 교회에다가 오르간 만들어서 공급을 했거든요.

학교가 얼마나 많고 학교 안에 교실마다 오르간이 다 들어가면 굉장하잖아요. 돈을 많이 벌었는데 이분이 회사에 지분, 10분지 1를 진주노회 전도부에다가 받친 거예요. 주식 10분지1를 그리고 소득에 10분지 1를 매월 진주노회 전도부로 보내서 또 교회 개척하는 일에 쓰이게 하고 그리고 돌아가실 때 회사를 위해서 기도하기를 해달라는 마음으로“열매는 따 먹되 나무는 베지 마라라” 그렇게 하시고 돌아 가셨거든요.

이분이 그렇게 노회에 크게 기여하고 헌금도 제일 많이 하시고 전도비도 제일 많이 내시고 그런데 80년대 세계복음화 대성회할 때 여의도 쪽에 있는 그분 아파트를 가봤는데 소파에 창자가 다 나와 솜이 나오려고 그래요 달아서, 자기가 부자인데 바꾸면 열 번도 더 바꿀 텐데 그렇게 아끼고 검소하게 사시는 거예요.

“장로님이 어떻게 이렇게 해놓고 사십니까?”누가 물었든 모양인데 “내가 벌어서 돕는 교회 전도사님들이 월10만원 가지고”그때 10만원은 지금 한 100만원 될지 모르겠어요. 80년도, 90년도, 30년 몇 전이니까 “그렇게 살아간다는데 장로가 전도사님 보다 더 잘 살면 되겠나, 그래서 거기 맞추어 생활해본다고 나도 해보는 것뿐이요.”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노회 가서 발언 한마디도 안 해요.

돈을 내면 목소리가 커지고 그렇거든요. 일체 그렇지 않고 맨 앞자리에 겸손하게 앉아서 너무 목사들이 회의 진행하다 민망하니까 너무 가만히 계시니까 하태봉 장로님께 “혹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내가 뭘 알아야지 목사님을 알아서 하면 될 일이지”일절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덕산이라든지 골짜기에 있는 젊은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냐? 하면 목사님처럼 살고 싶다 하는 사람은 많지 안고 돈 벌어서 장로님처럼 살고 싶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모범이 된 거예요. 말이 없이 그렇게 모범이 된 거예요. 이 지역에 아주 미담으로 남아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10분지 일에 하태봉 장로님이 바친 주식을 노회 정치 목사, 장로들이 해서 그 회사 경영권을 창탈하려고 하는 수양딸을 주어서 삼은 사위 그런 악당에게 진주노회가 넘겨버린 거예요. 제가 그래서 우리지역 장로님이기도 하고 그래서 제가 너무 귀가 막혀서 그 악한 정치목사, 장로들이 노회에서 악한 짓을 하는 것을 보고 제가 5년 동안 참으면서 차트를 이만큼 만들었죠.

노회 앞에 목사 장로가 모여서“열매는 따 먹되 나무는 베지 마라”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그런 유언을 남기도 그 어른이 돌아가셨는데 우리 목사장로들이 모여서 그 악당에게 그러니까 큰 아들에게 49%를 주고 그 나머지 주식은 작은아들, 딸들 사위 다 갈라주고 10%가 진주노회 있으면 그러면 49%로 가지고 있는 큰아들이 진주노회 지분 10%로 하면 딱 경영권이 확보가 되니까.

그렇게 맡겨 놓고 갔는데 그걸 경영권을 창탈하려고 하는 수양딸 사위라고 하는 배은망덕한 그 사위에게 넘겨주는 그런 악한 일을 뭘 얼마나 받아먹고 넘겼는지 모르지마는 그렇게 했거든요. 그것을 가지고 앞장서서 브리핑을 했더니 노회가 쫙 갈라지면서 우리 목사와 장로가 정말 하나님 앞에 천벌 받을 짓을 했다고 하고 노목사 말이 맞다 는 사람하고 저 놈을 잡아 죽이라하는 사람하고 해서 3년 반을 싸웠어요.

얼마나 싸우면 싸움을 잘 하는지 기도하고 싸우고 예배드리고 싸우고 하니까 결국은 쫓겨나서 밀양으로 귀향을 갔죠. 밀양 귀향 가있다가 마산샤론교회 개척하고 그리고 여기 와서 진주에 다시 왔는데 여기 오면 그때 그 어른 생각이 나는 거예요. 벌써 돌아가시고 오래되었는데 정말 물질적으로 많이 봉사하면서도 일절 말이 없으신 묵묵히 그냥 섬기는, 참 인간들은 그런 은혜를 모르고 얼마나 배은망덕 하는지요.

여러분 아브라함이라는 믿음의 표상, 믿음에 조상 이런 어른들을 우리가 잘 본 받는 아브라함의 삶을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항상 그 삶에 나를 비춰보는 그런 삶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모범교육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모델이 될 만한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요셉처럼 이렇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성경이.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지금부터 이제 만나게 될 믿음의 족장들 아름다운 신앙과 생활을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나님께서 벗이라 칭하시고 친구처럼 여기셨던 아브라함 어른에 신앙과 생활을 그리고 삶의 자세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모범으로 우리의 표상으로 보여주신 아브라함을 잘 배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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