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내부고발 반전주의자’ 별세
미 행정부가 가장 두려워했던 ‘내부고발 반전주의자’ 별세
  • 에스라 발행인
  • 승인 2023.06.18 0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의 악을 폭로했던 사람

등록 2023-06-17 15:51

대니얼 엘즈버그 향년 92…미 베트남전 개입 ‘통킹만 사건’ 조작 펜타곤 페이퍼 공개

대니얼 엘즈버그. 연합뉴스

대니얼 엘즈버그. 연합뉴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발발에 깊숙이 개입하고 본격 참전을 위해 무력 충돌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가 16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92.

미국 일간지 <뉴욕 타임스> 등을 보면,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엘즈버그가 췌장암을 앓다 캘리포니아주 켄싱턴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3월 췌장암 진단과 함께 3~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해왔다.

엘즈버그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전 개입을 위해 무력 충돌을 조작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국방부 극비문서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1967년’을 유출한 인물이다. ‘펜타곤 페이퍼’로 불리는 7000쪽 분량의 이 문서는 베트남전 관련 정책 결정·수행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고 의회와 국민들을 오도해 전쟁을 확대해온 과정을 담았다.

이 문서는 특히 미국이 베트남전에 직접 참전하는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 일부가 미군에 의해 조작됐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미국은 1964년 8월2일 미군 구축함 매덕스호가 통킹만 일대에서 북베트남군 어뢰정으로부터 공격받은 데 이어 이틀 뒤인 4일 공해상에서 2차 공격을 받았다고 밝히고, 이를 빌미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과 지상군 투입을 결정했다.

국방부 소속 군사분석 전문가로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했던 엘즈버그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이 문서를 공개했고, <뉴욕 타임스>는 1971년 ‘펜타곤 페이퍼’를 인용해 당시 2차 공격이 베트남전 본격 개입을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보도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언론의 대대적인 폭로 보도는 반전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이 사태는 법정 분쟁으로 이어져 미국의 언론 자유를 크게 신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문서 내용의 추가 공개를 막기 위해 보도금지 명령을 내리고 <뉴욕 타임스>를 간첩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신문사의 손을 들어줬다.

엘즈버그는 닉슨 행정부에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분류되기도 했다. 엘즈버그는 스파이 행위와 음모, 정부재산 도용 등 혐의로 기소돼 1973년 로스앤젤레스 연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판사는 불법 도청이 있었고, 엘즈버그 담당 정신과 의사 사무실이 침입받았으며, 닉슨 대통령이 판사 자신에게 연방수사국(FBI)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등 다방면으로 불법적인 압력을 행사했다며 사건을 기각했다.

1931년 시카고에서 태어난 엘즈버그는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도 공부했다. 1954년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1958년부터 랜드 연구소에서 핵전쟁 관련 게임이론 등을 연구했고, 1964년까지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국방장관의 고문으로 일했다. 1965년 민간 평화 프로그램 평가를 위해 베트남에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현지의 냉담한 여론, 막대한 민간인 사망자 수, 죄수 고문, 파괴된 마을 등 베트남전의 현실을 목격했다. 엘즈버그는 맥나마라 장관에게 베트남전 전망이 암울하며 미국의 철수와 북베트남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렸으나 무시당했다.

1967년 ‘펜타곤 페이퍼’ 작성에 참여하고 랜드 연구소로 돌아온 그는 좌절과 환멸을 느끼고 반전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랜드 연구소도 그만두고는 1969년 몰래 복사한 ‘펜타곤 페이퍼’를 들고 <뉴욕 타임스> 기자를 찾아가 폭로했다. 엘즈버그는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펜타곤 페이퍼’를 복사했을 때 나는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베트남전의 종전을 앞당길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운명이었다”고 전했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에는 반전 운동가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해왔고, 핵무기와 핵전쟁 관련 연구도 계속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내부 고발자로 일컬어지는 그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 관련 미군 기밀을 폭로한 브래들리 매닝(훗날 첼시 매닝으로 개명)과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 정보수집·사찰을 알린 에드워드 스노든 등 다른 내부 고발자들을 옹호하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석대로365번길 39 (에스라하우스) 유앙겔리온
  • 대표전화 : 055-972-7753
  • 팩스 : 055-972-06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용창
  • 법인명 : 유앙겔리온
  • 제호 : 유앙겔리온
  • 등록번호 :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노우호
  • 편집인 : 엄인영
  • 후원계좌 : 우체국 610212-01-001231 에스라하우스
  • 유앙겔리온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유앙겔리온.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orbaea.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