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선교적 삶(창세기 20장 1 ~ 3절)
아브라함의 선교적 삶(창세기 20장 1 ~ 3절)
  • 김용창
  • 승인 2018.06.2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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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브라함이 거기서 남방으로 이사하여 가데스와 술 사이 그랄에 우거하며

2 그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3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이 본문 내용도 그냥 읽으면 읽을 수 있는데 조금 생각을 해 보면 여기 있을 본문이 아니고 조금 더 앞에서 나왔었야 되는 것 아닌가 왜냐하면 이때는 사라의 나이가 90세였거든요 아무리 사라가 늙지 않고 아름다웠다 할지라도 90세 되었는데 누가 데려가고 했을까 그래서 아마도 이 이야기도 한 이야기의 전승 구전으로 전해진 전승 덩어리가 있었는데 애굽으로 내려갈 그 즈음에 아마 있었지 않았겠나 지금 여기 있는 건 이런 걸 독일의 학자들이 많이 살펴 가지고 좀 이상하다 이렇게 보는 관점을 편집 비평이라는 거야 좀 어려운 말인데 여러 가지 구전으로 전해지던 이야기 단락 단락을 배열할 때 앞에 배열해야 될 걸 좀 뒤로 밀려서 배열되었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우리가 창세기 창조 기사도 1장 창조 기사하고 2장 창조 기사가 약간 다르죠. 일부 같지만은 많이 다른데 다 내용은 중요해요 그래서 어느 하나도 없애지는 못하고 배열할 때 그냥 있는 그대로 앞에 것 하고 차이도 나고 하지만 그대로 배열하되 어느 것을 먼저 놓느냐 뒤에 놓느냐 이런 것을 감안했다고 보는데 여기 지금 이 본문은 지금 17장 18장 19장 뒤에 오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 내가 돌아오면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한 후의 일이거든요 그럼 90세 89세 90세 그 어간인데 어쩌면 임신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아비멜렉이 그래도 어느 한 부족의 부족장인데 90세나 되는 할머니를 예쁘다고 낚아 채 갔겠는가 그래서 이 본문도 애급에 내려가기 전이거나 아브라함이 내려 갈 때 이 그랄을 지나서 애굽으로 간거거든요. 그래서 이야기가 창세기 1장부터 50장 까지가 한사람이 일관성 있게 쫘악 계시 받아서 쓴 것이 아니고 구전으로 전해 오는 단락 단락이 있은 거야 이야기 덩어리가 여러 토막이 있었는데 이걸 기록할 때는 잘 배열해 가지고 이야기가 되게 이렇게 배열해서 편집을 해야 되는데 그때 자치하면 앞에 놓을 단락을 뒤에 놓을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관찰한 사람들이 독일 신학자들인데 한국에서는 신학교에서는 이런 말을 하지만 교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성도들이 얼른 듣기로는 성경은 뭐 성령이 한자 한자 불러 주었다고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 앞에다가 편집비평이라든지 역사비평 뭐 이런 걸 하게 되면 시험 든다는 거죠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이런 걸 정직하게 연구해서 살펴본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오래된 이야기인데 보통 보수교단 예를 들어서 고신 측이나 합동 측에서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고 그냥 무조건 영감 받아서 썼다 영감 받아서 썼는데 영감을 받았다 할지라도 한자 한자 불러준 그런 건 아니거든요 전에도 한번 말씀 드렸는데 만약에 영감을 주어서 한자 한자 불러 쓰게 했다면 마태복음은 많이 빼 먹은 것이고 마가복음은 너무 많이 빼 먹은 것이고 요한복음은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한 것이고 누가복음은 또 한 30가지 이야기를 더한 것이고 이렇게 되거든요 한자 한자 불러 주었으면 복음서 4개가 똑같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그런 무리한 주장을 잘 하지 않습니다. 대개 보수 교단 사람들은 참 죄송한 이야기인데 그런 면에서 아예 공부를 안 합니다. 총신대나 고신대나 그런 부분 같은 데는 외면을 해 버리고 무조건 성령이 축자 영감 해 가지고 한자 한자 불러 주었다 이런 식으로 합니다. 요즘 들어서 이런 것들이 반대에 부닥치니까 유기적 영감설이다 이렇게 유보하는 한걸음 물러서는 이런 자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걸 문제를 안 삼을 때는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오늘 이렇게 보니까 좀 그렇죠. 90살 된 분이 이삭이 이미 배 속에 있을 텐데 아무리 사라가 예뻐도 그렇치 90살 된 분이 처녀처럼 보여 가지고 아비멜렉이 빼앗아 갔다 그건 좀 납득이 어렵다는 거죠 시기가 요 때가 아니고 이때 보다 좀 더 앞에 애굽에 가서 바로에게 아내를 뺏겼을 때가 약30년 전이거든요 약 25년 전 그때는 또 모르지 그래서 애굽에 바로 왕을 만나러가는 도중에 있었든지 아니면 애굽에서 올라올 때 있었든지 그럴 때라고 봐야지 지금 이미 이삭을 잉태한 90세쯤 될 때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거야 이해가 되시는지 모르겠어요.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떻든 아비멜렉이 사라를 빼앗아 간 겁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3절에

그 밤에 하나님이 아비멜렉에게 현몽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

4 아비멜렉이 그 여인을 가까이 아니한 고로 그가 대답하되 주여 주께서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

5 그가 나더러 이는 내 누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 여인도 그는 내 오라비라 하였사오니 나는 온전한 마음과 깨끗한 손으로 이렇게 하였나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모르고 남의 아내인줄 모르고 데려 온 것뿐입니다 이렇게 말한 거죠.

6 하나님이 꿈에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자 이것 보세요. 지금 아비멜렉이라는 사람이 한 일은 어떤 유목민의 여동생이라 해서 한 여자를 데려 왔는데 그래서 그걸 두고 하나님은 이렇게 하는 것이 내게 범죄 한다는 거야 내게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아 가는 것은 아브라함에게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짓는 걸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야 내게 범죄 하지 않게 하려고 내가 너를 막은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거야 우린 거저 사람에게 하면 사람에게만 죄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죄가 된다는 거야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 양심이라고 하는 법을 심어 놓은 분이 하나님이신데 그걸 거스르게 될 때 그건 사람에게도 죄가 되고 하나님께도 죄가 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심판하는 거예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람에게 했지 하나님께 해롭게 안했다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거에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 됩니다. 죄를 지을 때 거기 줄을 그어 놓으세요. 너를 막아 내게 범죄 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자 아브라함을 누가 우리가 아무도 아브라함을 선지자라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최초의 선지자야 물론 더 거슬려 가면 노아가 선지자라 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선지자 “나비”라고 이렇게 합니다.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

아이고 엄청나게 엄하게 말씀하시는 거죠

8 아비멜렉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모든 신복을 불러 그 일을 다 말하여 들리매 그 사람들이 심히 두려워하였더라

아브라함 가문에 함부로 하였다가 하나님께 혼난다. 죽는다는 그런 경고를 들은 거죠.

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리하느냐 내가 무슨 죄를 네게 범하였관대 네가 나와 내 나라로 큰 죄에 빠질 뻔하게 하였느냐 네가 합당치 않은 일을 내게 행하였도다 하고

10 아비멜렉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의견으로 이렇게 하였느냐

11 아브라함이 가로되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를 인하여 사람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

나를 죽일까 겁이 나서 그랬소 아브라함 말이 참 이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그러니 사람만 안 보면 무슨 일을 할지 알 수가 있나 여러분 좀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안중에 없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지 몰라 그러니까 다 그런 것은 아니로되 그 안중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는 것을 다 보고 계시다고 믿는 사람은 사람이 보거나 말거나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죠. 그런데 전혀 인식 속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은 사람만 안 보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두렵다는 거죠.

12 또 그는 실로 나의 이복 누이로서 내 처가 되었음이니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실제는 배 다른 여동생이야 아버지는 같아요, 진짜 배 다른 여동생이라고 아브라함에게 그래서 거짓말은 거짓말이지만 절반만 거짓말이죠.

13 하나님이 나로 내 아비 집을 떠나 두루 다니게 하실 때에 내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이후로 우리의 가는 곳마다 그대는 나를 그대의 오라비라 하라 이것이 그대가 내게 베풀 은혜라 하였었노라

우리 그리 약속을 미리 했었다고 말합니다.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노비를 취하여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너 보기에 좋은 대로 거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풀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선히 해결되었느니라

이렇게 무마를 하려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도 소위 말하면 요즘 같으면 위자료 같은걸 지불했다는 거죠.

17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하매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그 아내와 여종을 치료하사 생산케 하셨으니

18 여호와께서 이왕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아비멜렉의 집 모든 태를 닫히셨음이더라

그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온 집안에 다시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그렇게 했다가 아브라함이 기도하니까 그걸 다 풀어주셨다 이런 이야기에요 그래서 정말 하나님의 선지자, 하나님께서 정말 택한 백성 중에 믿음의 조상 아니겠어요. 이 사람을 누가 건들면 하나님이 그냥 두지 않는다 하는 그런 기록인데 아마도 아비멜렉 집안사람이나 아비멜렉 자신이나 그 자손들이 그 이후로는 아브라함 가족에 대해서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21장에 보면

1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권고하신다는 것은 돌아보아 주신다. 돌보아 주신다.

2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여기 여러 번 말씀대로 말씀대로 하나님 말씀하시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그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3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이삭 이쳐하크 이삭 웃긴다. 그런 뜻이죠.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6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하나님이 약속할 때 사라가 속으로 웃었다 그러죠. 큭큭 하고 웃었는데 사라가 왜 웃느냐 하니까 제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웃었다 안 웃었다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던지 아브라함이 이름을 웃었다 웃긴다 하고 사라도 다시 한 번 그날을 떠 올리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웃게 하시니 듣는 사람마다 다 웃을꺼다.

7 또 가로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 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그 근동사람에게도 큰 뉴스거리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 봐도 아브라함이 봐도 그렇고 사라 자신이 봐도 그렇고 아브라함 집에 모든 권속들이 다 알잖습니까. 사라가 생리가 다 끊어지고 90세가 되어 가지고 아무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안했는데 아기를 가지니까 이건 생물학적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태어난 자녀라 이렇게 인식을 했겠죠.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의 만 3년 정도를 젖을 먹입니다. 그리고 젖을 떼는데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 얘기죠 우리나라에는 100일 잔치 첫돌잔치 보통 이렇게 하죠. 날짜를 중요시 해 가지고 그런데 이스라엘은 젖을 떼는 날에 대연을 배설하였다 또 기념 할 만하죠. 엄마 육체로부터 독립하는 날 젖을 떼고 밥을 먹는 날 빵을 먹는 날이 되겠는데 우리가 어릴 때는 외동아들이거나 이런 경우는 다섯 여섯 일곱 살 까지 젖을 먹어요. 젖이 나거나 말거나 턱 물고 앉자있어요. 산에 나무 한 짐 해 가지고 젖 한통 먹고 우리 동네 그런 집이 있었어요. 동네에서 제일 윗집인데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5대 독자인가 4대 독자인가 그런데 너무 귀한 나머지 아이가 하나 밖에 없고 늘 다 큰데도 불구하고 이가 허연 아이가 젖을 물고 있었는데 제 동생도 제법 젖을 오래까지 먹었어요. 그런데 얼마나 철이 다 들었는지 우리 집에서 한 500미터쯤 가면 우리 논이 있는데 논가에 소태나무가 있는거에요. 여러분 에스라하우스 입구에 입간판 옆에 있는 나무가 소태나무입니다 여러분 누가 그것 한번 이파리라든지 줄기를 잘라 한번 씹어 봐요. 쓴 맛이 일주일을 입에서 안 떠납니다. 내 동생 목사가 어릴 때 흑뒤골이라는 골짜기 우리 논에 가 가지고 어머니 저기 소태나무 있네요. 바를려면 발라라 자꾸 어머니에게 달려드니까 이놈의 자식 소태나무를 발라야겠다. 이렇게 하니까 아이가 얼마나 컸는지 소태나무가 어떤 나무진 알아 벌써 저 소태나무 있네 발라라 이래서 우리 온 동네에 화제가 되고 그랬어요. 그리고 동생 젖을 떼고 있다가 우리 어머니가 막내를 낳았는데 막내를 낳고 그 이듬해 우리 형수가 첫딸을 낳았어요. 하하 그러니까 제 여동생하고 큰 질녀하고는 한 살 차이야 시어머니도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이고 며느리도 아기를 안고 있고 그랬습니다. 그때 뭐 그런 것을 부끄럽게 생각 안 했어요. 그래서 이 이스라엘에선 젖을 떼는 날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

여기 참 짜하크라는 히브리어가 희롱한다 말이 어렵죠. 경멸한다 이걸 뭐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배 다른 동생이 사랑을 너무 많이 받거나 하면 시샘해 가지고 마 해코지 한다든지 이런 게 있거든요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그렇다고 참 매우 여성스러운 이야기죠 사라가 착한 여인이지만은 자기 아들 해롭게 하는 것 그것 딱 못 봐주죠. 그것도 여종의 소생인데

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참 쫒아 내기도 그렇고 놔 두고 보자니 사라가 너무 속상해 하고 여러분 성경이 이런 것 까지도 그대로 감추지 않고 직필로 써 놓았어요.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뭐 애석한 일이지만 한집에 있어서 불행한 것 보다 떨어져서 잘 지내는 게 낫다 그냥 내 보내는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너무 고민을 하니까 하나님께서 아내 말 듣고 내 보내라 그렇게 한 것입니다.

13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떡과

빵이겠죠.

물 한 가죽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15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16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17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뭐 애도 울고 그리고 엄마도 울고 하는데 엄마 우는 거야 인지상정이지만은 아이가 처량하게 울어 제치니깐 그 아이 우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웠더라

20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바란 광야는 가데스바니아에서 시내산 쪽으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거기가. 훗날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시내 광야에서 바란 광야로 통과해 가지고 지인광야로 올라오게 되죠. 그래서 시내산 쪽으로 가는 길목에 바란 광야가 있었습니다.

그 어미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그래서 이스마엘이 살던 땅은 바란광야에서 애굽 근방 거기 살았다고 봐요 그런데 코란에는 메카 아라비아 반도 한가운데 메카에 살았다고 기록을 해 놓았는데 성경하고 안 맞는 거죠. 코란에는 보면 엉뚱한 얘기를 많이 써 놓았어요. 말도 안 되는, 성경하고 영 맞지 않는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 우리는 아라랏산에 방주가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코란에는 쥬디산에 머물렀다 이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현재 이슬람교를 국교처럼 믿고 있는 터키 땅 그리고 이라크 또 아르메니아 이란 이런 나라 전부 다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 국가 안에 있는 아라랏산에서 만약에 방주가 발견되면 코란이 틀리게 되는 겁니다. 코란이 엉터리가 되는 겁니다. 성경이 맞게 되고 그래서 방주의 흔적이 있다손 쳐도 저 이슬람 사람들이 코란이 맞다 하기 위해서 없애 버릴 수도 있고 발견됐어도 정직하게 발표 안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코란하고 안 맞으니까 거기서 발견되게 되면 22절

22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자 이게 오늘 제목입니다 아브라함의 선교적 삶이라는 거야. 아브라함은 선교사라고 이렇게 떠들고 안 다녀도 아브라함의 그 삶이 하나님의 선교 이런 하나님의 선교를 미쇼데이 하나님의 선교 아브라함이 거룩하게 사는 그 삶이 바로 선교고 삶이 바로 예배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을 섬겨라 이렇게 안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거룩한 생활을 보더니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빼앗아 갔던 그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하고 와 가지고 아브라함에게 와서 고백하기를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는 것 같다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23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 내게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

24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맹세하리라 하고

25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비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

그 종들이 그렇게 했는데 우리 같으면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했으며 가서 따지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렇게 할 텐데 아브라함은 종들이 와서 그렇게 한 걸 그걸 굳이 가서 아비멜렉에게 왜 이리 하시오 말 안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으면 당장 가서 따지고 이렇게 할 텐데 아브라함은 그냥 피해를 본데로 그냥 묵묵히 있었는데 어느 날 이 사람들이 찾아와 가지고 서로 맹세하자는데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불가침조약 비슷한 겁니다. 서로 네 자손 내 자손이 서로 해하지 않는 그런 조약을 맺자고 하니까 조약을 맺죠. 조약을 맺는데 하면서 그때서야 우물 빼앗은 걸 놓고 이야기를 하니까 아비멜렉이 가로되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26 아비멜렉이 가로되 누가 그리하였는지 내가 알지 못하노라 너도 내게 고하지 아니하였고 나도 듣지 못하였더니 오늘이야 들었노라

27 아브라함이 양과 소를 취하여 아비멜렉에게 주고 두 사람이 서로 언약을 세우니라

28 아비라함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으니

29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일곱 암양 새끼를 따로 놓음은 어찜이뇨

30 아브라함이 가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

31 두 사람이 거기서 서로 맹세하였으므로 그곳을

맹세의 우물이라

브엘세바라 이름하였더라

그래서 그 땅 이름이 브엘세바가 된 겁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땅 최남단에 꽤 발달한 도시입니다 한 인구가 지금 십만 정도 됩니다. 한 두서너 번 가 봤는데 맨 남단입니다 남단 우리나라 같으면 해남처럼 이스라엘 땅의 끄트머리 남쪽 끝인데 그래서 이스라엘 땅을 말할 때 북쪽 끝은 단이라고 그러고 남쪽 끝을 브엘세바라 그래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하면 우리 같으면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이런 뜻인 거야 제일 남단에 브엘세바 맹세의 우물이 있습니다. 아비멜렉도 그 근방에 살았고 아브라함도 그 브엘세바를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32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족속의 땅으로 돌아갔고

33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 에셀나무가 우리 교회는 없는데 언제 한번 우리나라도 더러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크니까 에셀나무가 이스라엘 같지가 않고 에셀나무가 마음껏 쭉 이렇게 커면 제법 한 10미터까지 커요 그리고 여간 가물어도 살아남는 그런 나무인데 그늘이 참 괜찮아요. 나무가 그래서 우리나라에 지금 우리 마산샤론교회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에셀나무 같은데 추워서 그런지 영 잎도 좀 쪼그라지고 그래요 좀 비슷한 나무야 이 다음에 제가 사진을 찍은걸 한번 보여 드리겠습니다.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거기서 기도하고 찬양하고 또 제사를 드리고 단을 쌓고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34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거기가 블레셋 사람들이 대체로 브엘세바까지 이렇게 영접해 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은 그 옛 땅을 약속으로 받은 것뿐이지 실제적으로 뭐 양을 치니까 이리 옮겨 가고 하니까 내 땅이다 네 땅이다 할 게 없고 사실은 그 땅이 아브라함이 그 땅이 좋아서 살고자 하니까 아비멜렉이 우리가 쓰는 땅이지만 당신도 쓰십시오. 해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가 브엘세바는 제법 동네도 있고 물도 있어요. 거기가 지금은 기차 길도 그리 지나가고 그렇게 합니다. 거기가 마음에 들었든지 아브라함이 거기 상당히 오래 동안 거기 살게 됩니다. 사실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보다 먼저 있던 땅인데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제법 오래 살고 거기서 에셀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평평한 지역이기 때문에 높이가 한 10미터 까지 되는 나무를 심어 놓으면 먼데서 봐도 그것이 보이죠. 지금은 물론 그곳이 도시가 되었으니까 누구든지 알고 길이 다 통하지만 옛날에는 사람 안 살면 나무라도 하나 심어 놓으면 그것이 하나의 이정표가 되고 랜드마크처험 거기다 저 에셀나무 있는 저기다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여기 저가 입구에 마로니에나무를 하나 닭장 뒤에 심었거든요 팔뚝만한 것을 심었는데 제가 마로니에 나무를 좋아해 가지고 저게 커면 그것이 하나의 랜드마크가 될 란가 에스라하우스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그 오다 보면 큰 마로니에 나무가 하나 있다 한다든지 마로니에 삼거리, 여기 삼거리잖아요 여기가 삼거리 이름을 마로니에 삼거리로 지을까 지금 그러니까 나무를 심었다는 거죠 유목민들은 잘 나무를 안 심어요. 별로 아무 때나 풀이 있으면 머물고 없으면 또 가고 하니까 그런데 이때부터는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오래 머물기 위해서 거기다가 집도 짓고 나무도 심고 그렇게 하지 않았겠나 이렇게 봅니다. 아브라함이 살아간 땅이 대부분 브엘세바 그 다음에 헤브론 밑에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길인데 그 왔다갔다 양을 치면서 하는 거야 그렇게 애굽에 갔다가 수모를 당했고 다시는 하란 쪽으로 아예 가지고 않고 그 중간에 세겜 쪽으로는 잘 안 올라 간 것 같고 아브라함의 활동 반경을 보면 브엘세바에서 마므레 상수리나무 있는데 까지 갔다가 그리고 22장에 보면 그 모리아 산 이삭을 바치기 위해 모리아 산 지금은 예루살렘 땅인데 그 정도 어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양을 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는 장면인데 다음 시간에 보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히 구별된 삶을 살았는지 그랄 목자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찾아 와서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는 것 같다 이런 고백을 할 정도로 정말 선교사와 같이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이 방목리 단성 일대에 살면서 성도들이 정직하고 거룩하고 복되게 살아서 우리 지역 사람들이 우리들의 삶을 볼 때 저 사람들의 삶속에 샤론장로교회 성도들의 삶속에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 같다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정말 가다듬어서 성실히 사는 또 아름답게 살아서 주의 영광이 되고 주님의 향기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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