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큰 시험(창세기 22장 1 ~ 2절)
아브라함의 큰 시험(창세기 22장 1 ~ 2절)
  • 김용창
  • 승인 2018.06.20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 나이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창세기 22장에 아브라함을 시험한 이 사건은 하도 유명한 사건이라서 교회 다녀보신 분은 다 몇 차례 식 다 들었을 것입니다. 그때 아마 아브라함은 115-120세 그 정도 되고 이삭은 15~17살, 20살 나이가 정확하지 않으나 그런 정도 될 때 같은데 남자 아이들을 저는 아들을 안 길러봤지만은 크는 것을 보면 15~17살 될 때쯤 사춘기가 되는데 남자들은 그때가 제일 예쁜 것 같아요.

한참 꿈을 품고 자라나는 가장 사랑스러울 때 그럴 때 아브라함이 100살에 얻은 외아들이기 때문에 얼마나 사랑스럽겠어요. 또 얼마나 귀하겠습니까, 그래서 아브라함 온 그의 마음에 8~90프로가 그의 이삭에게 쏟아져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는 하나님 보다 아들을 더 사랑할 수 있어요. 여러분 그렇게 되면 하나의 우상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런 걸 가지고 그 크신 하나님이 질투하실까 싶어도 질투해요. 여러분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소중이 여기거나 심지어 아내나 남편이나 아들이나 딸이나 어미나 아비나 누구든지 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더 소중한 존재가 있을 때 하나님은 은근히 시험해 보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성실한 아브라함도 시험하시고 이삭도 시험하시고 야곱도 시험하시고 요셉도 시험하시고 다윗도 시험하시고 하나님 독생자 예수님까지 시험해보신 것 아시잖아요. 그게 다 따지고 보면 왜 시험해 보냐면 하나님보다 더 소중한 뭐가 있지 않느냐? 하는데 적어도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가장 소중한 게 100살에 얻은 거기에 나오지 않습니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라. 우리가 모리아산이 대체로 지금에 예루살렘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으나 잘 몰라요. 어딘지. 다른 곳에 잘 나오는 지명도 아니고 그런데 거리가 4절에 보면 3일길 된다는 거야, 지금 브엘세바에 살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한 3일길 되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근히 염두 해두신 그런 장소가 있을 텐데 거기가 훗날에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땅이 될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아무데나 보낸 게 아니고 지금 현재 예루살렘 성전 터 거기였을 것이다. 거기다 자꾸 사람이 상상력을 보태서 황금 돔으로 된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그 지하에 가면바위가 이 강대상 이런 것 네 개 다섯 개 큰 바위가 있어요.

그 바위가 이삭을 놓고 제사했든 바위다. 확인할 길은 없고요. 그렇게 전합니다. 제가 93년도에 갔을 때 한번만 황금 돔 성전에 들어다 봤어요. 그 이후로는 전혀 들어가는 길이 없습니다. 이방인들이 이슬람교도가 아니고는 못 들어가요.

이스라엘하고 이슬람 사람들이 너무 긴장이 심해서 지금은 성지순례가도 먼발치에서 황금 돔 성전을 바라만 볼뿐이지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93년도 참 그때 우리가 92년도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는데 93년도 제가 잽싸게 갔죠. 그때 간 게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아무도 못 가니까.

그래서 누구든지 거기 의심이 없이 예루살렘이 모리아산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결심해도 작심 3일이다. 그런 말이 있잖아요. 아브라함이 명령을 받았을 때 마음에 심한 갈등을 일으켰을 것 같아요.

속으로 하나님도 이방신과 똑 같은가? 왜냐하면 그 당시에 가나안 땅 사람들이 섬기는 몰렉이라는 그런 신이 있는데 자녀를 불살라서 번제를 드리는 인신공양이라는 그런 제사를 하거든요. 이방신들에게.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런 것을 알 텐데 그러면 우리 하나님도 이방신과 똑 같은 분인가? 꼭 같은 그런 신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한편 하나님 입장에서는요 “몰렉이라든지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 자식이라도 바치는 정성이 있는데 아브라함 너 그렇게 할 수 있나? 한번 해봐.”

그런 심리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일언반구도 무슨 반문하거나 질문하거나 거역하거나 그런 말이 일절 없이 또 이런 아들을 지금 100살에 얻었고 사라가 90살에 얻었는데 사라하고 의논해야 되잖아요.

아브라함 혼자 낳았나? 아니 낳는 것은 사라가 낳았잖아요. 그리고 사라가 낳고 길렀는데 의논도 안하고 하나님께 그것도 유학 보낸 것도 아니고 태워서 번제를 드린다는데 사라하고 의논하면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우리 사라들 이야기를 해보세요. 어림도 없죠. 그렇죠.

“영감이 너무 오래 살아서 미쳤나?,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나?”그런데 대단한 일이라, 우리는 남 이야기이고 오래된 지나간 이야기니까 편안하게 얘기 할 수 있으나 아브라함은 직접 전무후무한 시험을 당했는데 고민이 얼마나 컸겠어요.

사환 둘을 데리고 이삭을 데리고 아브라함과 4명이 사흘 길을 올라갑니다. 저는 브엘세바도 가봤고 예루살렘도 가봤는데 꽤 먼 거리입니다. 차를 가도 한참 가는 길인데 데리고 바깥에 잠, 기후가 어느 시대, 여름인지모르지마는 집도 없이 그때 여관이나 호텔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까 잠을 몇 밤을 자가면서 가는데 얼마나 아브라함 가슴이 미어지고 정말 얼마나 갈등이 되었겠어요. 이런 하나님을 꼭 순종해야 되나?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걸어갔는지 낙타를 타고 갔는지 그런 말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루 종일 걸어본 적 있습니까? 아침 일찍부터 해질 때까지 걸어본 적 있습니까? 잘 없을 것 아니에요. 그렇죠? 저는 등산을 다니면서 옛날에 그런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보는.

그런데 하루에도 걷는다 하면 이틀을 연이어서 걸어 봐요. 사흘까지 걸어봐, 그것도 즐거운 걸음이 아니고 지금 아들을 잡아서 번제에 들어가는 길을 사흘 길을 걸어갔다. 우리가 남의 일이라 예사로 편안하게 얘기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 당하면 아브라함에게는 보통 이야기가 아니죠.

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나귀를 타고 간 것 같아요.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사환들이 당연히 가서 일을 해야 되는데 왜 사환들을 떼놓느냐?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고 하면 사환들이 있으면 아무리 아브라함을 종들이라고 말리지 않겠어요. 딱 말리지 못하게 산 밑에 남겨두고 이삭만 데리고 올라갔다는 얘기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여러분 아브라함의 가슴은 어떻겠어요. 그래서 불은 어떤 불을 가져 갖는지 그때는 라이터나 성냥이 없는 시절이니까, 우리 아버지 때까지만 해도 부싯돌을 썼어요. 부싯돌 잘 모를 겁니다. 대장간에 가서 쇠를 손가락 두 개보다는 작아요. 얇게 두께가 3미리정도 얇은 쇠를 굉장히 강한 쇠를 해가지고 차돌을 손가락 한마디만한 것을 깨어서 몇 개를 담배쌈지가 있습니다. 담배를 피워서 엽초, 연초라고 하는 것을 담배를 넣고 한번 젖고 거기 부싯돌 넣고, 쑥을 말려서 비비면 그게 아주 솜처럼 됩니다. 그걸 이만큼 가지고 다녀요. 하루분이 담배를 열 번 피면은 열 번 정도 이만큼 하고 쑥 비빈 것을 차돌위에 놓고 부싯돌 쇠를 가지고 잘 쳐야 해요. 불이 반짝해야 되거든요. 불이 반짝할 때 불씨가 쑥에 붙습니다. 연기가 모락모락 나요. 후우 불면은 그것을 가지고 불도 피우고 밥도 해먹고 하거든요.

아브라함도 그런 부싯돌을 가지고 갔다는 것인지 어떻든 불도 가져갔다는데 나무도 있고 불도 있는데 정작 중요한 것을 이삭이 볼 때 빠졌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불과 나무가 아니라 제사할 제물이 있어야 되는데 그게 안보이니 이삭이 한 이틀 삼일 간 계속 물어볼까 말까 했을 거예요.

결정적으로 제사할 산에 가까이 왔는데 산으로 올라가는데 사환이 같이 가면 사환보고 사오라고 하든지 잡아오라고 하든지 하지마는 사환들은 때 버리고 이삭 자기하고 아버지하고 둘만 가는데 둘 중에 누군가 제사할 양을 마련해야 할 것 같으니까 이삭이 물어 보는 거죠. 아마 아브라함이 속으로 그때 제일 가슴이 먹먹하지 안했겠는가.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굉장히 명답이고, 명언이고, 오고 오는 세대에 이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이렇게 되는데 히브리어 이스라엘말로 하면 ‘여호와 이레’라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준비 하신다’

우리가 무슨 큰일을 두고 이것 염려하고 저것 걱정하고 그런 염려가 밀려와서 그 염려가 아주 스트레스가 되고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때 옛날에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 이런 분들은 하나님도 모르고 하니까‘다 닥치면 다 넘어간다.’‘아무리 어려운 일도 닥치면 다 감당해야 하고 다 넘어 간다.’그런 정도로 얘기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어요. 다 닥치면 해 낸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은 집에서 대사, 다시 말하면 결혼식이 있거나 아니면 장례식이 있거나 전부다 예식장에서 하루에 끝내버리잖아요. 그런데 옛날 우리 어른들 결혼식은 특히 신랑 쪽 잔치는 신부가 오는 날 그날 하루 잔치예요. 신부는 사흘 잔치인데 사실은 닷 세 잔치를 해야 돼요. 잔치 전날 준비하면서 죽을 고생을 해야 되고 잔치 끝나고 또 정리하고 하는데 하루가 가고 그러니까 사흘 잔치를 하고 5일 잔치를 해야 딸 하나 시집보내요.

그런데 그 손님을 전부 집에서 다 영접하고 대접해야 되고 마당에 차일을 치고 추울 때 방에 앉을 자리도 없습니다. 방은 할머니, 할아버지 앉았고 신랑, 신부 앉아 있고 나머지는 전부 마당에서 추운데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딸들을 다 시집보내고 했는지.

장례식도 마찬가지로 집에서 장례를 치루고 할 때는 집안사람들 먼데 친척, 일가친척, 친구, 사돈에 팔촌까지 다 와서 집에서 대접을 해야 되고 그럴 때 얼마나 염려가 되는지 어른들이 그런데 한번 잔치를 치루고 나면 어른이 된다. 라는 말이 있었어요. 얼마나 일이 엄청난지.

오늘 우리가 예식장에서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죠. ‘닥치면 다 감당한다.’ 그렇게 했는데 아브라함에게는 ‘여호와 이레’라는 불후에 명언을 남긴 거예요. ‘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참 편하게 이야기 하죠. 그 아들이삭을 결박하여 쉽게 편하게 이야기 하는데 이삭이 어떤 자세로 나왔을까요?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너무 간단하게 써 놓았어요.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이 꼭 그렇게 해봐야 되나? 꼭 그렇게 해봐야 아시느냐고? 그런데 하나님은 다 아시죠. 안 해봐도 아시는데 누가 모르느냐, 아브라함은 몰라요. 자기가 이런 시험을 안 거치면 내가 내 아들 100살에 얻은 독자 이삭보다 내가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가? 아브라함 자기는 모르죠.

또 우리도 모르잖아요. 아브라함도 모르고 우리 사람이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이 모르는 게 아니고 하나님 안 해봐도 아시지만은 우리자신의 신앙을 시험해봐야 되거든요. 우리가 우리를 시험 못해요. 그래서 여건과 환경과 이런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해야 우리가 시험이 되지 내가 나를 시험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는 그 시험은 하나님이 뭘 몰라서가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이 그 가정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과의 관계를 인간관계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는 거예요. 그 옛날에 자기가 자기 아버지 데라를 두고 가나안 땅을 떠나올 때도, 그것도 부자관계 아닙니까. 아버지보다도 하나님의 명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그다음에 이삭은 아래 관계인데 역시 다 직계존비속인데 아버지보다도 아들 더 소중히 여기고 자기 아들보다도 하나님 명을 더 소중히 여긴다. 여러분 쉬워요? 어려워요? 쉽지 않은 거예요.

저는 제 아버지가 저보고 “이거 해라” 할 때 내 기억으로는 속으로는 힘들고 싫어도 “아니요”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가 말하는데 “아니요”해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는 깊은 겨울밤에도 놀거나 쉬는 일이 없고 멍석을 만들거나 가마니를 짜거나 제일 많이 한 게 가마니 짜는데 가마니는 아버지 혼자 못해요.

멍석은 혼자 하는데, 그러면 꼭 저를 불러서 대나무 바늘이 있어요. 거기다가 짚을 넣어주면 아버지가 바늘을 치고 하는데 하루 밤에 가마니 한 장을 못 치고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한 나흘 밤 정도 되면 가마니 한 장을 짜는데 겨울에 가마니 한 30-40개를 짜야 되거든요.

온 겨울 내도록 저녁시간에 저는 자유가 없는 거예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공부해라는 게 아니라 가마니 짜라. 지금도 가마니 보면 화가 나요. 얼마나 겨울밤들을 가마니 짠다고 그러면 동네 아이들 골목에 뛰어놀면 나가서 뛰어 놀고 싶어서 얼마나 속이 상하는데 그래도 아버지 명령에 “아니요”하지 않고 가마니를 짰어요.

지금 가마니도 안 짜지, 세상에 나무 하러 가지도 않지, 꼴 베러 가지도 않지, 천국 갈 필요도 없어요. 여기가 천국인데 가길 어딜 가요. 지금도 가마니 짜든 그 시절 그 밤이 그렇게 괴로운 거야, 아버지가 꼼꼼해가지고 대충 짜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어떻든 이삭도 순종하는 것을 볼 때 평소에 아브라함이 자녀교육을 어떻게 했는지를 성경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이를 묶어서 제사를 드리려고 할 때 순종했다는 겁니다. 이삭도 아브라함도 그런 시험을 거쳤다는 거예요.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수양이 뿔이 묘하게 생겨서 수풀에 걸렸어 오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고 그 양을 잡아다가 제사를 드렸는데 아브라함 말한 대로 믿음대로 되었죠. 그래서 이삭은 살아나고 양이 번제가 된 거죠.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자기가 어떻게 말을 했는데 말대로 해버렸네. 저도 가끔 생활하다가 말을 했는데 조금 있다가 말대로 돼버린 거예요. 한참 있다가 깨닫고 그런 일들이 더러 있는데 아브라함이 엄청난 추억으로 엄청난 기억으로 남아 있었겠죠.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준비하시는 여호와. 15절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대적의 성문을 얻는다는 것은 이긴다는 거죠. 그런데 씨들이 아니고 씨 하나라고 말하고 있어요. 훗날 사도바울이 이것을 보고 네 씨들이 아니고 네 씨 단수로 말하는 것을 볼 때 예수그리스도씨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천하 만민 그러니까 세상에 돈 많은 사람, 명예, 권세, 부귀, 영화 별것 다 가졌다는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영원한 생명의 복을 누리지 못한다면 진짜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천하 만민 중에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사람이 진짜 복 받은 것이고 돈 많은 것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야, 없는 것 보다 낫지마는 그 돈 때문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꽤 어렵다는데 돈 많은 것 때문에 천국에 못가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비록 세상에서 별 크게 유명하지 않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아브라함의 씨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하면은 최고의 복인 거죠.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사실은 이게 마지막 시험이었습니다. 여러 차례 시험이 있었거든요. 맨 처음에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할 때 두말하지 않고 갈 바도 알지도 못하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 아버지 집을 떠나는 시험.

그 다음에 가나안 땅에서 왔을 때 롯의 목자들과 조카. 아브라함목자들과 다툴 때 그때 인간관계가 이해관계보다 더 소중하다 해서 자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고 자네가 좌하면 네가 우 한다. 하고 물질관계 보다 인간관계가 더 소중하다 시험도 잘 넘어 가요.

그 다음에 100살에 얻은 아들, 큰 시험이었는데 이 모든 시험에서 아브라함이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고 다 통과를 합니다. 20절에

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롯의 여동생이죠.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그러니까 근친결혼이야, 유대인들은요 그의 생판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런 사람에게 어떻게 며느리를 데리고 오고 어떻게 딸을 줄 수가 있느냐 대게 집안사람들하고 결혼을 해요. 그리하다보니까 유대인만 앓는 병이 있습니다. 그 병을 테이 삭스라고 병 이름이 그래요. 테이 삭스라는 병인데 너무 가까운 인척끼리 혈통이 너무 가까운데 결혼을 여러 번 중복하면 나타나는 그런 병인데 지금도 가끔 그런 보고가 있습니다. 테이 삭스라는 근친결혼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병이라는 겁니다.

21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브두엘 하는 거는 나중에도 이름이 가끔 나옵니다마는 다른 사람 이름은 이름만 한번 나오고 그 뒤에는 알 수 없습니다.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첩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그래서 아브라함 사촌, 오촌까지도 챙겨 놓았는데 여기 우리가 아는 것은 브두엘과 리브가 정도는 이 뒤에 한번 나오기 때문에 아는 이름들이고 나머지는 어떻게 살아갔는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이 일생이라는 게 정말 복되게 노년에 나중에 저녁시간에 볼 텐데 노년에 아브라함이 복이 자꾸 터지는 거야, 여러분 젊어서는 고생을 할 수도 있고 젊어 고생은 돈 주고 사서도 한다. 그런 말이 있어나 정말 노년은 비참해서는 안 돼.

노년이 되었을 때는 정말 평안이 있고 또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돼요. 일생 신앙생활에 모델과 같은 롤 모델 같은 아브라함을 볼 때 젊어서는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고 했지마는 노년에 범사에 복을 주셨다. 아브라함 노년에 하나님이 범사에 복을 주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어요.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에 여러분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에는 아무리 복을 주셔도 받은 복 때문에 그게 시험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너무 젊을 때 돈이 많다. 절대 성공하지 못합니다. 너무 편안하게 컸다. 그런 사람은 대게 실패를 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정말 고생을 하면서 온갖 시험 다 거치고 노년의 복을 받아서 그래서 서양 사람들 속담이‘끝이 좋으며 다 좋다.’ 그런 말이 있어요. 끝이 좋아야 돼요.

대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끝이 안 좋죠. 이승만이도 끝이 안 좋고, 박정희도 끝이 안 좋고, 전두환이도 끝이 안 좋고, 노태우도 끝이 안 좋고 그의 대부분 끝이 안 좋아,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겁니다.

요새 보니까 박근혜도 끝이 안 좋고, 이명박도 끝이 좋을는지, 말는지 지금 걱정스러워요 그렇죠? 유명하다는 유명한 사람들은 대게 젊은 날에 정직하게 성실하게 안 살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끝이 안 좋은 거예요.

그리고 시험에 넘어 간 거야, 시험을 젊을 때, 중년에, 노년 때 인생에 한번만 있는 게 아니고 적어도 시험이 제가 볼 때 세 번, 네 번, 다섯 번 있어요. 그리고 매일 매일 펼쳐지는 것이 내 시험일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시험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후에 주께서 노년에 범사에 복을 주셨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샤론가족들은 다 끝이 좋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노년에 범사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도록 모든 시험을 정직하게 통과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 믿음의 표상이요, 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아브라함. 그 마지막 시험까지 잘 통과하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고 또 그가 노년에 범사에 복을 주신 그런 모습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젊은 날에 고생도 달게 받고 시험도 잘 통과하여 노년에 복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감사드리고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산청군 석대로365번길 39 (에스라하우스) 유앙겔리온
  • 대표전화 : 055-972-7753
  • 팩스 : 055-972-0691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용창
  • 법인명 : 유앙겔리온
  • 제호 : 유앙겔리온
  • 등록번호 :
  • 등록일 : 2017-04-05
  • 발행일 : 2017-05-01
  • 발행인 : 노우호
  • 편집인 : 엄인영
  • 후원계좌 : 우체국 610212-01-001231 에스라하우스
  • 유앙겔리온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유앙겔리온.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orbaea.com
ND소프트